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고행늘보
다음 날 아침.
나는 진작 잠에서 깨어나 시간을 재고 있었다.
‘슬슬 9시간이네.’
낮잠까지 합치면 거의 다 됐다.
9시간을 초과하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페널티가 부여되겠지.
깨워봤자 안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만, 일단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서예인의 어깨를 약하게 흔들어 본다.
“게으른 나무늘보야, 아침이 밝았단다.”
“안 게을러…….”
“나무늘보야, 어서 일어나렴.”
“1시간…….”
무려 1시간 연장을 요구하며, 서예인이 내 허리를 세게 끌어안았다.
요즘 들어 잘 때 나를 끌어안는 버릇이 생겼는데,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안 떨어지려고.’
김호베개와 떨어지면 잠이 달아난다는 사실을 학습했기에, 안전장치를 걸어 두는 것이다.
태풍에도 굳세게 나무를 붙잡고 버티는 나무늘보처럼 말이다.
‘마음 같아선 그냥 더 재우고 싶은데.’
아쉽게도 지금은 고행 퀘스트가 부여된 상태.
해서 계속 말을 걸었다.
“지금 일어나는 게 좋은 선택 아닐까요?”
“인간은…… 어리석다…….”
“그 말은 옳다. 그래도 일어나자, 어리석은 늘보야.”
“어리석지…… 않다…….”
“이젠 그냥 아무 말이나 막 하는구만.”
얼마간 더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결국 서예인의 수면 시간이 9시간을 초과했다.
그리고 허공에 알림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목표1:근접전 숙련도 달성(12/100%)
▷목표1:근접전 숙련도 달성(11/100%)
“저게 떨어진다고.”
어쩐지 예감이 안 좋더라니, 역시나 숙련도를 건드린다.
나는 서예인의 볼을 콕콕 찔렀다.
“서 씨, 큰일 났어. 일어나 봐.”
“무슨 일…….”
▷근접전 숙련도(10/100%)
▷근접전 숙련도(9/100%)
“계속 떨어져. 완전 위기야.”
“위기는…… 기회다…….”
그럼에도 서예인은 대현자 같은 말만 중얼거릴 뿐, 도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근접전 숙련도(7/100%)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숙련도는 5%가 하락한 이후로 더는 변화가 없었다.
어제 온종일 수련한 결과가 12%였다는 걸 생각하면 5%도 뼈아프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남는 장사라고 봐야지.’
어쨌든 더 재울 수는 있을 것 같고, 숙련도는 다시 올리면 그만이니까.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퀘스트도 클리어하지 않을까?
그러나…….
고행 퀘스트는 이름에 걸맞게 지독했다.
숙련도가 깎이는 건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곧 방 안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여름 더위를 에어컨이 적당히 식혀 주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냉동실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한기가 느껴진다.
– 쩌저적,
이어서 어디선가 얼어붙는 소리가 나길래 시선을 돌려 보니,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병들이 얼음덩이로 변한 상태.
‘대체 얼마나 추워진 거야.’
이 지경이 되자 서예인도 잠이 달아나 버린 듯했다.
약하게 몸을 떨더니 반쯤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 본다.
“너냐……?”
“저 아닙니다.”
또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었기에 분명하게 밝혔다.
내 잘못이라곤 열심히 깨운 것밖에 없단 말이야.
그러자 서예인은 범인을 찾으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방이 거의 얼어붙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대도, 간식거리도, 호랑이 인형도.
그리고 뒤늦게 알림 메시지를 확인했다.
▷근접전 숙련도(7/100%)
회색빛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
“조금씩 깎이더라.”
“사기당했어…….”
서예인은 최악의 형태로 하루를 시작했다.
* * *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늘상 그렇듯 서예인과 함께 훈련실로 향했다.
이동하는 도중에도 서예인은 몇 번이나 꾸벅꾸벅 졸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변 온도가 급격히 하락하며 잠을 깨워 댔다.
