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본선 개막
던전섬 어느 은밀한 장소.
아무것도 없던 어둠이 한 차례 일렁거리더니, 장년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암영대주.
환마가 붙잡힌 뒤에도 던전섬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가 한탄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틀어질 수 있단 말인가?’
당초 혈뇌가 세운 계획은 쉽고 간단했다.
환마는 양지에서, 자신은 음지에서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혈풍검을 탈취한 뒤 유유히 던전섬을 벗어나면 끝.
‘그런데 그 약쟁이 놈 때문에……!’
암영대주가 이를 부득 갈았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나 싶던 그때, 환마가 무슨 이상한 걸 처먹었는지 미쳐 날뛰더니, 그대로 제압되어 끌려갔다.
덕분에 전력은 절반 이하로 대폭 감소한 상태.
사실상 임무 속행이 불가능해진 셈이다.
상식적으로는 이쯤에서 실패를 인정하고 교로 복귀하는 게 맞겠지만, 암영대주는 장로로서 혈교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실패는 곧 죽음.’
아마 보고를 올리는 순간 지존께서 그의 머리통을 터뜨려 버리겠지.
설령 살아남는다 한들 죽느니만도 못한 삶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평대원으로 좌천되는 건 물론, 교인들의 온갖 멸시와 조롱을 한몸에 받게 될 테니까.
‘그런 수모를 겪으며 연명할 바에는…… 죽더라도 임무를 완수하는 게 낫다.’
비겁자로 사느니 무인으로서 죽으리라.
암영대주는 다시금 필사의 각오를 다졌다.
물론 현실은 각오만으로 될 정도로 녹록하지 않았다.
환마가 화려하게 난동을 피워 준 덕분에, 용살학원의 경계치는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던전섬에 잠입할 때는 의외로 허술해서 비웃기까지 했으나, 지금은 그 평가가 전면 수정된 상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더니, 명불허전이로다.’
나름 A랭크, 초절정 고수인 그조차도 좀처럼 파고들 틈을 찾지 못했다.
갖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이대로는 시간만 허비할 뿐이다.’
무언가를 얻어 내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보다 과감하게 행동해야 할 터였다.
이윽고 암영대주의 뇌리에 이름 하나가 스쳤다.
‘김호.’
환마가 대차게 실패하는 걸 보고 일단은 목표에서 제외했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달리 파고들 구석이 없으니, 김호라도 다시 건드려 보는 게 나을 듯하다.
바람 관련 스킬들을 구사한다니 혈풍검과 점접이 있을 가능성도 높고.
‘물론 그놈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터.’
당시 암영대주는 환마와 김호의 전투를 지켜봤었다.
정확히는 김호가 환마의 공격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도망 다니는 것을.
몇 수 되지도 않았으며 환마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단 일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충분히 놀라웠다.
아마 자신이 암습을 가하더라도 얼마간은 버틸 테지.
‘허나 반드시 싸우리란 법이 있는가.’
자신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혈풍검.
그것을 위해서라면 혈교답지 않은 평화로운 방식으로, 대화 및 거래로 해결할 의향도 있었다.
김호가 혈풍검과 전혀 연관성이 없다면 다른 곳을 알아보면 그만.
던전섬이 또다시 시끄러워지겠지만 그 정도야 각오한 바였다.
어차피 용살학원의 경계도는 최대치고, 잔당이 남아 있다는 것도 확신하는 듯하니.
그리고 설령 김호가 비협조적으로, 적대적으로 나오더라도 상관 없었다.
‘호랑이가 될 운명이라 한들 지금은 새끼일 뿐.’
자신이 작정하고 암습을 가하면 손쉽게 목을 비틀 수 있으리라.
다음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는가.
‘무턱대고 들어가는 건 하책.’
김호 본인도 경계심이 높아져 있을 테고, 알게 모르게 호위도 붙었을 것이다.
