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어땠어?
반나절가량 객실에 앉아서 쉬다 보니, 창밖으로 바다처럼 광활한 호수가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던전섬으로 들어섰고, 완전히 정차했다.
나는 당규영을 약하게 흔들어 깨웠다.
“다 왔어요. 일어납시다.”
“……어우, 잘 잤다. 진짜 기절하듯이 잤네. 너 어깨 왜 이렇게 편해.”
내 어깨를 신기한 물건 보듯 쳐다보는 당규영이었다.
이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홍연화도 부스스 눈을 떴다.
아직도 옆자리에 미련이 남은 눈치였지만 어쩌겠는가, 벌써 도착했는데.
승강장에 내리자 당규영이 쭉 기지개를 켜더니, 나른하게 웃으며 우리 둘에게 말했다.
“잘들 들어가고, 나중에 보자.”
“들어가세요.”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는 각자 갈 길을 나섰다.
방향으로 보아 당규영과 홍연화는 도둑과 루비 마탑 동아리실로, 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찾을 곳은,
‘교장 선생님 봐야지.’
세계 평화와 관련된 일인 만큼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
친구들 얼굴은 그다음에 봐도 늦지 않으니 말이다.
해서 메시지를 보냈더니 금세 답장이 돌아왔다.
바로 교장실로 오라고.
* * *
두 달 만에 다시 찾는 교장실.
내가 말없이 방 안을 둘러보고 있으니 교장이 물었다.
“뭘 그렇게 보냐?”
“깨끗하네요.”
“……청소 좀 했지.”
지금은 아주 말끔히 정돈되어 있지만, 기말고사 때만 해도 교장실이 아니라 거의 쓰레기장 수준이었다.
교감 선생님이 기말고사 감독을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교장이 어른의 자유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다 가고, 교감은 그의 바로 옆에서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었다.
전과가 있어서인지, 2.5송천혜급이었던 엄격함이 4.0송천혜급으로 상향된 상태.
‘나까지 숨이 막히네.’
제삼자인 내가 이 정도라면, 장본인인 교장이 받을 압박감은 훨씬 심할 터였다.
그가 흘끔 눈치를 살피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본론을 꺼냈다.
“크흠, 목함 갖다줬나 보더라.”
“네, 회장님과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잘 풀려서 다행이야.”
여기서 ‘잘 풀렸다’는 말은 단순히 물건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나와 혜성그룹, 유성룡, 그리고 용살학원이 한배를 타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교장이 또 물었다.
“소식도 들었는데, 죽음의 마녀가 왔었다고?”
“좀 어수선했죠.”
나는 죽음의 마녀와 벌였던 전투를 자세히 설명했고, 교장은 진지하게 얼굴을 굳힌 채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시체 폭발]을 목함의 [생츄어리]로 방어했다는 대목에 이르자 상당히 흡족한 기색이 되었다.
“잘 써먹었구만. 혹시나 해서 들려 보냈는데, 내 감도 아직 안 죽었나 봐.”
“덕분에 안 다치고 넘어갔어요. 감사합니다.”
“뭐, 심부름 값으로 치자.”
물건 하나 전달한 값으로 일회용 S급 보호막을 얻은 셈이니, 내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교장이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이제는 어쩔 거냐. 계속 학교 다니게?”
“그래야죠.”
“보니까 2학년도 쥐어 팰 거 같은데, 그 실력이면 밖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냐?”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외부 임무도 아직은 이르고요.”
지금으로서는 던전섬에서 주워 먹을 히든 피스들이 한가득이라, 굳이 외부로 나돌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만 강해져서 될 일도 아니거든요.”
“친구들이랑 같이 큰다고 했었지. 알았다. 그럼 지하층도 계속 내려가겠네?”
“당연히 갑니다.”
히든 피스들 대부분이 거기 몰려 있으니까.
그러자 교장 선생님이 은근한 말투로 제안했다.
“어떻게, 커버 좀 쳐 줄까?”
“지금은 괜찮습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교장이 나에게 특혜를 베푼다면, 나도 교장이 원하는 무언가를 들어줘야 할 거다.
언젠가는 거래를 하는 게 이득인 순간도 오겠지만, 지하층은 1학기에도 특혜 없이 잘 드나들지 않았던가.
“뭐, 그러든가.”
내가 거절하리라 예상했는지 교장은 어깨를 으쓱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교감이 입을 열었다.
“김호 학생.”
“네, 선생님.”
“지하층에 내려가는 건 좋지만, 던전 공략은 권한 내에서만 진행하도록 하세요. 비인가 공략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감 선생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학생이 대놓고 교칙을 어기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물론 아예 비인가 공략을 포기할 생각은 없고, 더 은밀히 진행해야 할 듯했다.
그런데 웬일로 교장 선생님이 교감에게 핀잔을 주었다.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 얘는 좀 봐줘.”
“단순히 원리 원칙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위험해서 그렇습니다. 아직 학생이고 1학년 아닙니까.”
“얘가 보통 학생이야? 1학년에 군주 달고 있잖아.”
“…….”
순간 말문이 막힌 교감 선생님.
나는 마음속으로 열심히 교장 선생님을 응원했다.
동네 바보 형 화이팅! 하면 되는구나!
그 응원이 통한 듯 교장의 공세가 이어졌다.
“부패의 마녀 잡으러 전이미궁에도 갔었고, 거기서도 긁힌 데 하나 없이 잘 돌아왔지? 그 아래 난이도는 더욱 걱정할 거 없다고 봐.”
“낮은 난이도라도 위기 상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알아서 잘 사리겠지. 보니까 욕심 내는 스타일은 아니더만. 그때도 봤잖아.”
‘그때’란, 교장 선생님을 불주먹으로 폭행했을 때를 말한다.
