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29
29화 금지 아이템이 모이는 곳 (1)
도둑 동아리 부실은 매우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규모나 실적으로 보면 중위권 이상은 하는데, 교칙을 하도 어겨 대는 게 문제다.
개개인의 벌점과 징계는 물론, 동아리 단위의 제재도 꽤 빈번히 가해지는 편이다.
그중에 동아리 예산 삭감도 포함이고.
그 증거로 부실 내부는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소파는 가죽이 죄다 까졌고, 의자들은 어디에서 주워 왔는지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른 곳에서 주워 온 듯한 낡은 나무 테이블 위에, 도둑 동아리 부장이 걸터앉아 있었다.
검은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렸으며 늘씬한 키를 가진 미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무표정하게 앉아만 있는데도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동아리 하나를 운영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
“누님, 저희 왔습니다…….”
“…….”
동아리장이 말없이 검지를 까딱거렸다.
신병철이 주춤거리면서 근처까지 다가가자, 하얀 손이 깍두기 머리를 우악스럽게 콱 움켜쥐었다.
“으이그! 내가 사리라고 했냐 안 했냐?”
“악! 누님! 머리! 머리만은!”
“중요하니까! 딴짓하지 말고 들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죄송하다구요! 악! 스탑! 나 대머리 된다!”
동아리장이 손에 힘을 줄 때마다 신병철이 애처롭게 끌려 다녔다.
이 촌극으로 머리카락, 아니 머리털이 한 움큼은 뽑혀 나간 것 같았다.
동아리장은 신병철의 머리를 놓으며 마지막으로 뒤통수를 탁!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넵. 죄송함다.”
신병철이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퇴장하고, 우리는 단둘이 되었다.
동아리장이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당규영이다. 이미 알고 왔겠지만 여기 부장이야.”
“김호입니다.”
“바로 물건부터 보자.”
당규영은 매우 직설적인 성격인 모양이다.
내 입장에서도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고받는 것보다, 이렇게 통성명만 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는 게 더 편하다.
인벤토리에서 [생명의 큐브]를 꺼내 열어 보였다.
당규영은 한가득 꽉꽉 눌러 담은 금지 아이템들을 응시하다가, 하나를 꺼내서 확인했다.
“……진짜였네. 솔직히 방금 전까지도 반신반의했거든. 밴 웨이브를 속이는 아이템이라니, 암만 들어도 거짓말 같잖아.”
“세상은 넓고 아이템은 많죠.”
“그런가 봐. 여태까지 안 다뤄 본 아이템이 없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머네. 야, 나 이거 훔쳐 가도 되냐?”
농담 2, 진담 8 정도가 섞인 눈빛이다.
도둑 동아리 부장인 만큼 마음만 먹으면 신입생에게서 아이템 하나 훔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럴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금방 잡힐걸요. 이래 봬도 마법공학 아이템이라.”
“뭐?”
당규영이 큐브를 더 자세히 살폈다.
갖가지 식물들과 꽃들로 뒤덮여 있기에 슬쩍 봐서는 알아차리기 힘든데, 군데군데 10x10x10 설계도의 흔적이 엿보인다.
“뭐야, 마공학템 맞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누가 만들었대?”
“제가요.”
“야, 너 손재주 좋다?”
이러면 김샜네, 하며 미련을 버리는 당규영이었다.
마법공학 아이템의 도난 방지 장치는 일반 마법 아이템의 것보다 한 차원 복잡하다.
제작하는 단계에서 깊숙이 심어 둘 수도 있으니 찾기도 어렵고 우회하기도 어렵다.
물론 나는 그런 건 해 둔 적이 없지만, 블러핑만으로도 억제가 된다.
만약 내 말이 사실이라서 추적당하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되니까.
“쯧, 아무튼 나한테 바라는 게 있으니까 병철이한테 안 넘기고 직접 온 거지?”
“바로 보셨습니다.”
“여기 꼬라지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좀 가난해. 이거까지 털렸으면 이번 달은 적자 났을걸.”
그래서 줄 수 있는 게 마땅치 않단다.
엄살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굳이 그 점을 꼬집지 않았다.
어차피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고 온 게 아니니까.
“선배님이 충분히 해 주실 수 있는 일일 겁니다.”
“말해 봐. 뭔데?”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임시 보관소.”
“……!”
‘임시 보관소’를 입에 담는 순간 당규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발밑의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내 그림자는 제멋대로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바로 눈앞에 있는 당규영의 존재감은 서서히 옅어진다.
언제든 전투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
“말로 합시다, 선배님. 저 무서워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무섭기는. 선도부에서 보냈냐?”
“아뇨. 걔네랑 사이 안 좋습니다.”
“그럼 어디.”
“저 혼자 왔죠.”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왜 합니까?”
어차피 조금만 조사해 보면 소속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런 사소한 거짓말을 해 봐야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당규영은 진의를 가늠하려는 듯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고, 나는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곧 꿈틀대던 그림자들이 원상 복귀되었다.
“……후, 그래. 일단 무소속이라 치고. 임시 보관소는 어떻게 알았어.”
“나름대로 추론을 해 봤습니다.”
사실 추론이 아니라 경험이다.
밴 웨이브 한 번으로 전교생에게서 압수하는 금지 아이템만 수백 개에 달한다.
그런데 학기 중에 밴 웨이브가 이번 한 번으로 끝이냐?
절대 아니다.
잊을 만하면 발동해서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준다.
그렇다면 그 많은 금지 아이템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압수품 보관소가 존재한다.
