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9주 차 중간고사 (10)
서예인이 이렇게 앞뒤 다 자르고 핵심 단어만 던지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해서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다시 물었다.
“같이 자자고?”
“응.”
“그러고 보니까 어제도 붙어서 잤지.”
“잠 잘와.”
서예인의 말을 종합해서 해석하면 이런 뜻이다.
너랑 붙어서 자면 잠이 더 잘오니까 오늘도 붙어서 자겠다.
서예인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며 한마디 덧붙였다.
“책임져.”
“책임? 무슨 책임.”
“호랑이 인형.”
해석. 네가 호랑이 인형을 두고 오래서 두고 왔는데, 그게 없으니 잠이 잘 안 온다.
그러니 오늘 밤은 책임지고 호랑이 인형이 되어라.
‘타당한 의견이군.’
중간고사에서 호랑이 인형 대신 투명 길리슈트를 갖고 들어오게 한 것은 매우 효율을 중시한 판단이었으며, 실제로도 투명 길리를 이틀간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다만 그 대가로 나무늘보가 잠을 잘 자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 거기에 내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따라서 나는 서예인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만이다. 위에 올라타지는 말고. 좀 갑갑하더라.”
“응.”
서예인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침낭을 내 침낭에 찰싹 붙이고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불과 5초도 안 돼서 쌔근쌔근 잠들어 버렸다.
“……진짜 잘 자네.”
내 몸에 이런 효능이 있었던가?
나는 나 자신에게 베개의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한편 홍연화는 어쩌고 있나 보니,
“같이……자……? 잠이 잘와……? 책임져……? 위에……올라타……?”
입을 가린 채 우리가 나눈 대화를 되뇌고 있었다.
밀려드는 정보의 격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장이 나 버린 듯했다.
* * *
오해가 겹겹이 쌓인 밤이었으나 그래도 각자 잠은 잘 잤다.
하루 종일 격하게 움직이느라 피로가 쌓일 대로 쌓였고,
홍연화는 첫날에도 제대로 못 쉬었다니까.
꿈속에서 회색털 고양이와 눈싸움을 하다가 눈을 뜨니, 어느덧 동굴 밖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중간고사 마지막, 3일 차.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기에 서예인의 침낭을 슬슬 흔들었다.
“아가씨, 일어나시지요. 아침이랍니다.”
“5분…….”
어제와 똑같은 반응.
그렇다면 깨우는 방식도 어제와 똑같이 하면 되겠지.
나는 서예인의 침낭과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침낭에서 하얀 손이 빠져나오더니 내 침낭을 슬슬 끌어당겼다.
“가면 안 돼…….”
“이제 일어나자. 오늘이 마지막이야.”
잠은 중간고사 끝나고 주말에 푹 자렴.
지금은 쉬지 말고.
0.3눈뜸 상태의 서예인을 데리고 동굴 앞으로 나오니, 홍연화와 백준석이 생선구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일어났어……?”
“어. 굿모닝.”
“…….”
여전히 다양한 오해를 품고 있는 듯, 차마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홍연화.
굳이 구구절절 해명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 나는 그러려니 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백준석과 마주보자, 그가 잘 구워진 생선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홍연화한테 대강 이야기는 들었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자신이 던전 밖에서 대기하는 동안, 혼자가 된 홍연화에게 선뜻 식사와 휴식처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탈 한 세트를 맞추도록 교환까지 해 줬다.
홍연화의 소꿉친구로서, 팀원으로서 감사를 표해 마땅한 일이란다.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입장에서 크게 부담되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서로 도와서 나쁠 건 없지. 뭉쳐 다니는 건 불만 없고?”
“물론 없다. 오히려 내가 하려던 제안이었어.”
어제 2대 4 전투를 겪으며 자신의 한계를 느낀 백준석이다.
홍연화의 화력은 네 명은 물론 그 이상을 상대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지만, 자신의 방어력은 넷으로부터 홍연화를 지키기에는 다소 부족하단다.
이렇듯 전위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 홍연화 팀으로서는 내 제안이 매우 달가웠다.
