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29
429화 예선전 (4)
교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정말, 꼭 하셔야겠습니까?”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정말, 꼭 해야겠어.”
검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지금 그녀가 하려는 건 바로 예선전.
학생들 사이에 몰래 섞여 들여가서 경기를 치를 생각이다.
티 나지 않게 겉모습도 바꾼 상태.
평소에는 어린아이 같은 앳된 모습인 반면, 지금은 껑충 자란 데다 번듯하게 용살학원 교복까지 차려입었다.
‘저 이 학교 학생이거든요?’하고 우기면 열에 아홉은 속지 않을까.
물론 겉모습만 속이는 걸로는 예선전을 치를 수 없다.
애초에 기록에 존재하질 않으니 말이다.
때문에 검후도 교장을 졸라 댔고, 끝내는 목적을 이루고 만 것이다.
교장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까마득한 선배의 부탁(협박)을 들어 주어야 했지만, 이 상황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그런 낌새를 알아챘는지 검후가 그를 달랬다.
“너무 그러지 마라. 어차피 이벤트성이잖아? 예선에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픽스 존이라 한들, 검후에게 승리를 따낼 학생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사실상 매칭이 되는 순간 승패가 정해진다고 봐야겠지.
이 점을 모두가 알기에, 몰래 치르는 경기들은 이벤트성.
상대하는 학생의 전적에는 아무 영향이 없게 조정했다.
만에 하나 이기는 경우에는 1승 처리를 해 주겠지만 말이다.
또한 관중들 사이에서 검후를 알아보는 이가 있을 것을 우려해서, 경기는 전부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장은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전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애들 기가 꺾일 거 아니에요. 자라나는 새싹들 짓밟는 게 뭐 그리 재밌단 말입니까.”
“무슨 소리야? 양민학살이 제일 재밌는 건데.”
검후가 어리둥절해서 되묻자, 교장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노망난 할망구.’
순간 검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너 방금 노망난 할망구라고 생각했지.”
“아닙니다.”
교장은 시치미를 뚝 뗐고, 검후는 얼마간 그를 노려보다가 작게 콧방귀를 꼈다.
“됐어, 아무튼 다녀올게.”
“재밌게 노십쇼.”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다음, 예선전을 치르는 학생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교장으로서는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맞나 모르겠네.’
나는 올바른 선택을 내린 걸까?
외압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어야 했나?
아니면 이벤트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어찌 됐든, 이미 물은 엎질러지다 못해 바닥에 스며든 상황이었다.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라졌던 검후가 인파를 헤치며 모습을 드러내더니 자신에게 터덜터덜 걸어왔다.
교장은 시간을 확인하고 의아해졌다.
“왜 벌써 오십니까? 이제 한 경기 치르셨을 텐데.”
“막상 해 보니까 별로 재미없네.”
검후가 심드렁한 투로 답했다.
처음에 보였던 열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상태.
그녀는 계속 터덜터덜 걸어 그대로 교장을 지나쳤다.
“어디 가십니까?”
“숙소. 흥도 깨졌으니 그냥 쉴란다.”
“아, 예. 들어가십쇼.”
교장은 꾸벅 묵례했다.
그러나 그는 멀어져 가는 검후의 뒷모습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분이 저렇게까지 휙휙 바뀐다고? 하여간 할매 변덕하곤…….’
한편, 검후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적잖은 충격에 빠져 있었다.
방금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졌어?’
* * *
‘오늘 무슨 마가 꼈나.’
대진운이 왜 이러지?
첫 경기 남궁창천, 두 번째 경기 오세훈에 이어, 세 번째 경기도 엄청난 실력자가 매칭되었다.
넥타이 핀을 안 꽂아서 2학년인지 3학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평소 못 보던 얼굴이니 선배인 건 분명했다.
이미 기권으로 1패가 적립된 터라 어쩔 수 없이 경기에 임했고, 상당히 고전한 끝에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체감 난이도는 남궁 선배 이상.
픽스 존이 아니었다면 아마 필패였겠지.
‘한소미랑 뭐가 많이 비슷하던데.’
검술이나 보법, 스킬, 운영 방식 등에서 겹치는 게 많았다.
개한테 사저가 있었던가?
나중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이제 다음 경기 잡아야 되는데.’
드물게도 걱정이 앞선다.
또 어디 동아리 부장이랑 붙는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확률이지만 벌써 3연속으로 걸렸는데, 4연속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서브 퀘스트를 다 깰 수 있을지 모르겠네.’
최대 달성도로 클리어하려면 본선까지는 가야 한다.
그러나 강자들을 연속으로 만나서 내 패를 다 공개하게 되면, 보상을 얻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손해.
도중에 발을 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듯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다시 대기열이 줄어들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원형 투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스코어보드를 확인했고, 곧바로 쾌재를 불렀다.
‘병철아, 내 승리다.’
[김 호 vs 손형택]거듭되는 악운을 극복해 내고 마침내 1학년과 매칭이 된 것이다.
심지어 상대는 자주 샌드백으로 등장하는 손형택.
