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67
467화 No.242 투사의 땅 (2)
홍연화는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계속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괜찮다니까.”
“그래도…… 미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김호는 잠시 일행을 멈춰 세우곤 차분한 어조로 홍연화를 달랬다.
“원래 이런 건 남 탓하는 거 아니야. 어찌 됐든 맡긴 건 나잖아.”
“…….”
“따지고 보면 맡긴 것도 아니지. 너네 랜덤박스를 몰아 받는 거니까.”
“그렇기는……한데…….”
“그냥 잊어버리고 마음 편하게 가자.”
“으으응…….”
“으으응…….”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홍연화였으나, 여전히 마음 한켠에는 부채감이 남아 있었다.
애초에 자신이 ‘느낌이 좋다’면서 나서지 않았다면, 김호가 대리깡을 맡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상을 몰아주는 것은 맞지만, 그래 놓고 민폐를 잔뜩 끼쳐 버리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만회해야 돼, 어떻게든.’
절대 민폐쟁이로 남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홍연화는 스태프를 꼭 움켜쥐었다.
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이동 중이던 오크 부족과 맞닥뜨린 것이다.
투사가 적개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취익, 인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발을 들였는가?”
“어디긴, 신나게 치고받는 곳이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답하는 김호.
그러면서 서예인을 소개한다.
“여기 이분이 바로 챔피언 후보시다. 너희 미개한 오크 놈들에게 힘의 차이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실 것이야.”
“힘은 곧 파워.”
서예인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취익, 좋다! 한번 싸워 보자!”
오크들은 가벼운 도발에도 격하게 반응했고, 즉시 전투가 벌어졌다.
홍연화는 평소보다 더욱 집중력을 발휘하며 마법을 영창했다.
속으로 연신 ‘만회해야 돼, 만회해야 돼’를 되뇌면서.
– 콰아아아아—!
오크 부족 하나가 금세 잿더미로 화했다.
그러나 홍연화의 안색은 썩 밝지 않았는데,
“안…… 나왔어……?”
오크 투사가 랜덤박스를 드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호와 고현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씩 했다.
“그럴 수도 있지.”
“조금 전에는 연속으로 나왔으니 말이오.”
‘그……런가? 그……렇지?’
하기야 2연속 75%를 뚫었으면 한 번쯤은 25%가 걸릴 수도 있다.
아마 다음에는 드랍되겠지.
홍연화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일행은 얼마 가지 않아 또다른 오크 부족을 마주쳤고,
“취익, 인간!”
“나약한 돼지 놈들아. 덤벼 보도록.”
김호의 격장지계에 곧바로 전투가 벌어졌다.
그 결과,
“이번에도 안 떴네.”
“운이 없군.”
김호와 서예인이 조금은 아쉬운 투로 말했다.
반면 홍연화는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까맣게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왜, 왜 안 나오는데? 75%나 되면서 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대로 계속 랜덤박스가 드랍되지 않는다면?
처음 얻었던 두 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지게 된다.
그만큼 대리깡을 말아먹은 민폐도 커지는 셈이고.
김호는 마음 편히 가지라며 자신을 안심시켰지만, 나중에는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해서 다음 오크 부족을 마주쳤을 때, 홍연화는 긴장감에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진짜 나와줘야 돼. 진짜야!’
오크 투사야, 부탁해!
홍연화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불덩이를 내던졌다.
– 퍼어어엉—!
불길이 걷히고…….
오크 투사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안 돼!!’
홍연화가 소리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일이 이렇게까지 안 풀릴 수가?
의연하게 넘어가던 일행들도 이쯤 되니 썩 표정이 좋지 않았다.
“3연속은 좀 심했네.”
“그러게 말이오.”
고현우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도 전투가 빈번한 것으로 보아 아직 기회가 제법 남은 듯하오.”
“첫날이니까 아직 많지.”
“둘째 날부터는 어떻소? 저들끼리도 상잔한다고 들었소만.”
“숫자는 반 아래로 줄어. 대신 보상이 늘어나고.”
둘째 날부터는 50%였던 랜덤박스 드랍률이 100%로 오른다.
여기다 드랍률 1.5배 버프를 적용하면 두 개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만큼 강한 투사를 상대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고현우의 질문이 이어졌다.
