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386
386화 4주 차 픽스 존 (4)
– 콰앙—!
예상보다 큰 충돌음과 함께 얼음 파편들이 마구 흩날리고, 일대가 안개라도 낀 것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당장은 송천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스코어보드부터 확인했다.
[송천혜 88%] [송천혜 83%]‘세게 박기는 했나 본데.’
한 방에 체력이 5%나 뚝 떨어질 정도라면.
하기야 속도를 그렇게 잔뜩 냈으니 잔뜩 속도를 냈는데 무사할 리가 있나.
곧 흩날리던 파편들이 가라앉고, 나도 남아 있던 얼음 벽을 해제했다.
송천혜는 그 자리에 죽은 듯 엎드려 있었는데, 아직 경기장 밖으로 방출되지는 않았으니 의식도 남아 있을 터였다.
해서 일상적인 어조로 말을 걸었다.
“저기요.”
“…….”
“바닥 온도는 좀 어떠신가요? 시원해?”
“…….”
영 대답이 없길래 윈드포스를 시전해 본다.
– 휘이잉—
엎드린 채로 주르륵 밀려나는 송천혜.
그제야 알아듣기 어렵게 웅얼거린다.
“흐즈므르…….”
“살아는 계시네.”
“스르으뜨…….”
“리플레이는 비공개로 돌리는 게 좋겠지? 선도부 체면이 있으니까.”
“…….”
엎드린 채로 고개만 끄덕거리는 송천혜.
나는 짐짓 아쉬운 투로 말했다.
“근데 이러면 내가 손해 같단 말이야? 포인트도 안 들어오고. 내 체면 상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공개 갈까?”
“비공개해 줘요…….”
“지금 일어나면.”
그 한마디에 송천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태가 굉장히 낭패해 보였는데, 옷매무새는 흐트러졌으며, 머리며 옷에는 얼음 조각들이 허옇게 붙어 있었고, 얼굴 한쪽은 뺨이라도 맞은 듯 살짝 부었다.
나는 입을 조금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고, 그걸 눈치챈 송천혜가 물었다.
“무슨 말 하려고 했어요?”
“얼음 털으라고.”
“그런데요?”
“털어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직 경기 초반이니, 앞으로 얼음 벽 허그를 두세 번은 더 하지 않겠는가.
“……!”
송천혜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얼굴에 분노, 두려움, 수치심 등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반면 나는 더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준비 되면 따라오셔. 먼저 갑니다~”
그리고 막 등을 돌려 달리려는데.
송천혜가 자세를 잡으려다 말고 두 팔을 축 늘어뜨렸다.
“…….”
“왜?”
“……겁니다.”
“안 들려. 뭐라고?”
“그만 한다고요.”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기권한다고?”
“네.”
“진짜? 기권?”
“왜 자꾸 물어봐요?”
“많이 의외라서. 나한테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지 않았냐.”
조부님이 어쩌고, 영웅의 마음가짐이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말에 조금 찔렸는지, 송천혜는 시선을 피하면서 웅얼웅얼 변명을 주워섬겼다.
“어차피 지금 제 빌드로는…… 그쪽을 잡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뿐입니다.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지금 포기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겠…… 죠.”
“얼음 벽에 또 갖다 박기는 무섭다?”
“아니라고요! 그까짓 얼음 벽!”
“그래?”
나는 아이스 월을 시전한 뒤, 윈드포스로 송천혜를 살짝살짝 밀었다.
– 휘잉–
얼음 벽과 가까워질수록 송천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하, 하지마. 하지마.”
“하나도 안 무섭다며.”
“하나도는 아니고요…….”
“조금은 무섭다?”
“……아주 조금이요. 요만큼.”
마지 못해 인정하는 송천혜.
이 정도라도 솔직해졌으면 됐지 싶어서 나는 턱을 까딱였다.
“그럼 여기까지 하자. 들어가시고.”
“네. 그, 그쪽도요.”
송천혜는 후다닥 순간이동 포탈로 향하더니, 도망치듯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건 업적으로 봐도 될 거 같은데?’
