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8
18화 픽스 존 (3)
[김 호, 683점, 38%]내 성적은 리더보드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올해 기수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서인지 예상보다 다소 밀려난 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무 문제 없이 중위권 이상으로 공략전을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배치 고사가 제법 진행된 이 시점에서 신입생들의 대화 주제는 둘로 나뉘었다.
리더 보드와 시험 내용.
그리고 시험 내용 대부분은 앓는 소리였다.
– 아씨, 나 완전 죽 쒔다.
– 나도. 들어가니까 무슨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더라. 말을 안 들어.
– 그러니깐. 칼을 휘두르는데 칼이 느려.
– 살다 살다 고블린 잡는 게 빡센 날도 오네.
– 선배들이 싫어할 만해.
평소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스킬과 특성이 많을수록, 픽스 존의 F랭크 고정이 더 크게 체감될 것이다.
익숙해지려면 앞으로 고생깨나 하겠지.
싫어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픽스 존]은 그리 흔한 규칙은 아니지만 잊을 만할 때마다 한 번씩은 튀어나온다.몇몇 악명 높은 보스 몬스터들이 자기 던전에 배치하기도 해서, 잘나가던 파티가 픽스 존에서 몰살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참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면 최대한 빨리 익숙해지는 수밖에.
[이성현, 951점, 1위] [한소미, 928점, 2위] [모용준, 903점, 3위]최상위권은 이런 악조건에도 최상위권다웠다.
한소미 위아래에 자리 잡은 이름들이 바로 신병철한테 전해 들었던 유망주들인가 보다.
이성현이 소드마스터네 아들, 모용준이 검성의 손자랬지.
그런데 얘들 실력이 한소미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고현우도 해 볼 만하겠는데.’
열차에서 한소미와 붙었을 때에도 검술로는 안 밀렸으니까.
검술 한정으로 고현우=한소미=유망주들 삼단 논법이 성립된다.
규칙도 픽스 존이라 스펙 요소가 거의 배제되었으니, 순위권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과연 몇 점을 받을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주위를 둘러봐도 눈에 안 띄고, 리더보드에 이름도 없는 걸 보면 아직 시험을 치르는 중인 듯하다.
리더 보드와 순간이동 포탈을 번갈아 바라보며 기다리는데, 고현우 대신 서예인이 먼저 걸어 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움직이며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나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내가 물었다.
“어때, 할 만했냐.”
“……어려웠어.”
[서예인, 781점, 21%]어려웠다면서 성적은 썩 나쁘지 않았다.
픽스 존은 총사나 마법사 등 마력 기반 클래스들에게 매우 불리한 규칙이다.
극히 제한된 마력으로만 점수를 내야 하니까.
고득점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차라리 나처럼 맨몸으로 다 때려 부수는 게 더 쉽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총사로서, 첫 시도에서 상위 21%는 아주 괜찮은 점수다.
손에 여전히 라이플이 들려 있는 걸 보면 내가 말해 준 방식대로 운영한 것 같다.
– 와-!
리더보드를 주시하던 학생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가 하니.
1위가 갱신되어 있었다.
[고현우, 1,023점, 1위] New! [이성현, 951점, 2위] [한소미, 928점, 3위]“오.”
높은 확률로 순위권에 오르겠다 싶었는데, 기어이 공략전 수석을 달성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차석과 꽤 큰 차이로.
관중들이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열광했다.
직접 겪어 보았기에 저게 얼마나 대단한 점수인지 아는 것이다.
– 1,000점이 가능한 점수였구나……. 나는 쥐며느리만도 못한 놈이었어…….
– 쟤 어디 소속이야? 검술 동아리?
– 아니. 우리 동아리에는 없는 앤데.
– 내가 알아봤는데 무소속이래.
– 무소속이 유망주들 다 깨고 1위 먹었네.
– 쟤 아까 대인전에서 조벽이랑 붙지 않았나?
– 그랬을걸.
– 어쩐지, 아까도 잘 싸우더라.
– 이따 리플레이 챙겨 봐야겠네.
당당한 걸음으로 군중을 가로지르는 고현우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현우가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전부 김 형 덕분이오.”
“내 덕분은. 그냥 네가 잘한 거지.”
“아니. 점심시간 동안 기력을 회복해 두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은 고득점은 내지 못했을 거요.”
그게 그렇게 되나?
과하게 해석한 감은 있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군중들이 고현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옆에 있는 나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 옆에 쟤는 누구야?
– 송천혜한테 기권한 걔네.
– 아~ 그 겁쟁이?
– 벌써부터 고현우한테 빌붙는 거야?
– 하여간 꼭 저런 놈이 있어요. 저럴 노력으로 실력이나 키울 것이지.
첫인상이 영 안 좋아서인지 고현우랑 대화만 나누는데도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악화되는 중이다.
그런 수군거림이 귀 밝은 고현우에게 안 들릴 리가 없었다.
삽시간에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군중들에게 일갈하려는 고현우를 말렸다.
