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No.410 봉마탈환 (3)
나와 고현우는 한심한 눈으로 금영상단주를 바라보았다.
“남들은 죽어라 싸우고 있는데, 혼자 살겠다고 여기 숨어 계시네.”
“사나이가 되어 어찌 그리 비겁할 수 있단 말인가?”
“오, 오지 마라!”
우리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자 상단주가 황급히 검을 뽑아 겨누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끌어내라.”
“예.”
“존명.”
진법이 파훼된 것을 보고 염왕대가 몰려든 상태였으니까.
이번 일의 원흉이 바로 금영상단주였기에 그들의 시선에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오, 오지 말라고 했다!”
금영상단주가 허공에 검을 휘저으며 저항했다.
그러나 우르르 달려든 염왕대가 그를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 퍼퍼퍼퍽!
“끄아악!”
피떡이 되어 끌려 나가는 상단주를 일별하고, 나는 방 곳곳을 뒤적거렸다.
염왕대가 하는 것처럼 책상도 뒤집어 엎어 보고, 서랍도 막 열어 보고.
그러자 금세 원하던 걸 찾을 수 있었다.
“여깄네, 추가 보상.”
“오.”
작은 목갑 안에 황금빛 알갱이 몇 개가 빛나고 있었다.
[금령신단(C)]영약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정체 구간에 머물러 있는 [코어]의 랭크를 빠르게 올릴 수 있으니까.
코어의 랭크가 낮은 상태에서 마법의 랭크만 계속 올리면 마나 부족에 허덕이게 된다.
또 고위 마법들은 코어의 수준이 낮으면 익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당장은 C랭크 코어로 충분하더라도, 꾸준히 투자를 해 줘야 할 거다.
전각 밖으로 이동하니 전투가 종료된 상태였다.
말할 것도 없이 염왕대 측의 대승.
대원 몇 명이 부적이 잔뜩 붙은 항아리들을 옮기고 있었다.
봉마함을 확보한 이상 우리도, 염왕대도 더는 금영상단에 볼일이 없었다.
따라서 대주가 지시했다.
“불을 놓아라.”
– 화르르륵!
전각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금세 장원 전체를 뒤덮었다.
고현우와 나는 한동안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잘 타는구만.”
“그러게 말이오.”
– 쿠르르릉.
그러던 와중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덜덜 떨리더니 근처에 순간이동 포탈이 열렸다.
그 바로 앞에는 자그마한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봉마탈환 랜덤 박스(D)] *3고현우가 그것들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출구가 열린 걸 보아하니 끝인가 보오.”
“그래, 나가자.”
잠시 뒤를 돌아보았으나 염왕대는 분주히 돌아다닐 뿐, 포탈이 열린 사실 자체를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심지어는 아예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순간이동 포탈을 넘었다.
* * *
던전 밖으로 나와서 좌우를 살폈으나 신병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쪽 바닥에 웬 대나무 빨대가 하나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
나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빨대 끄트머리에 손가락을 올렸다.
몇 초 그러고 있으니 바닥이 뒤집히며 신병철이 튀어나온다.
“푸허억! 야이씨! 사람 잡을 일 있냐? 그걸 왜 막아?”
“왜 거기서 그러고 계세요.”
“야, 말도 마라. 방금 단속 나왔었어.”
“방금 언제?”
“한…… 10분 됐나? 아무튼 방금.”
교직원 또는 선도부원은 주기적으로 지하층 곳곳을 순찰하곤 하는데, 그게 방금 전이었단다.
만약 우리가 던전을 조금만 일찍 클리어했다면 순찰하는 선도부와 딱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운 좋게 비껴 나간 셈이다.
나는 신병철에게 랜덤박스 하나를 넘겨주며 말했다.
“너도 어떻게 안 걸리고 넘어갔다. 여기 보수.”
“아이고, 고맙수다. 저야 뭐, 쥐죽은 듯이 숨어 있었지요.”
“바로 열어 보시나요?”
신병철이 랜덤박스를 손에 든 채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거 지금 까면 백프로 컵 나와. 나중에 깐다.”
“이걸 참네.”
