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홍연화는 고민이다
[혼돈한 구·사파이어 신전 랜덤박스(D+)] *2 [더욱 혼돈한 구·사파이어 신전 랜덤박스(B)] *1기본 클리어 보상은 D랭크 랜덤박스 세 개.
그것들이 [혼돈의 서]로 한 번 강화되어 +가 붙고, 한 장을 더 찢으며 또 강화되었다.
나는 즉석에서 보상을 분배했다.
“B랭크 가져갈게. 괜찮지?”
“응, 괘, 괜찮아.”
홍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인페르노 피스트를 목격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다소 위축된 기색이다.
그 때문에 불만을 품지 않는 것도 같았지만, 내 분배 방식에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혼돈의 서를 내가 가져왔으니까.’
혼돈의 서를 대여해 온 것도, 그걸 두 장이나 사용한 것도, 뒷감당을 한 것도 전부 나였다.
그러니 균등 분배가 오히려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홍연화도 이점을 인정할 테고.
해서 B랭크 상자는 나, D+랭크 상자 하나는 홍연화, 나머지 하나는 길잡이인 신병철에게 돌아가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당연히 D+랭크나 되는 만큼 이번 던전행으로 퉁치는 건 아니고, 앞으로 두어 번은 무보수 길잡이 예약이다.
순간이동 포탈을 타고 밖으로 나가자, 대기하던 신병철이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나오셨슴까~”
“오냐~”
물론 녀석이 고개를 숙이는 대상은 나나 홍연화가 아니라, 내 손에 들린 랜덤 박스였다.
보수에 관해서는 입장하기 전에 합의를 마쳐 두었기에, D+랭크 상자를 신병철에게 넘겼다.
그러면서 넌지시 질문을 던져 본다.
“오늘도 바로 열어 보나?”
“뭐, 그래야지.”
신병철의 반응은 평소와 달리 영 뜨뜻미지근했다.
여태까지 대박다운 대박은 한 번도 못 쳐 봤기에 기대치가 한없이 낮아진 것이다.
“그럴거면 그냥 상자째로 팔지.”
“그건 안 될 말씀이야.”
신병철이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개봉하지 않고 판매하면 일정 가치는 보장되는 데도 꼭 직접 열어야겠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요번에 책을 하나 읽었거든.”
“무슨 책?”
“이라고,”
“제목부터 사짜 같은데. 아무튼 거기서 뭐래?”
“‘대박을 치고 싶다면 도전을 멈추지 말아라!’ 얼마나 감동적인 말이니?”
한마디로 나올 때까지 뽑으란 소리구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라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정말 대박을 터트리면 축하할 일이고, 아니면 스탬프 쿠폰이 쌓이니 좋고.
“그래서, 바로 가나요?”
“바로 가야죠.”
신병철은 기대감을 낮게 유지한 채 랜덤박스를 열어젖혔고,
– 번—쩍—!
심상치 않은 광채가 터져 나왔다.
D+랭크 랜덤 박스 이펙트라기엔 너무 화려하다.
신병철도 그 점을 눈치챘는지, 무덤덤하던 얼굴이 곧바로 득의양양해졌다.
“봤냐? 도전 끝에 대박을 쳤다, 이거거든요.”
“인디언 기우제 성공이네.”
축하할 건 축하해야지.
과연 어떤 아이템이 나왔을까 확인해 보니,
[레시피:르네상스풍 티파티 세트(C)]▷다음 아이템들을 재료로 티파티 세트를 제작합니다.
▷찻잔(0/2)
▷티포트(0/1)
▷테이블보(0/1)
▷탁자(0/1)
▷의자(0/1)
나는 과장되게 감탄했다.
“이야, 대박은 대박이네. C랭크가 떴어요.”
“아니, 이것들이 나랑 뭐 있나?”
반면 신병철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모처럼 대박이 터졌는데 그것마저 티파티라니.
그래도 이만하면 여태까지 얻은 것 중엔 가장 좋다.