따라서 우리 넷에 고현우 팀까지, 총 여섯이 뭉쳐 다니기로 결정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바위 동산을 내려와 걷기 시작했다.
홍연화가 다음 행선지를 묻는 듯한 눈빛을 보냈기에, 나는 하늘로 시선을 들어올렸다.
“보급 받으러 가야지. 금방 제트기 뜰걸.”
“응, 근데……. 이건 안 받아도 되는 거 아니야?”
무인도에서의 2박 3일 중 2박을 마쳤으니 서바이벌 파트는 사실상 끝난 셈.
최소한 먹고 자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렇다면 홍연화의 의문처럼 굳이 보급을 받을 필요가 있나 싶을 테지만,
“마지막이 제일 중요해.”
당연히 학사 측에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마지막 보급에는 조금 다른 아이템들을 내려보낸다.
서바이벌보다는 중간고사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어제 얻은 [고블린 피리]가 좋은 예시다.
“그러니까 보급까지만 따로 먹고 합류하자.”
“알았어.”
대략적으로 상자가 떨어질 위치를 알려준 다음 홍연화 팀과 갈라섰다.
시간 여유가 제법 있었기에 나는 서예인과 산책하듯 느긋하게 걸었고, 예정 시간에 정확히 맞춰 보급 장소에 도착했다.
첫날 보급을 받았던 넓직한 바위에 발을 디디고 서자,
– 쐐애애앵—!
때맞춰 무인도 상공에 나타난 제트기.
앞선 두 번과 마찬가지로 낙하산이 달린 상자들을 잔뜩 흩뿌리고 사라진다.
이윽고 손바닥 크기의 자그마한 보급 상자가 우리 앞에 착지했다.
그 안에 든 것은 유리처럼 투명한 재질로 이루어진 삼각 기둥.
[프리즘]성소에 가져다 대면 쏘아져 나오는 빛이 두 줄기로 갈라진다.
즉, 크리스탈을 한 번에 두 개씩 충전하게 해 주는 아이템이다.
충전을 두 개씩 한다는 것은 성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며, 그만큼 다른 팀들의 견제를 적게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연히 아주 유용하고, 홍연화와 고현우 팀도 비슷한 아이템을 하나씩 얻었을 거다.
나는 서예인에게 말했다.
“이제 합류하러 갑시다.”
“그럽시다.”
보급도 얻었으니 최대한 빨리 홍연화 및 고현우 팀과 합류하는 것이 상책이다.
계속 2인으로 다니다가 다인 그룹을 만나면 좋을 게 없으니까.
따라서 우리는 조금 속도를 내서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거의 그 근처까지 다다랐을 무렵,
– 쿵, 쿵,
육중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피하지 않고 발소리를 향해 똑바로 다가갔다.
중간고사 3일 차에는 등장하는 몬스터의 수준이 한 단계 더 상승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당연히,
“꾸우우우…….”
오우거도 포함이었다.
거대한 덩치와 거기에 걸맞지 않은 재빠른 몸놀림, 막강한 괴력, 거기에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뚫기도 어려운 두꺼운 거죽까지.
여태까지 실기평가에 등장했던 몬스터들 중에는 가장 강력한 종이다.
물론 서예인과 나에게는 그다지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당장 일주일 전 크리스탈 공략전만 해도 스치지도 않고, 퍼펙트 게임으로 점수를 냈으니까.
오히려 그때 서예인은 오우거를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워했으며, 이후 안정미와 추가 연습까지 했었다.
– 철컥,
따라서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 마력총을 장전하는 서예인.
그러나 나는 잠시 그녀를 제지했다.
“잠깐만.”
“……?”
오우거에게서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 보인다.
발목에 쇠사슬로 이루어진 발찌 같은 것이 채워져 있으며, 그 중심에는 불길한 붉은색을 띤 무언가가 달려 있다.
저게 무엇인지는 매우 높은 확신이 있었지만,
‘그래도 확인을 해 봐야겠는데.’