“됐어, 놔둬.”
“허나 김 형.”
“괜찮다니까.”
“……알겠소. 김형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가 단호하게 끊자 입을 다물고 분을 삭인다.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
수군거림이 계속 들려왔으나,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오늘이 학기 첫날인데 날 씹어 댈 거리라 해 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때마침 시험을 마친 송천혜에게 관심이 분산되기도 했고.
“…….”
심력을 잔뜩 소모하고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여느 학생들과는 달리, 송천혜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지나가던 송천혜가 잠시 속도를 늦추더니, 슬쩍 곁눈질로 나를 흘겼다.
그리고 가던 길을 마저 간다.
문득 쟤는 몇 점을 받았을까 궁금해졌다.
리더 보드를 맨 위에서부터 쭉 읽어 내려갔으나,
‘없네.’
40%쯤 내려왔는데도 송천혜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굳이 아래까지 샅샅이 뒤지고 싶지는 않다.
‘상위권에 없으면 다 본 거지.’
썩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나 보다.
마법사들도 픽스 존에서 고전하는 편이니까 아주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신경을 끄려고 했는데, 자꾸 시선이 느껴진다.
“…….”
송천혜가 내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평소의 못마땅한 기색이 아니라, 왠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다.
시선이 마주치면 다시 홱 고개를 돌려 버린다.
‘쟤는 또 왜 저런대.’
* * *
송천혜는 상당히 기분이 저조했다.
아침부터 하한가를 치기는 했지만, 급격히 뚝 떨어진 게 언제인가 돌이켜 보면 아마 점심시간이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어수선했던 대인전을 마치고, 기분 전환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디저트를 주문했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
번화가의 고급 제과점에서 매일 한정된 수량만 제작해 들여오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인 디저트다.
입학하기 전부터 이 케이크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문을 들어왔기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마침내.
때가 와야 했는데…….
‘품절이라니…….’
워낙 인기 상품이다 보니 경쟁이 엄청났다.
이 경쟁은 오직 선착순.
지위나 배경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경 하면 다들 만만치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송천혜는 달달한 생크림 대신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되었다.
침울해진 그녀를 한소미가 다독였다.
“천혜야 힘내. 다음에는 있겠지. 오늘은 이거 같이 먹자.”
자기 몫의 양갱을 반절 나누어 주는 한소미였다.
왜 얘는 많고 많은 간식거리 중에서 양갱을 제일 좋아하는지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으나, 먹다 보니 양갱도 은근히 괜찮았다.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도 같았고.
그러나…….
조금 나아졌나 싶었던 송천혜의 기분은 금세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김호에게 보내 준 디저트 쿠폰 사용 내역을 보고 나서.
그녀가 갖지 못했던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그곳에 있었다.
송천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그 인간이……!’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녀가 화낼 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전격 마법 때문에 쿠키가 바닥에 떨어졌고,
디저트 쿠폰을 보내 주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도 자신이었다.
김호가 그 디저트 쿠폰으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산 건 순전히 우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분히 이성적인 생각이고,
감성적인 부분은 마치 자기가 먹으려던 케이크를 빼앗긴 기분이 들게 했다.
솔직히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쿠키 한 조각에 최고급 케이크 한 조각은 교환비가 안 맞지 않나?
송천혜가 남은 양갱을 전투적으로 해치웠다.
* * *
그래서였을 것이다.
괜스레 그 남자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게 된 것은.
계속 외면해야지 다짐해 봐도 자꾸만 시선이 갔다.
김호는 회색 머리 여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예인. 대인전에서 상대로 만났었기에 똑똑히 기억한다.
던전에 입장할 준비를 하는 서예인에게 김호가 말했다.
– 라이플로 바꿔 드는 게 더 나을 거야.
– 마나 관리가 힘들면 근거리에서 헤드샷만 날리는 식으로 운영해.
‘어처구니가 없네.’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말을 함부로 하지?
자기는 캐스터 계열이면서 총사한테 훈수를 둔다고?
또 던전 안에 뭐가 있는 줄 알고 권총보다 라이플이 더 좋다 확신하는 거야.
저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책임질 수 있나?
더욱 어이없는 건, 서예인이 그 조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순순히 라이플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며 송천혜는 헛바람을 터뜨렸다.
“허.”
당사자가 저러니까 맥빠지네…….
이제 모르겠다. 놔두면 알아서 하겠지.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본인의 몫,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본인의 몫이다.
서예인과 김호가 차례차례 포탈 안으로 사라진 후, 이내 그녀의 이름도 호명되었다.
“천혜 화이팅~”
한소미의 응원을 뒤로하며, 송천혜는 안개 숲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지옥을 보게 되었다.
온몸이 물에 푹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상태창을 열어 보니 모든 수치가 F로 하락한 상태였다.
항상 넘쳐흐르던 마나도 [코어]가 F랭크로 떨어지며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겨우 이거 갖고 뭘 할 수 있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가 즐겨 쓰는 전격 마법 대부분이 통하지 않았다.