워낙 차가운 걸 싫어해서 효과는 좋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엄청나다.
도착할 때쯤 되자 서예인은 더욱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다.
만나자마자 명왕룡이 물어볼 정도.
“조카야,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대부…….”
“왜 그러느냐.”
서예인이 퀘스트 창을 공유하며 말했다.
“취소해 줘…….”
“군주 꼬맹이가 내준 퀘스트더냐?”
“응…….”
명왕룡이 얼마간 퀘스트 창을 응시하며 눈매를 좁혔다.
그러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척이나 강력한 강제력이 작용하고 있구나. 이건 나도 손쓸 수 없다. 회장 녀석도 마찬가지일 테니 공연히 귀찮게 굴지 말거라.”
“그럴 수가…….”
“신중하게 받지 그랬느냐.”
“사기당했어.”
또 불공정 계약을 들먹이는 서예인.
명왕룡이 흘긋 나를 쳐다보곤 말을 이었다.
“인간들이란 끊임없이 속고 속이는 존재라지.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한시라도 빨리 끝내는 수밖에.”
“응…….”
“그래도 이겨 내면 실력은 제법 늘겠구나. 힘내라, 조카야.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이내 명왕룡은 서예인과의 대화를 마치고 [시간 분담] 랭크작을 위해 순간이동 포탈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시계 몇 개를 뚝딱뚝딱 만들고 나오자 곧장 공방으로 떠나 버렸다.
이후에는 어제와 같은 근접전 대련이 이어졌다.
쌍권총을 난사하는 서예인과 요리조리 피하며 뿅망치를 꽂아 넣는 나.
– 뾱! 뾱뾱!
“…….”
한 대 맞을 때마다 서예인의 의욕이 눈에 띄게 뚝뚝 떨어졌다.
시작할 때부터 거의 바닥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바닥을 뚫고 내려가 지하실 공사를 하는 중이다.
이내 서예인이 쌍권총을 축 아래로 늘어뜨렸다.
“…….”
“좀 쉴까?”
“집에 갈래…….”
흐느적흐느적 걸음을 옮기려는 서예인.
혹시 깜박했나 싶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정 가고 싶으면 가도 되는데, 잠은 못 잘걸.”
어딜 가든 눈만 붙였다 하면 주위가 얼어붙을 테니, 쉬어도 뜬눈으로 쉬어야 할 거다.
그게 정말로 쉬는 건지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고.
서예인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진퇴양난…….”
“어려운 말 쓰네. 아무튼.”
“……?”
“딱 며칠만 열심히 달려서 끝내 버립시다. 오래 끌수록 힘들어져.”
첫날은 어느 정도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숙련도가 12%에서 그쳤다.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는 둘째 날부터는 더 많이 오르는 게 정상이지만, 이 페이스라면 10%도 안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걸 또 수면 9시간 초과로 깎아먹고, 또 10% 남짓 올리고를 반복하면 언제 숙련도를 다 채울지 기약이 없다.
그럴 바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숙련도를 쌓고, 며칠 만에 끝내 버리는 게 나은 선택 아닐까.
물론 서예인도 머리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거다.
몸이 통제를 잃고 흐느적거리고 있어서 그렇지.
이럴 때는 나라도 기운차게 굴 필요가 있다.
“자, 따라해 보세요. 할 수 있다!”
“……해치운다.”
서예인이 다시 쌍권총을 그러쥐었다.
* * *
▷근접전 숙련도(28/100%)
‘역시 하면 되는구만.’
반쯤 억지로 시켰는데도 21%.
새삼 서예인의 엄청난 재능을 실감한다.
그러나 어찌 됐든 반쯤 억지로 시킨 거라, 결과적으로 서예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지금도 훈련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고.
나는 다가가서 넌지시 물었다.
“배터리 몇 퍼센트?”
“그런 건……. 없다…….”
배터리가 방전되다 못해 퍼져 버렸구만.
