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암살 시도인가?
홍연화와 고현우는 커피 한 잔씩을 사 들고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말을 하는 건 홍연화였고, 고현우는 듣다가 한 번씩 ‘음,’ ‘과연,’ ‘그렇군,’ 등의 추임새를 넣는 게 전부였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 탓에 처음에는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홍연화였으나,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말이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그럼 얘도 안 사귀고, 쟤도 안 사귀면 누굴 좋아한다는 건데? 싶어서, 마음에 드는 사람 있냐고 물어봤거든.”
“음.”
“근데 많다는 거야. 자기는 욕심쟁이라고.”
“그렇게 된 것이구려.”
고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다 갖기로 했는가? 김 형다운 선택이로군.’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이렇게 되리란 느낌을 받았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일 테지만, 어쩐지 김호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내 고현우가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면 홍 소저는 어찌하고 싶은 것이오?”
“그게에…….”
홍연화의 말끝이 흐려졌다.
입을 달싹거리며 좀처럼 대답을 못 한다.
그게 곧 대답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고현우가 대신 말했다.
“아직 마음을 확실히 못 정했나 보오.”
“응…….”
실상 그게 모든 고민의 원인이기도 했다.
고현우는 홍연화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가장 무난한 건 현상 유지일 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허나 사람 마음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현상 유지를 하고자 마음은 먹었어도, 자꾸 신경이 쓰이니 고민 상담을 해 온 것 아닌가.
고현우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내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군.’
요즘 들어 한소미가 자신을 불러내는 빈도수가 부쩍 늘었다.
대부분은 같이 검술 수련을 했지만, 그냥 노닥거리며 시간만 때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문의 신물을 계승해야 하는 그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강해져야 했기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한소미가 부르면 못 이기는 척 따라 나가는 게 현재 상황이었다.
다시 주제를 홍연화 쪽으로 돌려서.
고현우가 생각했다.
‘본래는 순리대로 하는 게 옳다.’
김호가 누구를 선택하든, 다 선택하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고현우는 모두 응원할 심산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자신이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었다.
‘허나 이대로는 내내 지지부진할 것 같으니…….’
여기서는 한마디라도 하는 수밖에 없겠지.
고민만 듣고 자리를 떠 버리기도 미안하고 말이다.
고현우는 잠시 할 말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본인으로서는 원론적인 조언밖에 해 줄 수 없는 점, 양해 바라겠소.”
“응.”
홍연화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바른 생활 청년의 조언이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들어 봐서 나쁠 것도 없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고현우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확실치 않다면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줘 보는 건 어떨까 싶소. 하나라도 확실해질 때까지 말이오.”
“맞는 말이긴 한데……. 어떻게?”
“호의를 표해 보는 건 어떻소?”
잘 대해 주면서 반응을 본다.
좋게 반응하면 더 잘 대해 주고, 그러다가 잘 풀리면 최선.
반면 반응이 영 별로다 싶으면 그때 현상 유지로 전환하면 그만이다.
홍연화도 고민 중에 한 번쯤 떠올려 본 생각이었으나, 그걸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으니 또 느낌이 달랐다.
“호의……. 괜찮은 생각 같아. 그런데 어떻게?”
“그 부분은 전적으로 홍 소저에게 달렸소. 본인은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니 말이오.”
“……그렇네.”
사실은 100% 김호라고 확정하고 있었지만, 고현우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발을 뺐다.
그편이 홍연화의 정신 건강에도 좋을뿐더러, 이 정도 거리감을 유지해야 더 깊이 관여하는 걸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내 고현우가 싱긋 웃었다.
“본인의 조언은 여기까지요. 심히 원론적인 이야기라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구려.”
“아니야, 도움 많이 됐어. 고마워.”
“그렇다면 다행이오. 그럼 본인은 이만 가 보리다. 커피 잘 마셨소.”
“응, 또 봐.”
고현우를 보낸 뒤, 홍연화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방향성은 정해졌는데, 그 호의란 걸 어떻게 표해야 하지?
‘변화, 호의, 반응, 변화, 호의, 반응…….’
홍연화가 꼬리 무는 강아지처럼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그 모습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으나 홍연화는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을 그러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쿠키?’
번화가 제과점에 갔을 때, 서예인이 신상품 쿠키 세트를 포장했었다.
그러면서 서예인과 김호가 한마디씩 했는데,
– 연구용.
– 가끔 나 구워 주거든. 맛있어.
‘쿠키 정도라면…….’
적당히 호의를 표하기엔 제격 아닐까.
서예인도 자주 구워 주는 듯하니, 자신이 한 번 구워 준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을 터였다.
물론 대놓고 ‘너 주려고 구웠어!’라고 하기보단 자연스러운 구실을 찾아야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홍연화는 나름 요리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레시피를 곧잘 따라가는 편이라 백에 구십구는 성공이었던 것이다.
홍연화는 점점 마음이 기우는 것을 느꼈다.
‘……한번 해 봐?’
주말 동안 연습하고 월요일쯤에?
홍예화가 알았다면 뒷목을 짚고 쓰러질 일이었다.
* * *
사파이어 신전 공략을 빠르게 마쳤기에, 지하층에 한 번 더 내려가려면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히든 피스보다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한 상황.
기말고사가 코앞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은 공략전 주간은 트레이닝 센터에서 각종 마법들을 연마하며 보냈다.
월요일.
평소와 마찬가지로, 등교 전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려는데 메시지가 날아왔다.