그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고인물 오브 고인물인 나조차도 정확히 모른다.
수시로 위치가 바뀌니까.
게다가 위치를 알아낸다 해도 뚫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몇몇 교장 선생님들은 거대한 아공간을 압수품 보관소로 삼고 휴대한다.
교장 선생님을, 즉 전대 용사를 쓰러뜨려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가능한 스펙이라면 그 안의 아이템을 얻는 의미가 없다.
단, 이건 보관소의 위치고,
금지 아이템들을 보관소로 옮기기 전에 짧은 기간 분류와 확인 작업을 거치는 장소가 존재한다.
바로 임시 보관소라는 곳이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 밤쯤에 가실 거라 봅니다.”
이번 주말만 지나면 임시 보관소는 깨끗하게 비워질 터.
그 전에 그곳을 털 수 있느냐가 지금 도둑 동아리의 최대 관건.
일요일은 너무 늦어 버릴 가능성이 크고, 아마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이 이상적이겠지.
내 목적이 뚜렷하게 드러나자 당규영이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무임승차를 하시겠다?”
“무임승차까진 아니죠. 요금도 내는데.”
그 요금이란 당연히 방금 살려 준 금지 아이템들이다.
내 태도가 너무 당당해서인지 당규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생명의 큐브]를 뒤집어서 내용물을 와르르 쏟고, 빈 큐브를 나에게 건네며 말한다.“후배야, 김호야, 솔직히 이것들 구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해. 적당한 대가를 지불할 용의도 있고. 그런데 이건 우리가 손해야. 거기 들인 수고가 얼만데,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달랑 얹는다? 이건 안 되지.”
“그런 감이 있긴 하죠.”
“그러니까 임시 보관소는 빼고 다른 거 말해 봐. 다른 거.”
내가 살려 준 금지 아이템들의 값어치를 다 더해도 임시 보관소행 버스에 탑승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곳은 도둑 동아리 입장에서 정말로 보물 창고나 다름없으니까.
당규영은 이쯤에서 내가 다른 걸 요구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신, 저울에 거래 재료를 하나 더 올리면 그만이다.
내가 운을 뗐다.
“임시 보관소요. 선도부가 지키고 있겠죠?”
“말해 뭐 해. 완전 철통 수비지.”
밴 웨이브는 내가 입학하기 전에도 수없이 발동되어 왔다.
그때마다 도둑 동아리가 임시 보관소에 눈독을 들였으며, 그때마다 학생선도부가 모든 인원을 동원해 수성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침입하기도 어렵겠지만 일을 마치고 도주하기도 어려울 거구요.”
“굳이 따지면 후자가 더 어려워.”
아무도 모르게 들어갔다가 아무도 모르게 나가면 완벽하겠지만, 오가는 과정에서 수성 측의 이목에 걸려들 가능성은 꽤 컸다.
선도부는 용살학원에서 가장 강한 무력 집단.
4대 세력의 몇몇 강호들이라면 몰라도, 도둑 동아리가 비벼 볼 상대는 아니다.
맞서 싸워 봤자 순식간에 압도당하고, 도주하다가 잡히면 그대로 게임 오버.
고생고생해서 챙겨 나가던 아이템들을 다 토해 내야 한다.
내가 제시하려는 조건이 바로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
“제가 후자를 해결해 드릴 수 있다면?”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우리도 못하는 걸 네가…… 잠깐만.”
보란 듯이 [생명의 큐브]를 슬쩍 여닫자 당규영의 눈이 커졌다.
“……맞아. 왜 저 생각을 못 했지? 중요한 것만 모아다 넣으면…….”
“확정적으로 갖고 나올 수 있죠.”
밴 웨이브도, 수정구도 피해 가는 히든 피스.
침입하는 도둑 동아리 인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붙잡히더라도, 큐브 안에 수납한 아이템은 안 걸린다.
‘이건 절대 거절 못 하지.’
물론 당규영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준비한 프로젝트인 만큼, 완성 단계에 외부인이 덜컥 올라타는 건 마음에 안 들겠지.
하지만 그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엎어져 버리는 건 더 마음에 안 들 거다.
아무것도 못 건지는 건 더더욱.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최소한의 이득은 보장된다.
그것도 원하는 것들, 보관소에서도 가치가 높은 것들로만.
당규영은 거의 다 넘어온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영 마뜩잖은지 은근슬쩍 역제안을 던져 보지만,
“야, 그냥 그 상자만 나한테 넘기면, 아니 잠깐 빌려주면 안 되냐? 딱 하룻밤만.”
“싫은데요.”
어림도 없는 소리지.
“아, 왜! 좋은 아이템 있으면 가져다주면 되잖아!”
“직접 보고 골라야 돼요.”
저쪽 기준에서 좋은 아이템과 내 기준에서 좋은 아이템은 엄연히 다르다.
무엇이 나에게 쓸 만한지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하실 겁니까?”
“…….”
“정 싫으시면 어쩔 수 없고.”
“……한다, 해! 하면 되잖아!”
“그럼 동행하는 겁니다.”
“쯧.”
마지못해 거래를 받아들이는 당규영이었다.
불퉁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묻는다.
“야, 솔직히 말해 봐. 너 1년 꿇었지?”
“여기서 어떻게 1년을 꿇어요. 성적 안 나오면 바로 퇴학인데.”
“내가 감이 좀 좋거든. 암만 봐도 신입생 같지가 않아서 그래.”
“들켰네요. 특별히 선배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사실 졸업을 200번 넘게 해 봤어요.”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당규영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짠데.’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