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생명의 큐브 (2)
“오늘 수업 내용을 복습해 두도록 하세요. 다음 주 공략전에 도움이 될 겁니다.”
조옥순 여사는 정확히 휴식 시간이 되기 직전에 수업을 마쳤다.
다른 날에는 휴식 시간에도 남아서 몇몇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 주었는데, 오늘은 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빨리 교실을 떠난다.
교사는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되어 있으니까.
– ♪♬♩♪
조옥순 여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상한 양배추처럼 축 늘어져 있던 3반 학생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자유다!”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피곤이 삽시간에 씻은 듯 사라졌으며 온몸에 활력이 넘쳐흐른다.
유독 활발한 남학생 하나가 교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복도로 몸을 던졌지만,
– 텅!
“억!”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부딪혀 뒤로 튕겨 나갔다.
열린 교실 문을 더듬어 보니 투명한 막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다.
– 텅!
“읍!”
바람이나 쐬자는 심산으로 창문을 열어젖힌 여학생도,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려다가 본의 아니게 투명한 막에 얼굴을 문대는 신세가 되었다.
부딪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배리어?”
지금 교실 근방을 감싸고 있는 것은 용살학원에서 대단위로 시전한 광역 배리어.
마법사 한두 명이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견고하다.
일개 학생의 무력으로는 뚫고 나가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물론 신입생들이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고,
눈앞의 투명한 벽을 부숴 볼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 볼까 고민하던 와중.
두 번째 대단위 마법이 발동되었다.
– 치지지지지직—
교실 한쪽 끝에서 자기장으로 이루어진 얇은 막이 나타났다.
그것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교실 반대쪽 끝까지 학생들을 훑고 지나갔다.
“으앗!”
“꺅!”
자기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휙 지나갔기에, 학생들은 뒤늦게 조건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몸을 웅크리거나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곧 몸에 아무 지장도 안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사람을 해치는 용도가 아니라서 그렇다.
저 자기장의 역할은 사람을 찾는 것.
정확히는 골라내는 것이다.
“이, 이게 뭐야!”
“도대체 무슨?”
몇몇 학생들의 몸 일부분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대체로 교복 주머니, 혹은 이마.
여학생 하나가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꺼냈다.
저주 인형으로 보이는 것에서 붉은 광채가 빛난다.
자기 것이 아니라는 양 황급히 인형을 내던지지만, 다음 순간 인형과 자신이 붉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몇몇 학생은 주머니가 빛나지 않는 대신, 이마에 큼지막하게 빨간색으로 알파벳 ‘I’ 자가 적혀 있다.
문제가 되는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들어 있다는 의미.
소지품 검사. 밴 웨이브.
용살학원의 학생들이 소지하고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아이템들은 , 플레이어들의 용어를 빌리면 에 등재된다.
그리고 지금처럼 밴 웨이브를 발동시켜 솎아 내고, 제재를 가한다.
새 학기 첫 밴 웨이브는 매우 높은 확률로 1주 차 금요일에 이루어진다.
대다수 신입생들이 대인전을 위해 아레나에 몰려들기 시작하는 날.
며칠간 다른 학생들의 리플레이를 관전하며 자기 점수대의 실력을 가늠해 봤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쩐지 자기 실력으로는 역부족이라 느꼈을 수도 있다.
대개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도전하고, 부딪히고 깨지며 성장해 나간다.
그것이 용살학원이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는 편법, 즉 금지 아이템에 손을 뻗는다.
점수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런 아이템을 써 봐야 단기적인 점수만 유지될 뿐이고 득 될 게 전혀 없는데도, 눈앞의 점수에 눈이 멀어 사고가 정지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 용살학원은 무자비한 철퇴로 응수한다.
– 쿠쿵!
먼 곳에서 묵직한 충돌음이 울렸다.
저건 아마 조벽이겠지.
거리로 미루어 보아 1반부터 시작하나 보다.
차례차례 다가오며 3반도 거쳐 갈 예정이다.
“으음, 흥미롭구려.”
