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스킬북의 요정
다음날.
나는 서예인을 만나자마자 씩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안 다친 김호가 돌아왔답니다.”
“…….”
말없이 다가오는 서예인.
거의 달라붙을 정도의 거리에서 내 팔이나 어깨 등을 이모저모 살펴본다.
“…….”
“뭐 하니?”
“검사.”
“다친 데 없나?”
“응.”
다음으로 서예인은 내 한쪽 손을 붙잡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제삼자의 시선에는 손금을 보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러면서 짤막하게 한마디한다.
“……불주먹.”
“몇 번 썼는데, 다 나았어.”
“확인.”
검사 타임이 얼마간 더 이어졌다.
서예인은 내가 조금도 안 다쳤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
“오늘따라 철저하네.”
“걱정했어.”
사실 걱정될 만도 했다.
A랭크 던전에 들어간 건 이게 처음은 아니지만, 전이미궁은 대대적으로 원정대를 꾸려서 우르르 들어갔었다.
부패의 마녀가 점거한 곳이었어도 전력상으로는 우리가 훨씬 우위였고.
반면 제4 연구소는 고작 넷이서 들어갔으니, 위험도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았다.
실제로도 위험한 순간들이 제법 있었고 말이다.
물론 이제는 지난 일이라 나는 또 피식 웃었다.
“다 잘 넘겼어. 냄비 덕도 많이 봤고, 전에 뽑아 줬던 마법 스크롤도 썼거든.”
“보람차다.”
“말 나온 김에 돌려줄게.”
나는 불멸의 김호김호냄비를 건넸다.
뭉게구름 팔찌와 호랑이 인형은 그때 장난으로 얘기만 꺼내고 안 빌렸었고.
“…….”
한참이나 김호 검사를 진행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보물 1호 냄비도 그럴 줄 알았는데, 서예인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불멸 냄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안 봐도 돼?”
“응.”
“흠집 났으면 어쩌려고.”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서예인.
무신경하다기보단 내가 쓰면서 난 흠집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였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었으니 흠집이 났을 리도 없지.
이어서 나는 랜덤박스 두 개를 꺼냈다.
[제4 연구소 랜덤박스(A)]*2원래는 공략 지분이 큰 서청용과 이수독에게 하나, 나에게 하나 분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탈출 과정에서 아낌없이 불주먹을 갈겨 댔다는 점 덕분에 둘 다 내 몫으로 돌아왔다.
나는 자못 정중한 태도로 랜덤박스들을 바쳤다.
“행운의 복덩이님, 빛덩이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
서예인은 그 중 하나만 받고 하나는 나한테 돌려주었는데, 한 번에 둘 다 열기에는 행운이 부족한 듯했다.
게다가 본인이 받은 하나마저도 바로 열지 않고, 손에 든 채로 그저 멀거니 서 있다.
이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 팔을 슬슬 잡아끌며 어디론가 데려간다.
근처에 자리한 벤치로.
그리고 나를 한쪽에 앉히곤 무릎 베개를 하면서 눕는다.
나는 서예인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행운 충전 중인가요?”
“아니요.”
“그럼 무릎 베개는 왜 한 거죠?”
“하고 싶어서.”
“그렇구만.”
랜덤박스 열려다 말고 데려가길래 나는 영락없이 행운 충전인 줄 알았지.
회색빛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안 돼?”
“안 될 건 없지.”
빛덩이 행운으로 받은 도움이 얼만데, 무릎 정도야 기꺼이 희생할 수 있지.
나는 김호무릎베개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서예인도 의외로 잠들지 않고, 반쯤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게 다였다.
“…….”
“안 졸리냐?”
“응.”
“웬일이래. 맨날 누우면 3초 만에 자더니.”
“편해.”
“그러시겠지요.”
그렇게 한마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뒤척거리던 서예인이 랜덤박스를 가슴팍 위치로 옮겼다.
“…….”
“이제 열려고?”
“응.”
그리고 고개를 까딱거린 다음 덮개를 활짝 열어젖혔다.
– 파앗!
평소에는 눈이 멀 정도로 환한 광채가 터져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비교적 수수한 편이었다.
‘그래도 실망하기는 이르지.’
랜덤박스 이펙트는 다양한 법이니까.
과연 광채는 곧바로 사그라들지 않고, 알록달록 신기한 빛으로 빛났다.
다음 순간 상자가 있던 자리에는 둘둘 말린 양피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스킬북의 요정 소환서]“어떻게 이걸 뽑았네.”
대박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손색이 있었지만, 정확히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었다.
서예인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양피지를 쳐다보더니, 눈빛으로 이건 뭐냐고 물었다.
“……?”
“말로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더 빠르겠다.”
얻은 김에 당장 쓰는 게 낫고.
나는 곧바로 소환서를 사용했다.
– 뿅!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갑자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사람을 축소해 놓은 외형에 날개가 달린, 전형적인 요정의 모습.
녀석은 등장하자마자 우아하게 예를 취했다.
“반가워요, 난 스킬북의 요정.”
겉보기에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했지만, 나는 옆 동네에 나오는 사악한 요정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걔들은 뭐라 항의만 하면 본보기로 누구 머리를 터뜨려 버리곤 하지.
물론 그건 옆 동네 얘기였고, 이 녀석은 그럭저럭 무해한 축에 속했다.
게다가 나를 발견하자 더욱 공손한 태도로 변한다.
“귀하신 분이 저를 불러 주셨네요.”
군주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는 언제나 다소의 허세를 곁들여 주는 게 효과가 좋았다.
따라서 나는 오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불렀다. 바로 본론으로.”
