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49
449화 암영대주
[홍연화 Lose]vs
[송천기 Win]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경기가 끝나고.
홍연화가 터덜터덜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
“고생했어.”
“응…….”
격려의 말을 건네 봐도 시무룩해져서 제 무릎만 내려다볼 뿐이다.
질 거라고 예상은 했겠지만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겠지.
‘그 선배 뒤끝 있으시네.’
송천혜의 마지막 승부수를 똑같이 써서 갚아 준 걸 보면.
그만큼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크다는 뜻일까?
본인은 송 씨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말이다.
또 좋은 말을 해 주려는데, 홍연화가 무언가 떠올린 듯 반짝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바닥 반절 크기의 작은 봉투를 꺼내 건넸다.
“이거…….”
“뭐야?”
“나도 잘……? 몰라……. 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김호한테 전해 달라’고…….”
벌써부터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는데.
물론 확인해보지 않을 이유도 없었기에 봉투를 뜯었다.
안에 든 것은 고이 접힌 부적 한 장.
한가운데에 ‘전할 전(傳)’ 자가 적혀 있다.
‘전음부(傳音符).’
무공 계열 스킬인 [전음입밀]이 부여된 소모품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일회용 무전기인 셈.
지금 받은 것은 일방적으로 수신만 가능한 듯하지만 말이다.
전음부에 손을 얹고 약간의 마나를 불어넣자,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귓가에 들려왔다.
중년, 혹은 장년의 사내로 추정되는 음성.
주인의 성격을 대변하듯 싸늘하고 메말랐다.
– 대단한 배짱이로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전음부를 사용하다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음부에 수작을 부려 놓을 수 있다.
내공을 불어넣으면 폭발한다거나, 섭혼술 등의 정신 마법에 걸린다거나.
그러나 별다른 건 없어 보였고, 정신 공격에는 사실상 면역이라 거리낌 없이 전음부를 사용한 거다.
그게 저쪽 눈에는 배짱이 두둑한 걸로 비친 듯하지만.
사내의 경고가 이어졌다.
– 허튼 짓은 하지 말도록. 이미 짐작했겠지만 네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전음부를 쓰자마자 말을 걸어온 것만 봐도 뻔했다.
아레나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뜻.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접촉해 온 걸 테니, 지금 검후에게 이 사실을 알리더라도 잡아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해서 잠시 동안 가만히 있자, 사내의 어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 현명한 판단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나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마녀보다는 혈교 쪽이겠지.’
그리고 혈교에서 첩보전에 특화된 집단으로는 암영대가 있다.
종합하면 아마 암영대주쯤 되지 않을까.
환마 아저씨랑 같이 던전섬에 들어왔다가 붕 떠 버린 상태겠고.
– 이해가 빠르니 좋군.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다.
혈교 대주가 난데없이 대화를 나누자고 하면 수락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덧붙였다.
– 진정 대화만을 원할 따름이다. 위해를 가할 심산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을 터. 너도 알고 있지 않나?
‘틀린 말은 아니지.’
암영대주쯤 되는 실력자라면 언제 어디서든 암습을 가할 수 있었을 거다.
혹은 환마와 격돌했을 때 가세했거나.
그래 봤자 왜곡 빠지고 끝이었겠지만 말이다.
– 몇 가지 질문만 하고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내 주겠다. 넉넉하게 대가도 치르지.
– 단, 누구에게도 이 일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 발설할 시 어떻게 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테지.
애초에 홍연화를 통해 전음부를 전달한 것부터가 반쯤은 협박이었다.
내 주변인들은 다 파악했으니, 수틀리면 그들부터 건드리겠다는 뜻.
‘협박이 아니라도 갈 이유는 많지.’
1학기 혈교의 목표는 용살학원을 흔들고, 장래의 영웅들을 줄여 두는 것이었다.
반면 현재 목표는 그것과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다.
암영대주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와 환마에게 어떤 임무가 주어졌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터.
더 나아가 큰 틀에서 혈교의 방향성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지.’
암영대주는 여태까지 이름값을 아주 잘 하고 있었다.
환마가 난동을 피운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 학사 측에 작은 단서조차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암영대주가 굳이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접촉해 왔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
반대로 내 입장에서는 이용해 먹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 대화에 응하겠다면 왼쪽 어깨에 손을 얹어라.
시키는 대로 하자, 암영대주가 만날 장소와 시각을 입에 담았다.
– 마지막으로 경고하건대, 허튼 수작을 부렸다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럼 그때 보도록 하지.
이내 전음이 끊어지고, 전음부 역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쪼가리로 돌아갔다.
* * *
학사 부지와 번화가 사이에는 아직 개간이 덜 된 숲이 자리하고 있다.
길도 깔아 놓았고 가로등도 밝혀져 있지만, 학생들의 발길은 매우 뜸하다.
좋은 셔틀버스 놔두고 걸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비도 허술해서, 은밀하게 만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얼마간 멀거니 서 있으니, 검붉은 무복 차림의 장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주서자마자 대뜸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알아보겠느냐?”
그것은 무전기처럼 생긴 기기로, 작게 초록불이 들어와 있었다.
