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No.88 악인집결 (7)
인간이란 간사한 동물이라, 돈을 빌릴 때와 갚을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리고 팽미령은 지금 돈을 빌리고자 하는 상황.
비산쌍마를 처치한 사실을 알려 주면 고마워하기야 하겠지만, 그 보상은 저쪽 마음대로.
반면 협상부터 한다면 우리 입맛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당규영도 그것을 알기에 일단 숨기는 거고.
나는 통신기를 넘겨받은 다음, 짐짓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선배님, 가급적이면 쌍마는 피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공략본에도 두 번 세 번 언급했었는데.
S급 [독 저항]이 없었다면 나도 어떻게든 피하려 들었을 거다.
가령 윈드포스로 날려 버리고 튄다거나.
– …….
통신기 너머로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팽미령의 착잡한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 ……알아. 그렇게 당부했는데, 해 볼 만하다 생각했나 봐.
아마 2팀 팀장은 공략이 워낙 술술 풀려나가서 자신감이 과하게 붙었을 것이다.
그게 순전히 공략본 덕분인 줄은 모르고.
해서 객기를 부리다가 쌍마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다.
다른 팀이 단독 행동을 벌인 건 팽미령이 손쓸 수 없는 문제였고, 이미 지나간 일에 왈가왈부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서 나는 대화를 계속 진행시켰다.
“이렇게 연락을 주신 건 저희 도움이 필요해서라고 생각합니다.”
– 맞아.
“먼저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싶은데요. 몇 명까지 잡으셨습니까.”
팽미령이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 다 합해서 6명이야. 우리 1팀은 비동 조사 들어갔고, 2팀은 방금 말한 대로 회복 중, 3팀은 계속 공략하고 있어.
“앞으로 계획은요?”
– 3팀은 2킬 더 할 수 있을 것 같고, 2팀도 복귀가 빠르면 1킬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
“그래도 많이 부족하네요.”
다 합해도 마두 9명.
던전 클리어 목표 12명에서 한참 부족하다.
원래 2팀에서 채웠을 할당량이 빠진 탓이다.
팽미령도 같은 생각을 한 듯, 통신기 너머로 또다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 어쩌겠어. 우리가 좀 더 고생해야지. 그래서, 좀 도와줄 수 있어?
“…….”
대답 대신 옆으로 슬쩍 눈짓을 보내자 당규영이 통신기를 넘겨받았다.
“일단 뭘 줄 수 있는지부터 들어보고 싶은데.”
– 클리어 보상 조금 더 분배해 줄게.
“얼마나?”
– 1킬, 아니 2킬만 해 줘. 그럼 랜덤박스 하나 넘겨줄게.
나름 양질의 아이템들이 나오기에, B랭크 랜덤박스의 가치는 꽤 높은 편이다.
이미 마두 둘은 잡았으니 하나가 거저 생긴 셈.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할 우리가 아니었다.
당규영이 영 마뜩지 않은 말투로 답했다.
“미안한데 별로 동기부여가 안 되네. 우리가 3학년 파티도 아니고, 1학년 애기들만 셋인데.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지.”
– ……원하는 대로 맞춰 줄게. 말해 봐.
“비동에서 찾는 거-”
– 그거 빼고.
단호하게 끊는 팽미령.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도 혈귀도마의 기연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애초에 그걸 보고 결성된 원정대이기도 하니까.
당규영도 미련 없이 다음 제안을 던지는 걸 보면 그냥 찔러 본 모양이다.
“그럼 3개 줘.”
– ……랜덤박스 3개?
“응.”
– 너무 많아. 2킬에 2개로 하자.
이만하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는지 당규영이 슬쩍 눈빛으로 내 의향을 물어보았다.
나는 또 통신기를 넘겨받고 말했다.
“3개로 해 주세요.”
– 너무 많다니까. 내 독단으로 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2개도 반발이 클 거야.
“대신 한 명 더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앞서 전해 들었듯, 팽미령 측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처치할 수 있는 마두는 9명.