“스킬북이 필요하신 거겠죠? 어떤 걸 원하시나요?”
스킬북의 요정은 이름 그대로, 소환자의 입맛에 맞는 스킬북을 한 권 구해 준다.
거의 스킬북 선택권에 가까운 셈이다.
다만 여기서 ‘거의’라고 표현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이름으로 검색이 안 되지.’
스킬의 성능과 특징 등을 묘사하여 추려 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가 결정적인데,
‘공짜가 아니거든.’
고르는 건 마음대로지만 얻으려면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강력한 스킬일수록 그 대가도 커지니, 적정선에서 타협할 필요가 있다.
물론 나는 고인물 오브 고인물로서 어떻게 스킬의 범위를 좁혀 낼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거래 적정선 역시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고.
“한랭(寒冷) 계열 무공, 지법(指法)으로. 탄지(彈指)가 가능하면 더 좋겠군.”
주력인 바람 스킬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쓸 만한 게 많아서다.
최근에는 파괴돌풍도 복사했고.
스킬북의 요정은 흔쾌히 내 요구를 받아들였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작은 8자를 그리며 붕붕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꼭 정신 사납게 저래야 하는 걸까?
제자리에서 찾으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허공에 스킬북 여러 개가 나타난다.
“이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으신가요?”
[스킬북 – 냉옥탄지(冷玉彈指)] [스킬북 – 점설화(點雪花)] [스킬북 – 탄천설화옥지(彈天雪花玉指)]…….
빠르게 그것들을 훑어 나가던 도중, 나는 스킬북 한 권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역시 한 방에 나왔네.’
[스킬북 – 빙백탄(氷魄彈)]토대는 공격 스킬이지만, 이름처럼 빙결 효과가 동반돼서 유틸성이 강하다.
특히 상대를 열 받게 만드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전부터 갖고 싶어서 무투가 동아리장인 김갑두한테 부탁해 볼까 고민하던 스킬이기도 했는데, 행운의 나무늘보 덕에 이렇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갖고 싶다는 걸 내색하지 않고, 군주답게 허세를 부리는 게 나았다.
따라서 필요 없는데 대충 고른 척, 빙백탄 스킬북을 지목했다.
“이걸로 하지.”
“빙백탄이요? 좋은 스킬이죠. 계산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제 스킬북에 걸맞은 대가를 치를 차례.
요정은 일반적인 화폐나 아이템 따위는 받지 않는다.
받아 가는 건 시스템적인 것들.
대표적인 예로 소환자의 스킬이나 특성, 슬롯, 랭크 등이 있다.
나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스킬로.”
뜻밖의 스킬이나 특성을 익히면서 사용처가 줄어든 것들이 있었으니, 그걸 지불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서 스킬을 지목했다.
▷윈드 아머(C+)
원래는 조합을 노리고 익힌 스킬이었지만, 경매에서 [현명 갑옷]을 손에 넣으며 계획이 살짝 변경되었다.
다른 스킬을 위한 밑거름으로 쓰는 게 낫겠지.
그러나 스킬북의 요정은 고개를 저으면서 좌우로 붕붕 날아다녔다.
“죄송한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요. 하나 더 얹어 주셔야 돼요.”
윈드 아머는 나름 흔한 스킬이라, C+랭크까지 올렸음에도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이것만으로는 스킬북 교환을 안 해 주니, 반드시 스킬 하나를 더 얹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상한 바였기에 나는 다음 스킬을 지목했다.
“이것까지 하지.”
▷칠윈드(B+)
나름 수고가 많이 들어간 스킬.
보스 몬스터한테 복사해서 고정핀으로 내 걸로 만들었으며, 거기다 랭크업까지 써서 올렸다.
그래서 살짝 아깝기는 한데, 빙백탄과 둘을 놓고 고르자면 무조건 빙백탄이었다.
다른 스킬이나 특성을 대가로 지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충분한가?”
“충분하고 말고요. 오히려 거스름돈이 조금 남겠네요.”
“불만 없으면 이대로 진행하지.”
“그럴게요! 시작합니다.”
이내 스킬북의 요정은 방정맞게 내 주위를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시야 한 켠에 알림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윈드 아머(C+)’가 삭제되었습니다.] [‘칠윈드(B+)’가 삭제되었습니다.]이어서 빙백탄 스킬북이 둥실 떠서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환한 빛을 뿌리며 내 몸에 흡수되었다.
– 파아앗!
[‘빙백탄(E)’을 습득합니다.]그럼에도 요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내 주위를 날아다녔다.
“거스름돈까지 드릴게요!”
[‘빙백탄’의 랭크가 상승합니다. (E→D)] [‘빙백탄’의 랭크가 상승합니다. (D→C)]“C랭크 중후반까지 올려드렸어요. 조금만 더 노력하시면 B일 거예요.”
“알겠다.”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뵐게요!”
스킬북의 요정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아하게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익히자마자 C랭크라.’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겠군.
픽스 존 슬롯을 살짝 바꿔야겠지.
나는 시험 삼아 빙백탄을 시전해 보았다.
손가락 끝에 강력한 냉기가 모여든다.
현음옥마지와의 차이점이라면 고드름처럼 꽁꽁 얼어붙지는 않는다는 거다.
나는 그걸 서예인에게 보여 주면서 말했다.
“우리 수련하러 갈까요? 트레이닝 센터.”
조금만 더 하면 B랭크라니, 수련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서예인은 냉기가 감도는 손가락을 보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
“왜? 갑시다.”
– 도리도리,
“안 가?”
– 도리도리,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