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No.294 무지개 호수 (1)
금요일 저녁.
당규영과 나는 예정대로 던전동 지하층에 발을 들였다.
F층 가장 아래까지는 당당하게 승강기를 타고 이동하고, 그 이후 목적지까지는 당규영이 길잡이를 맡았다.
‘역시 쾌적하군.’
1학년 길잡이가 3학년 부장급으로 바뀌니 차이가 확 체감된다.
가령 신병철은 조심조심 전방을 살피며 나아가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면 멀찍이 다른 통로로 돌아가곤 한다.
반면 당규영은 전방을 잘 살피지도 않고, 거침없이 원형 계단을 밟으며 앞장섰다.
거의 뛰는 속도에 가깝다.
그러던 도중 무언가가 감지되면,
“잠깐 와 봐.”
내 손을 잡아끌어 그늘진 곳에 같이 몸을 숨긴다.
뒤이어 원형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오는 3학년 선도부원.
이전에도 몇 번 안면을 익혔던 지옥부 선배님이다.
“…….”
그는 지척에 우리가 숨어 있는 데도 아주 작은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당규영의 그림자 은신술이 그만큼 은밀하다는 의미이리라.
우리는 지옥부 선배의 뒤통수를 지켜보다가 그가 사라진 후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당규영은 조금 우쭐해져서 말했다.
“봤냐, 못 찾는 거? 이게 내 실력이야.”
“누님이 최곱니다.”
“흐흥, 계속 가자.”
우리는 다시 속도를 내며 지하층 더욱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앞에는 순간이동 포탈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No.294] [무지개 호수]당규영과 나는 눈빛으로 서로가 준비되었음을 확인한 뒤, 동시에 던전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깜깜하게 변했다가 확 트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노을로 가득한 하늘.
저녁이 가까운 시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야를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광활한 호수가 펼쳐져 있다.
노을로 붉은 기를 띠었으면서도 오묘하게 다른 빛깔들이 섞여 반사된다.
마치 무지개처럼.
이곳이 이 던전의 주 무대, 무지개 호수다.
“…….”
당규영이 주변을 찬찬히 훑더니 그림자 나비 몇 마리를 소환해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조금 먼 곳까지 정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딱히 잡히는 게 없는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김호야, 여기 너무 평화로운데?”
“말했잖아요, 한산하다고.”
무지개 호수의 주요 규칙은 [레이드].
다만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거나,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져 내리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 보스는 언제 나와?”
“금방이요.”
내가 호수 한복판을 가리키자 당규영이 그곳을 유심히 살폈다.
– 보글보글,
거울처럼 매끄러운 호수에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고 파문이 인다.
더욱이 그 기포와 파문은 조금씩 우리 쪽으로 가까워져 오는 중이다.
“…….”
“…….”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당규영이 곧 벌어질 전투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발밑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며 범위를 넓혀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비들이 하나둘 팔랑거리며 날아오른다.
– 보글보글보글,
그러는 사이 호수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던 기포는 더욱더 격렬해지더니,
– 쏴아아아—!
거대하고 둥그런 무언가가 수면 위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집채만 한 거대 물고기였다.
온몸을 뒤덮은 비늘 한 장 한 장이 손바닥 크기라, 마치 갑주를 걸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놈이 바로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
‘엘리멘탈 피쉬.’
커다란 눈알 두 개가 우리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놈의 얼굴은 물고기보단 개구리 또는 두꺼비를 닮기도 해서, 자꾸만 내가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마치…….’
그때, 내가 생각만 하던 것을 당규영이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내 어깨를 찰싹찰싹 두들기면서,
“야야, 저거 김갑두 닮지 않았냐?”
“왜 말을 그렇게 해요. 나빴네.”
“아니, 솔직히 닮았잖아. 솔직히.”
“그런 감이 없잖아 있죠.”
“——!”
엘리멘탈 피쉬는 김갑두를 닮았다는 소리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한 차례 날카로운 소리를 흘리자 놈의 중심에서부터 마나의 기파가 퍼져 나갔다.