“이참에 세트 맞추면 되겠네.”
“아씨, 그렇긴 한데…….”
[레시피]의 효과.목록에 맞춰 아이템들을 집어넣으면, 그것들을 전부 관련 아이템으로 바꿔 준다.
이 레시피의 경우는 죄다 ‘르네상스풍—’ 수식어가 붙을 거다.
가령 르네상스풍 탁자라든가.
F급이나 E급을 넣어도 결과물은 C랭크.
잡다하던 물건들을 한 세트로 묶을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마침 신병철은 재료 상당수를 모아 둔 상태.
찻잔은 깃털뱀 부족 나무잔에 금영상단 찻잔, 윈터할트 머그컵까지 넉넉하고, 원목 탁자와 의자도 준비되어 있다.
부족한 거라면,
“티포트랑 테이블보가 없네.”
“천천히 하나씩 뽑아야지.”
어디서 F랭크를 사 와도 되지만 그렇게까지 하기는 싫은 모양이다.
그것도 다 돈이니까.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홍연화가 슬며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꺼 쓰든가.”
“진짜?”
뜻밖의 제안에 눈을 휘둥그레 뜨는 신병철.
홍연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목록에 있는 거 나오면 꽝 나온 셈 치고 줄게. 다른 거 나오면 내가 가져가고.”
하기야 홍연화 입장에서 테이블보가 무슨 쓸모겠는가.
꽝이 나오면 신병철 콜렉션 완성이나 도와주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면서 홍연화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는데, 마치 허락을 받는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그러라는 의미로 턱을 살짝 까딱였다.
애초에 허락을 받을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상자깡을 맡기든 그건 전적으로 주인 마음 아닌가.
내가 B랭크 혼돈 상자를 복덩이에게 가져가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다시 신병철을 쳐다보며 말했다.
“뽑아 버리나? 테이블보.”
“내가 누군지 잊었나 보군. 찻잔 뽑기의 달인, 신병철님이시다. 똑똑히 지켜보도록.”
또 신병철이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랜덤박스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단숨에 덮개를 열어젖혔다.
“티파티 세트!”
– 번—쩍—!
화려한 광채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곧 드러난 아이템에 우리 모두가 놀랐다.
나와 홍연화는 좋은 쪽으로, 신병철은 안 좋은 쪽으로.
[랭크 부스트]*2“어……. 이게 왜.”
“대박. 그 책 제목이 뭐라고?”
역시나 세상일은 마음대로 풀리는 법이 없었다.
* * *
루비 마탑 동아리실.
홍연화는 돌아오자마자 혼돈의 서부터 반납했다.
굳이 김호가 걸음을 하게 만들기보다, 자신이 대신 전달하겠노라 말하고 넘겨받은 것이다.
혼돈의 서를 받아들며 홍예화가 물었다.
“썼어?”
“응.”
“어땠는데?”
“특별한 건 없고, 그냥 회복 속도 증가 걸리던데?”
“그래.”
홍예화가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혹시나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불안정성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나 보다.
물론 이후 김호가 한 장을 더 찢기는 했지만, 홍연화는 그점에 대해서는 함구할 생각이었다.
김호에게 당부받은 것도 있고, 마지막에 그가 보였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페르노 피스트…….’
초거대 여신상을 주먹질 한 번으로 날려 버리는 압도적인 파괴력.
함께 지내면서 나름 실력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밑천이 한참 남은 모양이다.
이어서 회상 속 김호가 검지손가락을 입가에 갖다 댔다.
– 비밀로.
“……!”
홍연화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홍예화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왜 그래?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내가 뭘?”
즉시 시치미를 뚝 떼는 홍연화.
표정 관리가 영 서툴러서 어색한 티가 팍팍 났지만, 홍예화는 더 추궁하지 않고 넘어갔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물어봤어?”
“어떤 거?”
“사귀는 사람 있냐고.”
“없다던데?”
홍연화가 태연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답했다.
