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4
44화 결투 (6)
“퇴부는 재고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목종화는 계속 일정한 걸음걸이를 유지한 채, 고개만 돌려 곽승재를 흘긋 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앞을 보고 걸으며 입을 연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결투 보시지 않았습니까.”
“봤지. 아주 형편없는 쓰레기 같은 결투였다.”
목종화의 말투에는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힘없이 바닥만 보고 걷던 곽지철이 어깨를 움츠렸다.
곽승재는 그런 못난 동생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지만, 말로는 계속 변호를 이어 갔다.
“지철이가 잘했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이건 불가항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장님의 골렘을 상대로 퍼펙트게임. 그게 가능한 자가 1학년 중 몇이나 되겠습니까?”
3학년 골렘에 [어스 클러스터]를 활용한 원거리 공격까지.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피하며 끝까지 100% 체력을 유지하는 것은 1학년은 물론, 2학년이 하기에도 어려운 기예였다.
곽승재가 김호의 입장이었더라도 몇 번 정도는 유효타를 허용했을 터.
다시 말해, 김호는 그것이 가능한 실력자라는 뜻이다.
이번 결투만 놓고 평가하면 유망주급, 혹은 그 이상.
“지철이가 패할 만한 승부였습니다. 퇴부는 지나친 처사가 아닐지요.”
“그렇다 한들 저놈이 에메랄드에 먹칠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먹칠이 정말 제 동생 혼자서 한 것입니까.”
주제 모르고 날뛰다가 처맞은 것은 분명 곽지철의 잘못이다.
하지만 원인을 되짚어 보면 일을 과격하게 밀어붙인 목종화의 잘못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목종화 역시 내심 그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자신의 치부가 들춰진 것이 불쾌했기에, 말없이 제자리에 서서 곽승재를 노려보았다.
“학생선도부가 에메랄드 마탑의 행사에 관여하는가?”
“아니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조언을 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그 조언이 동생의 실수를 눈감아 달라는 말이냐? 곽승재는 매사 사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칼같이 일 처리를 한다더니, 그것도 옛말이군.”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부장님께서 공정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랄 뿐입니다.”
곽승재의 얼굴은 아무 변화도 없이 무덤덤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어쩐지 화를 내 봤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목종화는 점차 화를 누그러뜨렸다.
목종화도 바보는 아니었다.
용살학원에서 3학년까지 살아남고, 한 동아리의 부장 자리까지 오르는 것은 요행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가끔씩 폭급해지는 성격과는 별개로 최소한의 사리 분별은 가능한 자였다.
곽씨 가문은 에메랄드 마탑의 한 축을 이루는 유서 깊은 토 속성 술사 가문.
태어날 때부터 에메랄드 마탑의 일원이었으며,
입학하기 전부터 동아리에 이름을 올렸다.
에메랄드 마탑에 심각한 누를 끼쳤다면 모를까, 이만한 일로 퇴부시키면 뒷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어떤 기회를 얼마나 줄지는 목종화의 재량에 맡긴다.
더 억지를 부린다면 퇴부를 완전히 번복하게 만들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동아리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어디까지나 조언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또한 곽지철이 에메랄드의 체면을 구긴 것은 사실이었고, 응당 그 대가는 치러야 한다고 여겼다.
잠시 침음하던 목종화의 입이 열렸다.
“두 달. 앞으로 두 달간 랭킹을 보고 결정하겠다. 불만 있나?”
“충분합니다.”
“흥.”
목종화는 곽승재, 곽지철 형제를 한번 일별하곤 그들을 두고 걸어 나갔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시간을 주기 위함이 절반, 둘 다 꼴도 보기 싫어서가 나머지 절반이었다.
“…….”
곽지철은 여전히 의기소침하여 고개를 못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망나니처럼 무서울 것 없는 놈이지만 제 형 앞에서는 기가 죽는다.
형이 보는 앞에서 그 추태를 보였고, 형의 도움 덕에 퇴부를 면했으니, 여러모로 면목이 없으리라.
곽승재가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이 들었다면 평소보다 다정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너에게 달렸다.”
“……미안해, 형.”
“사과보다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듣고 싶구나.”
“……최선을 다할게.”
“그래, 이만 가라.”
“…….”
곽지철은 애써 힘찬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곽지철마저 보내고, 곽승재는 홀로 섰다.
그러다가 허공에 대고 말을 걸었다.
“송천혜.”
“!”
골목 너머에서 흠칫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송천혜가 천천히 고개부터 내민 다음, 쭈뼛거리면서 다가왔다.
“……알고 계셨어요……?”
“전에도 말했지. 너는 몸을 숨기는 재주가 없다고.”
송천혜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곽승재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레나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나?”
“그냥 지나가다가 들렀는데…… 요…….”
“네가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관중석에 숨어 있는 걸 봤다.”
“…….”
속이 꽉 찬 돌직구를 얻어맞고 송천혜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이렇듯 곽승재의 성격은 솔직하지 못한 송천혜와는 완전히 상극이었다.
이어서 직설적인 조언을 던진다.
“너는 학생선도부다. 부끄러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당당히 너 자신을 드러내라. 적어도 어설프게 숨다가 들키는 것보다는 낫겠지.”
“……명심할게요.”
곽승재는 거기까지만 하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결투 내용은 어떻던가.”
“대단하더군요.”
“직접 붙으면 제압할 수 있겠나?”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확신은 못 한다, 라…….”
송천혜의 실력은 단연코 1학년 최상위권.
곽지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런 송천혜조차 백 프로 승리를 자신하지는 못한다.
김호가 무엇을 더 숨기고 있을지 모르니까.
