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블랙 마켓 (3)
“이건 대체?”
“뭣……!”
선도부 삼인조가 자신들을 옭아매는 실을 풀어내려 했으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마나까지 끌어 올렸음에도 끊어지기는커녕 더욱 강하게 조여든다.
나는 잠시 그들이 버둥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오른 사람처럼 과장되게 놀란 시늉을 했다.
“헉! 선배님, 우리 그거요!”
“어? 아아, 그거! 그걸 깜박했네!”
‘그거’가 뭔지는 몰라도 눈치 빠르게 장단을 맞추는 당규영.
급한 티를 팍팍 내며 내 손을 잡아끌고, 곽승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야, 우리 빨리 가 봐야겠다. 선도부실은 다음에 갈게! 수고들 해!”
“선—”
그리고 곽승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잽싸게 땅을 박차 다음 건물로 넘어갔다.
한참 달리고 나서 뒤쪽을 확인하니 선도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도 낚싯줄을 못 끊어 낸 모양이다.
잠시 멈춰서 숨을 돌리는 시간을 갖다가, 당규영이 어디론가 말을 건넸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비싼 값은 하지?”
이윽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졸업생 뺀질이 사내.
가느다란 무언가가 반짝 빛나며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 간다.
아마 방금 사용한 낚싯줄일 거다.
‘졸업생일 줄 알았지.’
선도부 셋이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순식간에 제압당했으며, 우리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도 낚싯줄을 끊어 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중 두 명은 3학년이었으니, 졸업생일 수밖에 없었다.
당규영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지나가는 길에 다빈이가 알려 줘서 왔지.”
뺀질이가 대수롭지 않게 답하자, 당규영이 곧바로 컨트롤 타워에 통신을 연결했다.
채다빈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 잘 빠져나오셨어요?
“어. 대응 너무 잘했다. 승재 한 방 먹였네.”
– 요주의 인물이니까요. 계속 보고 있었죠.
곽승재는 작년도 블랙 마켓의 검거율을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요주 인물.
도둑 동아리 입장에서 최우선으로 신경 써야 하는 대상이다.
때문에 컨트롤 타워의 인원 몇이 곽승재의 동향만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었고, 그가 나무 문을 소환하는 즉시 다음 위치를 추적했다.
그리고 3학년까지 둘 가세하자,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뺀질이 사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상황은 좀 어때?”
– 좀 있으면 C거래소도 들킬 것 같아요. A쪽도 수색 중이구요.
“빠르네.”
원래는 B거래소에서 시간을 한참 허비했어야 하는데, 선도부 측 졸업생이 단숨에 건물을 철거해 버렸다.
따라서 곧바로 다음 거래소 수색에 인원들을 투입할 수 있게 된 것.
“우리도 당하기만 할 수는 없지. 부지런히 방해하자. 다빈아.”
– 네, 부장님.
“지금부터는 네가 지휘권 잡아.”
– ……!
“아마 선도부 애들 경계심도 꽤 올라갔을 거야. 이제는 무턱대고 들이대면 안 돼.”
가령, 당규영과 나는 고객님의 탈출을 돕기 위해 금조한과 지옥부 선배를 기습했었다.
그러나 같은 수법이 두 번 세 번 통하지는 않을 터.
금조한은 몰라도 지옥부 선배는 더욱 주위를 경계하며 행동할 테니, 기습하기가 훨씬 어려워졌을 거다.
‘어설프게 들어갔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고.’
그러니 이쪽도 더욱 신중해야 하며, 채다빈이 미리 시야를 확보한 다음에 들어가는 게 좋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일일이 당규영의 허락을 받지 않도록, 아예 지휘권을 넘겨 버리는 것이다.
– 그치만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돼. 내년엔 네가 부장이잖아. 믿어도 되지?”
– ……해 보겠습니다.
결의에 찬 채다빈의 대답을 듣고 당규영이 빙긋 미소 지었다.
* * *
채다빈은 당규영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번화가 수정구가 제공하는 시야를 십분 활용해, 컨트롤 타워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고객님 하나가 불심 검문에 걸리기 직전, 당규영이 물었다.
“지금 들어가?”
– 아니요, 함정이에요. 8시 방향.
“어, 진짜네. 머리 좀 썼다.”
채다빈이 알려 준 방향을 확인하니 과연 선도부 몇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도둑들이 방해하기를 기다리며 함정을 파 놓은 것이다.
