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공멸안 (2)
다 같이 수련장을 나서자, 언제 불렀는지 고급 세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건 아까 봤던 쿠키 아저씨.
‘오늘만 세 번째네.’
어쩐지 앞으로도 종종 보게 될 거란 느낌이 든다.
곧 세단은 미끄러지듯 나아가더니, 얼마 가지 않아 우리를 내려 주었다.
눈앞에는 호텔을 연상시키는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언뜻 창문을 통해 보이는 부분만 해도 으리으리했다.
아마 안에서 보면 그보다 더하겠지.
잠시 구경하다가 나는 서예인에게 물었다.
“자네 집은 어딘가?”
“저기.”
역시나 눈앞의 빌딩을 가리키는 서예인.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저기 어디? 몇 층?”
“……?”
서예인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양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빌딩을 가리켰다.
“우리 집.”
“저게 다 너네 집이라고?”
“응.”
방이나 층이 아니라 건물 단위였구나.
역시 혜성그룹 영애쯤 되니 스케일이 다르군.
심지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예인의 손가락이 그 옆 빌딩을 향했다.
“우리 집.”
“저것도?”
그리고 그 옆에도, 그 옆에도…….
나무늘보에게는 ‘우리 집’이 아주 많은 모양이다.
“그래도 자는 데는 정해져 있을 거 아냐.”
– 도리도리,
서예인이 또 고개를 가로젓자, 안정미가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어 설명을 보충했다.
“매일 다른 방에서 주무시곤 하십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니요, 그날그날 내키는 곳으로 가십니다.”
“그렇군요.”
매일 이 방 저 방으로 몸만 옮겨 다니고, 안정미를 비롯한 집사들이 자잘한 것을 도맡아 처리하는 식.
사치스럽지만 저 정도 재력이면 안 될 이유도 없었다.
나는 또 궁금한 것이 생겨서 물었다.
“중요한 물건들도 좀 있을 텐데, 그건 어쩌고?”
“…….”
그러자 서예인이 한쪽 손을 슬며시 들더니, 손목에 채워진 뭉게구름 팔찌를 보여 주었다.
다음으로 호랑이 인형이 인벤토리에서 머리만 살짝 내밀었다가 도로 들어간다.
아마 김호김호냄비도 포함이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아예 들고 다닌다고.’
충분히 납득이 가는 답변이라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을 따라 내부로 들어섰다.
건물 생김새를 보고 내부는 호텔처럼 생겼으리라 짐작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짐작은 빗나갔다.
‘호텔이 아니라 궁전이었네.’
사람 한 명이 지내기에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방.
용살학원 기숙사가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서예인은 이런 궁전 같은 방도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게 방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살피는가 싶더니, 눈에 잘 띄는 위치에 호랑이 인형을 전시했다.
다른 것보다 저게 최우선인가 보군.
어쨌든 이만하면 구경은 충분히 했다 싶어서, 나는 안정미에게 물었다.
“멋지네요. 제 방은 어디죠?”
“김호 님 방도 비슷할 겁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막 방을 나서려던 찰나, 서예인이 슬며시 내 팔을 붙잡았다.
“여기.”
“?”
“우리 방.”
안정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아가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김호베개.”
“……?”
“잠 잘 와.”
안정미가 더욱 미간을 좁히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호 님,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단답늘보에게 설명을 맡겼다간 오해만 더 쌓일 테니까.
나는 김호베개와 관련되어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늘어놓았다.
단순히 붙어서 잔 게 전부라는 것도 분명하게 밝혔고.
이야기를 다 듣고 안정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일은 아닌 것 같군요. 그래도 붙어서 주무시는 건 자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적어도 여기 머무시는 동안 만이라도요.”
“자중 안 돼.”
그러나 서예인은 내 팔을 놓기는커녕 더욱 강하게 붙잡았다.
난처해진 안정미가 조곤조곤 타일렀다.
“아가씨, 혜성그룹의 일원으로서 조금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실 줄도 아셔야 합니다. 매일 김호 님과 한방에서 잔다는 소문이 퍼져서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몰라.”
그럼에도 서예인은 막무가내.
소문이 나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는 투였다.
두 사람이 계속 대립했다.
“아가씨.”
“없으면 못 자.”
“거짓말 마십시오. 잘 주무시는 거 다 압니다.”
“없으면 밤새.”
“……!”
이 말은 예상 밖이었는지 안정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인간 나무늘보 입에서 ‘밤샌다’는 말이 나왔다고?
그 정도로 김호베개가 중요하다고?
물론 내가 보기에 저건 너무나도 뻔한 블러핑이었다.
막상 밤샘 투쟁에 들어가면 길어야 20분 버티다가 잠들겠지.
그리고 내가 없으면 못 잘 정도라면, 내가 떠난 뒤 나머지 여름방학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안정미 역시 바보가 아니라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듯했다.
그러나 서예인이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우는 데에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조금씩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김호 님께도 부담되는 일 아닙니까.”
“부담 아니야.”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두 사람.
누구 말이 맞는지 말해 보라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어디까지나 서예인 편이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한두 번 이러는 것도 아니라서요.”
“……그렇군요.”
“그래도 여기서는 조건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김호베개는 기간제 아이템.
학기 중에는 고작 며칠 쓰는 대가로 열심히 수련을 시키곤 했다.
