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3
43화 결투 (5)
“크아아악!”
빠르게 회전하는 어스 클러스터가 곽지철의 얼굴을 마구 갈아 버렸다.
보호 마법이 적용되지 않았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다급히 어스 클러스터를 해제하여 고통에서 벗어난다.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진 잔해들이 그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듯했다.
비슷한 수에 서너 번쯤 당하고 나면, 아무리 시야가 좁은 사람이라도 조금은 감을 잡는 법이다.
곽지철 역시 몸이 고생한 덕분에 김호의 수법을 꽤 정답에 가깝게 알아낼 수 있었다.
‘바람! 바람이다!’
바람으로 자신을 밀고 당기며 농락한 것이다.
그로 인해 보였던 추태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고, 더욱 급격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사람 열 받게 만드는 데에는 도가 튼 놈 아닌가.
또다시 공격 마법을 시전하려는 순간,
– 휘이잉—
미약한 산들바람이 곽지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몸이 움찔 떨리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아무 대비 없이 공격에만 치중하면 방금 전과 같이 저놈에게 빈틈을 내줄 뿐이다.
일단은 바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봐야 한다.
곽지철의 스태프가 녹빛을 발했다.
방금 해제한 어스 클러스터의 잔해가 척척 쌓이며 둥그런 담벼락이 세워졌다.
– 후웅-!
그러나 다음 순간, 뒤쪽에서 갑자기 불어온 강풍이 곽지철의 등을 강하게 떠밀었다.
그는 자신이 소환한 벽에 얼굴 박치기를 하고 말았다.
“크엑! 이 개, 개…… 같은 놈이!”
타의적으로 벽을 끌어안은 와중에도 스태프를 움직여 등 뒤에 벽 하나를 더 세웠다.
마지막으로 뚜껑을 덮고 빈틈을 보완하자 돌로 지은 작은 요새가 완성되었다.
다행히도 바람은 요새 안까지는 침범해 들어오지 못했다.
‘한숨 돌렸군.’
지금부터는 바깥을 살피면서, 나무골렘과 원거리 마법으로 소모전을 유도하면 될 터.
“이야……. 저건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당규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주 방어, 거북이 전법.
치졸하기는 하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곧잘 쓰이는 전법이기는 했다.
문제는 그 거북이 전법을 쓰는 사람이 곽지철이라는 점이다.
3학년 골렘을 빌렸으면 시종일관 완전히 압도해도 욕을 퍼먹을 텐데, 우주 방어?
당규영이 무대를 가리키며 목종화를 놀려 댔다.
“야, 솔직히 내가 저거보단 더 남자답겠다. 그치?”
“……닥쳐라.”
목종화가 씹어 뱉듯이 대꾸했다.
그로서도 곽지철의 행태가 몹시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에메랄드의 위신을 세우고자 한다면 결투에서 승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투의 내용도 중요하다.
그런데 저런 추한 꼴이라니.
이제는 이겨도 본전치기조차 못한다. 그냥 무조건 손해다.
한편 당규영은 턱을 괸 채 생각했다.
‘저건 어떻게 뚫으려고.’
치졸하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곽지철의 요새는 제법 견고한 편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써왔는지 숙련도가 높고, 거기에 2, 3학년들 장비의 보너스까지 더해져서 더욱 강화된 상태.
– 쿵! 쿠웅!
요새 밖에서는 나무골렘이 땅을 모조리 뒤엎어 가며 공격을 퍼붓고, 곳곳에서 만들어진 어스 클러스터들이 자갈을 쏘아 보내기 시작한다.
김호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그 모든 공격들을 회피한다.
너무 빨라서 운동화 발이 흐릿하게만 보인다.
‘결국에는 우리 후배님이 이길 거 같긴 한데.’
골렘을 처음 본 순간의 걱정은 이제 많이 희석되었다.
[김 호 100% vs 곽지철 68%] [남은 시간 4:57]김호의 체력이 100%였으니까.
여태까지 단 한 번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면 곽지철은 꽤 피해가 누적된 상태.
이대로 계속 피하면서 제한 시간을 모두 쓰고, 판정승으로 마무리 지어도 되겠지.
‘근데 그걸로 만족할 인간 같지는 않단 말이야.’
