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혜성 신도시 (2)
기본적으로 [군주]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을 만족해야 얻을 수 있는 특성이다.
‘나는 특이 케이스고.’
환생 퀘스트 특전을 통해 원래 보유했던 걸 ‘돌려받은’ 거지, 처음 얻을 때는 나도 고생깨나 했었다.
그 까다로운 습득 조건 중 하나를 꼽자면,
‘집단을 이끄는 것.’
거기에 집단의 규모, 무력 역시 일정 기준선을 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혜성그룹 회장은 조건을 차고 넘치게 충족하는 셈이라, 게임으로서 플레이했을 때도 여러 회장들이 군주의 자격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회장의 눈빛도 강렬해졌는데, 내가 군주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 듯했다.
나는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김호라고 합니다.”
“잘 왔네. 이야기로 전해 들었을 때는 과장된 면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그렇지도 않군.”
“과찬이십니다.”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몇 마디 주고받다가, 인벤토리에서 목함을 꺼냈다.
회장이 그것을 건네받아 마력을 불어넣자, 각인되어 있던 술식들이 일제히 푸른 빛을 뿜어냈다.
– 파아앗!
다음 순간 굳게 밀봉되어 있던 목함이 열리고, 그 안에는 USB처럼 보이는 작은 장치와 돌돌 말린 종이 쪼가리가 들어 있었다.
의외로 회장이 주목하는 건 종이 쪼가리였는데, 교장 선생님이 보낸 편지로 짐작되었다.
“…….”
회장은 한동안 그것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만간 다시 자리를 마련하겠네. 그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이건 가져가게. 자네를 위한 물건인 듯하군.”
그러면서 회장이 목함을 돌려주었다.
속은 비었어도 겉면에 새겨진 술식들은 여전히 제 성능을 발휘할 터였다.
‘보험은 많을수록 좋지.’
학교 밖인 만큼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나는 목함을 인벤토리에 잘 보관했다.
이어서 회장의 시선이 서예인에게 옮겨 가더니, 얼굴이 활짝 펴졌다.
“예인이 왔구나!”
나를 대할 때와는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
혜성그룹씩이나 되는 거대 기업의 회장도 어쩔 수 없는 손녀 바보인 것이다.
두 손을 조금 앞으로 뻗은 채 서예인에게 다가가는데, 주책맞게도 번쩍 들어 올려서 비행기를 태우려는 듯했다.
“…….”
그러나 서예인은 슬금슬금 물러나더니 내 등 뒤로 숨어 버렸다.
그 모습에 회장은 적잖이 충격받은 듯, 제자리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
반응을 보아하니 여태까지는 곧잘 비행기를 태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몇 달 보내고 웬 남자랑 같이 돌아왔다.
그리고 비행기를 거부하며 남자 뒤에 숨는다?
‘충격받으실 만도 하네.’
한편 안정미는 어떻게 하고 있나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기척을 죽인 채 한발 물러난 상태.
회장실 가구들과 완전한 합일(合一)을 이루고 있어서 하마터면 못 찾을 뻔했다.
‘역시 집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속으로 감탄하며 나는 다시 회장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충격 대신 쓸쓸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우리 예인이도 다 컸구나……. 세월이 참 빠르기는 빨라…….”
서예인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쿠키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할아버지 선물.”
“……!”
그러자 언제 쓸쓸했냐는 듯 회장의 얼굴이 다시 활짝 펴졌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놈의 손녀가 뭐길래 영감님을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운단 말인가.
다행히 회장은 금세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이쯤에서 정리하고 업무를 마저 해야겠다고 판단한 듯했다.
“안 팀장.”
“예, 회장님.”
“이후는 자네가 수고해 주게.”
“알겠습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는 안정미.
팀장이지만 집사도 겸하고 있으니, 방학 동안 나와 서예인의 생활 전반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떠나는 우리의 등 뒤로 쿠키 봉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정미와 내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으나, 영감님의 감동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입은 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안정미가 말없이 1층 버튼을 연타했고,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간의 부유감을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과연 인페르노맛 쿠키를 감당하실 수 있을까?’
* * *
다음 행선지는 예상외로 서예인이 정했다.
안정미를 쳐다보며 이렇게 물은 것이다.
“아빠는?”
하기야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으면 가족부터 보러 가는 게 맞지.
나도 온 김에 인사 한번 드리고.
안정미가 서예인의 질문에 답했다.
“늘 그렇듯 공방에 계십니다.”
“갈래.”
“바로 모시겠습니다.”
이동하는 도중, 서예인에게 집안 내력을 간략하게 전해 들었다.
물론 단답식이라 안정미가 조금 살을 붙여야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 쪽은 그룹 운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마법공학 분야에 종사하며 각종 아이템들을 개발한단다.
어머니 쪽은 대륙 각지를 돌아다니느라 지금은 자리를 비운 상태라고.
‘이번에는 한 분만 뵙겠네.’
얘네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 은근히 호기심이 동했는데, 이번에는 궁금증을 절반만 해소하게 될 것 같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기겠지.
방학은 앞으로도 많으니까.
곧 우리는 공방과 연구소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세련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제법 경비가 삼엄했으나, 안정미가 사원증을 보이자 곧바로 통과시켜 주었다.
미래전략실 팀장이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가면서 미리 기별을 넣은 까닭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층을 이동하고, 복도를 조금 걸으니 큼지막한 방 하나가 나왔다.
