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홍연화는 궁금하다
곧 우리가 도착한 곳은 커다란 상가 건물 앞.
바로 번화가 잡화점이었다.
이 말 그대로 귀쟁이들이 쓰는 궁술, 목토, 자연 계열 아이템에 집중한다면, 이곳은 온갖 아이템들을 두루 취급하는 편이다.
‘물량도 엄청나고.’
물론 그만큼 편차가 크고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
귀쟁이 마도구점은 가자마자 A랭크 코너만 슥 둘러보면 끝이었던 반면, 잡화점에서는 건물 전체에 가득한 아이템들 중 쓸 만한 것을 발굴해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고, 운과 눈썰미가 차지하는 지분도 크다.
물론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눈썰미 하면 나지.’
명색이 고인물이라, 아이템이 좋은지 나쁜지, 또는 숨겨진 사용처가 있는지는 척 보면 안다.
게다가 행운의 나무늘보도 데려왔으니 생각보다 일찍 끝날지도 모른다.
거기다 덤으로,
“홍연화.”
“어, 어……?”
“살 거 있냐.”
“아니……? 별로……?”
이동식 라이터 홍연화까지.
살 것도 없다면서 뭐하러 잡화점까지 따라온 걸까.
진열된 아이템들보다 우리 둘 눈치를 더 자주 살피는 것으로 보아, 뭘 사려나 궁금한 모양이다.
‘쫓아낼 필요까지는 없지.’
구하려는 아이템들이 내 스펙업과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게 꽁꽁 숨길 정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니니까.
그리고 의외의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해서 홍연화는 따라다니게 두기로 하고.
나는 서예인 곁에 나란히 서서 말했다.
“복덩이 레이더, 가동.”
“위잉—”
서예인이 무덤덤한 어조로 레이더 흉내를 냈다.
그리고 천천히 좌측을 봤다가, 우측을 봤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계단 쪽을 가리켰다.
“위잉.”
“올라가라고?”
“위잉.”
나는 복덩이 레이더가 지시하는 대로 계단을 밟았고, 홍연화는 이게 맞나 싶은 표정으로 우리를 뒤따랐다.
다음 층에 오르자 또다시 방향을 잡는 서예인.
“위잉.”
“저기군요.”
그녀가 지목하는 곳에는 빙결 계열 아이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뭐가 있나 싶어서 같이 둘러보려는데, 서예인이 진열대로 다가가다 말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
“왜?”
“……추워.”
심지어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기까지.
빙결 계열 아이템이 한곳에 모인 탓에 이 근처만 유달리 서늘하다.
차가운 걸 싫어하는 나무늘보의 습성상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을 만도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거기 있어. 금방 둘러볼게.”
“응…….”
이미 복덩이 레이더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억지로 끌고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겠지.
해서 서예인은 근처에 마련된 소파에 앉혀 놓고, 나만 진열대로 걸어가서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홍연화가 쭈뼛거리며 가까이 다가오더니 물었다.
“어떤 거……. 찾아?”
“페널티 감소 위주로 보려고. 쿨타임이면 더 좋고.”
“쿨타임 감소…….”
홍연화가 혼잣말처럼 그 말을 되뇌면서 반대편 진열대를 살폈다.
아이템 찾는 걸 도와주려나 보다.
[얼음 공주의 티아라] [미니 아이스 스컬]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이 아이템 저 아이템 들여다보고 있는데, 순간 홍연화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어깨너머로 물었다.
“뭐 찾았어?”
“아, 아니. 아닌 거 같아.”
“뭔데 그래.”
뭘 잘못 본 모양이지만 그래도 멈칫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번 확인하고 넘어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서 그쪽으로 다가가자, 홍연화가 조심스레 손을 들어 진열대 한켠을 가리켰다.
“저건……. 데.”
어린애 주먹만 한 얼음 덩어리.
특이한 점이라면 그 안에 시계처럼 시침, 분침, 초침이 갇혀 있다는 것이다.
[얼어붙은 시간 결정(B)]▷사용 시 재사용 대기 시간 소폭 단축
▷빙결 계통 스킬/특성에만 사용 가능
▷중복 사용 불가
‘성능 좋네, 나무늘보 레이더.’
정확히 내가 찾던 쿨타임 감소 아이템이다.
‘빙결’ 계통에만 쓸 수 있다는 게 걸리지만,
“홍연화.”
“으, 응?”
“잘했어.”
“……?”
홍연화는 조금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지만, 어찌 됐든 칭찬받은 게 좋은지 표정이 밝았다.
먼저 나는 얼어붙은 시간 결정을 서예인에게 가져갔다.
그새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서예인이었으나,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부스스 눈을 떴다.
“아가씨, 이겁니다.”
“결제.”
서예인은 내가 어련히 잘 골랐겠거니 싶었는지, 흘긋 보기만 하고 곧바로 블랙카드를 꺼내 들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제를 마친 뒤, 나는 또 홍연화를 불렀다.
“홍연화.”
“……?”
“이거 좀 녹여 줘.”
홍연화의 고유 특성, 아쿠아플레임.
빙결 속성에 대해 강력한 상성 우위를 지니며, 어지간한 얼음은 단숨에 녹여 버릴 수 있다.
“…….”
또 휴대용 라이터 취급을 받아서인지 순간 울컥한 홍연화였으나,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슬며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검지를 들어 올렸다.
– 화르륵…….
소심한 손짓만큼이나 자그마한 불꽃이었으나, 그 효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불꽃에 닿자마자 얼어붙은 시간 결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그대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다음 순간 홍연화의 손 위에는 시침과 초침, 분침만 남아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시간 결정(B+)]▷사용 시 스킬/특성의 재사용 대기 시간 소폭 단축
▷중복 사용 불가.