곽승재가 보는 앞에서 인페르노 피스트를 갈기면 갈겼지, 지지부진 판정승으로 끌고 갈 성격은 아닌 듯하다.
분명 더 준비해 놓은 게 있으리라.
“……!”
“서 소저, 무언가 보이는 게 있소?”
“……!”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것은 서예인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김호의 정보 대부분이 물음표로 보였다.
[증?] [??포?(?+ -> B?)]그러나 정보는 수치화되어 표시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서예인에게는 보였다.
김호의 기세가 순간 급격히 치솟는 것이.
[도둑걸음]을 극한까지 활용하며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던 운동화 발이 멈추고.김호가 제자리에 서서 나무골렘을 똑바로 마주했다.
누가 봐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금방이라도 커다란 나무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나무 주먹에 얻어맞기 직전, 김호가 자신의 손을 들어 가볍게 갖다 댔다.
– 텅-!
나무골렘의 주먹이 높이 튕겨져 올라갔다.
한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자세.
상반신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그 빈틈투성이 가슴팍을, 김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며 툭 밀쳤다.
“어, 어어?”
요새 안의 곽지철이 본 것은, 육중한 나무골렘의 두 발이 바닥에서 붕 떠오르더니, 자신을 향해 무섭도록 빠르게 가까워져 오는 광경이었다.
의문이 가득 담겼던 ‘어어’가 금세 비명으로 바뀌고,
“어어!? 어어어!! 으아아아악!!”
– 쿠쿠쿠쿵!!
곽지철의 작은 보금자리는 날아드는 나무골렘에 형편없이 짓뭉개져 버렸다.
그 안의 곽지철도.
“저……!”
“무슨……!”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순간 경악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하수연 역시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맙소사.’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김호가 [공백 스킬북]으로 만들어 낸 것은 바람의 망치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수십 배는 강력한,
육중한 나무골렘을 짚 인형처럼 날려 버리는 태풍이었다.
조금 전에는 김호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에 안도했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더 실수한 것은 없나 되짚어 보고 있었다.
‘우리 화해한 거…… 맞지?’
[김 호 100% vs 곽지철 61%]그럼에도 경기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아직 곽지철이 전투 불능이 되지 않았다는 뜻.
과연 무너진 돌무더기가 들썩거리더니 곽지철이 어기적어기적 힘겹게 기어 나왔다.
그의 얼굴은 전의를 상실하고 하얗게 질려 있었다.
“……!”
그리고 나오자마자 김호와 시선이 마주쳤다.
곽지철은 김호가 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손가락이 위쪽을 향하자,
– 부웅!
엄청난 부유감이 들었고, 다음 순간 그는 수 미터 높이에 떠올라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 쾅!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투명한 거인이 그를 붙잡고 아래로 내던진 것 같았다.
“크……어억……!”
겨우 몸을 일으킨 곽지철의 시야에, 김호가 또다시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는 게 보였다.
그의 눈이 커졌다.
“아, 안 돼—”
– 부웅!
곽지철이 공중에 떠오른 상태에서 다급하게 외쳤다.
“내…… 내가 졌다! 항복할 테-”
– 쾅!
“……!”
– 부웅!
– 쾅!
세 번째로 패대기쳐지자, 곽지철은 결국 간신히 붙들고 있던 정신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 * *
[김 호 Win vs 곽지철 Lose]“프흫흐흫흫!!”
당규영이 신나게 웃어 재끼며 내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이긴 건 나인데 본인이 더 기뻐한다.
“잘했다, 잘했어! 아주 그냥 속이 뻥~! 프흫흫흐흫흫!”
관중석의 고현우, 서예인, 신병철 역시 멀찍이서 승리를 축하하며 다가오는 중이다.
반면 에메랄드 마탑 진영은 완전 초상집 분위기였다.
곽승재가 기절한 동생을 수습하고, 목종화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대자연 동아리 쪽은 왠지 모르게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
아무튼, 이제 수금할 시간이다.
“…….”
내가 다가가자 목종화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화를 삭였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 인벤토리에서 [제작 VIP 티켓]을 꺼내서 넘긴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넘기기 싫은가 보다.
하긴 저게 어떤 아이템인데.
