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죽음 (1)
서예인에게 1단계 고행을 부여했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하필 1단계에 수면 제한 조건이 붙어서.’
2단계도 같은 조건이 붙으리란 법은 없지만, 아니리란 법도 없다.
더 가혹해져서 일일 수면이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어들 수도 있고.
그런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서예인 입장에서는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별수 있나.’
일단은 고행 없이 진행하는 수밖에.
다행히도 서예인은 고행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압도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으니, 이대로만 수련을 이어 가도 EX랭크 달성이 가능하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까.’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자발적으로 2단계를 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밀린 잠을 보충하겠다더니, 서예인은 정말로 하루를 내리 잤다.
중간중간 깨서 가벼운 간식거리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랑 얼마간 노닥거리며 소화를 시키다가 다시 픽 쓰러져서 자는 식.
내내 김호베개에 딱 달라붙은 채였기에, 나까지 덩달아 쉬어야 했다.
휴식을 취했으면 또 그만큼 수련을 해야 하는 법이라, 며칠간은 원래 루틴으로 돌아갔다.
명왕룡과 시계 만들기, 그리고 서예인과의 대련을 통한 랭크작.
그 결과,
[‘시간 분담’의 랭크가 상승합니다. (D→C)]▷분담 비율:20→20%
▷재사용 대기시간 감소:0→5%
시간 분담의 효율이 급상승하는 C랭크.
작게나마 쿨타임 감소가 붙는 까닭이다.
전체 쿨타임에서 총 25%를 떼 가지만, 20%만큼의 시간만 지나면 다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C랭크가 끝이겠네.’
이제 신도시에서 지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B랭크는 무리고, 명왕룡을 다시 만났을 때 도움을 받거나, 랭크업을 써야 할 듯하다.
그래도 이만하면 엄청난 수확이라 봐야겠지.
희소식은 하나 더 있었다.
[‘트위스터’의 랭크가 상승합니다. (C+→B+)]트위스터 역시 긴 정체 구간을 벗어나 B랭크에 도달한 것이다.
이걸로 나선폭발 3스킬을 완성한 셈이다.
한편 서예인 역시 [사출] B랭크를 달성하며 마력탄의 위력이 한층 증가했다.
‘이제 공격력 하나는 1학년 탑급이라고 봐도 되겠지.’
방어/회피와 유틸리티 보강은 앞으로 차근차근 해 나가는 걸로.
그럼 유망주급과도 충분히 견줘 볼 만하지 않을까.
* * *
다시 며칠을 열심히 수련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고행을 쓰는 대가로 같이 놀러 다니고, 쿠키도 굽기로 했던 것이다.
때문에 지금, 서예인과 나는 주방 한가운데에 서 있다.
안정미의 말에 따르면 신도시에서 나름 유명한 제과점 주방인데, 가끔 서예인이 쿠키를 구울 때마다 비워 준단다.
‘역시 부자들은 사고방식이 달라.’
귀찮게 전용 주방을 만들어서 관리하느니, 잘 관리되고 있는 걸 빌려 버리겠다는 마인드.
내가 보기에도 그게 속 편하기는 하다.
유명 제과점 답게, 주방에는 제과/제빵에 들어가는 온갖 재료들과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찬찬히 재료들을 둘러보며 확인했다.
“매운 건 안 보이네.”
“유감.”
다행히 이번에는 멀쩡한 쿠키를 굽게 될 것 같다.
재료도 많은데 굳이 매운 걸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가볍게 물음을 던졌다.
“같이 만들까, 아니면 각자?”
“……각자?”
서예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답했다.
따라서 첫 쿠키는 각자 만들고 바꿔 먹기로 했다.
믹싱볼을 하나씩 앞에 두고 재료를 넣는다.
그러면서 슬쩍 곁눈질을 해 보니,
‘재료는 멀쩡하게 잘 넣는군.’
이상한 실험은 안 하는 듯하다.
여태까지 구웠던 쿠키들도 맛에는 크게 하자가 없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믹싱볼을 휘휘 젓자 금세 반죽이 만들어졌다.
‘다음은 모양인데.’
또 슬쩍 곁눈질을 하니 서예인이 손수 반죽을 하나하나 빚고 있었다.
알아보기 힘든 기괴한 형태로.
가령 지금 빚고 있는 건,
‘……장수풍뎅이?’
분명 인페르노 맛 매운 쿠키는 그럭저럭 알아볼 만하게 생겼었는데.
맛이 무난해지면 모양에 하자가 생기는 걸까?
‘그러고 보니 전부터 궁금했었지.’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선반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꺼낸 것을 서예인에게 내밀었다.
“우리 문명인답게 도구를 활용해 볼까요?”
“……?”
그것은 바로 쿠키용 모양 틀.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찍기만 하면 모양이 나온다.
모양도 고양이, 하트, 조개, 코끼리 등 다양하고.
그러나 서예인은 물끄러미 모양 틀을 쳐다보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수.”
“모양틀을 쓰면 하수다?”
“응.”
거기에 서예인이 두 손을 내보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수제 쿠키.”
“모양틀을 쓰면 수제가 아니다?”
“응.”
“그렇군.”
수제 쿠키에 대한 기준이 매우 엄격한 모양이다.
‘이러면 나도 모양틀은 못 쓰겠는데.’
쓰면 (서예인 기준) 공산품 쿠키를 구워 주는 셈 아닌가.
손으로 빚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못하는 거 빼곤 다 잘하지.’
능숙하게 반죽들을 빚어 모양을 내자, 지켜보던 서예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
“고수……!”
“실력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강해.”
“패배를 인정합니까?”
“졌어요.”
이때다 싶어서 또 권했으나,
“그럼 모양틀을 써 봅시다.”
