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30
430화 예선전 (5)
나는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압축된 바람이 전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 콰아아아—!
“크윽…….”
2학년 선배는 파괴돌풍에 제대로 직격당한 탓에, 비틀거리며 몸을 못 가누다가 결국에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스코어보드에 경기 결과가 출력된다.
[김 호 Win]Vs
[조 찬 Lose]‘어떻게 사람 이름이 브렉퍼스트…….’
아무튼 이걸로 예선전 경기는 다 치른 셈.
당연하게도 본선 진출자 명단에 내 이름이 보였다.
‘역시 남궁 선배도 있네.’
그 실력이면 나머지 경기는 다 이겼겠지.
매우 유력한 우승 후보다.
반면 오세훈의 이름은 명단에 없었는데,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기보단 안 한 듯했다.
저 양반도 어느 정도는 나랑 비슷한 과니까, 도중에 설렁설렁 하거나 나처럼 기권했겠지.
그렇다면 ‘오세훈에게 기권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의문이 남는데, 나는 옳은 판단이었다고 본다.
평소 나한테 보이던 관심을 생각하면, 그 경기만큼은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
한편 서예인도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를 마치고 걸어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곤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거기다 대고 내가 물었다.
“해치웠나?”
“해치웠다.”
“대진운 괜찮았냐? 나는 좀 고생했거든.”
“……?”
서예인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예선전 경기들을 되짚어 보는 듯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답한다.
“무난했어.”
“그렇구만.”
빛덩이 행운과 찻집 사장의 불운이 붙으면 빛덩이 행운이 이기는 모양이다.
새로운 발견이군.
관중석으로 돌아가니, 고현우와 신병철이 우리를 맞이했다.
“김 형, 서 소저. 어서 오시오. 본선 진출을 축하하오.”
“아이고~ 형님, 누님, 여기 자리를! 맡아 두었습니다!”
신병철은 거의 껌벅 죽다시피 했는데, 우리한테 베팅하며 대박을 쳐서일 것이다.
건 사람이 많지 않았던 만큼 배당률이 상당했을 테니까.
아마 1조 다크호스들에게 잃었던 1만 포인트를 메꾸고도 남았겠지.
나는 빈 좌석에 걸터앉으면서 엄살을 부렸다.
“좀 힘들더라, 대진운이 영 별로라서. 하마터면 탈락할 뻔했어.”
그러면서 슬쩍 눈짓을 보내자, 서예인이 나를 마주 보더니 같이 엄살을 부렸다.
“……힘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신병철을 쳐다보았다.
“우리의 노고가 느껴지나요?”
“아유, 그럼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누님!”
“고마움을 느끼고 있나요?”
“물론입죠.”
“한턱……. 내야겠지요?”
신병철은 순간 멈칫했다가, 빠르게 표정 관리를 하며 답했다.
“당연히 내야지요, 한턱! 덕분에 얻은 포인트가 얼만데. 다들 끝나고 뭐 없지?”
“없지.”
“본인도 없다오.”
고현우도 평소와는 달리, 끝나자마자 트레이닝 센터로 달려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본선을 앞두고 몸을 혹사시키는 것보다는 푹 쉬면서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게 나은 선택이니까.
모두의 일정을 확인하자 신병철이 시원스레 말했다.
“그럼 저녁들 같이 먹읍시다. 번화가 가서.”
“번화가까지? 웬일이냐 네가.”
“이왕 쏘는 김에 크게 쏴야지.”
“사나이 마인드 훌륭하고.”
“아예 지금 출발해 버려?”
신병철은 불이 붙었는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기세였다.
우리도 별다른 일정이 없는 만큼 바로 번화가로 이동해도 상관없었고.
다만 한 가지 떠오른 게 있어서 말했다.
“먼저 가 있어. 잠깐 들를 데가 있어서.”
“뭐 그러든가.”
나는 셋을 먼저 보낸 다음, 다시 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무대 근처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교직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이수독도 있었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가 눈을 번뜩였다.
“본선에 진출했더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저 기권하려고요.”
“왜지. 충분히 더 올라갈 수 있을 텐데.”
이수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 실력을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으니 엄살은 안 통하겠지.
나는 그냥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너무 많이 드러낸 것 같아서요. 이쯤에서 빠지려 합니다.”
“…….”
서브 퀘스트 최대 달성도도 찍었겠다, 나로서는 본선을 이어 갈 이유가 없다.
이수독은 내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뭘 그렇게 자꾸 빼고 숨기려 드나 싶은 기색이지만, 선생이라도 학생의 참가를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
좋게좋게 말해서 설득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애초에 이 양반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이내 그가 턱을 까딱였다.
“……기권 처리해 주지.”
“감사합니다.”
“허나 언제까지 감출 수 있겠나?”
“잘 조절해 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답한 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아레나를 나서서 번화가행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웬 순박한 인상의 장년인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네 아버님인가 싶어서 빤히 바라보니, 그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김호 학생,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제대로 찾아왔군요.”