따라서 나는 서예인에게 지시했다.
“이번에는 피하기만 해.”
“알았어.”
“꾸우우우…….”
이윽고 우리를 발견한 오우거.
내가 잽싸게 옆으로 빠지자, 오우거는 혼자 남은 서예인을 목표로 삼고 달려들었다.
– 투투!
서예인이 마력총을 짧게 두 발만 발사했다.
당연히 그 정도로는 오우거의 거죽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고, 괜스레 화만 돋군 셈이 되었다.
“꾸우우—!”
물론 그렇게 어그로를 끄는 것이 서예인의 의도였다.
놈이 휘두르는 곤봉을 가볍게 피해서 물러나자, 곤봉이 애꿎은 나무 두 그루만 부러뜨렸다.
이어서 곤봉을 쥐지 않은 손을 앞으로 쭉 뻗는 오우거.
그러나 서예인이 깃털걸음을 쓰며 매끄럽게 옆으로 물러났다.
이렇게 서예인이 이리저리 피하며 놈의 이목을 끌어주는 사이, 나는 사각에서부터 은밀하게 접근했다.
그리고 놈의 허벅지에 검지를 찔러 넣었다.
[현음옥마지]– 푹,
검지가 날카로운 얼음송곳처럼 변해, 오우거의 두꺼운 가죽을 너무나도 손쉽게 파고들었다.
이어서 시릴 듯한 냉기가 놈의 육체에 침투했다.
– 쩌저저적,
오우거의 몸속에서부터 무언가가 무서운 속도로 얼어붙는 소리가 났다.
놈은 드물게 당황해선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제야 옥마지를 찔러 넣은 나를 발견했다.
“꾸우우……?”
그러나 무슨 반응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지금쯤이면 벌써 몸속에 침투한 냉기가 심장까지 닿았을 테니까.
“…….”
– 쿵,
결국 오우거는 나를 한 번 바라본 것을 끝으로 그 자리에 풀썩 엎어지고 말았다.
대상의 목숨이 다했음에도 냉기는 남은 것들마저 얼려 버리겠다는 듯 계속해서 쩌저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윽고 서예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오우거의 발목을 휘감고 있는 쇠사슬을 가리켰다.
“이거 쏴 봐.”
– 투투투투!
서예인이 사격을 집중하자 쇠사슬이 마력탄 세례를 못 이기고 끊어졌고, 그 덕에 나는 발목에 달린 것만 깔끔하게 뜯어낼 수 있었다.
그것을 자세히 확인해 보니, 주사기 같은 용기에 든 붉은 액체였다.
‘그럼 그렇지.’
예상대로 놈들이 중간고사에 수작을 부려 놓은 듯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우거에 이 주사기를 달아 놓는 것.
그때, 기척 둘이 우리를 향해 빠르게 가까워져 왔다.
누구인지 알 것 같았기에 우리는 굳이 경계하지 않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과연 기척의 정체는 보급 상자를 회수하고 온 홍연화와 백준석.
쓰러져 있는 오우거를 발견하자 동시에 흠칫 놀란다.
“너네가 잡은…… 거야?”
“어.”
“…….”
홍연화의 경악에 찬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짐작이 갔다.
대충 ‘저 괴물 같은 인간이 또 괴물 같은 짓을 했네,’ 같은 생각이겠지.
서예인과 마찬가지로, 홍연화와 송천혜 듀오 역시 크리스탈 공략전에서 오우거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갈라섰다가 다시 합류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다고, 그 짧은 시간에 오우거를 처치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나는 표정을 진지하게 굳히고, 오우거 발목 부근의 쇠사슬 파편, 그리고 주사기를 번갈아 가리켰다.
“이거, 오우거 발목에 붙어 있더라.”
“……!”
홍연화와 백준석 역시 진지한 눈으로 주사기 안의 붉은 액체를 응시했다.
백준석이 물었다.
“척 봐도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다. 넌 뭔지 아나?”
“짐작 가는 건 하나 있어.”
“그게 뭐지?”
나는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혈폭단(血暴丹).”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