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4
34화 2주 차 공략전 (1)
월요일.
서예인과 아침 식사를 하고 등교하는 길, 뒤통수가 따갑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꼬리가 붙었다.
남학생 하나, 여학생 하나.
몰래몰래 미행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내가 목표라는 티를 팍팍 내며 뒤를 밟는다.
내가 하루아침에 인기남이 됐을 리는 없고, [생명의 큐브] 때문에 찾아온 거겠지.
박나리에게 던져둔 미끼에 슬슬 입질이 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노골적인 태도라니.
에메랄드 마탑이나 대자연 동아리 쪽에 성질 급한 양반이 하나 있나 보다.
‘사람이 일 처리를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대로 등교해도 저쪽에서 손쓸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래 봤자 어차피 벌어질 일이 방과 후로 밀릴 뿐.
이런 건 바로바로 해결하는 편이 깔끔하다.
신경에 거슬리기도 하고.
“서예인, 먼저 가 있어.”
“……?”
“갑자기 볼일이 생겨서.”
서예인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내 뒤쪽을 흘긋 보았다.
두 남녀를 발견하곤 다시 나를 빤히 마주 본다.
‘쟤들이 그 볼일이야?’ 하고 묻는 듯하다.
“뭐 문제라도 생기겠냐. 금방 치우고 갈게.”
“……응.”
서예인이 먼저 교실로 가도록 떨어졌다.
그리고 인적이 뜸한 골목으로 향했다.
그때쯤에는 두 명이었던 기척 중 하나가 사라졌는데, 아마 앞질러 갔겠지 싶다.
나머지 하나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내 뒤를 따라붙는다.
골목을 통과해서 벗어나기 직전,
남학생 하나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여학생도 내 뒤에서 퇴로를 차단한다.
앞뒤로 포위된 상황.
“제 발로 이런 곳으로 와 주다니, 수고를 덜었군.”
남학생이 있는 대로 폼을 잡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여학생은 짧게 자기 이름만.
“에메랄드 마탑의 곽지철이다.”
“정수지야.”
“아, 예. 그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무슨 일로?”
내 물음에 곽지철이 거만한 어조로 답했다.
“부장님이 보자고 하신다. 부실까지 따라와라.”
“싫은데?”
“?”
곽지철은 내가 이런 대답을 할 줄은 몰랐는지 잠시 눈을 껌벅거렸다.
“……뭐?”
“너네 부장이 오라면 내가 가야 돼?”
“이해가 안 됐나? 우리 에메랄드 마탑이라고.”
“그리고 나는 에메랄드 마탑이 아니지. 나한테 명령하지 마라. 뒤질라고.”
“……!”
곽지철은 엄청난 폭언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입을 천천히 벌렸다.
곧 그것은 고스란히 분노로 변했다.
뒤쪽의 정수지가 한숨을 푹 쉬며 나를 타이르려 했지만,
“그냥 이번 한 번만 따라와 줘. 너한테 나쁜 일은 없을 거야.”
“됐어, 정수지.”
곽지철은 이미 실력 행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스태프에 박힌 큼지막한 에메랄드가 녹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좋게 말할 때 들으면 될 걸, 꼭 처맞아야 듣는 놈이 있지.”
“그러게 말이다. 근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뭐냐.”
“곽씨 하니까 생각났는데, 너 혹시 형 있냐? 선도부에.”
“곽승재다. 내가 존경하는 자랑스러운 형이지.”
“그러냐.”
어쩐지 성도 같은 곽씨고 외모도 비슷하다 싶어서 물어봤는데, 역시 형제였던 것이다.
근데 그거 아니?
너네 형 불주먹 맞고 한 방에 뻗었어, 임마.
내 이런 속마음을 몰라주고, 곽지철은 자기 형이 언급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마지막이다. 지금이라도 순순히 따라오면 아픈 꼴은 안 당해.”
“나도 마지막이다.”
“……?”
“지금 그대로 등 돌려서 나가면 딱밤 한 대로 참아 줄게.”
“끝까지 까불대는구나—!”
– 콰아아아—!
곽지철 앞의 지면이 솟구치며 흙으로 이루어진 손아귀 십수 개가 나를 향해 짓쳐 들었다.
내 팔다리를 움켜쥐기 위해 열심이지만, 나는 [도둑걸음]을 쓰며 손아귀들 사이사이를 유유히 가로질렀다.
동시에 뒤쪽에서 날아오는 흙탄환들까지 깔끔하게 피하자 정수지가 경악성을 터뜨린다.