장년인의 눈이 보랏빛으로 빛났다.
* * *
환마는 섭혼술을 펼치면서 생각했다.
‘일이 술술 잘 풀려 주는군.’
섭혼술의 단점이자 한계라면, 거는 대상의 수가 늘어날수록 운용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은 약물이나 진법 등의 매개를 곁들이는 거고.
조사한바 김호는 친구 둘에서 셋과 함께 어울려 다닌다는데, 아무리 1학년이라도 동시에 걸었다간 실패할 위험성이 존재했다.
해서 진법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김호는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나와서 무슨 일을 처리하는 듯했다.
덕분에 환마로서는 예상보다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이렇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기세라면 혈풍검을 확보하는 것도 금방이겠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지만,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김호가 혈풍검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예감이.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예,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지금쯤 두 눈이 탁해졌어야 할 김호가, 더없이 멀쩡한 상태로 그에게 질문을 건넨 것이다.
순간 섬찟한 기분이 든 환마였으나, 이런 경우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정신력이 강한 놈인가.’
교에도 종종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는 놈들이 있었다.
물론 이럴 때의 대처법은 간단했다.
더 강하게 섭혼술을 걸면 무조건 넘어오기 마련.
따라서 환마는 계속 친철한 낯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반면 그의 눈은 더욱 강렬한 보랏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개를 좀 받고 왔는데,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말씀하십시오.”
그러나 김호의 표정에는 요만큼의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조금씩 귀찮은 기색마저 드러내는 중이다.
‘이것도 안 통했단 말인가? 정신력이 유독 강건한 놈이로다.’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이었다.
환마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물러나서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나?
그러나 지금 같은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는 미지수였다.
그때는 김호도 자신을 더욱 경계하고 있을 테고.
또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일평생 연마했던 섭혼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좋다.’
자신이 가진 최고 수법으로 놈을 굴복시켜 보이리라!
이윽고 그는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려 두 눈에 집중했다.
그리고 더는 숨기지 않고 평소 말투로 말했다.
“내 눈을 봐라!”
지금 그가 시전하는 것은 섭혼술의 극의.
대상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침잠해 들어가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내고, 결국에는 붕괴시켜 버린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는 이지를 상실한 백치만이 남을 테니, 숨길 이유도 없는 것이다.
“…….”
김호는 순간 두 눈에 이채를 띠면서도, 시키는 대로 그를 마주 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따분해 보이는 눈으로,
더욱 오기가 동해서 정신을 집중하던 환마는, 곧 자신의 몸이 어딘가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화아악!
다음 순간 그는 넓은 장소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두컴컴했으나, 어렴풋한 윤곽을 통해 이 장소가 거대한 신전이라는 사실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 바깥에서 새어 들어오는 미약한 달빛이 언뜻 신전을 비췄다.
그제서야 환마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인영들이 신전을 가득 메우며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수는 족히 수백은 되는 듯했다.
개중 가까이 있던 인영 하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았다.
– 번뜩!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환마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온몸이 짓눌려 터질 듯한 압박감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에도 비슷한 압박감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
‘이건 마치……. 지존의……!’
바로 지존, 혈교주를 알현할 때.
눈앞의 인영이 지존과 같은 격을 지녔음을 의미했다.
뒤이어 다른 인영들도 하나둘,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지닌 격도 전혀 떨어지지 않아 보였고, 환마가 느끼는 압박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기혈이 뒤틀려 피를 한 사발 토해 내고 말았다.
“쿠웨엑—!”
그런데 그때, 자신에게 집중되던 시선이 거두어졌다.
장내의 모든 인영들이 일제히 한곳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무릎을 꿇으며 더없이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 척!
그것만으로 또다시 천근 거력이 내리누르는 느낌이 들어, 환마는 비틀거리다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가까스로 시선을 들어 올려 보니, 그 끝에 자리한 것은 커다란 옥좌.
그리고 그곳에는 김호가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법을 펼치기 직전과 같은, 어딘지 모르게 따분해 보이는 눈으로.
“…….”
비현실적이기 그지없는 상황에, 환마는 덜덜 몸을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래……. 이건 환상이다!’
내력을 무리해서 끌어 올리고,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섭혼술을 펼친 탓에 주화입마가 온 것이다.
그는 섭혼술의 대가인 만큼, 정신을 다스리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면으로 깨부수는 수밖에 없다!’
환마의 온몸에서 보랏빛 강기가 줄기줄기 피어올랐다.
그는 그 상태로 김호를 향해 돌진했다.
“혈세천하—! 혈마앙복—!”
* * *
같은 시각.
암영대주는 얼마간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긴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환마가 나섰으니 금방 정보를 얻어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 편한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믿고 있던 환마가 갑자기 미친놈처럼 몸을 덜덜 떨다가 피를 한 사발 토했다.
그리고 또 엎드려서 덜덜 떠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마공을 펼치며 김호에게 달려드는 게 아닌가?
암영대주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발.”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