“거짓말 탐지기네요.”
“그렇다.”
어느 쪽이든 거짓말을 입에 담으면 초록불 대신 빨간불이 들어온다.
대화의 진위 여부를 어떻게 판명하려나 싶었더니, 저런 아이템을 준비해 온 것이다.
‘근데 저거 나한테는 안 통하는데.’
거짓말 탐지기는 돋보기와 같은 ‘정신 간섭’계열 아이템.
군주의 정신 방벽은 못 뚫는다.
당연히 그 점을 내색할 필요는 없겠지.
암영대주가 거짓말 탐지기를 내 쪽으로 향하고 물었다.
“누군가에게 이 일에 대해 발설했느냐?”
“아니요.”
“동행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자가 있나?”
“없습니다. 혼자 왔어요.”
불빛은 여전히 초록색.
암영대주는 무표정한 낯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나는 인간 나무늘보를 통해 페이스리딩의 달인이 된 상태.
그가 내심 안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내 암영대주가 품에서 조그마한 꾸러미를 꺼내서 던졌다.
“받아라. 보수다.”
슬쩍 안을 확인해 보니 영약.
랭크도 상당히 높다.
나는 꾸러미를 잘 보관하며 물었다.
“먼저 주셔도 되는 겁니까?”
“상관없다. 아무한테도 발설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지 않았나?”
이후 내가 협조적인가, 제공하는 정보가 유용한가에 따라 죽이고 도로 빼앗을 수도 있다는 뜻.
나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그럼 물어보시지요.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확실히 배짱 하나는 알아줘야겠군.”
암영대주의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죽음의 위험을 앞에 두고도 태연하니 그렇게 느낄 만도 했다.
“뭐 좋다. 무공을 익혔느냐?”
“조금은요.”
“정확히 어떤 걸 익혔는지 말해 보아라.”
“그건 과한 요구 같은데요.”
사실 영약 한두 개쯤 더 주면 못 말할 이유도 없지만, 무인이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절할 터라 나도 똑같이 답했다.
암영대주 역시 비슷한 생각인 듯, 질문을 살짝 바꿨다.
“하면 이건 밝힐 수 있겠지. 네가 익힌 무공이 바람을 주로 사용하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법은 바람 계열이 맞지만, 무공은 빙백탄과 현음옥마지로 빙결 계열이니까.
거짓말 탐지기가 안 통해도 이 부분은 솔직하게 답했는데, 크게 손해될 게 없기 때문이다.
중간중간에 진실을 섞어야 더욱 그럴 듯하게 들릴 테고.
“역시 그런가.”
암영대주는 내 대답에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얼마간 생각하는 듯하다가, 다시 나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친구에 대해 듣고 싶군. 고현우라는 자 말이다.”
“말씀하십시오.”
“그자가 바람 계열 무공을 쓰는 게 맞나?”
아레나에 잠입했다면 고현우와 조벽의 경기도 지켜봤겠지.
확인차 던지는 질문인 셈이다.
해서 나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
암영대주의 눈이 순간 번뜩이는 듯했다.
그리고 이전보다 확연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자가 어떤 특별한 물건을 갖고 있지는 않던가.”
“너무 막연한데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가늘고 길쭉한 것. 이를테면 검 같은 것 말이다.”
‘그런 게 있기는 했지.’
사문의 신물이라고 갖고 다니던 거.
아직까지도 자격이 안 된다고 쇠사슬로 칭칭 감아 놓았었지.
나는 답하기 전에 조금 더 떠 보기로 했다.
“걔한테 칼이 한두 자루가 아니라서요. 아끼는 것도 많고.”
“육안으로도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검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가 알 필요 없는 일이다. 교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
하기야 그러니까 장로급을 둘이나 보냈겠지.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기억을 되짚어 보는 척했다.
“아…… 혹시 그건가? 하나 있기는 한데요.”
“도움을 주면 사례하지. 네가 방금 받은 것 이상으로.”
입질이 슬슬 왔지만 나는 한 번 튕기기로 했다.
살짝 언짢은 표정을 하며 되묻는다.
“저보고 친구를 팔라는 겁니까?”
“이미 충분히 팔지 않았나. 거절해도 상관 없다. 내가 직접 알아보면 그만이니.”
“아, 알았어요. 대신 선불로 주십쇼.”
“욕심이 많은 놈이로군.”
“인정합니다.”
이내 암영대주가 아까와 같은 꾸러미를 두 개 더, 그리고 둘둘 말린 양피지까지 건넸다.
내가 인벤토리에 그것들을 잘 챙겨넣고 있으니, 그가 명령조로 말했다.
“직접 가져와도 좋고, 그자와 자리를 마련해도 좋다. 어느 쪽으로든 최선을 다해 보도록.”
“아, 그런데요. 이거 보수가…….”
나는 표정을 싹 굳히고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한참 부족한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이냐?”
“말을 바꾸는 게 아니라 원래 비싸요.”
“뭘 얼마나 더 원하느냐.”
나는 상큼하게 웃으며 답했다.
“교주 목이랑 바꾸죠.”
“……!”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