여러 번 데인 덕분에 인내심이 증가한 신병철이었다.
역시 인간이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동물이다.
승강기를 타려면 적어도 F층까지는 올라가야 했다.
해서 우리는 신병철의 안내를 따라 열심히 뚜벅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D층을 지나 E층 중반쯤까지 올라왔을까, 문득 내가 말문을 열었다.
“길잡이 서비스 있잖아요.”
“예, 고객님.”
“올라가다가 걸리면 어떻게 되지요?”
“당연히 전액 환불입죠, 고객님.”
지하층 길잡이 서비스의 내용은 의뢰주가 원하는 지하층 던전까지, 그리고 공략이 끝난 후 지상층까지 ‘안전하게’ 안내하는 것.
도중에 잡히면 벌점 또는 징계를 받으니 ‘안전한’ 안내는 실패한 셈이고, 보수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의아함을 느꼈는지 신병철이 되물었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고객님?”
“우리 걸린 거 같아서.”
“……예?”
신병철과 고현우가 내 쪽을 돌아보고, 내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땅속에서 조그마한 흙난쟁이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노움이 있네.”
하급 대지의 정령.
이곳이 지하층이기는 해도 이런 데서 튀어나올 녀석은 아니다.
그것은 정령을 부리는 누군가가 있음을 의미했다.
또한 그 정령을 부리는 누군가는 십중팔구 목토술사이며, 의도상 선도부일 것이다.
“…….”
“…….”
우리 셋은 말없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공통적으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계단 위쪽으로 시선을 들어 올리자, 예상대로 그곳에는 곽승재가 서 있었다.
“…….”
– 저벅, 저벅,
곽승재가 천천히, 한 걸음씩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계속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우리는 그저 그가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 저벅, 저벅,
그런데 곽승재는 의외로 우리 앞에 다다라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다가 우리를 등지고 혼잣말처럼 입을 연다.
“내 동생의 목숨을 구해 줬다고 들었다.”
“……!”
중간고사에서 혈폭단이 주입된 오우거들이 날뛰었고, 빈사 상태에 빠진 곽지철을 내가 회복 스크롤로 살려냈었다.
‘어떻게 그 얘기를 하긴 했네.’
– 형한테…… 전해…… 줘. 미안…… 하다고…….
– 뭐래, 등신이.
위와 같은 부끄러운 유언은 빼놓았더라도, 누군가에게 구해졌다고 털어놓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곽 씨 형제의 사이가 썩 친밀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럼에도 얘기를 꺼냈다는 건 곽지철이 적어도 고마움을 잊지는 않았다는 의미이리라.
곽승재는 그에 대한 보답의 일환으로, 잠시나마 선도부로서의 의무를 내려놓으려는 모양이었다.
우리를 모른 척한다는 뜻이다.
“조심해라.”
교칙을 어기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인지, 안 들키게 조심하라는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곽승재는 그 말만 던지고 계속 계단을 내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한참이나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신병철과 마주보았다.
“걸렸지요?”
“걸렸네요.”
“환불…… 해야겠지요?”
“에라이.”
신병철이 랜덤박스를 도로 꺼내서 내밀었다.
곽승재가 눈감아 준 건 순전히 내 덕이고, 걸린 건 걸린 거니까.
그러나 나는 랜덤박스를 받지 않고 손을 들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에.
“역시 줬다 뺏는 건 좀 치사하지?”
“아유, 암요, 치사하고 말고요.”
신병철의 눈이 희망으로 빛났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제안했다.
“그럼 이렇게 할까. 까서 D급 이상 나오면 넘어가고, 그 아랫등급 나오면 다다음 길잡이까지 무보수로 해 주기.”
“묻고 더블로 가자, 이거지?”
랜덤박스에서 D랭크 이상 보상이 나오면 신병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빚진 게 없으며, 보상도 가져간다.
반면 E, F랭크 보상이 드랍된다면 길잡이 두 번을 무보수로 해야 하는 것.
“본인도 그 방식이 마음에 드는구려.”
고현우도 흥미진진한 얼굴로 동의했다.
신병철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나 신병철, 여태까지 사나이로 살아왔다. 사나이는 도전을 피하지 않지.”