나는 티켓을 품 안에 갈무리한 뒤 말문을 열었다.
“제안 하나 할까요.”
“……뭐냐.”
“이번 결투 리플레이. 비공개로 돌리는 건 어떻습니까?”
“……!”
이번 결투가 공개되면 에메랄드 마탑은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1학년끼리의 결투에 3학년 장비와 골렘을 지원해 주었고, 그러고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했다.
이리저리 밀쳐지고 당겨지고 날아다니는 곽지철의 행위 예술은 덤.
가능하다면 없던 일로 하고 싶겠지.
그래서 내가 먼저 동아줄을 내밀어 주었다.
잠시 침음하던 목종화가 되물었다.
“결투도 판돈이 걸리고서야 받아들인 놈이 우리에게 유리한 제안을 던진다라.”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장사치가 따로 없군.”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죠. 받으실 겁니까?”
목종화로서는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어떻게든 내 입막음을 하는 게 이미지가 박살 난 뒤 수습하는 것보다는 싸게 먹힐 테니까.
“쯧. 원하는 걸 말해라.”
“지금은 딱히 없고, 나중에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좋습니다. 그럼 저는 비공개로 돌릴게요.”
선심 쓰듯 말했지만, 리플레이를 비공개하는 건 나 역시 바라는 바다.
[윈드포스]에 대한 정보는 천천히 퍼질수록 유리하니까.목종화가 이 제안을 수락하리라 확신했기에 결투에서 윈드포스를 온갖 방식으로 펑펑 써 댄 것이기도 하다.
다른 이유로는 목종화에게 빚을 지워 두기 위해서.
에메랄드와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여기서 더 나가면 싸움이 지저분해질 가능성이 크다.
교칙 위반은 기본이요, 그 위의 위험한 선까지 넘나드는 진흙탕 싸움.
오는 족족 쓰러뜨릴 수는 있어도, 그것 때문에 내 성장이 방해를 받는다면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다.
괜히 서예인이나 고현우가 피해를 보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반걸음 양보했고, 그 대신 목종화의 발을 묶었다.
나에게 일말의 부채감을 느끼는 동안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양반은 못 되는 인간이라 나중에는 생각이 바뀔지 모르지만,
‘그때는 내가 충분히 성장한 뒤겠지.’
에메랄드 마탑 정도는 가볍게 짓밟아 버릴 수 있을 만큼.
서로의 속내야 어떻든, 겉으로는 임시 휴전이었다.
목종화가 나에게 턱짓으로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그새 정신을 차린 곽지철은 내 눈을 감히 마주치지도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비틀거리며 목종화를 따라갔다.
곽승재는 나에게 담담한 시선을 한번 보낸 후 에메랄드 일행에 합류했다.
그 뒷모습들을 잠시 지켜보고 있는데, 손가락 두 개가 살며시 내 볼을 꼬집더니 주욱 잡아당겼다.
“이거이거, 보면 볼수록 완전 능구렁이네?”
“슨배님, 이거 노코 애기허시조.”
당규영의 손을 볼에서 떼어 냈다.
원래도 묘하게 거리감이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동아리 영입 제안을 한 뒤로는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리플레이 비공개 그거 다 계산하고 던진 거잖아. 그러면서 손해는 하나도 안 봤고.”
“눈치가 빠르시네요.”
“괜히 부장이겠냐. 근데 목종화한테는 뭐 부탁할 거야?”
“나중에 차차 생각해 봐야죠. 선배님한테 했던 거랑 비슷한 수준일 겁니다.”
“아, 맞다. 네가 말하니까 생각나네.”
당규영도 [생명의 큐브]의 정보를 열람하는 대가로 내 ‘작은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었다.
그 작은 부탁이란,
– 마법공학 동아리 부장한테 소식 하나만 전해 줘요.
–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면 더 좋고.
– 신입생이 10x10x10 큐브를 완성시켰다고.
“어디까지 진행됐어요?”
“흘리는 건 진작에 흘렸지. 나한테 의뢰도 들어왔어.”
“의뢰요?”
“한번 만나 보게 자리 좀 마련해 달라더라. 어쩔래?”
“잘됐네. 만나 보죠.”
다음 아이템으로 넘어가기 전에, 딱 하나만 더 해 먹자.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