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블랙 마켓 (2)
졸업생은 오세훈의 부탁을 받고 선선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 역시 한때는 선도부원이었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시간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긴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으며 물었다.
“진법에 막혔다고?”
“그렇습니다.”
“가 보자. 승재야, 문 열어 줘.”
“예, 선배님.”
곽승재는 진작에 주문을 영창한 상태였다.
어차피 다음 행선지는 정해져 있었으니까.
닫아 놓았던 나무 문을 다시 열자 그 너머의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포니테일 여성이 칭찬을 연발했다.
“이거 너무 편해. 승재야, 졸업하면 우리랑 일 안 할래?”
“고민해 보겠습니다.”
고유 마법의 존재만으로도 벌써 러브콜이 산처럼 쌓인 곽승재였다.
이윽고 그들이 문을 넘어 도착한 곳은 번화가 한 켠의 빈 건물 앞.
주위를 선도부 여럿이 빙 둘러 포위하고 있었는데, 일반 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건물 내에 있는 학생들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포니테일 졸업생이 건물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 맞아? 확실해?”
“확실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진법에 대해 파악한 것은—”
“아, 그건 됐어.”
현장에 있던 선도부원이 설명하려는 것을 손을 내저어 끊고, 그녀는 건물 입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말로 듣기보다 몸소 한번 겪어 보려는 심산이다.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거의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갑자기 몸을 180도로 빙글 돌리더니, 터벅터벅 걸어 선도부원에게 돌아왔다.
자신도 모르게 진법이 유도하는 대로 움직인 것이다.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졸업생.
“교란 진법이네. 이러면 너네가 못 뚫을 만도 하겠다.”
“송구합니다.”
진법 해체를 시도했던 3학년이 고개를 숙였다.
포니테일 여성이 물었다.
“내부에 민간인은 없지?”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
“뒤로 더 물러나.”
“……?”
선도부원들은 왜 물러나라고 하는 건지 의뭉스러운 표정이 되었으나, 졸업까지 한 대선배의 지시라 군말 없이 따랐다.
이어서 포니테일 여성이 다가간 곳은 건물 입구가 아닌 외벽이었다.
벽에 가느다란 손을 살짝 얹는다.
“도둑놈들 장단에 맞춰 줄 필요는 없지.”
그녀의 손이 푸른 빛을 머금더니, 그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파문이 일며 벽이 강하게 물결쳤다.
뒤이어 벽에 쩍쩍 빗금이 가며 빠르게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갔고,
– 쿠르르르…….
일대가 지진이라도 난 듯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B거래소 내부에서 농성하던 학생들이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이거 왜 무너져?”
“빨리 나가, 빨리!”
학생 십수 명이 거래소 창문을 깨고 튀어 나왔다.
곧바로 선도부의 포위망에 걸려 제압되었으나, 그들은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선도부에 잡히는 게 건물 잔해에 깔리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 쿠르르르릉—!
곧 건물이 완전히 붕괴해 폭삭 주저앉고, 일대가 자욱한 흙먼지로 뒤덮였다.
“……!”
“……!”
지켜보던 선도부원들은 아연실색해졌다.
진법을 파해하지 못해서 도움을 요청한 건데, 아예 진법이 설치된 건물 자체를 무너뜨려 버렸으니.
그들이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하는 의문이 담긴 눈빛을 오세훈에게 보냈으나,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한 채였다.
졸업생의 돌발 행동도 예상 범위 안이라는 뜻.
사실 반쯤은 이것을 의도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선도부장의 권한으로는 이렇게 과감하게 손을 쓸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 쾅!
“크억!”
선도부원이 저항하는 학생을 바닥에 메다꽂았다.
그리고 단말기를 들이대자 수정구가 붉은빛으로 물든다.
금지 아이템을 보유했다는 의미다.
제압당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포니테일 여성이 그들을 일별하며 지시했다.