송천혜를 기권하게 만든 사나이, 그게 바로 나다.
[김 호 Win]vs
[송천혜 Lose]* * *
밖으로 나와서 알림 메시지를 확인했다.
[서브 퀘스트:4주 차 대인전](완료)▷목표:대인전 3회 완료 (3/3회)
▷3승 보상:[복사-특성] 슬롯+1
최고 달성도 보상은 예상대로 슬롯 추가.
뭘 등록할지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얼마간 기다리고 있으니, 고현우와 서예인도 경기를 마치고 무대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두 사람을 차례대로 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땠냐.”
“평소 대인전과는 조금 다르더군. 제한된 수단으로 겨뤄야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소.”
고현우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픽스 존에서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선방했을 거다.
전체적인 스펙은 아직 최상위권에 살짝 못 미칠 텐데, 그 스펙이 전부 C랭크로 고정됐으니 말이다.
배치 고사 F랭크 픽스 존만 해도 학년 1위였고.
반면 서예인은 영 불만스러운 기색이었다.
해서 물었다.
“잘 안 풀리셨는가?”
“……졌어.”
“누구한테?”
“나쁜 말하는 애.”
‘나쁜 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뇌리를 스치는 얼굴이 있었다.
“차현주?”
“응.”
“걔한테는 질 수도 있지.”
그런대로 납득할 만한 결과였다.
차현주는 궁수 유망주로, 1학년 원거리 공격수들 중에서는 명실상부한 1위.
미궁 삼파전에서는 서예인이 이겼지만, 그때는 상황이 여러모로 특수했었다.
제대로 포격전을 하기에는 지형이 비좁기도 했고, 차현주의 전력이 함정들과 연이은 전투로 상당히 소모됐기 때문이다.
실상 1:1이 아니라 1:0.7정도였다고 봐야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제약 없이 온전한 상태로 맞붙었으니, 실력대로 결과가 난 것이다.
“그래도 과정이 궁금하긴 하네, 한번 보자.”
“응.”
이내 서예인이 손바닥만 한 수정구를 꺼냈다.
조금 전 치렀던 경기의 리플레이다.
고현우도 더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원거리 계열들은 어떻게 실력을 겨루는지 궁금했었소. 차 소저는 유망주라고도 들었으니 보면 배우는 게 있겠지.”
지나치게 긍정적인 감은 있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언젠가 고현우도 차현주를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파악해 둬서 손해 볼 건 없다.
이내 수정구 속으로 초목이 우거진 숲이 비췄다.
나무들이 두꺼운 데다 군데군데 큼지막한 바위들도 박혀 있어서 엄폐물로 제격일 듯하다.
그런 숲 한가운데에 서예인과 차현주가 마주 보고 섰다.
차현주가 인상을 팍 쓰며 뭐라 뭐라 했지만, 서예인은 무시로 일관하며 딴 곳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들리기는 했는지 짤막하게 설명한다.
“또 나쁜말 했어.”
“아주 못됐구만.”
저렇게 입버릇이 고약해서야.
차현주가 또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그때, 카운트다운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3] [2] [1] [Start!]즉시 둘은 서로에게 총구와 화살을 겨누었고, 푸른 실선들이 수도 없이 그어졌다.
그리고 각자의 이동 기술을 활용해,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들을 회피했다.
고현우가 가볍게 턱을 쓸었다.
“과연, 포격전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구려.”
“누가 더 맞추고 더 피하냐 싸움이지.”
끊임없이 오가는 푸른 실선.
처음에는 완벽하게 회피하던 두 사람이었으나, 전투가 이어질수록 조금씩 공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마력탄이 차현주의 발목 어림을 스치고, 마력 화살이 서예인의 어깨를 긁고 지나간다.
[차현주 98%] [차현주 96%] [차현주 93%] [서예인 97%] [서예인 94%] [서예인 90%]다만 체력이 깎이는 속도는 서예인 쪽이 조금 더 빨랐다.
고현우가 물었다.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거요?”
