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9주 차 중간고사 (5)
나는 차현주의 무기를 보고 질문을 던졌다.
“너 단검 도적 컨셉 아니었니? 단검은 어쩌고 활을 들었담?”
차현주는 본 실력을 감추기 위해 공개적인 실기 평가에서는 쌍수 단검을 썼었고, 리플레이를 비공개로 돌린 다음에야 주무기인 활로 바꿔 들었다.
그런데 정작 중간고사인 지금은 활을 든 채 찾아온 것이다.
차현주가 반쯤 이를 갈면서 답했다.
“버렸어, 너 때문에.”
“나 때문이야?”
“그래!”
나는 조금 뿌듯해졌다.
원래대로라면 단검에 한참 시간 낭비를 했을 텐데, 내 덕분에 안 하게 됐다는 뜻이니까.
윈드포스가 가끔은 이렇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잘 생각했네. 차현주, 너는 단검보다 활이 더 잘 어울려.”
“입 닥쳐.”
차현주가 계속 으르렁거렸으나 나는 태연하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내가 가르쳐 줄 것 같아?”
“탐지기 같은 거 있나 본데, 맞나?”
“…….”
반응을 보아하니 정답이군.
사실은 이미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망주급이고 시야가 넓은 원거리 계열 클래스라 하나, 저렇게 한참 먼 거리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추격해 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아이템을 썼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실제로 보급 상자에서 제공되는 서바이벌 아이템 중에는 여러 가지 ‘탐지기’도 존재한다.
“갖고 싶네, 탐지기. 너도 원하는 게 있어서 왔지?”
“크리스탈.”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구만. 이긴 쪽이—”
“—다 갖는다.”
차현주가 번개처럼 활시위에 화살을 메기고 나를 겨누었다.
그 순간 그녀의 미간을 노리고 한 줄기 푸른 실선이 그어지는 듯했으나, 즉시 쏘아져 오는 마력탄에 마주 화살을 발사했다.
– 쩌엉—!
허공에 흩뿌려지는 화살과 마력탄 파편.
유망주급다운 반사신경이군.
차현주가 저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턱짓하며 한마디 내뱉었다.
“잡아.”
그 말에 차현주와 페어를 짠 남학생이 움직이려 했으나 내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못 잡지.”
“…….”
“시작하기 전에 통성명 정도는 괜찮지?”
“강희찬.”
“김호.”
강희찬은 롱소드를 든 전형적인 전사 클래스.
공수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실력은 600점대쯤으로 짐작된다.
통성명 이상의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다는 듯 곧장 롱소드를 휘둘러 오는 강희찬.
가볍게 피하며 역공을 가하려 하는데,
– 끼리리리릭!
차현주가 마구 화살을 난사했다.
나를 공격하는 데 7, 서예인 쪽을 견제하는 데 3의 비율.
저격을 방해하기에는 적절한 견제다.
뿐만 아니라 날아오는 화살들 사이사이에 특이한 것들이 섞여 있다.
‘저건 터지겠는데.’
폭발 화살임을 눈치채고, 원래 슬쩍 피할 것을 더욱 거리를 벌리며 피한다.
– 퍼퍼펑!
“쯧.”
노림수가 실패했기에 짧게 혀를 차는 차현주.
이내 더욱 맹렬한 기세로 화살들을 난사한다.
– 끼리리리릭!
강희찬은 차현주의 원호를 등에 업은 채, 끊임없는 연속 공격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합이 꽤 잘 맞는 걸 보면 이전에도 몇 번쯤 페어를 짰었나 보다.
나는 화살 피하랴, 롱소드 피하랴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강희찬의 미간을 노리고 저격이 날아들었으나,
– 쩌엉—!
마력탄을 차현주가 정확히 맞춰 떨어뜨렸다.
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사를 보냈다.
“너는 성격이랑 실력이 반비례하는구나.”
“닥치라고 했어!”
– 끼리리릭!
쏟아지는 화살비, 끊임없이 이어지는 검격.
나는 그것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계속 물러났다.
– 쩌엉—!
그리고 차현주가 세 번째 저격을 중간에서 끊어 냈다.
반사 신경도 반사 신경이지만, 차현주가 여태까지 쌓아 온 스킬과 특성의 총합이 서예인의 것보다 더 높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당장 서예인의 저격에 도움을 주는 건 [마력탄]과 [사출] 둘 뿐이니까.