물론 뒷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근데 욕심쟁이래. 다 사귀고 싶대.’
이 폭탄 발언을 입 밖으로 냈다간 홍예화가 어떻게 반응할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혼돈의 서를 두 장 찢는 것 이상으로 혼돈스러운, 그리고 십중팔구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터였다.
따라서 아예 말을 안 하는 게 상책이었다.
이런 속내를 까맣게 모르는 홍예화로서는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김호와 서예인이 사귀는 사이라면 제 동생도 어느 정도 미련을 버리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물론 여지가 생겼다고는 해도 연애에 한눈을 팔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홍연화는 한창 다른 유망주들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태.
멈칫하는 순간 뒤처진다.
때문에 홍예화는 제 동생을 응시하며 재차 강조했다.
“너, 딴 생각하지 말고 집중해. 바로 다음 주가 기말고사야.”
“아! 안다고, 나도!”
홍연화가 볼멘소리로 답했다.
* * *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홍연화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해서 언니의 잔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동아리실을 나섰다.
‘생각해 보면 나랑 상관도 없는데.’
던전에서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애초에 김호의 욕심쟁이 발언은 자신을 염두에 두고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연애관을 밝혔을 뿐이지.
자신의 태도도 달라질 게 없다.
여태까지 하던 대로 가끔 대인전이나 공략전을 같이 치르고, 던전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근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왜 복잡한 기분이 드는가?
왜 쿨하게 훌훌 털어 버리지 못하는가?
결정적으로 자신은 뭘 어쩌고 싶은가?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정처 없이 걸으며 거듭 생각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답답하네. 얘기할 사람이 없으니까.’
여태까지 홍연화는 고민 상담 대부분을 언니에게 해 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김호에 관한 얘기를 꺼낼 때마다 결과가 안 좋은 쪽으로만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레임 등짝 스매쉬에 죽어나는 건 자신이었고.
따라서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이걸 누구한테 얘기해?’
상대가 영 마땅치 않았다.
두루두루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았지만,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소꿉친구인 백준석이 그나마 가깝기는 한데,
‘그 곰탱이는 안 돼.’
이런 일에 관해서는 말이 안 통한다.
차라리 벽에다 대고 얘기하고 말지.
게다가 의외로 입이 싸서, 이야기가 흘러 흘러 언니 귀에 들어갈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고민거리가 하나 늘어난 상태로 계속 걸었으나 여전히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홍연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뭐라도 마시자.’
커피라도 한 잔 마시다 보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점에 도착할 즈음, 홍연화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바로 고현우.
그 역시 이쪽을 알아보았는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시오, 홍 소저.”
“응, 안녕.”
홍연화가 고현우에게 갖는 인식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김호와 워낙 친하다 보니 종종 접점이 있었는데, 항상 서글서글 웃는 낯에 매너도 좋아서 최소한 거부감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얘한테 얘기해 볼까?’
가까운 사이라고는 못 하겠지만, 오히려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홍연화가 파악한 대로라면, 고현우는 전형적인 바른 생활 청년.
이런 부류는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고민을 털어놓더라도 그게 김호 얘기라는 걸 알아챌 리가 없었다.
결론을 내린 뒤 홍연화가 말했다.
“커피 마실래? 사 줄게.”
“홍 소저가 어쩐 일이오?”
“그냥, 심심해서 얘기나 하려고.”
말동무가 필요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는 홍연화.
그다음에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레 고민 상담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홍연화는 눈치채지 못했다.
고현우의 눈이 순간 날카롭게 빛나는 것을.
‘홍 소저가 갑자기 커피라.’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좁혀 오는 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터였다.
단순한 말동무 이상의 이유가.
고현우는 곧 홍연화의 표정에서 그것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고민이 있어 보이는군.’
짐작건대 아무한테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자신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말을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민의 대상도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김 형 얘기로군.’
고현우는 홍연화의 예상보다 눈치가 빨랐다.
아주 많이.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