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53
서포터가 다 해먹음
353. 송 씨와 서 씨
“그만.”
그 한마디에 송천혜는 폭풍처럼 몰아치던 공세를 모두 거둬들였다.
우레군주의 말이 이어졌다.
“체력을 보충하거라.”
그리고 허공에 가볍게 손을 휘젓자, 일대가 옅은 정전기로 가득 찼다.
토파즈 마탑의 뇌전술사들에게 이 정전기는 압축된 마나와도 같았다.
따라서 송천혜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정전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
우레군주는 처음과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 송천혜가 눈을 떴다.
여태까지는 이렇게 체력을 채우고 나면 곧바로 대련을 재개했지만, 그녀는 우레군주를 보며 말문을 열었다.
“조부님,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
“말해 보거라.”
“제 성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송천혜는 여름방학 내내 달리고 또 달려왔다.
목표는 김호의 조언대로 내실을 다지고, 부실한 컨트롤을 보완하는 것.
멘토링을 들으면서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불참을 선택했다.
원인은 물론 기말고사 직후, 김호와 주고받은 메시지.
– 허밍버드 어떻게 한 거예요?
– 열심히 연습하면 됨.
– 저는 그래도 안 되는데요.
– 그럼 열심히 안 한 거임. 나는 됨.
‘나도 된다고……!’
움켜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반쯤 자신을 놀리려고 한 소리였다는 건 알아도, 왠지 모르게 오기가 생겼다.
자신도 하면 된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졌다.
다만 멘토링에서 컨트롤을 보완하면, 그 얄미운 인간은 반드시 태클을 걸어올 터였다.
‘내가 도와줘서 된 거잖아?’하고.
따라서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기 위해, 혼자 토파즈 마탑에 틀어박힌 것이다.
그렇게 두 달가량 열심히 수련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 실력이 얼마나 늘었지?’
도통 짐작이 안 간다.
랭크작도 제법 했지만, 그보다는 컨트롤 보완에 집중한 그녀였다.
그리고 컨트롤은 수치화되지 않는 요소였다.
게다가 대련 상대들의 실력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공격이 얼마나 먹혀들어 가는지도 애매했다.
최소 졸업생급에 마탑 장로급, 그리고 대부분은 우레군주가 상대였으니.
결국 궁금증이 쌓이고 쌓이다가, 차라리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우레군주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송천혜의 실력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그간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가 드물게도 칭찬을 입에 담았다.
“너는 토파즈 마탑에서도, 우리 송 씨 가문에서도 보기 드문 자질을 타고났다. 누구도 네 나이대에 그런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지. 심지어 나조차도 말이다.”
“……!”
“그런 네가 두 달이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실력이 안 늘었을 리가 있겠느냐.”
게다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르친 사람이 바로 자신, 우레군주였다.
세상에 S랭크 영웅보다 뛰어난 스승이 많아 봐야 얼마나 많겠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내기를 해도 좋았다.
해서 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같은 학년에 걸출한 인재들이 많다고는 들었으나,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면 적수를 찾기 어려울 게다.”
“감사합니다, 조부님.”
송천혜는 정중히 조부에게 묵례하는 한편, 머릿속으로 몇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김호, 서예인, 홍연화…….
김호와는 배치 고사에서 붙어 볼 기회가 있었으나, 어이없게 기권해 버렸다.
당시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내라고 치부했는데, 여러 번 접점이 생기며 그 판단을 수정해야 했다.
언젠가 제대로 맞붙어서 실력을 겨뤄 볼 생각이었다.
서예인은 입학하고 자신에게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끼게 한 상대였다.
게다가 겨우 한 학기 만에 엄청나게 실력이 늘어서, 리플레이를 보면 간혹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홍연화와는 입학하기 전부터 라이벌 관계.
자신이 선도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마탑회 유망주는 둘이었으리라.
둘 중 누가 더 강하냐가 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결판을 내야 하리라.
‘2학기에 만날 가능성이 높아.’
셋 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으니까.
머지않아 대인전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절대로 안 져!’
송천혜는 다시금 결의를 굳게 다지며 대련을 재개했다.
그리고 온몸에 전류를 두른 채 우레군주를 향해 짓쳐 갔다.
– 콰르르릉!
송경욱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그 공격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내고 있었다.
표정 역시 무표정 그 자체.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조부님이라…….’
그는 손녀딸이 어렸을 적을 회상했다.
자기 허리 높이도 안 되는 꼬마 송천혜가 도도도 달려와서, 자신의 팔을 붙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 할부지! 노라죠!
– 우리 천혜 놀고 싶었어요? 그래, 뭐 하고 놀까?
– 뱅! 기!!
– 비행기 타고 싶구나?
그러면 송경욱은 손녀딸을 번쩍 들어서 비행기를 태워 주고, 송천혜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었다.
이런 일이 수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있었다.
– 할부지! 노라죠!
– 오늘은 안 된단다. 할아버지도 할 일이 있어요.
– 노라!!! 죠!!!
– 허허, 그럼 조금만 놀까?
– 뱅! 기!!
그때만 해도 그렇게나 귀여웠었는데, 지금 호칭은 할부지도, 할아버지도 아니고 ‘조부님’이라니…….