“말도 안 돼!”
미끄러지듯 곽지철에게 접근해서 안면을 걷어찼다.
녀석은 스태프를 들어 올려 막았으나 가드가 완벽하지 않아 그대로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너네 형은 이거 되게 쉽게 막던데.
“크윽……!”
– 쿠르르르,
내가 계속 따라붙자 곽지철의 흙손아귀가 모두 회수되며 커다란 흙주먹으로 변했다.
흙주먹을 그대로 나에게 휘둘렀으나 슬쩍 뒤로 물러나며 피하고, 등 뒤에서 날아오는 흙탄환들도 좌우로 가볍게 스텝을 밟아 피해 준다.
내 손에서 허밍버드가 날았다.
벌새가 곽지철의 옆구리 쪽으로 급격하게 꺾어 들어가자, 흙주먹을 넓은 흙방패로 변형시켜 후려친다.
“이깟 잔재주!”
“어딜 보나?”
– 퍼억!
녀석의 복부에 내가 내지른 발이 깊숙이 꽂혔다.
허밍버드를 막는 데에만 온 정신이 팔려서 다른 부위의 방어를 게을리 한 대가였다.
“커……헉!”
몸을 굽힌 채 마구 뒷걸음질을 치며, 더 다가오지 말라는 듯 흙주먹을 휘저어 댄다.
가뿐히 피하고 곽지철의 머리를 붙잡아 골목 벽에 힘껏 내던졌다.
– 쾅!
벽을 껴안고 스르르 주저앉는 곽지철.
눈에 흰자위만 보이는 게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교복의 방어 마법도 있고 하니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트라우마는 조금 남을 수도 있겠지.
“!!”
열심히 곽지철을 지원하던 정수지는 졸지에 혼자가 되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재차 [어스 개틀링]을 시전한다.
그래 봤자 방금 전까지는 안 보고도 피했던 것들, 정면에서 피하는 건 일도 아니다.
순식간에 접근해서 정수지의 스태프를 휙 잡아당기자 허무하게 빼앗긴다.
‘이거 근접전 대비가 전혀 안 됐구만.’
잠시 허망한 얼굴을 하던 정수지가 맨손으로라도 주문을 외우려 했고,
– 딱!
정수리에 스태프가 작렬했다.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는 정수지에게 말했다.
“너네 부장한테 가서 전해. 용건 있으면 사람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직접 오라고.”
“……알았어. 미안.”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는 정수지를 도로 불렀다.
“야.”
“왜, 왜?”
“혼자 가냐? 저건 어쩌고.”
‘저것’이란 골목 벽과 하나가 된 곽지철을 의미했다.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정수지는 내가 시키는 대로 곽지철을 들쳐 메고 낑낑거렸으나, 체력이 어찌나 저질인지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도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안 했다.
정말 근접전 수련이 시급해 보인다.
“다친 데는 없을 테니까 깨면 수업 들어가라. 난 먼저 간다.”
“어, 응…….”
* * *
“야, 빨리 일어나. 지금 안 가면 지각이야.”
“끄으윽…….”
곽지철은 김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골이 지끈거리는지 두 손으로 머리통을 부여잡고 끙끙댄다.
조금 정신을 차리자 분한 감정을 못 이겨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내가 이딴 더러운 속임수에 당하다니…….”
“쟤 잘 싸우던데, 그냥 실력 차이 아냐?”
“실력 차이는 무슨! 속임수 쓰고 운 좋게 럭키펀치 들어간 거지!”
곽지철이 버럭 화를 냈다.
겁쟁이한테 실력으로 밀렸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라도 합리화를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곽지철이 이를 갈며 다음을 기약했고,
“다음에는 반드시!”
– 쾅!
어디선가 날아든 마력탄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그는 다시 흰자위를 보이며 뒤로 털썩 넘어가 버렸다.
“저격!?”
정수지가 황급히 주위를 훑었다.
그러나 골목은 여전히 휑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쾅!
다음 순간 정수지의 이마에도 마력탄이 날아와 꽂혔다.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정수지는 생각했다.
‘왜 나까지……?’
그리고 곽지철 옆에 사이좋게 털썩 몸을 눕혔다.
수업은 둘 다 지각했다.
* * *
“왜 먼저 가 놓고 네가 더 늦게 와?”
“…….”
“……자냐?”
“…….”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빨리 잠들 수 있는 걸까.
* * *
서청용 선생님이 던전 공략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기는 비교적 최근이었다.
