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62
362화 1주 차 리매치 (5)
송천혜는 어깨만 들썩거릴 뿐 반응이 없었다.
“…….”
“왜 울고 그래.”
내가 몇 번 더 묘목으로 건드렸더니 그제야 웅얼웅얼 대답이 돌아왔다.
“……었어요.”
“뭐라고?”
“……안 울었다고요.”
이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송천혜.
얼굴을 살펴보니 정말로 울지는 않았지만,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에 억지로 눌러 참은 듯했다.
송천혜는 몇 번 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른 다음, 나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요.”
“꼭 이런 식이어야 했나요? 정면 승부도 할 수 있잖아요.”
“할 수야 있지. 근데 꼭 그래야 할까?”
나는 송천혜의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었다.
두들겨 패려면 방법이야 많다.
나선폭발을 쓰든, 윈드포스로 마구 날려 버리든.
다만 정면 승부는 공방을 주고받아야 하는 만큼 더 수고스럽게 마련.
그보다는 공멸안 걸고 도망 다니는 게 훨씬 편하지 않겠는가.
‘벌써부터 패를 다 꺼낼 이유도 없고.’
송천혜와 대인전에서 맞붙는 게 오늘만은 아닐 거다.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테고, 선도부원들끼리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으니, 벌써부터 스킬/특성들을 죄다 내보이는 건 하책이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게 더 열받으니까.’
남의 고통이 곧 나의 행복 아닌가.
애초에 윈드포스와 공멸안은 그걸 위해 만들어진 스킬들이다.
상대방을 열받게 할 생각이 없었으면 다른 걸로 갔겠지.
물론 입 밖으로 낸 건 첫 번째 이유뿐이었지만, 송천혜는 그것조차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럼 계속 지금처럼 하시겠네요.”
“웬만하면.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 아니냐, 정면 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지.”
크리스탈 대인전처럼 이동 범위가 제한될 수도 있고, 2인 이상 팀 단위로 움직여야 할 수도 있고.
이런 경우 혼자 도망 다니기보단 팀원을 지키는 게 나은 선택일 테니 말이다.
반면 송천혜는 내 말을 ‘정면 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봐라,’ ‘나를 궁지로 몰아넣어 봐라’라고 해석한 눈치였다.
“잘 알겠습니다. 기억해 두죠.”
“그래, 이건 계속할 거냐?”
우리는 흘긋 스코어보드를 확인해 보았다.
[김 호 100% vs 송천혜 82%] [남은 시간 3:35]가랑비에 옷 젖듯 피해가 상당히 누적됐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여태까지 1%도 못 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전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럼에도 송천혜는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그러쥐었다.
검은 장갑에서 전류가 파직거린다.
“당연히 계속할 겁니다.”
– 파아앗!
그와 동시에 빛무리가 송천혜의 몸을 감쌌다.
[정화]로 디버프를 풀어냈다는 뜻.확률이 꽤 낮을 텐데 이번에는 운이 따라 줬나 보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마인드 하나는 좋구만.”
[대상에게 ‘풍화(C)’ 상태이상이 부여됩니다.]그리고 공멸안을 다시 걸었다.
“아악! 또야!”
“나 잡아 봐라.”
“거기 서!!”
“이젠 존댓말도 안 하네.”
“서라고!!”
나는 빙글 몸을 돌려 도망쳤고, 송천혜가 뒤쫓아 오며 벼락을 마구 던져 댔다.
– 콰르릉! 콰릉!
전장에 뇌명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 * *
추격전이 계속 이어졌지만, 마지막까지 이변은 없었다.
[남은 시간 0:04]“아…….”
그때까지도 죽일 듯이 나를 쫓아오던 송천혜가 점차 속도를 늦추더니, 터덜터덜 걷다가 결국에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망연자실한 눈으로 스코어보드를 응시했다.
마치 시간이 멈춰 줬으면 하는 눈치였으나, 타이머는 야속하게도 계속 줄어들어 0이 되었고,
경기 결과를 띄워 올렸다.
제한시간 소진으로 인한 판정승.
[김 호 Win]vs
[송천혜 Lose] [대인전 839+87점]‘많이도 뜯었네.’
상대방과 점수 차가 상당했던 데다, 설욕전을 성공해서 추가 점수를 얻은 모양이다.
1학기에 300점으로 시작했던 점수가 어느덧 상위권인 900점대에 걸쳤다.
그와 대조적으로 송천혜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는데,
“8, 80점……?”
거의 나라 잃은 표정이었다.
패배는 받아들였어도, 점수를 저렇게나 많이 잃을 줄은 몰랐나 보다.
‘타격이 크겠지.’
최상위권의 87점은 하위 점수대의 87점보다 가치가 크게 마련.
중하위권은 거의 엇비슷한 점수대와 매칭되지만, 최상위권에서 독주하는 이들은 그럴 일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대부분 자신보다 점수가 낮은 상대들과 경기를 치르고, 이겨도 찔끔찔끔 15, 20점씩 받곤 한다.
그걸 1학기 동안 꾸역꾸역 1,100점 가까이 올려 놨는데, 겨우 한 번 져서 뭉텅 뜯겼으니.
복구하려면 고생 좀 할 거다.
물론 송천혜가 정말로 분노하는 포인트는 점수가 아니라, 10분 내내 농락당했다는 점인 듯했다.
순간이동 마법진에 오르려는 나를 멈춰 세운다.
“저기요!”
“왜?”
“……다시 해요.”
“다시 붙자고?”
“네.”
“조만간 보지 않겠냐.”
머지 않아 점수대가 엇비슷해지는 날도 올 테니까.
그러나 송천혜는 억지를 부렸다.
“지, 지금요.”
“결투라도 하자고?”
“그냥 대련이어도 됩니다.”