그리고 저렇게 정중하고 사무적인 말투라니…….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 여겨야 하는 걸까?
‘세월이 야속하군…….’
송경욱은 억지로 쓸쓸함을 삼켰다.
S랭크 우레군주에게도 고민거리는 한둘쯤 있는 법이었다.
* * *
혜성 신도시.
트레이닝 센터.
안정미는 훈련실 한구석에 대고 말을 걸었다.
“아가씨, 이만 일어나시지요.”
“…….”
그곳에는 인간 나무늘보 한 마리가 대충 널브러져 있었다.
두 손으로는 큼지막한 호랑이 인형을 끌어안은 채.
얼굴은 찌그러진 냄비에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정미는 모름지기 베테랑 집사.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나무늘보와 대화를 시도했다.
“조금만 더 하시면 오늘치 멘토링도 끝입니다.”
“충분히…… 강하다…….”
“빵집의 원수를 갚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새로 지었잖아…….”
그 말대로, 제과점을 비롯해 죽음의 마녀가 부수고 간 건물들은 불과 몇 주 만에 새로 지어진 상태.
오히려 전보다 더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당장 어제만 해도 쿠키를 구워 먹었고.
덕분에 복수심이 살짝 흐려진 서예인이었다.
그러나 안정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혜성 신도시를 아가씨의 손으로 지키신다고, 마녀들을 혼내 준다고도 하셨습니다.”
“나중에…….”
서예인이 불멸의 김호김호냄비를 더욱 깊이 눌러썼다.
이쯤 되자 안정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약발이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그래도 이 정도면 오래 간 편이지…….’
김호 없이도 3단계 고행을 클리어하고, 멘토링도 3주 가까이 곧잘 따라오지 않았나.
덕분에 실력도 엄청나게 쑥쑥 잘 늘었고.
동기부여가 안 됐다면 3주가 아니라 3시간도 채 못 갔겠지.
안정미로서는 매우 보람차고 행복한 나날들이었으나, 이제는 그 좋은 날도 다 갔다.
남은 한 주는 어떻게 잘 구슬려서, 하루걸러 하루 수련하는 식으로라도 방향을 잡아야 할 듯했다.
하나 확실한 건 오늘은 텄다는 점.
해서 안정미는 그냥 서예인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아가씨, 차라리 들어가서 주무십시오. 이런 데서 주무시면 허리 아픕니다.”
“귀찮아…….”
그럼에도 서예인은 바닥과 하나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안정미의 또 다른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명왕룡.
말을 더럽게 안 듣는 인간 나무늘보라도, 아버지나 대부의 요구는 일부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때문에 안정미의 묵례에는 은근한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오셨습니까, 플루토 님.”
“과하게 격식 차릴 필요 없다.”
내가 인간이 아닌데 뭐 하러 인간의 예의를 고집하랴.
명왕룡은 됐다는 듯 손을 내젓곤, 터벅터벅 서예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조카야.”
“대부…….”
그제야 냄비를 살짝 옆으로 치우는 서예인.
명왕룡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이리 기운이 없는 것이냐. 얼마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건만.”
“김호……. 안 돌아와…….”
“군주 꼬맹이가 돌아올 리 있겠느냐. 개학까지 고작 한 주 정도 남았다고 들었으니, 학교 가서 만나도록 해라.”
“한 주……. 길어…….”
서예인이 더욱 축 늘어졌다.
명왕룡이 또 말했다.
“확실히 떨어져 있으니 그리움이 깊어지는가 보구나.”
“그리움…….”
“아무리 그래도 너무 못 견뎌하는군. 다음에는 아예 따라가든가, 어디 감금이라도 해 두거라.”
“감금……?”
명왕룡은 나름 인간식 농담이라고 던진 거지만, 서예인은 솔깃한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호랑이 인형이 연습 상대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
“좋은 생각……!”
안정미가 약간의 불길한 예감을 받는 한편, 명왕룡은 아무렇지도 않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이것 때문에 왔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그리 크지 않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는 여러 마법으로 철저하게 밀봉되어 있어, 대상이 아니면 열어보기가 불가능할 듯했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고.
“군주 꼬맹이가 이 아이템을 원한다고 들었다. 참으로 욕심이 많은 녀석이야.”
다른 좋은 장비들도 많은데, 꼭 공간 계열을 만들려 들다니.
그래도 투자하기로 한 이상 최대한 수용하자는 게 혜성그룹 회장과 유성룡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다행히 ‘이웃집’몇 곳에 수소문해서 찾을 수 있었지.”
그가 말하는 ‘이웃집’이란 다른 드래곤들과 보스 몬스터들을 의미한다.
개중에는 유성룡에 우호적인 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적대적이다.
인간과 동맹을 맺었으니 고깝지 않은 눈으로 볼 수밖에.
그런 놈들을 상대로 ‘수소문’을 하는 과정이 썩 순탄치만은 않았을 테고.
거래를 하거나 많은 경우 두들겨 패야 했을 거다.
그래서인지 명왕룡은 상자를 건네며 강조했다.
“이 빚은 나중에 꼭 받아 내고 말 것이다. 전해 주거라.”
“응…….”
서예인은 상자를 인벤토리에 고이 보관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