[홍연화:(슬금슬금 강아지 이모티콘)] [홍연화:(꼬리 흔드는 강아지 이모티콘)] [김 호:?] [김 호:(꼬리 흔드는 강아지 이모티콘)]얘가 웬일로 아침부터 연락이지.
알고 보니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홍연화:밥 먹었어?] [김 호:이제 가려고] [김 호:같이 ㄱ?] [홍연화:응] [김 호:학생 식당ㄱㄱ]그렇게 메시지를 보낸 다음 학생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에서 얼마간 기다리고 있으니 서예인이 먼저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힘없이 손을 슬슬 흔들길래, 나도 마주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배터리 몇 퍼센트?”
“35%…….”
“어제 뭐 했는데.”
“잤어…….”
일요일이라 거의 하루 종일 잤을 텐데 35%라니.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수준이다.
그러나 서예인은 방치형 나무늘보.
자면서 마나 연공이 된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는 매우 너그러운 마음이 되었다.
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안 돼?”
– 도리도리,
서예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가 안 되는가 하면 바로 상자깡.
B랭크 혼돈 상자를 열어 달라고 가져갔는데, 지난 주부터 계속 저런 반응이다.
서예인이 힘 빠진 어조로 말했다.
“안 되는 날…….”
“그러냐.”
운 없는 날도 있나 보군.
복덩이 행운이 충전식에 가깝게 작용하는 건 확인했는데, 그렇다고 아무 때나 원하면 발동되는 것도 아닌가 보다.
‘급할 건 없지.’
당장 랜덤박스 내용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뭐가 나올지도 모르고.
여러모로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
이윽고 먼 저편에 붉은 머리가 눈에 띄었다.
허공에 손을 크게 한 번 흔들자 홍연화가 쪼르르 빠르게 다가왔다.
“아, 안녕…….”
“안녕. 밥 먹자.”
아침 메뉴는 간단한 샐러드와 스크램블드에그, 베이컨, 미니 소시지 등.
적당히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는데, 홍연화가 인벤토리에서 주섬주섬 작은 종이봉투를 꺼내 들었다.
안에는 알록달록 다양한 색 쿠키들이 들어 있다.
“갑자기 생각나서 만들어 봤다가……. 좀 남았거든……? 괜찮으면…….”
“그래? 고맙다.”
우선 생김새는 만점.
동글동글하고 귀엽게 잘 만들었다.
색깔이 다른 건 염료를 썼다기보단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간 탓이겠지.
“…….”
호기심이 동했는지 서예인이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고, 홍연화는 너도 먹어 보라는 투로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이내 서예인이 빨간 쿠키를, 내가 초록 쿠키를 집었다.
나는 쿠키를 가까이서 이모저모 살피며 생각했다.
‘녹차 맛인가?’
녹차야 별의별 디저트에 다 들어가니 이상할 건 없었다.
당장 녹차 맛 케이크도 있는데 쿠키가 대수일까.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초록색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안면을 딱딱하게 굳혔다.
‘아닌데, 녹차.’
혀끝에서부터 알싸한 향이 시작되어 코까지 뻥 뚫리는 느낌이다.
어쩐지 익숙한 맛 같기도 하다.
하나 확실한 건 녹차는 절대 아니라는 거다.
“…….”
한편 홍연화는 잔뜩 긴장한 채 내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만들다 남았다면서 저렇게 긴장할 필요가 있나 싶다.
나는 감상을 들려주기 전에 물었다.
“이거 무슨 맛이야?”
“으, 응? 그게, 와사비…….”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홍연화라 쿠키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잠깐만.’
다음 순간 나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탓이다.
나는 서예인이 조금씩 갉아먹는 빨간색 쿠키를 가리켰다.
“저건?”
“인페르노 페퍼……?”
“이런.”
황급히 쿠키를 낚아챘으나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서예인의 회색빛 동공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 ……!”
“빨리 물 마셔, 아니 우유.”
* * *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홍연화는 어쩔 줄 몰라하며 연신 사과를 건넸다.
“미안, 진짜 미안.”
“…….”
그러면서 한 걸음 다가가자 서예인이 두 걸음 물러났다.
홍연화가 또 한 걸음 다가가자 서예인이 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더 가까이 오면 후려치겠다는 뜻.
아주 단단히 미움을 산 모양이다.
“암살 안 돼.”
“아니야, 진짜 몰랐어…….”
홍연화가 울상을 지었다.
내심 억울하기도 할 거다.
설마하니 서예인이 매운 걸 요만큼도 못 먹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
번화가 제과점에서, 서예인이 헬파이어 그라탕에 관심을 보였을 때는 내가 중간에서 끊었었다.
다만 헬파이어는 나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거워하는 맛이라, 그것만 보고 매운맛 내성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홍연화 입장에서는 와사비나 인페르노 페퍼는 매운 축에도 못 껴서, 가벼운 마음으로 쿠키를 구워온 모양이다.
아마 서예인도 어느 정도는 이 점을 짐작하고 있겠지만, 인페르노 쿠키의 맛이 너무나 강렬했을 거다.
둘 사이가 예전으로 돌아오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홍연화가 나한테도 사과를 건넸다.
“미안…….”
“나한테는 왜?”
“맛…… 없지 않아?”
“아니. 먹을 만한데?”
실제로 나는 매콤 쿠키를 계속 꺼내 먹는 중이었다.
벌써 세 개째.
쿠키는 단맛이라는 고정 관념 때문에 처음에만 놀랐지, 먹다 보니 이것도 꽤 괜찮다.
물론 나는 막입이라 아무거나 잘 주워 먹는 것도 사실이다.
“……!”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홍연화는 감동해서 조금 눈물을 글썽거렸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