곧 당규영과 내 발밑의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마구 요동치며 뒤엎어진다.
– 콰콰콰콰!
우리는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는 바닥에서 비교적 멀쩡한 곳만 골라 밟았다.
그러면서 놈의 비늘을 살펴보니 전체적으로 갈색을 띠고 있다.
‘토속성이네.’
엘리멘탈 피쉬의 비늘은 계속해서 색깔을 바꾸고, 그에 따라 속성도, 사용하는 마법도 변한다.
지금은 토속성이니 토속성 마법을 쓰는 거고.
“—!”
또다시 김갑두 피쉬가 날카로운 소리를 흘렸다.
이번에는 곳곳에서 흙으로 빚어진 기관총이 솟아올라 흙탄환들을 발사했다.
– 두두두두!
주먹만 한 흙덩이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당규영이 물었다.
“근데 쟤는 왜 저렇게 화가 났어? 면전에 대고 흙마법부터 날려 대네.”
“자기 영역이랍니다.”
나는 물고기어를 번역해 들려주었다.
엘리멘탈 피쉬는 몹시 포악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 습성이란 자기 영역을 내에 접근하는 모든 것에 공격을 가하는 것.
“쟤 영역이 어딘데?”
“이 호수 다요.”
커다란 무지개 호수 전체에 물가까지 놈의 영역이다.
근방에 몬스터는커녕 물고기 한 마리, 토끼 한 마리조차 눈에 안 띄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당규영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저런 양심 없는 놈을 보았나. 호수 전세 냈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혼내 줄까요?”
“혼내 줘야지.”
당규영이 손을 가볍게 젓자, 근처를 비행하던 그림자 나비들이 일제히 김갑두 피쉬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 역시 그림자 나비들을 발판처럼 밟아 가며 놈에게 접근했다.
바람 마법 덕분에 체공 시간은 길지만, 완전히 둥둥 떠서 날아다니려면 아직 스펙을 더 쌓아야 한다.
그렇게 놈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졌을 즈음, 내 주먹이 검붉은 불꽃을 머금었다.
이글거리는 주먹을 강하게 앞으로 내뻗는다.
[인페르노 피스트]– 콰콰콰콰—!
화염 폭풍이 엘리멘탈 피쉬의 안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거기에 놈의 머리 위까지 날아든 그림자 나비들이 단검, 도끼, 창 등 온갖 그림자 무기들을 쏟아부었다.
“—!”
고통에 더욱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는 엘리멘탈 피쉬.
그러나 실상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듯했다.
나는 일단 그림자 나비들을 밟아 가며 당규영의 곁으로 돌아왔다.
화염이 걷힌 후 놈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비늘 겉 부분만 조금 그슬리고 긁힌 게 다였다.
“저거 뭐 저렇게 딴딴하냐.”
“속성이 안 맞아서 그래요.”
엘리멘탈 피쉬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주려면 놈의 속성에 맞춰서 공격을 가해야 한다.
지금은 비늘이 갈색이니 토속성으로 때려야 하고.
그 외 모든 공격은 대미지가 엄청나게 깎여서 들어간다.
때문에 B랭크 인페르노 피스트가 정통으로 꽂히고, 3학년 부장급이 그림자 마법을 퍼부었는데도 놈은 어렵지 않게 버텨 낸 것이다.
“그럼 지금은 못 잡는 거네?”
“지금은요.”
지금이야 대지 속성이라 피해를 주기가 어렵지만, 속성이 내 스킬들에 맞게 변하면 그때부턴 일이 훨씬 편해진다.
가령 붉은색 비늘이라면 인페르노 피스트로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지금 좀 때려 놔서 나쁠 건 없죠.”
“하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
또다시 김갑두 피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토속성 마법들이 우리를 덮쳐 왔다.
요리조리 회피하며 그림자 나비들을 날려 보내는 당규영.
그것들을 발판 삼아 놈에게 접근하는 나.