말 한마디 못 섞어 보고 자신만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암영대주는 이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고 했다.’
김호의 주변인을 통한다면 기회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듯했지만, 어찌 됐든 방향성은 정해진 셈이었다.
이윽고 암영대주의 신형이 다시 스르르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장내에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늦은 밤.
송천혜는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다음 얼굴이 다 덮일 정도로 이불을 끌어올리고, 눈만 내밀어 천장을 응시했다.
“…….”
평소였다면 김호 리플레이 몇 편을 돌려보고, 다른 상위권 학생들 리플레이들도 돌려보고, 마지막으로 김호 리플레이를 재탕 삼탕하다가 잠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밤은 도무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리플레이 수정구만 봐도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홍연화와의 예선전 경기가.
반드시 이길 거라고 확신했는데, 결과는 그 정반대였다.
‘졌어…….’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졌다.
경기 도중 여러 분야를 오가며 겨루었으나, 한 번도 홍연화를 넘어서지 못했다.
심지어 올라운더의 장기인 근접전조차도.
그래서 충격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1학기만 해도 이 정도로 실력차가 나지는 않았다.
멘토링을 받으면서 서로 은근히 염탐도 했었고, 리플레이도 사서 봤지만, 홍연화의 실력은 거의 자신과 엇비슷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혹시 여름방학에?’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그쪽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S랭크 우레군주의 가르침을 뛰어넘을 수 있단 말인가?
조부님 역시 호언장담하지 않았나.
– 너는 토파즈 마탑에서도, 우리 송 씨 가문에서도 보기 드문 자질을 타고났다.
– 그런 네가 두 달이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실력이 늘지 않았을 리가 있겠느냐.
–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면 적수를 찾기 어려울 게다.
그런데 실상은 많이 달랐다.
김호한테는 만날 때마다 농락당하기 바쁘고, 아직까지도 유효타를 못 먹여 봤다.
물론 애초에 실력 상당 부분을 감추고 있었고, 일부 드러난 것만 봐도 엄청났으니 그 하나쯤은 그러려니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홍연화한테도 두들겨 맞는 신세.
현실을 직시할 때도 되었다.
‘조부님…….’
송천혜는 조부님을 향한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에게 우레군주는 우상이자 롤모델이었으며,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다른 생각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어쩌면 조부님은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몰라.
항상 맞는 말씀만 하시는 건 아닌지도 몰라, 하고.
‘하지만…… 그러면 나는?’
여태까지 그를 목표로 삼고 달려왔던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송천혜는 전에 없이 막막한 느낌을 받았다.
탄탄대로였던 앞길에 어둠이 깔리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우울함이 두 배가 되었다.
송천혜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누가 보기라도 할세라,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려 버렸다.
* * *
다음날.
나는 최근 며칠간 그랬듯, 서예인과 아침 식사를 한 뒤 아레나로 향했다.
도중에 고현우도 합류하여 인사를 건넨다.
“김 형, 서 소저. 좋은 아침이오.”
“안녕, 어제 안 잤냐?”
“하하, 눈치챘구려.”
멋쩍게 웃는 고현우.
밤을 샜는지 눈가에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다.
내가 걱정스레 말했다.
“컨디션 조절 해야지, 오늘부터 바로 본선인데.”
“그점은 명백히 본인의 실책이오. 허나 도무지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더구려.”
검후의 이화접목 특강에서 깨달은 게 많았나 보다.
당장 붙잡지 않으면 영영 놓쳐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겠지.
충분히 이해되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본선 성적보다는 실력이 느는 게 중요하지.”
“본인도 그리 판단했소.”
“잘하면 내일 할 수도 있고.”
32강 본선전은 오늘 8경기, 내일 8경기로 나뉜다.
만약 경기가 2부로 넘어간다면 하루 동안 조금이라도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을 거다.
“그렇군. 운이 좋기를 기원합시다.”
고현우가 싱긋 웃었다.