반쯤 열린 문을 통해 안쪽을 기웃거려 보니, 바닥이며 탁자가 온갖 마법 공학 잡동사니로 어질러져 있는 상태.
다만 잡동사니들마저 수준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아무거나 집어서 손봐도 B랭크는 그냥 나오겠네.’
아마 진심으로 작업한 결과물에는 더 높은 랭크가 붙겠지.
방 한가운데에는 용접 헬멧 비슷한 것을 뒤집어쓴 사내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두 손이 온통 푸르게 물든 것으로 보아, 한창 마법 공학을 시전 중인 듯했다.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해서 안정미가 최대한 힘을 빼서 노크했다.
– 똑똑.
“……?”
들릴 듯 말듯 작게 노크했음에도, 즉시 마법 공학 시전이 멎었다.
그리고 사내가 이쪽을 돌아보더니 용접 헬멧을 벗어서 옆에 두었다.
‘확실히 닮았네.’
회색 머리카락에 회색 눈동자는 기본이고, 전반적으로 무심하며 조금은 멍해 보이는 분위기.
나이만 조금 들었지 거의 빼다 박은 수준이다.
서예인이 터벅터벅 그에게 다가갔다.
“아빠.”
“딸.”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예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할아버지보다는 아버지랑 조금 더 가까운가 보군.
다음으로 그의 시선이 나와 안정미에게 옮겨 왔고, 안정미가 나를 소개했다.
“아가씨의 학우분 되십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호입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사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서예인을 가리켰다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님.”
흐름상 아버님이라고 부르라는 뜻이겠지?
이분도 긴 문장을 단어 하나로 압축하는 경향이 있으시군.
이어서 그가 오른손을 쓱 앞으로 내밀었고, 내가 그것을 잡자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었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 선뜻 악수까지 권하셨으니, 첫 단추는 그럭저럭 잘 끼운 것 같다.
곧이어 아버님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내 신발을 쳐다보았다.
“그거, 내가 만들었다.”
학기 초 서예인에게 마력탄 특강을 해 주고 선물로 받은 운동화, 구름밟이.
레인보우 갑두의 비늘을 써서 한차례 업그레이드까지 했다.
[구름밟이(B+)]▷이동 계열 스킬에 보너스
▷관성 무시(C)
▷내구도 자동 회복
▷다색 방어(C)
▷업그레이드 가능
“너무 잘 쓰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런가.”
아버님이 덤덤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1학기 동안 서예인을 상대로 표정 읽기를 단련한 나였기에, 그의 감정도 어렵지 않게 읽어 낼 수 있었다.
‘뿌듯해하고 있어.’
그래서인지 그는 서예인과 나를 보며 말했다.
“업그레이드해 준다.”
마지막 업그레이드 슬롯 하나를 채워 주겠다는 뜻.
그리고 신발을 제작한 실력으로 보아 상당히 유용한 옵션이 붙을 가능성이 컸다.
해서 나는 서예인과 함께 구름밟이 세트를 맡겼고, 서 씨네 아버님이 말했다.
“금방 끝나.”
“예, 그럼 완성하셨을 때 찾으러 오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자주 와라.”
“……예, 자주 오겠습니다.”
내가 마음에 드셨나?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봤다.
인사도 드렸으니 더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쯤에서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서예인은 아직 용건이 끝나지 않은 듯했다.
“아빠.”
“딸.”
“업그레이드.”
“뭐.”
인벤토리를 뒤적거리는 서예인.
곧이어 나온 것은 볼품없이 찌그러진 양철 냄비였다.
나는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기어이 저걸 꺼냈구나.’
기말고사 당시, 사공욱 패거리와의 근접전에서 후라이팬이 희생되었는데, 거기서 느낀 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호김호냄비도 그렇게 허무하게 파괴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
그 해결책으로 떠올린 게 바로 업그레이드.
검기나 강기에도 멀쩡할 정도의 내구성을 갖추려는 것이다.
“…….”
아버님이 냄비를 말없이 내려다보더니, 손가락을 들어 찌그러진 부분을 가리켰다.
이건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묻는 듯했다.
그에 서예인도 손가락을 들더니 나를 가리켰다.
아버님이 냄비와 나를 번갈아 본 다음, 서예인에게 물었다.
“때렸어?”
“응.”
“몇 번.”
“김호김호.”
두 번이라는 뜻이군.
왜 때렸는지는 묻지 않는 건가.
어쩌면 때릴 만해서 때렸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도 약간은 그런 부분이 있었고.
이내 아버님은 냄비를 이모저모 뜯어보기 시작했는데, 특별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근데 그냥 냄비지.’
뿅망치 게임을 위해 주방에서 빌려 왔던 냄비.
냉정하게 등급을 매기자면 F급조차 안 되는 잡템이다.
애초에 슬롯이 존재하지 않으니 ‘업그레이드’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그래도 굳이, 꼭 살리고자 한다면 방법은 있었다.
서 씨네 아버님 역시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듯했다.
“새로 만든다.”
김호김호냄비를 토대로 아예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
그리고 찌그러진 부분을 다시 가리키며 물었으나,
“펴?”
“안 돼.”
서예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두 부녀가 얼마간 눈빛을 교환하다가, 아버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피고 만든다.”
“응.”
서예인은 김호김호냄비를 맡긴 뒤, 아빠 선물이라며 쿠키 봉투도 하나 남겼다.
그리고 용건은 여기까지가 끝이라는 듯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 같이 연구실을 떠나 걸음을 옮기는 한편, 나는 다소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저걸로 대체 뭘 만들려고…….’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