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혈풍검의 행방
다음 날.
우리는 시간에 맞춰 승강장으로 향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열차가 도착했고, 곧바로 탑승해서 비어 있는 4인 객실을 찾았다.
좌석 두 쌍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형태.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무슨 생각이 스쳤는지 당규영과 홍연화가 동시에 멈칫하더니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
객실 안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
그러다가 별안간 홍연화가 나를 보며 외쳤다.
“옆!”
“옆?”
“여, 옆자리이……?”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탓에 뒷부분은 알아서 유추해야 했다.
아마 ‘옆자리 앉아도 돼?’ 또는 ‘옆자리 앉고 싶어’ 아닐까.
당규영도 나를 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도 옆자리가 탐나는데.”
“사람은 둘이고 옆자리는 하나네요.”
“응, 선택을 해야겠지?”
“좋습니다.”
나는 단 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가서 한쪽 좌석에 앉았다.
누구도 못 들어오도록, 창가가 아니라 복도 쪽에.
그리고 맞은편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두 분이 나란히 앉아서 가시는 걸로.”
“…….”
“…….”
당규영과 홍연화는 반은 김 샌, 반은 불만스러운 눈치였으나, 순순히 맞은편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가는 길은 시달리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겠군.
물론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다음 순간 당규영의 몸이 스르륵 아래로 꺼져 드나 싶더니, 내 옆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단거리 공간이동 마법, [그림자 전이]였다.
당규영이 장난스레 씩 웃었다.
“흥, 막으면 못 들어갈 줄 알았냐?”
“이렇게까지 하신다구요?”
“어렵게 배운 스킬인데 써먹어야 될 거 아니야.”
“그건 맞죠.”
솔직히 나도 블링크 배우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다닐 테니까.
홍연화는 조금 입을 벌렸다가 닫더니 점차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자기는 따라 할 수도 없고, 할 수 있어도 이미 늦어서겠지.
블링크 없는 신세가 이렇게 서럽다.
이어서 당규영이 내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깨 좀 빌려줘라.”
“제 어깨는 어디 쓰려고 그러십니까.”
“베고 자게.”
“등받이를 뒤로 젖히세요.”
“나는 옆으로 기대고 자는 게 더 편해.”
“창문에 기대면 되잖아요.”
“아~ 빌려줘라아~”
당규영이 연신 내 어깨를 흔들어 댔다.
그리고 결국에는 던전섬에 도착할 때까지 김호어깨 베개를 베고 잤다.
* * *
어느 이름 모를 고산 지대, 깊은 숲속.
피처럼 검붉은 차림새를 한 무인들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고 민첩하면서도,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절제된 움직임.
그 모습만으로도 그들이 엄청난 수련을 거친 고수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전방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 콰콰콰콰—!
휩쓸린 이들은 형체도 남김없이 짓이겨졌으며, 가볍게 스친 이들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마치 바람이 아니라 예리한 칼날들이 휩쓸고 지나간 듯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비명을 지르는 이가 없었고, 무인들은 오히려 더욱 속도를 붙여 목표를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노인 하나가 멀거니 서 있었다.
행색은 짚신에 누더기처럼 대충 기운 무복을 입고 있어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또한 손에 든 것은 무기도 아니고, 길가에 대충 굴러다니던 나뭇가지 하나.
그러나 그 나뭇가지가 휘둘러질 때마다 일대에 혈풍이 몰아치고, 무인들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있었다.
모두가 목숨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데도 노인에게 도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콰아아아—!
그리고 한참 떨어진 곳에,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인영이 둘 있었다.
무복 사내와 서생 차림의 사내.
그중 무복 사내가 불편한 듯 침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진법조차 펼치지 못하는군. 본교의 정예들이 이리도 무력해 보일 줄은.”
“한때는 본교의 호법을 맡으셨던 분 아닙니까. 일개 대대를 상대로 고전하시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겠지요.”
서생 같은 사내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무복 사내의 정체는 바로 혈교 장로.
그는 교주의 명을 받아 이곳에 왔다.
그 명이란 태상장로의 독문무기인 혈풍검(血風劍)을 회수하는 것.
다만 상대의 무위가 엄청난 만큼, 혼자서는 백에 구십구 실패할 터였다.
당장 투입한 무력부대만 해도 시간 벌이조차 못 되는 상황.
거기에 자신이 가세해 봤자 별반 차이도 없을 터였다.
교를 위해 목숨은 얼마든 바칠 수 있었으나, 개죽음할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그는 다른 이에게 손을 벌리기로 한 것이다.
혈교의 책사이자 지낭, 혈뇌에게.
그것이 서생 차림 사내의 정체였다.
장로가 물었다.
“혈풍검은?”
혈뇌는 대답 대신 손에 든 것을 내보였다.
그것은 온갖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빽빽하게 적힌 두루마리였는데, 마법에 소양이 있는 이들이라면 그 술식이 강력한 탐색 마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범위 내, 특정 물건의 존재 여부를 파악하는 마법.
이 두루마리의 위력은 특히 강력했기에 범위가 온 산을 뒤덮을 정도로 넓었으며, 심지어는 아공간에 보관한 것까지 탐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발동한 지 제법 시간이 흐르고, 혈교의 대대가 거의 전멸해 가는 지금까지도, 마법 스크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혈뇌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곳에는 없는 듯합니다.”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말이로군.”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뒤이어 장로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 태상호법께서 제자를 하나 들였다는 소문이 돌았었지.”