이윽고 우리는 아레나에 도착했고, 관중석 세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나머지 빈자리들 역시 빠르게 채워져 간다.
– 웅성웅성…….
어제는 들뜬 분위기에 약간의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면, 오늘은 그 불안감이 많이 희석된 듯했다.
실제로 별일이 없었던 데다, 학사 측에서 고갈의 마녀를 격퇴했다는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악명 높은 S랭크 마녀를 겨우 한나절 만에 때려잡았다니, 다들 용살학원의 저력을 실감했을 것이다.
‘역시 얘네들 할 때는 하는구나!’하고.
신뢰가 생긴 만큼 걱정도 덜해졌을 테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무대 위에 간이 단상이 마련되었다.
먼저 교장 선생님이 거기에 올라 본선 진출자들을 향해 짧은 연설을 했다.
온갖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었지만,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박 터지게 싸워서 우리를 재밌게 해 봐라!’
실상 그게 모두의 바람일 테고.
이어서 교감 선생님이 단상에 올랐다.
“본선전에 들어가기 앞서, 세부 규칙 및 변경점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MAP:[임의 지형]
“양측 참가자들의 성향을 고려하여, 최대한 공평한 지형을 준비했습니다.”
무작위 지형은 특정 클래스에게 유리할 수 있으니, 이것만큼은 학사 측에서 지정했다는 말이다.
크기는 원형 투기장보다는 훨씬 넓되, 무한정 도망 다닐 수는 없도록 제한적이라는 설명이었다.
RULE:[데스매치][픽스 존(C)] [슬롯][20분 제한][힐링 오브]
“기본적인 규칙은 이전과 동일하며, 제한 시간을 대폭 늘렸습니다.”
20분이나 되니 사실상 판정승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이어서 교감 선생님의 손 위에 싱그러운 녹색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생성되었다.
“또한 위와 같은 [힐링 오브]가 경기장 곳곳에 등장합니다. 닿으면 일정량의 체력이 회복되거나, 디버프가 해제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 곳에 죽치고 있으면 재미가 반감되고, 장기전이면 반의 반감이 된다.
따라서 참가자들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힐링 오브를 더한 것이다.
‘그럴 줄 알고 일찌감치 발 뺐지.’
저 규칙 하나만으로도 공멸안 걸고 도망 다니기 전법이 반쯤 봉쇄되는 셈이니까.
교감의 설명이 이어졌다.
“1부 7경기, 2부 8경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대진표를 확인해 주십시오.”
관객석이 잠시 웅성거렸는데, 왜 8/8이 아니라 7/8인지 의아해서인 듯했다.
그러나 대진표를 보자 그들도 금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빠졌거든.’
[김갑두 vs (기권)]김갑두는 시작부터 16강 진출이군.
두꺼비집에도 볕들 날이 있는 것이다.
관중들의 반응은 당연히 썩 좋지 않았다.
– 아니, 뭔 본선 들어가자마자 빠져?
– 저게 누군데?
– 일부러 가렸나 본데?
– 저런 놈을 뭐 하러 가려 줘? 제대로 박제를 해 버려야지.
여기저기서 익명의 겁쟁이를 씹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내 얼굴 거죽은 언제나 그렇듯 몹시 두꺼웠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투로 서예인에게 묻는다.
“재미없게 벌써 기권을 하네. 대체 누구래?”
“난봉꾼.”
“예? 누구요?”
“난봉꾼.”
회색빛 눈동자가 추궁하듯 나를 빤히 쳐다본다.
고현우는 굳이 끼어들지 않고, 그저 흐뭇한 아빠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 둘을 쳐다볼 뿐이다.
내가 뭐라 말하려던 순간, 타이밍 좋게 교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지금부터 본선 첫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해당 참가자들은 준비해 주십시오.”
스코어보드에 이름 두 개가 떠올랐다.
[서예인 vs 차현주]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