“데려가서 심문 시작해. 혹시 안에서 버티다 깔린 놈들 있으면 꺼내 주고. 명색이 용살학원인데 죽지는 않았겠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선도부실로 돌아가려던 그녀가 무언가 떠오른 듯 등을 돌리더니, 폭삭 주저앉은 건물 잔해를 가리켰다.
“저건 내 앞으로 달아 놔.”
* * *
– 쿠르르릉—
B 거래소 쪽에서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광경을 보며 당규영이 혀를 내둘렀다.
“와……. 저 무식한 놈들. 완전 밥상을 엎어 버렸네.”
거래소의 위치를 특정했으니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진법을 뚫고 통과걸음 미로를 뚫으리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을 비웃듯 단숨에 건물을 철거해 버렸다.
“졸업생 분이 손을 쓰셨나 보네요.”
“그럴걸? 오세훈이나 곽승재는 저런 거 못 해.”
2, 3학년 선도부가 낼 수 없는 화력인데다, 선도부 입장에서는 번화가 건물에 손을 대기 전에 고려할 요소가 많다.
그러니 졸업생이 나섰다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 아닐까요.”
“아마?”
아무리 저 졸업생이 막무가내라도 건물들을 마구 부수고 다니지는 못할 테니까.
또 B거래소는 빈 건물이었지만, 나머지 거래소들 대부분은 우리가 스킬북을 거래했던 E거래소처럼, 영업 중인 곳을 빌렸다.
민간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면 건드리지 못한다.
따라서 나머지는 당규영의 의도대로 진법부터 차근차근 뚫고 들어와야 할 거다.
한 방 먹기는 했어도 여전히 도둑 동아리 측이 우세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열심히 방해해야지.’
– 슈우우우—팡!
선도부용 신호탄을 또 하나 터뜨렸다.
주로 위급한 상황에 쓰는 신호탄이라 무조건 확인하러 올 수밖에 없다.
감히 선도부의 물건을 훔친 놈들을 잡아 족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역시나 기척 여럿이 빠르게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뜁니다. 잡으세요.”
“응.”
당규영과 손을 잡은 채 맞은편 건물을 향해 도약했다.
단순히 뛰어서 넘기에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 펑!
[레비테이트 존]과 [윈드포스]를 조합해 허공에서 한 번 더 도약한다.그렇게 다음 건물에 내려앉은 다음 또 다음 건물로 넘어간다.
당규영의 눈이 흥미로 반짝거렸다.
“이거 하면 할수록 재밌네.”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서예인도 크리스탈 공략전에서 몇 번이나 던져 줬었고, 차현주도 대인전에서 멀리 날려 줬더니 좋아 죽더라.
이렇듯 윈드포스는 누군가에게는 혐오 스킬 1순위지만, 누군가에게는 재미가 가득한 스킬이기도 하다.
몇 번 더 옥상 점프를 하자 선도부의 추격을 가뿐히 따돌릴 수 있었다.
짧은 휴식을 취하는데, 아래쪽을 살피던 당규영이 내 손을 잡아끌더니 손가락질로 한 곳을 가리켰다.
“야, 저거 봐 봐.”
건물 사이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 학생 하나.
연신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짐작컨대 무언가 켕기는 게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 켕기는 것이란 십중팔구 금지 아이템일 터.
“우리 고객님이셔.”
“근데 걸린 거 같네요.”
다음 순간 선도부 둘이 나타나 고객님의 앞뒤를 가로막았다.
3학년 하나, 1학년 하나.
둘 다 얼굴이 낯익은데, 3학년은 임시 보관소를 지키고 있던 지옥부 선배, 1학년은 황금련 대공자 금조한이다.
금조한이 고객님에게 다가가며 단말기를 들어 보였다.
“잠시 불심 검문이 있겠습니다.”
“구, 굳이 검문까지 해야 하나?”
고객님이 불안하게 눈알을 굴렸으나, 그의 등 뒤에서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순순히 협조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지옥부 선배가 팔짱을 낀 채 위협적으로 기세를 쏘아 보내고 있었다.
그 기세에 눌려 고객님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금조한이 그에게 단말기를 가져다 대려는 찰나,
– 펑!
