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김호의 말은 ???입니다
– 콰앙!
또다시 대포알 같은 마력탄이 죽립인을 강타했다.
두 번째부터는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강기의 팔을 들어 막았고, 피해 역시 없어 보였다.
그러나 충격의 여파로 주르륵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그사이 주문을 완성한 곽승재.
저격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목숨을 잃었으리란 사실을 본인도 아는 듯, 눈에 띄게 동요한 기색이다.
그가 나무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크으윽……!”
죽립인이 이를 갈았다.
그의 목표는 여전히 나무 문으로 고정된 상태.
두 공간을 잇는 문을 파괴한다면, 저쪽으로 넘어간 곽승재가 새로운 문을 만들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핏빛 강기 팔이 연거푸 장력을 날려 보낸다.
– 파파파팟!
“……!”
즉시 당규영이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그림자가 삽시간에 번져 나가 바닥을 까맣게 뒤덮고, 불쑥 커다란 그림자 벽이 솟아 장력과 충돌했다.
– 쾅!
소멸하는 그림자 벽의 빈자리를 방패를 든 선도부원이 채웠다.
– 쾅!
나가떨어지는 선도부원의 빈자리를 포니테일 여성이 채워 손바닥을 마주 뻗는다.
– 쾅—!
장력들이 막히자 죽립인이 직접 달려들어 문을 부수려 했지만, 또다시 저격이 날아들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을 포위한 이들을 노려보며 내뱉듯이 말했다.
“이 씹어먹을 연놈들이……!”
‘이제 끝났네.’
모두들 곽승재가 지원을 요청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끌어 주었다.
그가 제대로 교무실과 공간을 연결했다면 당직을 서던 교사가 금방이라도 등장할 터.
과연 반쯤 열려 있던 나무 문이 조금 더 열리더니 섬광이 번쩍였다.
그러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그자리에 우뚝 멈춰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당규영도, 뺀질이도, 포니테일 여성도, 선도부원들도…… 죽립인도.
그들의 시선 끝에는 죽립인의 한쪽 팔이 을씨년스럽게 툭 떨어져 있었다.
그제야 비어 있는 제 어깨를 확인한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악!!”
“모두 물러나라.”
나지막한 음성에 다들 죽립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나무 문이 더 활짝 열리며 천천히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의 정체를 확인하자 죽립인의 안면이 쉴 새 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인간 백정……!”
“바로 나다.”
인간 백정 이수독.
그의 손에는 식칼 형태의 커다란 도가 들려 있었다.
저 도로 엄청나게 빠른 도기(刀氣)를 날려 죽립인의 팔을 베어 낸 것이다.
죽립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이죽거렸다.
“천하의 인간 백정이 기습인가. 이름값을 못 하는군.”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정면승부를 고집하는 부류는 아니다. 그리고 탓하자면 내 기습보다, 적지 한복판에 홀로 기어들어 온 네 무모함을 탓해야 할 것이다.”
던전섬 한복판에서 모습을 드러내 놓고 정정당당한 일대일 결투를 기대했는가?
죽립인은 이만 부득 갈아 댈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수독이 커다란 식칼을 어깨에 턱 걸쳤다.
“들을 것이 많으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나도 오랜만에 혈교도 피맛은 봐야지.”
“…….”
몇 초간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
그들의 신형이 동시에 흐릿해지나 싶더니, 다음 찰나 바짝 달라붙어 격돌했다.
– 콰콰쾅!
한편, 당규영은 힘겹게 건물 옥상까지 올라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하고, 입가와 코에서 계속 피가 줄줄 흐르는 것으로 보아 내상도 심각한 것 같다.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보급형 엘릭서를 꺼내 마개를 땄다.
“먹어요.”
“…….”
손 들어올릴 힘조차 없는지 고개만 앞으로 내미는 당규영.
입에 엘릭서를 물려주자 꼴깍꼴깍 잘 받아 마신다.
유리병이 비워질수록 상처들이 빠르게 아물어 가고, 당규영의 표정도 점점 편안해졌다.
온몸에 긁힌 자국 하나 없이 말끔해졌을 즈음 엘릭서를 떼고 입에 사탕을 물려 주었다.
당규영이 사탕을 입 안에서 우물거리며 말했다.
“고마워. 통 크네, 엘릭서를 다 쓰고.”
“이런 때 안 쓰면 언제 씁니까.”
목숨 걸고 도움을 줬는데 엘릭서가 아까우랴.
이러라고 김갑두가 준 것이기도 했다.