“참된 사나이로군.”
“그리고 내가 이길 확률이 낮지는 않아. 이건 사나이가 아니어도 받는 게 맞다.”
“그 또한 옳다.”
D랭크 랜덤박스인 만큼 D랭크 보상의 출현 확률도 그럭저럭 높은 편이다.
충분히 운을 걸어 볼 만하다는 말이다.
신병철이 다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상자 덮개를 손에 쥐었다.
“똑똑히 지켜보아라……. 이 몸이 대박을 터트리는 모습을!”
– 번쩍!
상자가 환하게 빛났다.
뒤이어 드러난 결과물을 보고 나와 고현우는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야, 그래도 F급은 탈출했네.”
“신 형의 운도 점점 나아지는가 보오.”
그럼에도 신병철은 전혀 기쁜 기색이 아니었다.
“아니, 이게 왜. 아니, 세상에. 아니.”
[금영상단 찻잔세트(E)]* * *
다음날.
나는 검술 동아리 차장, 제갈소소에게 연락을 넣었다.
완성된 장보도로 협상을 매듭짓기 위함이다.
언제 찾아가면 되는가 물어보니 바로 보잔다.
해서 나는 수업이 끝나는 대로 검술 동아리 부실을 찾아갔다.
검술 동아리가 쓰는 층에 들어서자 곧바로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팽미령.
흑사방 공략팀의 파티장이자 피해자, 그리고 장보도를 거래할 대상이다.
이곳에서 기다리던 걸 보니 마중을 나왔나 보다.
“안녕하십니까.”
“어, 안녕.”
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팽미령 역시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나 때문에 꽤 손해를 봐서 첫 만남에는 적개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악감정이 많이 희석된 듯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은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내가 장보도 조각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서일 거다.
“따라와.”
얼른 확인해 보고 싶은지 앞장서는 팽미령의 발걸음이 빨랐다.
차장 집무실 앞에 멈춰 서더니 가볍게 노크한다.
그러자 안쪽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어오세요.”
집무실에 들어서자 제갈소소가 우리를 맞이했다.
편히 않으라며 자리를 권하고, 이전에 마셨던 용정차를 다시 건넨다.
가문에서 특별히 배합했다던가.
나는 한동안 느긋하게 차를 음미했다.
“…….”
반면 팽미령은 궁금함에 용정차가 안 넘어가는 기색이었다.
자꾸만 들썩거리자 제갈소소가 마지못해 본론으로 넘어갔다.
“공략전 주간 첫날에 바로 해결하셨네요. 솔직히 조금 더 걸릴 거라 예상했어요.”
“오래 끌어서 좋을 것 있겠습니까.”
“고마운 일이에요. 이제 조각을 보여 주겠어요?”
나는 장보도 조각 A, B, C를 제갈소소에게 넘겼다.
팽미령이 그것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될 거다.
장보도 조각들을 합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조각들을 알맞게 겹친 다음 삼매진화를 일으키는 것.
– 화르르륵,
제갈소소의 손에서 금빛 화염이 치솟았다.
잠시 후 그녀의 손에는 완성된 장보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이건……!”
제갈소소와 팽미령이 장보도를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앞면은 88번 던전, [악인집결]에서 ‘비고(祕庫)’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었으며,
뒷면에는 비고 내부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팽미령이 나지막이 감탄사를 흘렸다.
“정말이었어…….”
다만 내 앞에서 계속 흥분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제갈소소가 부채를 펴서 얼굴을 반쯤 가렸다.
그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말했다.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걸로 우선 입찰권 침해 문제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악감정은 더 이상 없는 거야. 수고 많았어.”
팽미령도 장보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덧붙였다.
검술 동아리와의 갈등은 이걸로 마무리된 셈이었지만.
이대로 끝내기엔 아쉽지.
고인물은 언제나 한 걸음 더 내딛는 법이다.
“이제 다음 거래로 넘어가 보시죠.”
“……?“
내 인벤토리에서 두꺼운 종이 뭉치가 나왔다.
바로 팽미령이 들어갈 던전, [악인집결]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한 공략본이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