거기에 우리가 3명을 더 처리해 주면 클리어 조건이 완수되는 셈이다.
물론 그중 둘은 벌써 쓰러뜨렸고.
팽미령이 솔깃한, 그러나 다소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 ……괜찮겠어?
“한번 해 보죠. 안 되면 말씀드릴게요.”
– 그게 좋겠다. 2킬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무리하지 말고.
“하나만 더요. 끝나고 올라가는 길에 신세 좀 질 수 있을까요.”
슬슬 공략도 중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끝나고 던전동을 벗어나는 것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정 뾰족한 수가 없으면 그냥 잡혀도 상관없다.
내려가는 길에야 잡히면 던전 공략이 막힌다는 엄청난 리스크가 존재했지만, 올라가는 길에는 얻을 거 다 얻은 뒤일 테니까.
끽해야 벌점 조금 받고 끝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안 잡히는 게 낫지.’
C층을 돌파할 때는 당규영의 [그림자 도약]을 증폭해서 썼으며 운도 상당히 따라 주었다.
그러나 당분간은 증폭이 봉인된 데다 똑같이 운이 좋으리란 보장도 없다.
해서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물어본 건데, 팽미령은 한배를 탔다 여겨서인지 흔쾌히 수락했다.
– 그 정도는 괜찮아.
“감사합니다.”
– 그럼 계속 연락하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
“예, 선배님.”
팽미령과의 통신이 끊기고, 나는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말문을 열었다.
“들으셨다시피, 앞으로 하나만 더 잡으면 됩니다.”
“역시 얘기 안 하길 잘했네.”
덕분에 듬뿍 받아냈잖아, 하고 흡족하게 웃는 당규영.
그러더니 확인 차 묻는다.
“그럼 하나 더 잡으면 6갠가?”
“맞아요, 6개.”
중간보스를 처치할 때마다 B랭크 랜덤박스가 하나씩 드랍되니 3개.
거기다 팽미령 측이 얹어 줄 3개까지 더하면 총 6개.
B랭크 중형 던전급 보상이 들어오는 셈이다.
또 당규영이 물었다.
“히든 피스는 포기하려고?”
“어쩔 수 없죠. 이것부터 처리하고 시간 남는 대로 챙기는 수밖에요.”
“그래, 랜덤박스만 해도 어디냐. 다빈아.”
“네, 부장님.”
당규영의 의도를 파악한 듯, 채다빈이 태블릿을 빠르게 두들겼다.
그러자 여행용 캐리어에서 드론들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사방으로 넓게 흩어졌다.
곧 태블릿 화면이 분할되며 각 드론의 시야를 비추었다.
움직이기 전에 어느 마두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역시 서포터가 있으니까 편해.’
특히 채다빈 같은 정보 계열은 전투에서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미미해도, 외적인 부분에서 수고를 크게 줄여 준다.
공략본으로는 마두들의 대략적인 활동 범위만 파악할 수 있을 뿐, 시시각각 바뀌는 위치까지 잡아내진 못하니까.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가운데, 분할된 화면 몇몇에 빠르게 이동하는 인영이 잡혔다.
마두들을 포착한 것이다.
채다빈이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찾았어. 누구 잡을 거야?”
“음혈색마(淫血色魔)가 살았네요. 저걸로 하죠.”
우리는 마두가 강하든 약하든 할당량만 채우면 그만.
그런 면에서 음혈색마는 아주 적당한 상대다.
‘거의 이 동네 최약체 수준이거든.’
다른 마두들에 비해 실력이 반 수에서 한 수가량 떨어지는 편으로, 비산쌍마가 각각 B랭크 중간보스급이었다면 이놈은 C에서 C+랭크 정도.
아마 알파 오우거보다도 약할 거다.
‘다섯이 우르르 몰려갈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나는 화면 속 색마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고현우에게 물었다.
“저거, 아까랑 똑같은 조합으로 상대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본인과 장 형, 채 선배님 말이오?”