“하면 목표치 달성은 여유롭다 봐도 되겠소?”
“얼마나 자주 만나느냐에 따라서 다른데, 그래도 어떻게든 채우지 않을까? 정 안 되면…….”
김호가 장난스레 말꼬리를 흐리자, 서예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 많은 후회.”
“알았어, 안 쓸게.”
홍연화는 정확히 뭘 쓰고 만다는 건지는 몰라도, 쓰면 후회한다는 점만큼은 알 수 있었다.
자칫 자신이 후회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그럼…… 안 되는데……?’
홍연화의 안색이 점차 하얗게 질려 갔다.
그걸 보곤 김호가 물음을 건넸다.
“괜찮냐.”
“으, 으응…… 괜찮아.”
“좀 쉬었다 움직일까?”
“아니? 아니야!”
홍연화가 펄쩍 뛰었다.
여기서 휴식을 취한다면 그만큼 오크 투사를 덜 잡게 될 테고, 실수를 만회할 기회도 줄어들 것이다.
김호는 묘한 낌새를 감지한 듯했으나, 굳이 파고들지 않으려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면 솔직하게 말해, 무리하지 말고.”
“응, 고마워…….”
“그럼 계속 움직이자.”
일행은 다시 김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고현우가 조금 전 주제를 다시 꺼냈다.
“첫날은 수많은 오크 부족들이 참전하지만, 둘째 날은 절반 이하라 했으니. 셋째 날은 그보다도 더 적겠구려. 마치 고독(蠱毒) 같다는 생각이 드오.”
“비슷하지. 배틀 로얄이라고도 하고.”
“투사 하나가 남을 때까지 이어진다고 이해하면 되겠소?”
“맞아.”
“으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라면 보통 강한 게 아니겠군.”
“그쯤 되면 투사가 아니지.”
최후의 생존자는 상위 개체로 승격하게 된다.
서예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챔피언.”
“정답이야.”
그리고 최종 보스인 오크 챔피언을 처치하는 게 이 던전, [투사의 땅]의 클리어 목표다.
고현우가 또 질문을 던졌다.
“달리 말하면 챔피언이 결정될 때까지는 던전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구려.”
“그렇지. 중요한 건 우리가 관여할 수 있다는 거야.”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오크들의 숫자를 줄이면 그만큼 챔피언도 빨리 결정될 것이다.
강한 챔피언 후보들을 사전에 쳐 낼 수 있으니 ‘결과물’의 무력도 반감될 터.
랜덤박스 드랍은 덤이다.
고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제 전체적인 그림을 알 것 같소.”
“조금만 더 돌아다니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자리 잡자.”
“그게 좋겠구려.”
한동안 숲을 헤치며 나아가자, 또 익숙한 소음이 들려왔다.
– 취익, 취익!
– 크아아아—!
일행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고, 모두의 예상대로 오크 부족 둘이 격렬하게 치고 받는 중이었다.
그것을 보자 홍연화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투사 둘!’
이번에는 진짜 무조건 나온다!
이건 나올 수밖에 없어!
그녀는 누가 시키기도 전에 빠르게 대단위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이내 불꽃이 거대한 불사조의 형상을 한 채로 피어오르고, 손바닥만 한 깃털 수백 개를 전장에 흩뿌린다.
[피닉스 플러터]– 화르르륵!
하나하나의 위력은 불이 붙는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다음 순간 홍연화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마법을 연계했다.
[컴버스천]– 퍼퍼퍼펑—!
화염 폭발 수백 개가 전장을 수놓았다.
그에 오크들 대부분이 쓸려 나가고, 잔당들을 파티원들이 빠르게 정리했다.
그 결과,
‘나왔다! 나왔어……!’
홍연화는 감동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감동은 뒤이어 김호가 꺼낸 말에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바로 쓸까? 먹보 상자.”
‘아…….’
랜덤박스가 하도 안 떨어져서, 거기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뒷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쪽박을 만회하려면 그만한 대박을 터트려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다시…… 열어야 된다는……?’
그랬다가 또 D랭크, E랭크급이 나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일찌감치 빠지는 게 낫지 않나?
하지만 그러면 만회는 영영 물 건너가는 거 아닌가?