[체인 라이트닝], [벼락지대], [번개 채찍]…….모두 고블린 따위는 수십 마리 단위로 지져 버리는 강력한 광역 마법인데, 기껏해야 움직임이 조금 둔해지는 게 끝.
위력이 떨어지리라곤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어, 어떡하지…….’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세워 둔 계획이 전부 무용지물이 됐다.
마법은 안 통하고, 시간은 흐르고, 몬스터는 쌓여 간다.
혼란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였다.
그 남자의 조언이 머릿속을 스친 것은.
– 라이플로 바꿔 드는 게 더 나을 거야.
왜 하필이면 이게 떠오르나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송천혜는 생각을 이어 갔다.
왜 라이플로 바꿔 들라고 했을까?
권총과 라이플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가벼운 여러 발과 묵직한 한 발일 것이다.
‘그러면 혹시.’
송천혜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검은색 장갑 위에서 생성된 전류가 뭉치고 압축되며 야구공 크기의 구체를 형성했다.
F등급 단일 대상 마법, [썬더 볼].
그것을 다가오는 고블린에게 집어 던지자,
“꽤액!”
[+4점]허무하리만치 잘 통했다.
그랬다. 광역 마법이 안 통하면 단일 마법을 쓰면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 간단한 생각을 못 했을까?
송천혜는 계속해서 [썬더 볼]을 던져 댔다.
‘나는 바보인가 봐.’
‘나는 멍청이인가 봐.’
‘바보 멍청이인가 봐!’
던질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그러나 중반쯤이 되자 또다시 한계에 부딪혔다.
‘마나가…….’
아주 바닥나지는 않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게다가 오크와 트롤의 비율이 늘어나서 [썬더 볼]만으로는 잘 안 쓰러진다.
그러자 김호의 두 번째 조언이 귓가를 스쳤다.
– 마나 관리가 힘들면 근거리에서 헤드샷만 날리는 식으로 운영해.
‘근거리에서 헤드샷만…….’
‘이걸 나한테 맞게 해석하면…….’
문득 마음 한구석에서 반발심이 고개를 들었다.
‘꼭 그 사람 말대로 해야 돼?’
‘아까는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으면서.’
‘넌 자존심도 없어?’
‘그래도 리타이어하는 것보다는…….’
바닥을 굴러다니던 탈락자들이 떠오른다.
자신이 그 꼴이 된다니,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송천혜는 결정했다.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기로.
장갑을 낀 두 주먹에 전류를 둘렀다.
그리고 어설픈 파이팅 포즈를 잡았다.
이런 식으로 싸워 보는 건 유치원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달리 방법이 없는데.
“크르르르…….”
트롤이 바로 앞에 서서 위협적으로 으르렁댔다.
픽스 존에서 보는 트롤이라 그런지 예전에 해치웠던 것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
송천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뻗었다.
* * *
[남은 시간 0:00] [현재 점수:571점]남은 시간이 0이 되는 즉시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증발했다.
안개 숲은 처음의 적막함을 되찾았다.
그제야 송천혜는 한숨을 푹 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끄, 끝났다아…….”
10분을 버텨 냈다.
10분 동안 살아남았다.
출구가 입을 여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잠깐만.’
밖으로 나가려던 송천혜는 문득 제자리에 멈춰 섰다.
자기 모습을 돌아보니 귀신 꼴이 따로 없었다.
하기야 끝 무렵에는 몬스터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막무가내로 주먹을 휘둘러 댔으니.
아무튼 이 상태로는 못 나간다.
– 치지직,
송천혜의 손끝에 짧은 전류가 감돌았다.
그것을 정수리부터 빗어 내리자 산발을 했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정돈되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옷매무시를 깔끔하게 고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류를 흘려 먼지 한 톨까지 날려 버렸다.
[리플레이를 저장하겠습니까?] [수락/거절]“절대. 절대로 안 해요.”
죽어도 이 흑역사가 저장되는 꼴은 못 본다.
* * *
밖으로 나온 송천혜는 항상 그렇듯 다른 학생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옥 같은 픽스 존의 10분을 겪고도 전혀 흐트러짐 없는, 자신의 모든 것을 완벽히 통제하는 모습에 누군가 감탄성을 흘렸다.
벌써부터 그녀의 이름을 찾아 리더 보드를 뒤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쉽게 찾지는 못할 것이다.
[송천혜, 571점, 47%]그들의 기대치보다는 훨씬 낮은 점수일 테니까.
토파즈 마탑의 명성에 부합하지 못했지만, 지금 송천혜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단 거 먹고 싶다…….’
끝나면 딸기우유 사 먹어야지.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돌아가던 송천혜는 군중 속에서 김호를 발견했다.
문득 그녀는 부끄러워졌다.
그의 조언을 엿듣고, 무시하고, 끝내는 그 조언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송천혜의 걸음걸이가 조금 더 빨라졌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