괜히 고객님 하나 구한다고 들어갔다가 잡혀 버릴 수도 있으니, 이건 포기하는 게 맞았다.
다음으로 추격당하는 고객님을 발견하고, 당규영이 다시 물었다.
“저건?”
– 이상 없습니다. 들어가셔도 돼요.
“오케이. 김호야, 가자.”
“넵.”
우리는 바람 마법과 그림자 나비를 섞어 쓰며 선도부를 괴롭혔다.
선도부 측도 그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과 도둑 동아리 사이에는 압도적인 무력 차가 존재했기에, 채다빈이 적절하게 지휘했음에도 하나둘 검거되는 도둑이 늘어갔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채다빈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 C 거래소 뚫렸습니다.
채다빈이 공유해 주는 화면을 보니, 선도부가 C거래소 건물 안으로 물밀 듯이 우르르 몰려들어고 있었다.
기어이 진법과 통과걸음 미로를 분석해 낸 것이다.
당규영이 물었다.
“미리 다 대피시켜 놨지?
– 네, 아무도 안 남겼어요.
“그럼 크게 손해 본 건 없겠고. 다음은 A야?”
– 반 정도는 A로 몰렸구요, 나머지는 분산돼서 D, E, F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A까지는 내줘도 돼. 하지만 나머지는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 보자.”
– 네, 부장님.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힘내.”
밤이 깊어 북적거리던 번화가도 점점 한산해져 가고, 블랙 마켓의 거래들도 상당수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만 잘 버티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선도부의 수색을 방해해야 한다.
당규영이 앞장서서 나아갔다.
“가자, 김호야.”
그런데 그때, 채다빈의 개인 통신이 걸려 왔다.
“예, 선배님.”
– 전에 부탁한 거 있잖아.
나는 채다빈에게 따로 한 가지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오늘 번화가를 둘러보다가, ‘수상한 인상착의’를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곧바로 알려 달라고.
– ……찾았어, 수상한 사람.
“……!”
– 방향 보니까 네가 말한 곳으로 가는 거 같아.
한편, 당규영은 내가 개인 통신을 연결했다는 걸 눈치채고 귀를 쫑긋 세우더니,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선배? 선배 누구?”
“채다빈 선배요.”
“아, 다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바로 표정이 풀어지는 당규영.
그러나 뒤이어 새로운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는지 눈매가 다시 가늘어진다.
“가만, 너 다빈이랑 따로 연락해?”
“…….”
추궁하는 눈빛의 당규영.
대답 여하에 따라 삐질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얼굴을 진지하게 하고 말문을 열었다.
“선배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 어, 뭔데.”
“사전 답사 때, 낙서 기억하십니까.”
“……암호문.”
당규영의 얼굴도 진지하게 굳어졌다.
사전 답사로 번화가에 갔을 때, 나는 낙서가 가득한 벽에서 암호문 하나를 찾아낸 다음 교묘하게 고쳐 놓았다.
그 당시 당규영에게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 위험한 일인 거 알아. 그래도 나는 돕고 싶어.
– 지금은 안 됩니다. 때가 되면 전부 말씀드릴게요.
– 알았어, 약속.
“지금이 그때입니다.”
“……말해 봐. 도와줄게.”
“시간이 없으니까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가능하면 뺀질이 선배님도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러자.”
당규영이 연락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뺀질이 사내가 합류했다.
그가 우리 둘의 안색을 번갈아 살피더니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뭐야, 갑자기 분위기 왜 이래? 너네 싸웠냐?”
“얘가 설명한대요.”
당규영이 나에게 발언권을 넘기고, 나는 일단 목적지를 향해 앞장섰다.
건물 옥상에서 다음 옥상으로 건너뛰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 낙서는 짐작하신 대로 암호문이 맞았습니다.”
“그럴 거 같더라. 무슨 뜻이었는데?”
“시간과 장소요.”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굳이 암호문의 형태로 적어 놓았다면, 암호문을 작성한 자들의 목적 역시 유추가 가능하다.
다른 이들의 이목을 피해 은밀하게 접선하는 것.
또한 은밀하게 접선해야만 하는, 수상한 놈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근데 너 그 암호문 살짝 고치지 않았어?”
“그랬죠.”
양측이 엇갈리도록, 시간과 장소를 전혀 다른 곳으로 바꿔 버렸다.