– 네가 예뻐서 주는 게 아니야. 항상 곁에 있다가 혹시 당규영이 위험에 빠지면 쓰라고 주는 거다.
‘두꺼비 선배님, 감사히 잘 썼습니다.’
당규영이 마시고 조금 남은 엘릭서는 내 손가락에 들이부었다.
현음옥마지를 A랭크로 증폭시킨 탓에 S랭크 원소 저항으로도 페널티를 다 무마하지 못했고, 검지가 동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퉁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엘릭서가 닿자 빠르게 붓기가 빠지며 원상태로 돌아온다.
당규영이 그걸 보다가 물었다.
“방금 저거한테 썼나 봐? 현음옥마지.”
“썼죠, 저거한테.”
“어쩐지 확 약해졌더라. 덕분에 버틸 만했어.”
현음옥마지로 침투시킨 냉기는 완전히 몰아내거나, 완전히 얼어붙어 버릴 때까지 대상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A랭크인 혈교 장로조차 자신의 내공 절반 가량을 냉기를 틀어막는 데 분배했을 정도.
상대하는 입장에서 이만큼 악랄한 제압 스킬은 흔치 않을 거다.
때마침 ‘저거’의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아래로 시선을 내려보니 벌써 전투가 종료된 듯했다.
죽립 사내는 자기가 흘린 피웅덩이 위에 대자로 뻗은 채였다.
격전 중에도 꿋꿋이 뒤집어쓰고 있던 죽립이 벗겨지고, 봉두난발이 된 핏빛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겨우 숨이 붙어 있을 정도까지만 난도질을 당한 상태였다.
‘교직원은 교직원이군.’
혈교 장로가 여러 불리한 조건들을 안고 있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졸업생 셋에 3학년 셋이 겨우 붙잡아 두던 강자였다.
이수독은 그런 강자를 일대일로 단숨에 제압해 버렸으니, 용살학원 교직원의 솜씨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뒤이어 나무 문을 통해 교직원 둘이 더 걸어나왔다.
그리고 이수독과 혈교 장로를 번갈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뜬다.
“오잉? 이 쌤, 벌써 끝났어요?”
“끝났습니다.”
“아고, 죄송해요. 이 쌤한테 다 떠넘길 생각은 아니었는데. 뒷처리는 우리가 할게요.”
이수독이 그러라는 양 턱을 까딱이자 교직원들이 능숙하게 현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집결한 선도부로 하여금 일반 학생들이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기웃거리던 졸업생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이수독은 관심조차 없는 듯 그들을 일별하더니,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매서운 눈빛이 옥상 위 우리를 향한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멀뚱멀뚱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곧바로 당규영과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가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자 이수독은 빙글 몸을 돌리더니 나무 문으로 앞장섰다.
“따라와라.”
“…….”
그를 따라 들어선 교무실.
당직을 서던 교직원들이 전부 번화가로 빠져 우리밖에 없다.
나무 문을 닫자 저절로 땅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그가 자기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가 앉더니, 우리를 찬찬히 훑어보며 말문을 열었다.
“일의 경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소상히 설명하라. 한 치의 거짓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쩌다가 혈교 장로와 교전을 벌이게 되었는가.
이수독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된 것으로 보아 내 입으로 설명이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암호문을 고쳐서 함정을 팠어요’하고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해서 나는 입을 열자마자 구라를 쳤다.
“여기 당규영 선배님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요—”
“한 치의 거짓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수독이 내 말을 끊으며 재차 경고했다.
저 살벌한 눈빛을 받으면 누구라도 위축되어 술술 불 것 같지만, 나는 ‘누구’가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그 눈빛을 받아넘겼다.
‘한번만 더 해볼까.’
아마 당규영이 도둑 동아리 부장이라는 점을 알아서 걸린 것 같다.
해서 이번에는 진실 반, 거짓 반을 섞었다.
물론 암호문에 대한 것은 쏙 빼고,
“여기 당규영 선배님 블랙 마켓 도와 드리고 있었는데요,”
“어떻게 돕고 있었지.”
“선도부원들 불심 검문 방해하고, 수색 방해하면서요.”
“…….”
“그렇게 돌아다니는데 웬 죽립을 뒤집어쓴 사람이 보여서 따라가 봤습니다.”
“돌아다니다가 발견했다?”
“네, 오밤 중에 죽립은 좀 이상하잖아요.”
“…….”
이수독이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어딘지 모르게 나를 탐색하는 듯한 기색이 느껴진다.