그는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공략 불가 던전들을 연이어 격파하며 유명세를 떨쳤고, 용살학원의 공략전 담당 교사로 초빙되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성격도 모난 곳 없어 학생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했고, 그의 공략전 수업 역시 다른 과목들보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다.
“던전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을까 생각해 보자.”
칠판에 이름 모를 던전의 지도가 떠올랐다.
입구를 통해 입장하는 모험가 파티.
얽히고설킨 미로를 뚫고 중앙까지 도달하면, 보스 몬스터가 보물 상자를 끌어안고 있다.
“왜 바로 보스방이 나타나지 않을까? 왜 던전은 미로처럼 복잡해야만 할까? 대답해 볼 사람?”
제일 앞줄의 여학생이 손을 들어 올렸다.
서청용의 지목을 받고 입을 연다.
“……그래야 침입자들이 고생하니까요.”
“정답이야.”
던전 지도 곳곳에 몬스터들과 함정들이 배치되었다.
안 그래도 미로 같은 곳에 장애물까지 잔뜩 늘었으니 공략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던전이 복잡한 이유는 중심부에 도달하기 전까지 너희를 최대한 소모시키기 위해서야. 너희가 가진 자원들, 예를 들면 장비나 물약 같은 아이템, 마력과 체력, 혹은 너희 파티원이 소모될 수도 있겠지. 그리고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모든 자원이 고갈되면…….”
칠판 위 모험가 파티가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고 픽 쓰러졌다.
“공략 실패. 후퇴해야 하거나, 최악의 경우 파티가 전멸하겠지?”
“……!”
“너희가 가진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얼마나 절약하느냐가 던전 공략의 핵심이야. 그래서! 이번 주에 너희가 절약해 볼 자원은,”
MAP:[고블린 늪지대]
RULE:[타임 어택][5분 제한] [1인/2인 던전][강적]
“시간. 던전을 클리어하고 남은 시간을 보면 너희들의 행동이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지.”
칠판 위 지도가 지워지고, 대신 조잡하게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고블린 조각상이 나타났다.
고블린 토템이라는 상징물이다.
“5분 내로 목적지까지 도달해서 토템을 파괴하면 클리어야. 물론 가는 길이 썩 순탄하지만은 않겠지? 길을 잘못 들어서 늪에 빠지거나, 몬스터들을 상대하다 보면 그만큼 클리어 시간이 길어지니 주의해.”
“질문 있습니다.”
학생 하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서청용이 미소를 띤 채 고개를 까딱이자 입을 연다.
“저…… [강적]은 무슨 규칙입니까?”
“조옥순 선생님의 수업에 힌트가 있었단다. 복습은 충분히 해 놨겠지?”
“했…… 죠…….”
손이 슬며시 도로 내려갔다.
저거 수업 중에 졸았구만.
싱긋 웃어 보인 서청용이 설명을 마저 했다.
“자,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지상층 던전들은 ‘연습 모드’로 여러 번 도전할 수 있어.”
모두 인공 던전들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출입도 자유자재, 재도전도 자유자재다.
“하지만 점수를 낼 기회는 단 한 번. 그러니 너희가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찾고, 익숙해질 때까지 여러 번 연습해 본 다음에 실전에 들어가는 게 좋을 거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모두 점심 맛있게들 먹어요!”
서청용이 교실을 나서자마자 신병철이 허겁지겁 고현우에게 달려왔다.
“야야야! 고현우! 나랑 2인 던전 같이하자!”
이번 공략전은 1인 던전과 2인 던전으로 나뉘며, 각기 점수가 따로 산정된다.
2인 던전에서 고득점을 얻고자 한다면 당연히 파트너를 잘 골라야 한다.
해서 눈치 빠르게 공략전 1위인 고현우에게 붙은 것이다.
“으음…….”
침음을 하면서 슬쩍 내 쪽을 보는 고현우.
마치 허락을 받으려는 모양새다.
내가 그렇게 하라는 제스처를 보내자 고개를 끄덕인다.
[고블린 늪지대]라면 두 사람의 조합이 나름대로 잘 먹혀들어 갈 것이다.“좋소. 이번에는 신 형과 합을 맞춰 봅시다.”
“밥 먹고 바로 갈까?”
“그편이 좋겠군.”
당장 점수를 내지 않더라도 연습 모드는 많이 해 볼수록 좋다.
그리고 내 파트너는…….
내 소매를 슬슬 잡아당기고 있는 서예인이었다.
“나랑 같이 가.”
“그럽시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