불길을 머금은 주먹을 강하게 뻗자 화염 폭풍이 수면 위를 내달린다.
– 콰콰콰콰—!
“—!”
엘리멘탈 피쉬는 이번에도 화염 폭풍과 그림자 무기 세례를 어렵지 않게 버텨 냈다.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그러나 놈은 계속 공격을 이어 가는 대신 슬금슬금 물러나선 수면 아래로 쑥 잠겨 들었다.
부글부글 올라오던 기포가 조금씩 잦아들고, 호수가 거울 같은 매끄러움을 되찾았다.
우리 주변이 쑥대밭이 아니었다면 방금 전까지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안 믿길 지경이었다.
당규영이 나를 쳐다보았다.
“……갔네?”
“갔네요.”
“저거 언제 다시 나와?”
“두어 시간은 있어야 돼요.”
엘리멘탈 피쉬는 영역 내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공격하는 포악함을 지녔지만, 그와 동시에 환경을 활용하는 영리함도 겸비했다.
한바탕 전투를 벌였다 싶으면 호수 깊은 곳으로 몸을 피해 체력을 조금 회복하고, 두어 시간 정도 뒤에 다시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비늘 색깔, 즉 속성이 바뀌는데, 이건 특별한 규칙 없이 무작위로 정해진다.
“그런데 또 갈색이면?”
“또 두 시간 날리는 거죠.”
“그래서 오래 걸린다는 거구만.”
기회는 계속 찾아오지만, 놈을 처치하지 못할 때마다 던전에서 머무는 시간이 두 시간씩 늘어나는 셈.
이런 이유로, 운의 영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심뢰옥을 준비한 것이다.
설령 뇌 속성이 걸리더라도 피해를 줄 수 있도록.
“그럼 이제 뭐 해?”
“그냥 시간 때우면 되는데요— 잠깐 타임.”
나는 손을 들어 당규영을 제지했다.
눈을 반짝이며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는 것으로 보아 뭘 준비해 온 듯했는데, 아직은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까마귀부터 보러 가시죠.”
“아, 그게 지금이야?”
잠시 뒤 차원 까마귀가 등장할 터라 미리 접선 장소에서 대기해야 한다.
당규영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손을 뺐다.
무지개 호수 주변은 특별할 것이 조금도 없는, 아주 전형적인 숲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 솟아 있었는데, 산책하듯 조금 걷자 금세 정상에 다다랐다.
정상에는 작은 공터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그 정중앙에 납작한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치 비행기 선착장 같은 분위기.
“여긴가 보네?”
“여깁니다.”
“궁금하네.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거든.”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는 당규영.
차원 까마귀를 몇 번 멀찍이서 목격한 적은 있어도, 직접 거래하거나 거래 현장을 지켜보는 건 이게 처음이란다.
나처럼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좀처럼 마주칠 일이 없는 녀석들이기는 했다.
“거래는 거래인데, 따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돼요?”
“당연히 되지. 누구 부탁인데.”
당규영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부탁 내용을 듣자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거 괜찮은 거 맞냐?”
“괜찮을 겁니다.”
“에잉, 알았어. 일단 해 볼게.”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대기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허공이 마구 일렁거리더니 그곳에서 검은 형체가 튀어나왔다.
– 푸드득,
검은 형체는 공중에서 연신 날개를 파닥여 속도를 줄이고 바위 위에 사뿐 내려앉았다.
그것의 정체는 커다란 까마귀였다.
“까악.”
새답지 않은 덩치에 머리에는 신사 모자를 썼으며, 귀족적인 정장 차림을 하고 가방을 들었다.
리플레이를 통해 봤던 그대로였다.
‘까마귀 재봉사.’
재봉사는 당규영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반면 나를 발견했을 때는 놀란 것처럼 제자리에서 크게 날개를 푸드덕거리더니, 더 가까이서 보려는 것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까마귀라 표정은 읽을 수 없었으나, 매우 흥미로워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까악, 어린 군주야.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느냐?”
“뻔하지 않나.”
재봉 맡기러 왔지.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