그는 이내 나에게서 시선을 떼더니 당규영에게 물었다.
“김호의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자꾸 거짓말들을 하는군. 두 번이나 경고했을 텐데.”
“…….”
당규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와 마찬가지로 반쯤 진실이 섞인 대답을 돌려주었다.
“지나가다 본 게 아니고, 수정구를 통해서 봤어요.”
“……수정구?”
이수독의 물음에 당규영은 컨트롤 타워의 존재에 대해 설명했다.
번화가 방범용 수정구의 시야를 훔쳐서 블랙 마켓에 활용하고 있었다고.
그러나 이수독은 그 점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지금은 교칙 위반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혈교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을 때니까.
“제법 머리를 썼군. 수정구에 기록된 그자의 행적을 전부 모아서 제출하라. 그럼 교칙 위반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겠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규영이 고개를 숙였다.
이수독이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죽립을 쓴 자가 수상해 보여서 따라갔다고?”
“그렇습니다.”
“왜 신고하지 않았지?”
“말씀드렸다시피 블랙 마켓 일을 돕고 있어서 저희도 좀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졸업생 선배분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고요.”
그리고 혈교라는 걸 확인하는 즉시 선도부용 신호탄을 썼으며, 이후는 보신 바와 같다고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이수독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까딱였다.
“나가 봐라.”
* * *
이수독에게는 스킬이 있었다.
[진실 혹은 거짓(B)]▷답변의 진위 여부를 판별합니다.
▷거짓을 간파할 시 진실을 듣기가 더욱 수월해집니다.
▷사용 가능 횟수:(0/3회)
▷3일마다 재충전
시전하면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판별하는 정신 계열 스킬.
3일에 한 번 충전되는 데다 3회 충전 제한이 존재한다는 제약이 붙었으나, 발현되었을 때의 성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여태까지 이수독의 수사에 지대한 공헌을 해 왔던 스킬이었다.
그런데,
“여기 당규영 선배님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요—”
[???입니다.]김호에게 스킬을 시전하자 진실도, 거짓도 아닌 물음표투성이 알림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이수독은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물론 스킬이 실패했음에도 김호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블랙 마켓이 개최되는 중이라는 뻔한 사실이 존재하는데, 도둑 동아리 부장과 그저 번화가를 산책하듯 돌아다닐 리가 없으니까.
이어지는 설명을 들던 도중 또다시 [진실 혹은 거짓]을 시전했으나,
“돌아다니다가 죽립인을 발견했다?”
“네, 오밤중에 죽립은 좀 이상하잖아요.”
[???입니다.]또다시 출력되는 물음표투성이 메시지.
이수독은 순간 스킬에 문제가 생겼나 싶었다.
해서 당규영에게 물었다.
“김호의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거짓입니다.]당규영의 거짓은 곧바로 간파하는 걸로 보아, 김호에게만 안 통하는 것 같다.
이수독은 당규영을 채근해 도둑 동아리가 방범용 수정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사건의 전말에 대해 전해 듣고 두 사람을 교무실에서 내보냈다.
교무실에 혼자 남은 이수독은 모든 것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전체적인 그림은 파악했으나, 여전히 군데군데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다.
‘혈교 장로를 우연히 발견했다?’
수정구를 써서 훨씬 넓은 시야를 가졌다 한들, 블랙 마켓으로 바쁜 와중에 행색이 수상한 사람을 쫓아가 볼 여유가 있었을까?
무언가 더 아는 것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또 하나 의아한 점은, 혈교 장로라는 자가 막상 붙어 보니 너무나도 허약했다는 점.
현장에 있던 자들의 실력을 모두 더해 봐도 A랭크 실력자를 막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그리 약화되었는가?
이수독의 의심을 가중시킨 것은 장로를 쓰러뜨렸을 때, 그가 단말마와 함께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 분…… 하다……! ……만……. 아니었다면……!
그러면서 그의 시선은 아주 잠깐 옥상을 향했었다.
그러나 김호의 입으로 진실을 듣기는 어려울 듯하다.
스킬이 통하지 않아 아까운 충전 횟수만 허비했고, 아마 앞으로도 안 통할 테니까.
자신을 앞에 두고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걸 보면 배짱도 두둑하다.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윽박질러도 마찬가지이리라.
‘허나 꼬리 끝자락은 잡았다.’
그리고 김호가 숨기는 것의 실체를 파악할 때까지, 이수독은 그를 계속해서 주시할 것이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