“어엌?!”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며 금조한의 신형이 옆으로 휙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지옥부 선배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은밀하게 날아든 나비 몇 마리가 그의 몸을 구속했다.
“당규영이냐!”
용살학원 내의 그림자 술사는 매우 한정되어 있고, [영접비행]을 주요 스킬로 쓰는 술사는 사실상 당규영뿐.
물론 당규영으로서는 그 질문에 답할 이유가 없었다.
“흡!”
곧바로 그림자를 풀어낸 지옥부 선배가 등에 메고 있던 도끼를 꺼내 들었다.
금조한 역시 벽에 얼굴을 박아 코피가 주륵 흐르기는 했으나, 곧바로 자세를 다잡고 검을 뽑는다.
“…….”
그러나 우리는 진작에 그곳에서 자리를 뜬 뒤였다.
고객님이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것까지만 보고.
당규영이 지옥부 선배의 방향으로 혀를 쏙 내밀었다.
“내가 미쳤다고 너랑 싸우냐. 어차피 지는데.”
당규영과 도둑 동아리가 이번 블랙 마켓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는 금지 아이템 검거율을 최대한 낮추는 것.
작년도 블랙 마켓의 실패로 바닥까지 떨어진 신용을 되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비 전력인 우리의 역할은, 선도부의 불심 검문이나 수색 등을 방해하는 것.
방해는 조금 전처럼 갑작스레 허를 찌르고 도망치는 걸로도 충분하다.
당규영이 또다시 선도부용 신호탄을 꺼내 들었다.
“슬슬 또 쏠까?”
그러나 나는 곧바로 답하지 않고 침음했다.
“……어쩐지 느낌이 쎄하네요.”
“뭐가?”
“슬슬 나무 문이 솟지 않을까 싶거든요.”
신호탄을 여러 번 쐈는데도 계속 우리를 놓쳤으니, 선도부원들 대신 곽승재가 움직일 때도 됐다.
당규영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듯 잠시 고민하다가,
“일리가 있네. 그럼 딱 이번까지만 쓰자.”
“그럽시다.”
신호탄에 마나를 주입했다.
선명한 빛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 슈우우우—팡!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우리가 윈드포스를 써서 다음 건물로 넘어가는 순간,
– 쿠구구구구,
마치 우리가 그곳으로 갈 줄 예상이라도 한 듯, 나무 문이 불쑥 솟아올라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당규영과 나는 서로 마주 보았다.
“진짜 오네.”
“느낌이 쎄했다니까요.”
곧바로 문을 열고 나온 곽승재.
그리고 3학년 선도부 둘이 더 따라 나와 그의 양옆에 자리를 잡았다.
“선배님, 그런 나쁜 짓은 곤란합니다. 그 신호탄은 선도부원에게만 사용이 허락된 물건입니다.”
“응? 무슨 신호탄?”
당규영은 시치미를 뚝 떼곤 아무것도 모르는 양 되물었다.
사실 우리는 근처에 있었을 뿐이지, 신호탄을 쐈다는 증거는 없다.
아직까지는.
곽승재가 이번에는 나를 응시했다.
“김호, 뭘 하든 교칙으로 정해진 선 안에서만 하라 하지 않았나.”
“그러셨죠. 전 그냥 선배님 따라 마실 나온 겁니다.”
저 교칙 위반 안 했어요.
나 역시 시치미를 뚝 뗐다.
물론 당규영도 나도,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는 했다.
“일단 선도부실로 동행해 주시지요.”
조사하면 다 나온다.
가령 내 인벤토리에는 아직 신호탄이 남아 있다.
동행을 거부할 시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3학년 선도부 둘이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당규영과 내가 눈빛을 교환했다.
‘잘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 전투가 막을 올리려는 순간,
– 휘리리릭—!
갑자기 어디선가 낚싯줄 같은 실이 날아들더니, 곽승재와 3학년 선도부 둘의 몸을 칭칭 휘감아 버렸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