하물며 지금은 앞으로 며칠이 아니라, 한 달간 같이 자느냐 마느냐가 걸려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어려운 건 아니고, 수련 매일매일 열심히 하기?”
“확인.”
“나 가고 멘토링도 열심히 받기?”
“…….”
그 말에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서예인.
내가 가자마자 풀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시선을 맞추며 재차 물었다.
“열심히 받을 거죠? 멘토링.”
“……확인.”
“그리고, 자는 동안 마나 연공도 계속 돌리고.”
서예인은 마력 제어가 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서, 자는 동안에도 마나 연공이 가능할 정도다.
일명 방치형 나무늘보 모드.
다만 이 모드는 본인에게 최소한의 의지가 있어야 발동하기에, 이렇게 미리 언질을 받아 두는 것이다.
서예인은 이번에도 다소 안 내키는 눈치였으나,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협상을 끝내고 안정미를 보니, 이 정도면 그나마 낫겠다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난처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김호 님께서 보여 주신 모습이 있으니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에 대해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네, 이해합니다.”
안정미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굳이 꼽자면 직업으로 극한직업 집사를 선택했다는 죄 정도겠지.
서 씨네 아버님과 회장님은 서예인의 보호자이며, 그룹 내에서의 영향력은 말할 필요도 없이 훨씬 크다.
따라서 안정미의 입을 막는 건 아예 불가능하고, 김호베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보고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지, 아니면 노발대발해서 찾아올지.
* * *
그날 밤은 김호베개 노릇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일어나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운 뒤 곧바로 대련을 시작했다.
– 투두두두!
마력총을 연사하는 서예인과 그걸 회피하며 대응하는 나.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1분 쿨타임이 돌 때마다 쉴 새 없이 [공멸안]을 시전한다.
복덩이 운은 여전한지 오늘도 열에 아홉은 중독이 걸리고 무효화되었다.
그리고 열에 한 번쯤은 풍화나 빙결에 걸렸지만,
– 파아앗!
서예인의 몸이 빛무리에 휩싸이더니, 발목을 뒤덮던 얼음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새로 익힌 디버프 해제 스킬이었다.
[정화(F)]▷일정 확률로 상태이상을 해제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3분
여기서 ‘일정 확률’이란 정화와 디버프의 랭크 차이에 따라, 어떤 디버프가 몇 개 중첩되었는가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가령 F급 정화로 F급 빙결을 100% 해제할 수 있다면, E급 빙결은 80% 확률로 해제된다.
풍화는 희소한 디버프인 만큼 확률이 살짝 낮게 설정됐을 테고.
2중첩, 3중첩이라면 더 낮아진다.
그 확률을 못 뚫어 해제에 실패하면, 3분 쿨타임을 기다렸다가 다시 쓰는 식.
당연한 얘기지만 그동안은 디버프에 영향을 받을 테고.
‘근데 쓰는 게 복덩이잖아.’
33%도 거의 10연속으로 발동하는데, 7, 80%가 대수겠는가.
정화만 썼다 하면 무조건 디버프 해제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좋아.’
디버프 해제가 계속 이루어진다는 건 전투가 끊기지 않는다는 뜻.
랭크작을 끊임없이 이어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또한 대련 중에 공멸안만 쓰는 것도 아니었다.
서예인은 충격탄은 물론 깃털걸음과 사출 등의 각종 총사 스킬들, 나는 나선폭발 하위 3스킬을 섞어 가며 랭크작을 계속했다.
– 휘잉-!
물리력이 담긴 바람이 불어갔으나, 서예인은 깃털걸음을 밟으며 그 흐름을 타고 움직였다.
움직임이 자연스러웠으며 총구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 투두두두!
* * *
그렇게 한참 대련을 하고, 우리는 점심 겸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와중 안정미가 넌지시 한마디 건넸다.
서 씨네 아버님이 보잔다고.
‘역시 보고가 들어갔구만.’
언젠가 한 번은 부딪쳐야 하는 일이라, 우리는 다시 공방을 찾았다.
서 씨네 아버님은 어제 만났던 지저분한 방이 아니라, 나름 깨끗하게 정돈된 회의실 같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걸까.
“안녕하십니까.”
나는 안으로 들어서는 동시에 꾸벅 묵례했다.
그는 나와 서예인을 차례차례 눈에 담더니,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앉아라.”
이내 우리는 시키는 대로 테이블에 둘러앉았고, 안정미는 벽과 하나가 된 채 존재감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쪽을 보는 눈빛에서 긴장감이 엿보였다.
곧 주섬주섬 인벤토리를 뒤지는 아버님.
그렇게 꺼낸 것은 예상과는 달리, 온 가족이 함께 플레이하는 미니게임이었다.
“놀자.”
이제 보니 뭘 따지거나 캐물으려는 게 아니라, 단순히 심심해서 부른 모양이다.
어쩌면 김호베개 건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관심은 있지만 더 지켜보려는 심산이거나.
시간은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았으니 말이다.
“……!”
서예인이야 애초부터 별걱정이 없는 태도였으며, 지금은 모든 관심이 미니게임에 쏠렸는지 두 눈을 호기심으로 빛내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건 부녀가 닮았군.
김호베개 문제가 흐지부지된 느낌이 강했으나,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어 보였다.
‘원하는 대로 해 드려야지.’
나는 미니게임 대마왕으로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상대가 아버님이라도 접대 같은 단어는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서 씨 부녀를 인정사정없이 박살 내 버렸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