당시 불주먹 한 대에 질문 하나라는 조건이 걸렸었고, 나는 세 대를 때린 시점에서 욕심을 버리고 물러났었다.
이어서 교장이 내 동의를 구하려는 듯 나를 흘긋 쳐다보았고, 나는 곧바로 덧붙였다.
“절대 무리한 공략은 하지 않을 겁니다.”
“…….”
이쯤 되니 교감 선생님도 마냥 강경한 태도는 아니었다.
종종 느끼는 거지만 은근히 융통성이 있는 편이다.
물론 교장도 마냥 풀어 줄 생각은 아니었는지, 나와 교감 사이에서 적당히 중심을 잡았다.
“그래도 교칙 위반은 교칙 위반이지. 걸리면 벌점이든 징계든 네가 알아서 해라. 커버 필요 없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 * *
루비 마탑 동아리.
아직 개학 전임에도, 홍예화는 부장으로서 각종 서류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던 도중 홍연화가 안으로 들어섰다.
“나 왔어.”
그리고 손님 접대용 소파로 직진하더니 철푸덕 몸을 눕혔다.
그 꼴을 보자 홍예화는 조건 반사적으로 ‘야! 거기 눕지 말랬지!’하고 외칠 뻔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는데, 한 달 만에 보는 동생과 싸움부터 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홍예화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물었다.
“어땠어, 멘토링?”
“……좋았어.”
“좋았어 말고, 더 자세히 좀 말해 봐. 뭐 배웠는데?”
“그게…….”
홍연화는 2차 멘토링의 성과들을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했다.
[코어] B랭크를 달성했으며, 몇몇 화염 마법들도 랭크를 한 단계씩 올렸다.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 파이어 필라 연계기, [히드라]를 완성했다는 점.
심지어 머리도 세 개까지 늘렸으며, 다음 단계도 절반 이상 진행됐다.
홍예화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에 두 눈을 치켜떴다.
“진짜? 보여 줘 봐.”
– 화르륵,
어려운 요구도 아니었기에 홍연화는 즉시 파이어 필라를 시전했다.
손바닥 크기로 아주 작게.
물컵 사이즈 불기둥이 치솟다가 세 갈래로 나뉘고, 머리 셋 달린 뱀의 형상을 띤다.
그리고 각기 손톱만 한 불덩이들을 토해 낸다.
– 퍼퍼펑!
거기까지 확인하자 홍예화는 매우 놀라면서도 흡족한 기색이 되었다.
“당규영이 제대로 가르쳤네. 다시 봤어.”
“어, 응……. 그렇지.”
홍연화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생각했다.
‘당규영 선배가 아니라 김호인데.’
당규영이 효율 좋은 수련장을 섭외해 주기는 했지만, 이번 2차 멘토링의 실질적인 멘토는 김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열심히 대련도 하고, 고행 퀘스트도 걸어 주었기에 이만큼이나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다.
물론 그 사실을 입밖에 내서 좋을 게 없었다.
말 못할 비밀이 자꾸만 늘어 가는 홍연화였다.
홍예화가 또 물었다.
“지내면서 불편한 건 없었고?”
“으응……. 다 잘해 줬어…….”
사실 멤버가 김호와 당규영 둘뿐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조금 걱정했었다.
사이에 끼어서 숨도 못 쉬는 건 아닌가 하고.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둘은 자신에게 아주 잘 대해 주었다.
사소한 일 하나에도 꼭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고 배려했기에, 소외받는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지레 겁먹고 눈칫밥을 먹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또 당규영과 김호는 은근히 장난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틈만 나면 서로를 놀려 대곤 했다.
김호에게 33바 승부를 걸어서 두 번이나 뜯어냈던 게 떠오르자, 홍연화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히힣.”
그리고 그 속내를 알 리가 없는 홍예화로서는 제 동생이 영락없는 미친년으로 보일 뿐이었다.
“갑자기 실실 쪼개.”
“아니 그냥, 다 좋았어.”
“진짜지? 뭐 불만이나 아쉬웠던 거 없어?”
“그런 거 없어. 진짜로.”
홍연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저었으나, 사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언니한테는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아쉬운 점이.
‘김호베개……. 못 써 봤네…….’
무려 한 달이나 시간이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당규영이 섭외한 수련장과 숙소는 매우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방도 따로 나뉘어 있었고.’
때문에 붙어서 잘 기회는커녕 한방에서 잘 기회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기말고사 때 그녀는 구르는 미친년이었지만, 그때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조금은 있었다.
비밀 방이 워낙 좁았던 데다, 잠들기가 영 불편했으니까.
반면 멘토링 때는 대놓고 김호 방에 쳐들어가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걸리면 잠입하는 미친년, 아무리 잘 쳐줘도 몽유병 걸린 미친년이었다.
‘그건 도저히…….’
도저히 그런 꼬리표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대놓고 쳐들어가는 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말고사 때도 데굴데굴 구르다가 김호에게 발각됐지만, 그러려니 하고 붙어서 자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홍연화에게는 용기가 부족했다.
서예인처럼 무심하지도 않고, 당규영처럼 당당하지도 못했기에, 차마 마지막 한 걸음을 떼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할까 말까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멘토링도 끝나 버렸다.
마지막 기회는 돌아가는 열차에서 찾아왔고, 이때만큼은 홍연화도 나름 용기를 쥐어짜서 선수를 쳤다.
– 옆!
그러나 그 선수가 무색하게, 그녀는 당규영에게 김호베개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패배의 주된 원인은 바로 공간이동 마법의 유무.
명백한 실력 차이였다.
‘나도 블링크…….’
홍연화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더욱 열심히 수련해서 코어 A랭크를 달성하고 말겠다고.
그리고 자신도 블링크를 익히고 말겠다고!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