고현우는 진귀한 구경이라도 하는 듯 눈을 빛내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고, 서예인은 별 관심이 없는지 여전히 책상에 엎드린 채다.
금지 아이템을 안 갖고 있으니 붉은 기운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신병철은…….
주머니도 붉고, 이마도 붉다.
이마의 ‘I’ 자가 어찌나 짙고 선명한지 금방이라도 레이저 빔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
대체 금지 아이템을 얼마나 바리바리 챙겨 왔길래.
매우 유감스럽게도 곧 선도부가 와서 저걸 모조리 압수해 갈 것이다.
매우 많은 벌점과 매우 많은 징계는 덤.
도망칠 데도 없고, 아이템을 버릴 수도 없다.
진퇴양난, 사면초가.
나는 신병철에게 한심한 눈빛을 보냈다.
“아이고, 오늘 신수가 아주 훤하십니다?”
“야……. 나 놀리지 말아 봐. 나 지금 심각하다.”
신병철의 표정에는 평소의 여유로운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깍두기 머리가 식은땀으로 번들거린다.
“하여간 방에 두고 오래도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뭐?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아니이~ 내가 이런 일일 줄 알았나? 자세하게 얘기를 해 주든가.”
“얘기는 너네 동아리 부장이 해 줬을 거 아냐. 이번 주 금요일, 아니면 다음 주 월요일에 소지품 검사 할 수도 있다고.”
“아니 그, 하기는 했는데, 이런 거라곤 안 했다고…….”
“네가 듣다 만 건 아니고?”
“…….”
정곡을 찔렸는지 입을 다무는 신병철이었다.
2, 3학년은 여러 대에 걸쳐서 쌓인 데이터를 갖고 있을 테니, 단속이 들어오는 기간은 대강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 몸을 사리라는 언질을 받았을 텐데, 그마저 한 귀로 흘린 대가가 이것이다.
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지.
신병철이 작은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걸어 다녔다.
“아오씨, 어떡하지, 진짜 엿 됐네, 어떡하지, 이거 다 털리면 부장님한테 진짜 뒤지는데, 어떡하지, 와, 나 진짜.”
“살려 줄까?”
“나 심각하다고! 자꾸 긁지 말라니깐…… 뭐요?”
나에게 버럭 화를 내던 신병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식간에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되묻는다.
“……형님,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불쌍해서 살려 줄까 했는데. 싫으면 관두고.”
신병철이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살려만 주십쇼, 형님. 뭐든지 하겠습니다, 형님.”
“너 나한테 빚진 거다.”
“물론입죠 형님.”
“이쪽으로.”
이미 표식이 찍혔기에 다른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피할 수 없어도, 대놓고 하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가리는 게 낫다.
시선이 잘 닿지 않는 한구석으로 가서 [생명의 큐브]를 열었다.
“밴 걸린 거 다 집어넣어. 부피 작고 귀한 거 위주로.”
“넣으면 어떻게 되는데?”
“일단 넣어. 못 믿겠으면 관두고.”
“아닙니다, 형님. 넣겠습니다, 형님.”
신병철은 금지 아이템들을 큐브로 옮겨 담기 시작했다.
– 쿠르르릉, 쾅!!
천둥소리가 바로 옆 반에서 울렸다.
곧 학생선도부가 3반으로 넘어올 것이다.
신병철의 손이 한층 더 빨라졌다.
[혈삼 캔디] [우울한 구름과자] [스킬북 – 눈먼 증오] [드림 캔디(망나니가 되었다)]……
……
“뭐가 이렇게 많아. 아저씨 어디 이민 가요?”
“아잇, 그냥 내가 다 미안해…….”
신병철은 내 핀잔에 사과하면서도 큐브가 한가득 찰 때까지 금지 아이템들을 꽉꽉 눌러 담았다.
‘괜찮은 건 없네.’
가져갈 만한 게 보이면 한두 개쯤은 달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나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기회는 앞으로도 잔뜩 생길 테고, 지금은 애피타이저도 못 되니까.