한결 기분이 나아졌기에, 나는 맞은편을 향해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형택이 안녕? 정말 오랜만이다!”
“닥쳐라.”
손형택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 * *
홍염백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두 팔에 온갖 간식거리를 잔뜩 안은 채로.
특별히 지정석은 없었기에 빈 자리를 찾다가,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우렁차게 외쳤다.
“아니!! 이게 누구야! 토파즈 마탑주 아니야!”
관중들의 시선이 홍염백에게 집중되었다.
그중에는 물론 토파즈 마탑주, 송천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역시 초대를 받고, 송 씨 남매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던전섬을 찾은 것이다.
송천호는 홍염백을 보자마자 피곤과 짜증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예나 지금이나 시끄러운 건 여전하군.”
“너도 여전히 딱딱하구나!”
둘은 학창 시절 때부터 숱하게 치고 받은 라이벌이었다.
하도 싸우다 보니 미운 정이 들어서, 나중에는 거의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홍염백이 송천호 옆자리에 대고 턱짓했다.
“거기 비었지?”
“여기는 자리가.”
“비었구만! 잠깐 앉았다 간다!”
그리고 대뜸 엉덩이를 붙이고 앉더니, 잔뜩 사온 간식거리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송천호의 불편한 눈초리를 느끼고 머쓱하게 웃는다.
“내가 눈치가 없었구만. 팝콘?”
“됐다.”
“핫도그? 오징어?”
“됐다고 했다.”
거듭된 거절에 홍염백은 그러려니 하는 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다음 정면의 무대로 시선을 옮겼다.
“천기 천혜는 몇 조야?”
“3, 4조다.”
“오, 우리 애들돈데. 잘하면 붙겠구만?”
“바라는 바다.”
두 아버지가 호승심 가득한 눈빛을 교환했다.
송천기와 홍예화가 붙으면 송천기 쪽의 승률이 더 높다.
반면 송천혜와 홍연화는 용살학원에 입학한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붙은 적이 없었다.
잘하면 이번 대회에서 모두의 궁금증이 풀리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3, 4조 예선은 시간 관계상 내일 진행될 터.
홍염백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2조 얘기를 해 보자고. 본선은 누가 갈 것 같냐?”
“남궁세가 소가주 실력이 상당히 출중하다더군. 벌써 3학년과 비견될 정도라던가.”
“그건 나도 들었지.”
때마침 남궁창천은 경기를 치르는 중이었다.
상대는 에메랄트 마탑 부장, 목종화.
커다란 나무 골렘 두 기가 합공을 가하고, 흙으로 빚은 갖가지 도형들이 빗발친다.
그럼에도 남궁창천은 어렵지 않게 공세를 뚫으며 목종화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어서 송천호는 무대 한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오세훈이 빛나는 망치 여럿을 부리고 있었다.
“천기 말로는 선도부장도 보통내기가 아니라더군.”
“마음만 먹으면 우승도 거뜬하다지?”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듣기로는 본선에 진출할 생각조차 없다 하니, 사실상 우승 후보에서는 제외된 셈이다.
이후에도 두 아버지의 입에서 실력자들 몇 명이 더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홍염백이 씨익 웃으며 운을 띄웠다.
“사실 눈여겨 보는 아이가 하나 더 있거든.”
“마찬가지다.”
이내 그들은 거의 동시에 무대 한쪽을 쳐다보았다.
바람 마법으로 상대를 농락하는 김호를.
그리고 동시에 시선을 교환했다.
“……너도?”
“……우연의 일치군.”
두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며 김호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송천호가 말했다.
“마법의 수발과 운용이 아주 훌륭하다.”
“그렇지. 본선은 충분히 가겠어.”
홍염백도 곧바로 맞장구쳤다.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실제 실력은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곧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성격도 모난 곳은 없어 보이고……. 여기까진 합격이군.’
홍연화가 김호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건 분명했다.
평소 자신 앞에서는 보인 적이 없던, 조신하고 순둥순둥한 모습들을 보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홍염백은 던전섬에서의 목표를 살짝 수정했다.
원래는 딸들 보고 편하게 대회 구경하다가 갈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김호를 믿고 홍연화를 맡겨도 될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한 마탑을 다스리는 종주.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치적인 감각도 매우 뛰어났다.
겉으로는 막나가는 듯 보이지만, 여기에는 모두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흔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마찬가지로, 첫 만남 때도 그는 이따금씩 훅 들어가는 발언들을 던지며 김호를 유심히 살폈었다.
대응이 생각보다 매끄럽고 노련했기에 많은 것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현재로서는 합격점을 줄 만했다.
‘다만 문제라면…….’
홍염백의 시선이 흘긋 다른 곳을 향했다.
서예인이 경기 상대에게 마력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언급은 안 했지만 2조 예선전이 시작된 이후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보아, 본선 진출이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안정미 팀장과도 인사를 나누며 출신지를 파악한 상태.
‘혜성그룹이라…….’
여러모로 딸에게는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듯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