‘이제 어쩔래?’
이쯤 되면 서예인도 투명 길리 저격은 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터.
이다음에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 보는 걸로.
– 텅! 텅!
강희찬이 베어 오는 연격을 뿌리로 흘리고, 먹구름을 소환해서 튕겨 냈다.
동시에 지그재그로 스텝을 밟아 차현주의 화살을 피한다.
강희찬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현주가 널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알 것도 같군.”
“잘 안 맞으니까 짜증 나지?”
“솔직히 그렇…… 다!”
– 부웅!
나는 사선으로 휘둘러지는 롱소드를 피해 멀찍이 물러났다.
그러면서 옆으로 눈짓했다.
“애들이 삶에 여유가 없네. 주위를 좀 둘러봐라. 저기 나무 위에 다람쥐도 구경하고, 옆에 호수도 구경하고. 얼마나 예쁘냐?”
“뭔 개소리야.”
열심히 물러나고 도망치고 또 물러나다 보니, 어느새 전투가 시작된 지점에서 상당히 멀어진 상태.
내 말마따나 우리 옆에는 커다란 호수가 석양을 반사하고 있다.
하지만 전투 도중에 뜬금없이 호수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었는가.
이것 역시 의도한 거다.
아주 잠깐이나마 차현주와 강희찬의 이목을 분산시키고,
– 두두두두!
서예인이 그 빈틈을 파고들 수 있도록.
투명 길리를 벗어던지며 나타난 서예인이 돌격소총을 연사했다.
갑작스레 마력탄들이 쏟아지자 차현주가 황급히 보법을 밟았으나, 서예인이 모습을 드러낸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미처 피하지 못한 마력탄 두어 발이 차현주의 몸을 두들겼다.
“큭.”
차현주는 저격만 하던 서예인이 이렇게까지 가까이 접근할 줄은 몰랐는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금세 평정심을 되찾고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 끼리리릭!
원거리 포격전.
이번에는 화살 세례가 서예인에게 쏟아진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제법 가깝기에 차현주도 마력탄들을 다 피하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서예인도 화살들을 다 피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을 터.
—라는 예상과는 달리, 서예인은 깃털걸음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눈이 번뜩하는가 싶더니, 쏟아지는 화살 세례 사이의 아주 비좁은 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돌격소총을 들어 연사한다.
– 두두두두!
‘너무 훌륭하고.’
불릿 타임을 활용한 일방적인 공방 교환.
차현주가 온몸에 마력탄을 잔뜩 얻어맞았다.
“……!”
그리고 엄호가 끊기는 찰나, 나는 땅을 박차 강희찬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강희찬이 즉시 따라붙으려 했으나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 휘이잉—
회오리바람이 그의 몸을 한 자리에 묶었기 때문에.
뒤이어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모여들며 압축되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 펑!
“어억.”
강희찬이 제자리에서 비틀거리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가 가쁜 숨을 몇 번 몰아 쉬다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그곳에는 서예인이 무심한 얼굴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 두두두두!
강희찬이 전투 불능 판정을 받고 방출되고, 그 자리에 그가 매고 있던 아공간 배낭이 덩그러니 놓였다.
아이템들은 아마 여기 다 들었을 것이다.
서예인과 나는 남은 한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 뿌드득,
마력탄을 그렇게나 잔뜩 얻어맞고도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는 차현주.
나를 노려보며 이까지 부득 간다.
독기 하나는 알아줘야 된다니까.
나는 강희찬의 아공간 가방을 뒤져 탐지기를 꺼냈다.
“이겼으니 이건 우리가 가져갑니다. 땡큐요.”
“개같은 자식. 중간고사 동안 발 뻗고 편히 쉴 생각은 하지 마라. 언제 어디에 있든—”
– 펑!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고 차현주가 포물선을 그리며 쏘아져 나갔다.
착지 지점은 우리 옆에 자리한 호수 정중앙이었다.
– 풍덩—!
높이 치솟는 물보라.
잠시 후 물에 푹 젖은 미역이 둥둥 떠올랐다.
미역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이 우리를 노려본다.
저러니까 물귀신이 따로 없네.
서예인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 두두두두!
차현주에게 돌격소총을 연사했다.