“그 바꾼 시간이 지금이라 이거지.”
“맞습니다.”
“그럼 장소는?”
“…….”
나는 한동안 말없이 나아가다가 돌연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손을 살짝 들어 올려 수신호를 보내자 당규영과 뺀질이 사내가 뒤따라 정지했다.
나는 옥상 난간에 서서 아래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저깁니다.’
그곳에는 멀거니 서 있는 사람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그는 머리에 커다란 죽립을 뒤집어쓴 채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수상함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채다빈도 저걸 보고 연락을 보낸 것이다.
대개 죽립이란 비에 옷이 젖지 않게 하거나 햇볕을 피하려는 용도로 쓰는 것인데, 이 한밤 중에 죽립을 쓰고 나왔다면.
위와 다른 용도, 즉 정체를 숨기기 위해 썼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뺀질이 사내 역시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듯했으나, 아직도 의문이 많아 보였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하면 되나?’
‘두 분은 지금부터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세요.’
당규영과 뺀질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자 내가 죽립인을 가리켰다.
‘저 사람한테 제압기를 걸어 주셨으면 합니다.’
‘엉? 뭐?’
뺀질이가 당황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도와달래서 이야기를 들어 봤더니, 블랙 마켓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문제다.
거기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제압기를 걸어달라?
‘그랬다가 엄한 사람 잡는 거면?’
‘그래서 제압기인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필살기를 걸어 달라고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제압기를 선택한 거다.
그러면 만에 하나 저게 엄한 사람이라도 다치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한마디 덧붙였다.
‘책임은 다 제가 지겠습니다.’
‘…….’
뺀질이가 얘 좀 말려 보라는 듯 당규영에게 눈치를 주었으나, 당규영은 이미 내 말대로 제압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답한다.
‘저는 얘 믿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 주고 싶습니다.’
‘…….’
뺀질이의 눈빛이 묘해졌다.
당규영이 이렇게까지 말할 줄 몰랐다는 기색이다.
이내 체념한 듯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더니, 나에게 다시 묻는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다고 치고, 저 친구 실력이 어떻게 되는데?’
‘제 짐작이 맞다면……. A랭크입니다.’
‘……!’
‘……!’
두 사람의 얼굴이 더욱 무겁게 굳어졌다.
A랭크는 졸업생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자리한, 극소수의 실력자들만이 닿는 경지.
‘그러니 전력을 다해, 가장 강한 스킬을 써 주셔야 합니다. 전투를 개시하는 즉시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이거 된통 잘못 걸렸네.’
뺀질이가 안면을 구겼다.
블랙 마켓에 가벼운 도움만 주고 짭짤한 보수를 챙겨 갈 심산이었는데, 뜬금없이 A랭크 실력자랑 붙게 생겼다.
그러면서도 발을 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상황을 보아 그가 돕지 않으면 당규영 혼자서라도 전투에 임할 테고, 그러면 높은 확률로 제 후배가 죽는 꼴을 보게 될 테니까.
뺀질이가 양손에 장갑을 하나씩 꼈다.
당규영의 주위에는 그림자 나비가 팔랑거리며 쌓여 간다.
그렇게 기세를 잔뜩 끌어 올리며 제압기를 준비한 두 사람.
동시에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스킬을 해방한다.
뺀질이의 열 손가락에서 열 줄기 가느다란 낚싯줄이 뽑아져 나왔다.
“!!”
죽립인이 그제야 그들을 발견했으나, 그는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낚싯줄에 칭칭 휘감겨 버렸다.
거기에 셀 수도 없이 많은 그림자 나비들이 그를 덮쳐, 그림자로 뒤덮인 고치가 완성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남아 있던 선도부 신호탄을 사용했다.
한 줄기 선명한 빛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 슈우우우—팡!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죽립인이 내 말대로 A랭크의 실력자라면, 이렇게 기습에 성공했더라도 우위는 아주 잠깐에 불과할 거다.
과연 그림자 고치가 마구 들썩거리나 싶더니,
– 뚜두두둑!
핏빛 강기가 고치를 찢어발기며 터져 나왔다.
강기는 점차 일정한 형태를 갖추어 가기 시작했는데, 흡사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요괴 같았다.
그것을 보고 뺀질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수라혈마공!”
아수라혈마공을 강기를 발현할 수준까지 익혔다면, 죽립 사내의 소속은 오직 하나뿐.
‘혈교.’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