“그건 안 돼.”
단호한 태도로 거절하는 서예인.
모양틀과 관련해서는 양보가 없나 보다.
자기주장이 아주 확고하시군.
그러면서 자기 베이킹 트레이를 갖고 가까이 다가온다.
“도움.”
“가르쳐 달라고?”
“일타강사.”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도와줘서 서예인의 미적 감각이 향상된다면, 나중에 쿠키 모양 맞추기 챌린지를 할 일도 줄어들 테니까.
나는 반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잘 보고 따라 해 보세요.”
“네.”
옆에서 차근차근 따라 하면서 저절로 손에 익히라는 의도.
상대방이 초심자라는 점을 감안해서 일부러 간단한 모양을 선택했다.
‘집.’
사각형 건물에 삼각형 지붕, 그리고 굴뚝 하나만 세우면 끝이다.
그런 다음 서예인의 반죽을 확인해 보니,
‘무슨 로켓이 있냐.’
“……?”
서예인도 연신 쿠키(집)과 쿠키(로켓)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본인도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나 보다.
나는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또 따라 해 보세요.”
“네.”
그러나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계속 발생했다.
물고기는 서예인의 손에서 가오리로 재탄생했으며, 참새는 두루미가 되었다.
‘역시 신은 공평하군.’
서예인에게 천재적인 재능을 주었으나 예술적 감각만은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
서예인은 내가 만든 반죽들과 자기가 만든 걸 비교하곤 다소 불만족스러운 기색이 되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제안했다.
“방법을 바꿔 볼까. 반반으로 가자.”
“반반?”
“내가 반 만들면 네가 나머지 반 만드는 거지.”
“확인.”
이내 우리는 쿠키 반죽 하나를 함께 빚어 나갔다.
사실 반반이라고 말은 했지만, 내가 은근슬쩍 선을 넘어가며 교정을 했기에 지분이 80%는 되었다.
그래도 덕분에 제법 그럴싸한 형태의 반죽이 완성되었다.
서예인이 나를 보며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성공……!”
“좋습니다. 이대로만 갑시다.”
반반 반죽이 계속되었다.
* * *
질리도록 쿠키를 굽고 나눠 먹었다.
이걸로 약속 하나는 지켰지만, ‘놀러 가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해서 우리는 제과점을 나서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정확히는 이동하려 했는데,
‘……!’
그때,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오가는 행인들 사이에 서 있는 검은 옷차림의 여성.
관광객인 듯 한가롭게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외견만 보면 문제 될 게 없었지만, 나로서는 더 보이는 게 있었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요즘 이상하게 운이 좋더니.’
길 가다가 저런 걸 마주칠 줄이야.
지금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고, 의미도 없다.
진작에 감지됐을 테니까.
과연 검은 옷차림의 여성은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두 눈에 이채를 머금더니,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
내가 말없이 여성을 응시하고 있으니 서예인도 덩달아 그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눈짓으로 경고를 보냈고, 대기하던 안정미가 빠르게 우리 곁에 자리 잡았다.
일단 대화를 나눌 생각인지, 여성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리고 조곤조곤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부패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위험하다고, 더 크기 전에 싹을 잘라 놔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찾아오신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그녀, 죽음의 마녀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찬찬히 고개를 돌려 신도시를 눈에 담았다.
“그 일에는 별로 관심 없어요. 여기도 분위기나 보러 온 거고요. 그쪽을 마주친 건 순전히 우연이에요.”
“서로에게 볼일이 없다면 평화롭게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마녀의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걷히더니 석상처럼 딱딱하게 변했다.
“……직접 보니까 생각이 조금 바뀌네요. 부패 말대로 위험해 보여요.”
다음 순간, 장내의 모든 것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귓가에 초침 소리가 울려 퍼진다.
– 똑— 딱— 똑— 딱—
‘시간 동결.’
복잡한 캐스팅 없이 곧바로 발현된 걸 보니 아이템의 힘을 빌렸나 보다.
곧이어 죽음의 마녀는 순식간에 내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단거리 공간이동 마법, [블링크]를 쓴 것이다.
“……역시 죽여야겠어.”
그러면서 한 손을 앞으로 뻗어오는데,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온통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모든 게 흑백인 이곳에서도 유독 새까맣다.
‘죽음의 손길.’
접촉하는 상대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공격 스킬.
말이 막대한 피해지, 사실상 즉사기나 마찬가지다.
[시간 동결]로 상대를 무력화하고, [블링크]로 거리를 좁힌 뒤 [죽음의 손길]로 마무리.이 스킬 연계에 대부분은 손도 못 쓰고 목숨을 내 줄 터였다.
물론 나는 대부분이 아니었다.
‘미리미리 얻어 두길 잘했네.’
일전에 명왕룡에게서 [시간 저항]을 복사해 두었으니까.
아니었다면 왜곡을 뺀 다음 복사해야 했겠지.
새까만 손길이 닿으려던 찰나, 내 신형이 흐릿하게 변했다.
– 스르륵…….
유령무영을 시전한 것이다.
그 상태에서 나는 안정미와 서예인의 팔을 붙잡고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
마녀의 손이 허무하게 허공을 휘저었다.
설마 내가 움직일 줄은 몰랐는지 두 눈을 부릅뜬다.
– 똑— 딱— 똑—
뒤이어 시간 동결의 지속시간이 끝났고, 흑백으로 물들었던 장내가 색채를 되찾았다.
갑자기 위치가 바뀌었기에 서예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안정미는 흠칫하며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마녀가 나를 보며 입을 여는 찰나,
“어떻게 시간—”
– 콰앙—!
어디선가 날아든 마력탄이 그녀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