“야야, 그걸 왜 쏴.”
“쟤, 나쁜말 했어.”
“……음. 나쁜말은 안 되지. 조금만 더 쏴.”
– 두두두두!
쏟아지는 마력탄 세례를 피해 차현주가 맞은편 물가로 헤엄쳐 나갔다.
그리고 다시 등을 돌려 우리를 노려보았으나, 서예인이 총구를 겨누자 황급히 자리를 피해 버렸다.
우리는 굳이 뒤쫓지 않았다.
강희찬이 전투 불능 판정을 받아 6시간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데다, 서바이벌 아이템도 다 뺏었다.
차현주는 이런 상태에서 밤을 맞이해야 한다.
춥고 배고프고 졸린 시간이지.
‘고생 좀 해라.’
[크리스탈 탐지기] [칼로리바]*2크리스탈 탐지기는 12시간마다 근처의 크리스탈을 탐지하게 해 주는 아이템.
덧붙여 충전된 크리스탈은 특수한 표시로 반짝거리는데, 그 때문에 차현주가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쫓아온 듯하다.
칼로리 바는 이번에도 2개밖에 안 나왔지만, 다른 보급 상자에서 먹은 것들까지 있다 보니 그나마 배를 채울 정도는 된다.
“그래도 3일 내내 칼로리 바로 때우기는 좀 그렇네. 내일은 뭐 좀 해 먹자. 생선이라도 구워 먹든가.”
“좋아.”
서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붉은 크리스탈 2호를 충전하러 가려 했지만,
“지금 배터리 몇 퍼센트?”
“14…….”
방금 전에 벌어진 격전으로 나무늘보 배터리가 잔뜩 소모되었다.
성소로 가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돌아오는 길에 방전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응…….”
해서 바로 쉴 곳을 찾기로 했다.
호수 근처에는 그리 높지 않은 바위 동산이 하나 솟아 있었다.
그곳을 반쯤 올라 불쑥불쑥 솟은 바위들 틈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람 하나가 몸을 집어넣을 만한 틈새가 있다.
그리고 틈새는 나름 아늑한 크기의 동굴로 이어진다.
대놓고 들어가서 쉬라고 만들어둔 듯한 동굴.
무인도 곳곳에 이와 비슷한 쉼터가 여럿 마련되어 있다.
이것 역시 중간고사의 일환으로, 던전 내의 사소한 요소들을 꼼꼼하게 살피면 크리스탈 획득에도, 서바이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저녁은 나무 열매와 칼로리 바로 때웠다.
밖에서 칼로리 바를 한 입씩 베어 물다 보니 금세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둑해졌다.
안에는 침낭 두 개를 깔고, 밖에는 알람 트랩을 설치해 두었다.
트랩이 아니었다면 불침번을 서야 했겠지.
빛은 충전된 붉은 크리스탈로 대신했다.
노란색었으면 나름 무드 등 느낌이 났을 텐데, 빨간색이라 정육점 분위기에 가까웠다.
‘별수 있나.’
“잘 자라.”
“응…….”
서예인의 대답을 뒤로하며, 나는 침낭 속에서 눈을 감았다.
* * *
“…….”
서예인은 침낭 안에서 반쯤 눈을 뜬 채 동굴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졸음이 쏟아지기는 하는데 쉽사리 잠들 수가 없었다.
주된 이유로는 매일같이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하던 호랑이 인형이 없다는 점.
있다 없으니 그 빈자리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
뒤척거리던 서예인이 고개를 돌려 김호의 얼굴을 살폈다.
그새 곤히 잠에 빠져든 김호.
그를 빤히 바라보던 도중, 서예인은 문득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업히십쇼. 천천히 내려갑시다.
– 네가 나무늘보야, 김호늘보야. 내려가. 얼른.
고목나무에서 김호의 등에 업혀 내려왔었는데, 왠지 모를 편안함에 땅에 도착한 뒤에도 조금 더 업혀 있었다.
“……?”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서예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침낭을 질질 끌고 김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슬며시 그의 침낭에 머리를 기대 본다.
“……!”
서예인이 조금 눈을 치켜떴다.
순간적으로 편안함! 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에.
서예인은 아예 김호의 침낭 옆에 제 침낭을 붙이고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눈을 감자 금방 잠이 솔솔 쏟아졌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