[생명의 큐브]를 인벤토리에 수납했다.금지 아이템을 전부 옮긴 건 아니기에 아직도 신병철의 이마에 I 자가 떠올라 있지만, 방금 전보다는 확연히 옅어졌다.
저 정도는 본인이 알아서 감당해야지.
“동작 그만.”
– 파지직!
나와 신병철 옆에 한 줄기 벼락이 꽂히더니 송천혜가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어 나타났다.
장갑을 낀 손에서 위협적으로 전류를 피워 올리며 묻는다.
“거기서 뭐 하시는 거죠?”
방금 막 밴 웨이브가 발동된 데다, 신병철의 이마에 낙인까지 찍혀 있다.
그런 신병철과 내가 교실 한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있으니, 누가 보든 심히 의심스럽겠지.
나는 최대한 결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신병철도 나를 변호했다.
“맞습니다. 이 친구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러시겠죠.”
당연히 송천혜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었다.
빛나는 수정구가 박힌 단말기를 나에게 들이댄다.
밴 웨이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으로, 대상이 금지 아이템을 소지했다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 우웅—
아무 반응도 없다.
송천혜가 다시 수정구를 작동시켰으나 결과는 같았다.
“…….”
“나 가도 돼?”
“……자리로 돌아가서 앉으세요.”
2반에서 선도부원들이 계속해서 넘어왔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금지 아이템들을 압수하고, 소유자의 학생증을 단말기에 등록한다.
금지 아이템의 등급이나 개수에 따라 추가적인 벌점과 징계가 가해질 것이다.
– 콰쾅!
저항하는 학생은 가차 없이 제압한다.
칼을 뽑아 든 남학생이 조벽의 일권을 맞고 벽에 꽂히자, 함께 반항하던 다른 남학생이 슬그머니 무기를 집어넣고 자기 아이템을 내밀었다.
“…….”
한편 송천혜는 계속해서 나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어떻게든 내 인벤토리를 열어 보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으니, 강압적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내 인벤토리에는 금지 아이템이 잔뜩 들었는데.
‘이래서 금요일 전에 완성시키려고 한 거지.’
생명의 큐브가 발하는 파동은 멀리서도 박나리의 고양이를 꾀어낼 정도로 강력하다.
두꺼운 갑옷처럼 큐브를 감싸서 밴 웨이브를 교란시키기에, 안에 무엇을 집어넣든 외부에서는 ‘생명’ 계열 아이템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나조차도 아주 우연히 발견했던 히든 피스였다.
생명의 큐브를 이용해 신병철과 녀석이 소속된 동아리에 큰 빚을 하나 지웠고, 동시에 홍보도 했다.
밴 웨이브로부터 금지 아이템을 은폐하는 아이템.
생명 계열과 완전 동떨어진 클래스라도 갖고 싶어 미칠 테지.
* * *
수업 종료 후.
인적이 뜸한 곳에서 신병철과 합류했다.
나를 보자마자 감격에 겨워 끌어안으려 하길래 밀쳐 냈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감사 인사를 건네는 신병철.
“와, 진짜 고맙다야. 너 아니었으면 그거 다 털리고 나는 변사체 아니면 노예행이었어.”
“빚으로 달아 둬. 나중에 톡톡히 받아 낼 거다.”
“아유, 그럼요. 이런 건 절대 안 떼먹지.”
신병철을 곤경에서 구해 준 빚은 나중에 받아도 상관없고, 본래 ‘압수당했을’ 아이템을 빼내 준 값은 따로 받아 낼 생각이다.
쟤네 동아리 부장한테.
“금지 아이템은 너네 부실 가서 풀자.”
“그러지 뭐. 안 그래도 부장님이 너 한번 보잰다. 바로 가?”
“갑시다.”
신병철의 안내를 따라 동아리실로 이동했다.
[용살학원 심부름 서비스!]를 통한 금지 아이템 거래를 비롯해, 온갖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용살학원의 말썽꾸러기들.도둑 동아리 부실로.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