“단순한 소문은 아닐 겁니다.”
혈교 측에서도 그 제자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혈풍검도 그에게 계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그 정도로 막강한 무기를 휘두를 역량은 안 되겠지만, 들려서 보내는 게 더 안전하리라 판단한 거겠지.
물론 그 제자란 자가 향할 곳은 매우 한정적이라,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혈교의 마수가 미치지 않는 동시에, 그와 비슷하게 젊은 신성들이 모이는 곳.
무복 사내의 눈이 번뜩였다.
“용살학원.”
“다시 던전섬에 들어가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야겠지.”
혈풍검을 회수하려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장로와 혈뇌의 귓가에 제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꾸 뒤통수가 가렵더라니, 쥐새끼 두 놈이 더 숨어 있었구나.”
“……!”
“……!”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고, 태상호법과 눈이 마주쳤다.
한참 먼 곳에 있어야 할 그가 갑작스레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장로와 혈뇌는 태상호법이 어떻게 그들을 찾아냈는지, 무슨 수로 그 먼 거리를 압축했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들의 상식 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상식 밖의 초인에게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테니까.
휘적휘적 나뭇가지를 젓는 태상장로에게, 혈뇌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었다.
“태상—”
– 콰직!
그러나 더 말을 잇기도 전에 한 줄기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들을 가치도 없다, 뱀 같은 놈.”
태상호법은 더러운 오물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나뭇가지로 장로를 척 가리키더니, 가볍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크윽……!’
태산이 덮쳐 오는 듯한 압박감.
겨우 기세를 끌어 올려서 버티는 게 고작이다.
장로는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생각했다.
‘결국 실패인가…….’
끝내 교주의 명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최후는 무인답게 맞으리라.’
이내 장로는 자신의 모든 진원지기를 끌어 올려 초식을 전개했다.
핏빛 강기가 유형화되며 여섯 개의 팔이 솟아나고, 각기 검 한 자루씩을 그러쥔다.
아수라혈마공이 극성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는 그렇게 강기 팔들을 휘두르며, 적을 향해 뛰어들었다.
“혈세천하—! 혈마앙복—!”
“가엾은지고. 마지막까지도 교주의 노예 신세로구나.”
태상호법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그리고 머리 위로 나뭇가지를 들어 올렸다.
– 휘잉—
사방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오며 나뭇가지에 휘감기고, 응축된다.
그리고 그대로 장로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나뭇가지가 부스러지는 동시에 핏빛 강기도 덧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 파아앗—!
다음 찰나 혈교 장로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였다.
태상호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를 일별하고, 어딘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직도 있었느냐?”
– 하하, 역시 태상호법의 이목은 못 속이겠군요.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낭랑한 웃음소리.
다름 아닌 혈뇌의 목소리였다.
방금 쓰러뜨린 건 섭혼술로 조종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당연히 태상호법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가 또 눈살을 찌푸렸다.
“듣기 싫다고 했을 텐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귓구멍에 여과기라도 달린 게냐.”
– 저로서도 몹시 송구스런 일입니다. 하나 교주님의 전언이 있어서 말입니다.
“말해 보라.”
이어지는 혈뇌의 목소리는 여태까지와 달리 차갑고 섬뜩했다.
– 때가 되면 직접 찾아가겠다, 그리고 당신께 내리신 모든 것을 거두어 가겠다 하셨습니다. 그 검법도, 목숨도.
“별것도 아닌 소리에 무게를 잡는군. 이제 꺼져라.”
– …….
정말로 꺼졌는지 혈뇌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태상호법이 걸음을 옮기며 나지막이 혀를 찼다.
‘늘그막에 제자놈 뒤치다꺼리나 하는 꼴이라니.’
그놈의 칼 한 자루 찾겠다고 혈교에서 숱하게 찾아오고, 자신은 그놈들을 처리하느라 두 발 뻗고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스승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도록 수발을 들지는 못할망정 일거리만 늘리다니, 참으로 괘씸한 제자놈 아닌가.
물론 그 귀찮은 뒤치다꺼리도 당분간은 뜸해질 듯했다.
‘아마 알아냈을 테지.’
혈풍검의 행방을.
명색이 혈교의 지낭 소리를 듣는 혈뇌가, 과연 아무 확신도 없이 이만한 전력을 투입했을까.
무력 집단 하나와 장로를 키워 내는 데에 들어가는 수고가 얼마인데.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마지막 확인을 위해서일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 확인이 끝난 이상, 앞으로는 모든 이목을 용살학원에 집중할 터였다.
태상호법이 먼 저편을 응시하며 한마디 건넸다.
‘제자야, 조심해라.’
더는 지켜 주기 어려울 것 같구나.
모진 풍파는 알아서 잘 견뎌 내도록 해라.
그러다가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또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근데 이놈은 뭘 하길래 몇 주간 사부한테 편지 한 통 없단 말인가? 여자라도 생긴 것이야?”
물론 반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다.
수련에 미쳐 사는 제자놈이 여자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다른 바쁜 일이 생긴 거겠지.
그러나 의외로 그의 짐작은 반쯤은 들어맞는 편이었다.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 용살학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대련 한 번만 더 하고 커피 마십시다.”
“안 돼! 지금!”
“한 소저,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빨리 와!”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