홍연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눈알만 굴리는 한편, 김호는 또다시 히든 피스를 사용했다.
서예인이 랜덤 박스를 개봉하는 즉시 먹보 상자를 닫아 버린다.
– 번—쩍—!
[먹보 상자]▷먹보 포인트:1,600→2,600
흡족한 기색으로 칭찬하는 김호.
“또 B랭크네. 역시 복덩이, 아니 빛덩이 님이십니다.”
“운이 좋군.”
“괜찮으면 하나 더 열어 보시지요.”
“…….”
그런데 서예인은 두 번째 랜덤박스를 가만히 내려다보나 싶더니, 고개를 들어 홍연화를 쳐다보았다.
곧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홍연화는 당황해서 토끼눈을 떴다.
“나, 나……?”
“음, 아까부터 홍 소저의 기분이 적잖이 심란해 보이더군.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소?”
“아, 아니, 나, 나난, 괜찮은데…….”
팔락팔락 손사래를 치며 물러나는 홍연화.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예감은 썩 나쁘지 않았다.
어쩐지 이번에는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새록새록 든다.
그런 낌새를 알아챘는지 김호가 말했다.
“해 봐.”
“그치만…… 또 망하면…….”
“하나 덜 먹은 걸로 치면 되지.”
여상한 태도에 홍연화는 은근히 용기가 솟는 것을 느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떨리는 손을 랜덤박스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호와 눈빛을 교환하고 잽싸게 덮개를 열어젖혔다.
‘샥! 샤샥!!’
– 덜컹—!
[먹보 상자]▷먹보 포인트:2,600→2,800
“아.”
홍연화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이후에도 김호 파티는 투사의 땅을 가로지르며 오크 부족 둘을 더 박살 냈다.
그중 하나가 랜덤박스를 드랍했고, 이번에는 고현우에게 대리깡 차례가 돌아갔다.
무슨 변덕에선지 서예인이 그를 지목한 것이다.
– 번쩍!
[먹보 상자]▷먹보 포인트:2,800→3,300
“본전이로군.”
쓴웃음을 흘리는 고현우.
500포인트라면 C랭크로, 히든 피스를 안 쓰고 그냥 먹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홍연화는 100, 200포인트로 그마저도 못했기에, 더욱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어느덧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해서, 일행은 슬슬 야영을 하기로 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텐트를 치고 알람 마법을 설치한다.
그다음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저녁 식사를 했으나, 홍연화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텐트로 들어가 버렸다.
침낭에 몸을 집어넣고 구석에 처박힌다.
‘완전 망했어…….’
그냥 랜덤박스 두 개를 먹였으면 1,000포인트였을 것을, 괜히 객기를 부려서 300포인트밖에 얻지 못했다.
만회는커녕 두 배로 민폐를 끼친 셈이다.
‘내일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그리고 랜덤박스는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지…….
홍연화는 푹푹 한숨을 내쉬며, 텐트 구석에서 궁상맞게 뒤척거렸다.
얼마간 그러고 있으니, 바깥에서 인기척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김호와 서예인이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베개.”
“예, 빛덩이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2연속 대박을 터뜨린 공로 덕분인지 태도가 몹시 극진하다.
이내 언제나 그렇듯, 침낭 두 개를 딱 붙이는 두 사람.
그러곤 동시에 홍연화를 쳐다본다.
“거기서 뭐 하니?”
“그냥…… 여기가 편……해서……?”
“구석이 편하다고?”
“으응…….”
솔직히 말하자면 매우 불편했지만, 홍연화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등을 돌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서예인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침낭을 슥슥 잡아당겼다.
“…….”
“왜, 왜……?”
“김호 베개.”
“……!”
“자리 남아.”
그리고 빈 자리를 가리키며 계속 침낭을 슥슥 잡아당겼다.
지켜보던 김호도 한마디 거든다.
“암만 봐도 불편해 보이는데, 전에도 구석에서는 안 잤잖아.”
“…….”
“여기 와서 자. 침낭 붙이고 말고는 마음대로 하고.”
“……고마워.”
홍연화는 두 사람의 배려에 눈가가 그렁그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침낭을 가까이 붙이면서 생각했다.
그래, 욕심쟁이면 좀 어때. 이렇게 잘 챙겨 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