“어, 그렇게 셋.”
고현우가 잠시 턱을 괸 채 고민하다가 답했다.
“십할 확률로 장담은 못하겠지만, 충분히 승리를 점쳐 볼 만하오.”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장무극과 채다빈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쌍마를 상대할 때도 셋이서 밀어붙이는 구도였으니, 그보다 약한 색마는 훨씬 쉽겠지.
내가 제안했다.
“그럼 지금만 따로 움직이자.”
고현우 외 두 명이 색마를 처치하고 오는 동안, 나와 당규영이 다른 히든 피스를 회수하는 작전.
공략본 총집편을 숙지시켰으니 모르는 것도 없을 테고, 여태까지 내 지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수해 왔기에 신뢰도 제법 쌓였다.
다만 성공 확률이 매우 높아도 100%는 아니라, 이건 어디까지나 제안이다.
“확실하게 하고 싶으면 우리도 따라가고, 해 볼 만하다 싶으면 맡기고. 어느 쪽이든 괜찮으니까 부담 갖지 마.”
고현우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을 다지고 답했다.
“조금의 위험조차 두려워해서야 답보(踏步)할 뿐이겠지. 한번 해 보리다. 맡겨 주시오.”
“좋아.”
몇 가지 추가로 당부를 건넨 후 우리는 둘로 갈라섰다.
“그럼 김 형, 건투를 빌겠소.”
“너도.”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멀어져 가는 세 사람.
그들을 일별하고 나도 당규영과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려 보니, 당규영 역시 곁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입가에 뜻 모를 미소를 머금은 채.
“왜 웃어요?”
“웃으면 안 돼?”
“되는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냥 잘 풀리니까 좋아서.”
태연한 어조로 답하더니 잽싸게 화제를 전환하는 당규영.
“그래서, 아까 가려던 데 가는 거지?”
“예, 맞습니다.”
갑자기 쌍마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잠깐 중단됐지만, 방해물이 모든 사라진 지금은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해서 우리는 방향을 틀어 도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잣거리에 들어섰음에도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분위기 역시 상당히 경직되어 있으며, 행인들의 면면을 봐도 잔뜩 겁을 집어먹은 기색이다.
마두들이 곳곳을 배회하는 데다 팽미령 원정대를 포함한 고수들이 그들과 수시로 충돌하니, 일반인들로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때문에 객잔이나 주루도 대부분 문을 걸어 잠갔으며 눈에 띄는 행상인의 숫자도 적었다.
당규영이 그걸 보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뭐 좀 사 갈까 했는데. 다 닫았네.”
“잘 찾아보면 있을걸요. 이거 챙기고 둘러봅시다.”
“흐흥, 그래.”
곧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제법 규모가 큰 장원.
담벼락도 그에 걸맞게 높았으나, 우리는 건물 옥상까지도 점프해 본 전적이 있었다.
동시에 담벼락 위로 훌쩍 뛰어올라 장원 곳곳을 훑어본다.
군데군데 인기척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얼마 안 되네.”
“이럴 때 빨리 털어 가야죠.”
애초에 그러려고 온 건데.
당규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도둑놈이라니까.”
“그렇긴 하네요. 인정하겠습니다.”
“돌아가면 입부?”
“그건 싫어요.”
나를 잡아채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당규영.
물론 나는 무소속으로 남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했기에 또 거절했다.
그런데 오늘은 당규영이 왠지 모르게 끈질기다.
“그럼 명예 부원은 어때?”
“그런 게 있어요?”
처음 듣는 소리인데.
당규영이 당당하게 답했다.
“방금 만들었다. 부장 권한이야.”
“왜 부장 권한을 그런 데다 써요.”
보나 마나 명예 부원으로 집어넣은 다음 은근슬쩍 입부시켜 버리겠지.
이럴 때는 화제를 전환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만 갑시다.”
당규영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듯했다.
계속 남의 집 담장 위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까만 나비가 팔랑거리며 장원 안으로 날아들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