당장 이번에 선보인 바람 마법만 해도 그들이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런 자가 300점대에서, 겁쟁이 소리를 들으며,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곽승재와 송천혜가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손은 깨끗했다고?”
“네, 꼼꼼히 확인했어요.”
김호가 그날 밤의 복면인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인페르노 피스트]를 썼다면 고위 대신관이 치료 마법을 들이부어도 며칠은 흔적이 남을 텐데, 그의 손에는 아주 작은 생채기 하나 없었단다.원래는 이 시점에서 다른 용의자로 눈을 돌려야 옳지만…….
자꾸만 그 신입생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모든 것을 자신의 아래로 두는 오만한 눈빛.
복면인을 마주했을 때의 분위기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심증에 불과하다.
[돋보기]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뚜렷한 증거를 잡아내야만 한다.“미안하다. 네가 더 수고를 해 줘야겠구나.”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에요.”
“부탁하마.”
송천혜는 마음속으로도 의욕을 불태웠다.
‘반드시 꼬리를 잡고 말 겁니다.’
* * *
당규영과 신병철은 우리와 조금 더 수다를 떨고 싶은 눈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징계를 수행하러 갈 시간이었다.
아마 지하수로 청소 따위의 궂은일을 맡게 되겠지.
표정에서 귀찮음이 뚝뚝 떨어지지만, 그게 당규영이 택한 길인데 어쩌랴.
금지 아이템을 잔뜩 해 먹은 대가다.
“…….”
서예인은 입을 작게 벌리고 하품을 꽤 긴 시간에 걸쳐서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결투 전에 비해 급격하게 피곤해진 듯하다.
결투는 길어야 10분 정도였는데.
“기숙사 가서 자게?”
“응.”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기 전에 나에게 묻는다.
“신발 도움 됐어?”
“그래, 덕분에 한 대도 안 맞았다.”
임시 보관소 침입 때도 [도둑걸음]만으로는 곽승재의 흙탄환 세례를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다.
[원소 저항]에 막혀서 티가 안 났을 뿐이지.아마 이번에도 도둑걸음만으로 임했다면 최소한 자갈 몇 개 정도는 얻어맞았을 것이다.
그것을 완벽하게 다 피한 것은 서예인이 준 운동화의 도움이 컸다.
“……?”
우리가 신발 이야기를 하자 고현우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가더니, 서예인과 내 운동화가 같은 것을 발견했다.
눈썹이 슬쩍 치켜 올라가고, 입꼬리가 따라 올라간다.
“두 분……. 언제부터 같은 신발을 신게 된 거요?”
“너 무슨 생각 하니?”
“별건 아니고, 그저 보기 좋아서 말이오.”
그러자 서예인이 웬일로 제대로 된 설명을 했다.
다만 슬슬 한계에 다다르는지 말끝이 졸리다.
“김호가 마력탄 특강 해 줬어…… 고마워서 선물했어…….”
“그런 일이 있었구려.”
“응……. 이제 가서 잘게…….”
“들어가시오, 서 소저.”
“푹 쉬어.”
서예인이 느릿하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다음 기숙사로 향했다.
고현우와 나 역시 따로 정산할 것이 있었다.
매점에서 마실 거리를 하나씩 들고, 2주 전과 같은 장소에 섰다.
똑같이 아이스커피를 한 잔씩 들고.
달라진 점이라면 고현우가 저번처럼 한 방에 원샷을 때리는 게 아니라, 마시는 속도를 늦추며 내가 말을 꺼내길 기다린다는 점이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넸다.
“자, 받아.”
그것을 받아 든 고현우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이것이 김 형이 말했던…….”
특수연공실 시즌 패스.
2주간 특수연공실의 효능을 몸소 체감했을 것이다.
내공이 하루가 다르게 척척 쌓이는데 체감이 안 될 리가 없지.
다만 2주 동안 특수연공실에 드나들며 소모한 포인트가 상당할 것이다.
공략전 수석이라 리플레이를 통한 포인트 수급량이 엄청난데도, 지금쯤이면 슬슬 부족해질 시기가 됐다.
시즌 패스를 쓰면 더 이상 포인트 소모 없이, 한 학기 내내 자유롭게 특수연공실에 드나들 수 있다.
무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인 셈이다.
고현우는 한참이나 흔들리는 눈빛으로 시즌 패스를 내려다보더니, 돌연 나에게 정중한 태도로 예를 갖추어 보였다.
“김 형이 약속을 지켰으니 본인도 지키겠소. 본인의 검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함께할 것이오.”
“기대해라. 본전 다 찾을 때까지 열심히 부려 먹을 테니까.”
“하하, 기대하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이어서 내가 물었다.
“지금 [코어] 랭크가 어떻게 돼?”
“지난주에 벽 하나를 넘었소. D등급이라오.”
“빠르긴 하네.”
열차에서 고현우의 코어는 E랭크로,
1학년 중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이제 마나량으로는 겨우 하위권을 벗어난 셈이다.
진척도는 제법 빠른 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주 중으로 C. 가능하겠냐?”
“으음…….”
고현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지금보다 더 노력한다면 가까스로 맞출 것도 같소. 헌데 어째서 C요?”
“[코어]는 C가 정체 구간이거든.”
송천혜 같은 마력 괴물이 아니고서야 유망주들도 대부분 C 끝자락 즘에 걸쳐 있을 것이다.
즉, C를 달성한 뒤부터는 마력 싸움으로는 크게 안 밀린다는 뜻.
그때부터 고현우의 실력을 더욱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어느 부분이 강하고, 어느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한지.
‘다음 주가 대인전 주간이기도 하고.’
예정대로라면 실력을 살펴보기 딱 좋은 규칙이 나올 테니까.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