“방어력 같은데.”
나는 리플레이를 되감은 뒤, 방금 지나간 장면을 다시 재생했다.
마력탄이 차현주의 팔뚝을 스치려는 찰나, 얇은 마나의 막이 피어오르며 해당 부위를 보호했다.
“이번엔 아예 안 깎였네.”
“일종의 호신강기로 보이는데, 맞소?”
“맞아.”
방어 계열 특성으로, 피격 시 자동으로 발동된다.
방어력이 썩 높지는 않은 데다 쿨타임도 존재하지만, 포격전에서 우위를 점하기에는 충분하다.
“얘도 비슷한 게 있기는 한데.”
나는 리플레이 속 서예인을 가리켰다.
미약한 난기류가 일어나며 마력 화살들을 비껴 내고 있었는데, [깃털걸음]의 추가 효과다.
아쉽게도 온전한 방어 특성에는 살짝 못 미치고.
이후의 경기도 큰 틀에서는 비슷하게 흘러갔다.
야금야금 서로의 체력을 깎아 먹지만 서예인이 조금 더 빨리 깎이는 식.
그러던 와중 서예인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유령무영]을 시전했다는 뜻이라 고현우가 리플레이에 더욱 집중했다.“승부수를 띄우려는가 보오.”
“이대로는 어차피 지니까.”
그러나 한 번 당했던 수법에 또 당해 줄 차현주가 아니었다.
유망주인 만큼 강력한 한 수도 갖고 있을 테고.
그녀는 서예인의 종적을 놓치는 즉시 반응했다.
마나를 순간적으로 끌어모으더니 사방에 마력 화살을 난사한다.
화살들은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가지 않고, 공처럼 바닥과 엄폐물들에 부딪히며 이리저리 튕겨 다녔다.
차현주의 주변이 통통 튕기는 마력 화살들로 가득 뒤덮였다.
‘정진명이랑 대처가 비슷하네.’
범위 공격으로 상대방의 회피, 또는 은신 능력을 무력화하는 방법.
무식하지만 정석적이기도 하다.
과연 서예인은 범위 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처음 목표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두툼한 유탄이 포물선을 그린다.
그에 차현주는 회피 스킬로 물러나면서 한 손을 그었고, 통통 튀기던 화살들이 일제히 쇄도했다.
역으로 위기에 빠진 서예인이었으나, 마지막 순간 [불릿 타임]을 시전해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고현우가 침음했다.
“으음, 승부수를 맞교환했군. 아쉽게 되었소.”
이득도 손해도 아니지만, 서예인으로서는 이득을 봐야만 했으니까.
포격전이 계속 이어졌다.
제한 시간 10분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서예인 64%]vs
[차현주 77%]결과는 차현주의 판정승.
우리는 서예인을 격려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선방했네. 체력 차이도 별로 안 나.”
“다음에는 분명 서 소저가 역전하리라 확신하오.”
그럼에도 서예인은 리플레이 수정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회색빛 눈동자에 불만스런 기색이 스친다.
동시에 불멸의 김호김호냄비를 슬슬 쓰다듬는데, 슬롯에 못 등록한 게 못내 아쉬운 듯했다.
나는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혼내 주고 싶지?”
“혼내 준다.”
이어서 서예인이 내 소매를 슥슥 잡아당겼다.
“나도 방어 스킬.”
“하나 배울래요?”
“배울래요.”
“필살기도 하나 더 있으면 좋을 거 같지?”
“필살기.”
“고행도 할까?”
“……?”
순간 멈칫하는 서예인.
은근슬쩍 끼워팔려고 했더니 눈치를 챈 모양이다.
그래도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 단계만.”
“좋습니다.”
‘나중에’가 아닌 게 어디야.
나는 차현주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광견병 걸린 치와와 같은 녀석이지만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군.
나무늘보를 자극해 준 덕분에, 당분간은 열심히 수련을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서예인에게 제안했다.
“그럼 같이 집사님 좀 보자.”
오랜만에 혜성그룹 찬스를 써야지.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