“싫은데.”
당연히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무슨 이득이 있어서 대련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대전료로 아이템을 내걸더라도 이건 별로 안 내킨다.
때로는 아이템보다 정보가 중요한 경우도 있는 법이다.
물론 약간의 여지는 남겨 둘 수 있겠다 싶어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 하고 싶으면 소원권 쓰든가.”
“저한테 소원권이 어딨어요.”
“따내야지. 내기 이겨서.”
그전에 내 소원권을 전부 없애야 하겠지만.
참고로 소원권(소) 두 개, 소원권(대) 하나가 남아 있다.
이쯤 되면 더러워서 안 하겠거니 싶었는데, 의외로 송천혜는 얼마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시죠, 내기.”
“싫어하는 거 아니었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와 다시 붙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내기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연갈색 눈동자가 투지로 이글거린다.
반면 나는 심드렁한 태도를 고수했다.
“글쎄, 지금은 딱히 내기할 게 없는데.”
“아무거나 하면 되잖아요.”
“진짜 아무거나?”
가령 내일 모레 아침 식사 메뉴를 맞춘다거나, 다음 대인전 종목을 맞춘다거나.
물론 나는 뭘 하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반면 송천혜는 그렇지 않은 듯, 움찔하며 한 발 물러났다.
“……정정하겠습니다. 아무거나는 말고요.”
“하여튼 할 생각이 있는 건 알겠다. 기회 봐서 말할게.”
“너무 오래 기다리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연하지.”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오래 기다리게 할 리가 있나.
소원권을 복사할 기회인데.
* * *
[왕 빈 95% vs 서예인 98%]서예인은 폐허가 된 건물 한가운데에 멀거니 서서,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 무너져 내린 벽들, 뿌리만 남은 기둥들이 가득하다.
엄폐물이 많다는 건 총사 입장에서 썩 좋지 않은 소식이다.
상대방이 그것들을 방패 삼아 은밀히 접근할 수 있을 테니까.
심지어 ‘왕빈’은 김호의 예상대로 왕춘삼이 맞았다.
이 지형을 누구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살수 클래스라는 말이다.
평소의 왕춘삼이었다면 살수의 본분대로 실력을 감추고 대인전에 임했겠지만, 그는 서예인에게 빚이 있었다.
빙하 지대 대인전에서 두들겨 맞았던 일을 설욕하고 싶었던 것이다.
덤으로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도 확인하고.
따라서 이 경기는 비공개로 합의되었고, 왕춘삼도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고, 그렇게 가하는 일격은 방어가 약한 총사에게 매우 치명적일 터.
“…….”
그럼에도 서예인의 얼굴에서는 한 점 위기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늘상 그렇듯 무심한 표정을 유지할 뿐.
머리에 뒤집어 쓴 냄비를 슬슬 어루만진 뒤, 또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서예인에게는 눈이 있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그 눈은 지난 한 달간 더욱 성장했다.
2차 멘토링 기간 동안 명왕룡이 옆에 붙어서 가르친 덕분이다.
– 조카야, 이제 조금은 준비가 된 것 같구나.
워낙 강력한 힘이라, 코어가 C랭크 이하였을 때는 감당하기 어려웠었다.
때문에 명왕룡도 회장도 섣불리 손을 대지 않았었고.
반면 B랭크에 오른 지금은 부담이 한결 덜했기에, 걸음마 정도는 떼 놓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틈틈이 수련한 결과, 서예인은 눈을 더욱 효율적으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회색빛 동공이 온갖 정보들을 수집했다.
바람의 흐름, 그에 굴러다니는 먼지 따위의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정보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한 가지 정보가 도출되었다.
전방에 위치한 기둥, 그 근처의 흐름이 아주 미세하게 부자연스럽다는 정보가.
과연 그곳에는 왕춘삼이 숨어 있었다.
그는 서예인의 시선이 자신쪽에 머무는 순간 직감했다.
‘들켰군.’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은신을 꿰뚫어 본 듯했다.
장소를 바꿔서 은신해 봤자 또 간파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행동하는 게 상책일 터.
여기까지 생각한 왕춘삼은 땅을 박차고 튀어나와 서예인에게 쇄도했다.
– 쐐애애액!
한 호흡 만에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와 동시에 왕춘삼은 빛살 같은 찌르기를 내질렀다.
금방이라도 서예인의 심장이 철검에 꿰뚫릴 것만 같았다.
– 카가가각,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 찰나, 서예인이 앞으로 내민 것에 가로막혔다.
그것은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가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었던 냄비였다.
왕춘삼의 두 눈이 경악과 불신으로 치켜떠졌다.
“이게 무슨.”
자신이 검기까지 담아서 내지른 일격인데, 어떻게 한낱 주방 용품에 막힐 수가 있단 말인가?
그대로 꿰뚫거나 반토막이 나야 정상 아닌가?
아니, 막는 건 백 번 양보해서 가능할 수도 있다.
만년한철이라도 들어간 냄비라면 훨씬 강도가 높을 테니까.
그보다 의문인 점은 서예인이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사와 총사의 근접전 역량 차이라면, 격돌했을 때 두어 걸음이라도 물러나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왕춘삼으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다.
저 냄비가 아다만타이트로 제작되어, 검기가 아니라 강기마저 차단할 정도로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거기다 무려 A+랭크 [충격 무효]가 붙었다는 사실을.
서예인이 회색빛 눈을 반짝거리며 한마디했다.
“김호 튼튼.”
평소처럼 무심한 어조였으나 어쩐지 자랑스러운 것도 같았다.
그렇게 완벽히 방어하는 동시에, 반대쪽 손에 들린 마력총은 이미 왕춘삼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연신 푸른 불을 뿜어 댔다.
– 두두두두두!
“크아아아악!!”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