몇몇 ‘얼어붙은’ 아이템들과 관련된 히든 피스.
그대로 써도 충분히 유용하지만, 이렇듯 마법의 불꽃으로 녹이면 제한 조건을 지워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홍연화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 이거 B랭크라서 잘 녹지도 않는 건데. 네가 하니까 한 방이네.”
“아, 아니야. 나는 한 것도 없는데…….”
손사래를 치는 홍연화였으나 벌써부터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표정 감추는 건 아직도 많이 서투르군.
시간 결정도 얻은 김에 곧바로 쓰기로 했다.
쿨타임이 적을수록 좋은 건 어느 스킬이나 마찬가지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급한 건 역시 [고행].
쿨타임이 일주일이나 되는 데다, [증폭]이나 [부여]와 달리 랭크가 매겨지지 않아서다.
성장시킬 방법이 매우 제한적인 만큼 우선순위가 높았다.
[‘시간 결정’을 사용합니다.] [‘고행’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감소합니다.]▷7일→6일
쿨타임 ‘소폭’ 단축이지만, 기본이 7일이나 되다 보니 하루가 줄었다.
이만하면 이후 일정을 조정하기가 한결 수월할 터였다.
[문어발]을 연계했을 때도 숨이 덜 막힐 테고.이후에는 홍연화 서예인과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거의 해가 저물어 갈 때쯤 기숙사로 돌아왔다.
* * *
루비 마탑 동아리실로 돌아온 홍연화.
그녀의 모습을 언니 홍예화가 묘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자꾸 시선이 자기를 따라다니는 게 거슬렸기에 홍연화가 물었다.
“왜 그렇게 봐?”
“뭐 좋은 일 있었어?”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홍연화는 동아리실에 들어선 순간에도 바보처럼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여전히 속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그녀였다.
홍연화가 계속 실실거리며 답했다.
“뭐, 그냥. 언니 빵 먹어.”
그러면서 제과점 빵 봉투를 책상 위에 턱 올린다.
홍예화가 봉투 안쪽을 확인해 보더니 헬파이어 피자빵을 하나 꺼냈다.
“네가 웬일이야. 기특하네.”
“언니 생각나서.”
“잘 먹을게.”
홍예화가 헬파이어 피자빵을 기분 좋게 베어 물곤, 음미하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당장 물을 찾아 날뛰었겠지만, 매운맛 내성이 엄청난 것은 자매가 같았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듯했으나, 순간적으로 홍예화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근데 이건 어떻게 샀어?”
“뭘 어떻게 사. 빵집에서 샀지.”
“그러니까 어떻게 들어갔냐고.”
번화가 제과점 빵은 학생 식당에서 매우 한정적으로만 구매할 수 있다.
직접 들어가서 빵을 사거나 식사를 하는 건 특수한 쿠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쿠폰은 3학년 부장급인 홍예화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인데, 그걸 덜컥 구했다니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언니의 말투에서 슬슬 쎄한 느낌을 받기 시작하는 홍연화였으나, 일단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아니이, 내가 구한 건 아니고. 거기서 같이 밥 먹었거든.”
“누구랑?”
“……김호?”
“…….”
홍예화가 잠시 두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반쯤 남은 헬파이어 피자빵을 내려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두 걸음 제 동생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한쪽 손은 점차 불꽃으로 이글거리는데, 언제나처럼 플레임 등짝 스매쉬를 날리려는 듯했다.
곧바로 위기를 감지한 홍연화.
방어 자세를 취하며 뒤로 물러난다.
“왜, 왜 이러는데. 왜.”
“걔 안 좋아한다며. 번화가에서 데이트를 해?”
“데이트 아니야!”
“단둘이 밥 먹었으면 데이트지!”
홍예화가 계속 거리를 좁혀 오고, 홍연화는 계속 물러나고 또 물러나다가 금세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그녀로서도 변호할 말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 단둘 아니었거든!”
“그럼?”
“서예인도 있었어.”
“서예인?”
홍예화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이내 대인전에서 제 동생과 몇 번 맞붙었던 상대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총사 클래스라, 대부분은 상성이 불리한 홍연화의 패배로 돌아갔었고.
그러고 보니 김호와 서예인이 자주 붙어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홍예화가 물었다.
“둘이 무슨 사이야? 사겨?”
“나야 모르지.”
“한번 물어봐.”
이번에는 홍연화가 역정을 냈다.
“그걸 내가 왜 물어봐!”
“왜 못 물어봐?”
“언니는 왜 이렇게 남 일에 관심이 많아?”
“너 때문에 그런다, 너 때문에!”
김호가 누구랑 사귀건 홍예화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게 제 동생만 아니라면 말이다.
짐작대로 김호와 서예인이 사귀는 사이라면, 제 동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상당히 좁아질 터.
그렇다면 연애에 한눈팔 걱정도 한결 덜 수 있을 거다.
따라서 홍예화가 차분한 어조로 타일렀다.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
“…….”
“정 안 되겠으면 말고.”
본인이 지나치게 부담감을 느낀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 질문은 나중에 자기가 직접 던져 볼 수도 있다는 계산도 한몫했다.
한편 홍연화는 살짝 인상을 쓴 채,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솔직히 궁금하긴 한데…….’
매일같이 붙어 다니고, 대인전과 공략전도 대부분 함께 치르는 두 사람 아닌가.
번화가에서도 자신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내내 둘이 다녔을 텐데, 그거야말로 데이트 아닌가?
진짜 사귀나?
당규영 선배랑도 뭐가 있어 보이던데, 그럼 그 둘은?
‘진짜 한번 물어봐……?’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