나는 은근한 말투로 계속 말했다.
“이제 자도 될 것 같은데.”
“……정말?”
“어. 근데 들어가서 자자.”
그러자 서예인이 엎어진 상태로 슬며시 손만 들어 올렸다.
붙잡고 일으켜 세웠으나 여전히 이쪽으로 손을 뻗은 상태.
“이것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업어 줘.”
“어휴, 그럽시다.”
참 손이 많이 가는구만.
나는 서예인을 업고 방으로 이동했다.
서예인은 가는 도중 잠들어 버렸다.
* * *
다음날 오전.
또 수면 시간이 9시간을 채워 간다.
조금 있으면 어제처럼 숙련도가 떨어지고, 방 안이 냉동실처럼 꽁꽁 얼어붙겠지.
서예인이 숙련도로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보면 나와 안정미까지 마음이 착잡해진다.
노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왔기에, 그 노력이 일부나마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심정을 더 잘 공감하는 것이다.
또 하나 걱정거리라면,
‘오늘도 5%란 보장이 없지.’
8%가 깎일 수도, 10%일 수도, 아예 초기화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고민 끝에 나는 결정했다.
‘며칠만 나쁜 놈 하자.’
숙련도로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보단 그게 훨씬 나을 것 같다.
나중에 냄비든 후라이팬이든 한 대 맞아 주는 걸로.
이내 나는 서예인에게 칠윈드를 시전했다.
출력은 적당히 조절해서.
– 휘이잉—
난데없이 찬 바람이 불자, 서예인은 약하게 몸을 떨더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장 먼저 숙련도부터 확인했다.
역시 신경 쓰고 있었나 보군.
어제처럼 깎여 있을 줄 알았겠지만,
▷근접전 숙련도(28/100%)
숙련도는 28%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서예인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번에는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얼어붙기는커녕 멀쩡하다.
“……?”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는 서예인.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답했다.
“글쎄, 오늘은 빨리 일어나서 그런가?”
“……더 자도 돼?”
“그럼 진짜로 깎일걸.”
“슬픔…….”
나는 슬픈 나무늘보를 데리고 훈련실로 향했고, 그날치 훈련을 이어 갔다.
▷근접전 숙련도(45/100%)
▷근접전 숙련도(59/100%)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9시간을 채울 때마다 칠윈드로 깨웠고, 숙련도 감소는 피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숙련도 증가폭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2일 차는 21%, 3일 차는 17%, 4일 차는 14%.
‘약발이 슬슬 떨어지는구만.’
이런 작심삼일 늘보 같으니.
또 어떻게 사탕발림을 해야 할까 고민하며, 오늘도 서예인을 데리고 훈련실로 향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명왕룡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조카야, 오래 기다렸다.”
“……?”
곧이어 아공간에서 냄비 하나가 빠져나왔다.
내 머리 모양으로 두 번 찌그러진 익숙한 형태.
기존에는 양철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훨씬 견고한 금속으로 교체되었다.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잡이 부분에 구멍을 뚫고 끈으로 연결해 놓았다.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자 서예인의 얼굴에 드물게도 화색이 돌았다.
“대부 최고…….”
“만드느라 고생했다. 너희 아버지도 고생했으니 나중에 고맙다고 해라.”
“응.”
서예인이 냄비를 소중히 끌어안은 채 여운에 잠겼다.
그러다가 냄비를 이모저모 뜯어보더니 뒤집어서 머리에 써 본다.
그리고 끈을 턱으로 당겨 와 고정한다.
‘투구 겸용으로 만들었구만.’
머리에 쓰고 다니다가 수틀리면 휘두르는 식인가.
한편으로는 성능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도 볼래.”
“여기.”
서예인은 선뜻 아이템 설명을 공유해 주었다.
읽어 내려갈수록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냄비에 뭔 짓을 한 거야.’
[불멸의 김호김호냄비(S)]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