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69
469화 No.242 투사의 땅 (4)
“A, A랭크……?”
홍연화는 직접 들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 고등급 아이템을 뽑아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심지어 A랭크 랜덤박스도 아니고 C랭크에서 나온 터라 더욱 실감이 안 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것도 꿈인가?’
이러고 있으면 깨우지 않을까?
또 김호가 ‘홍연화, 아침이야. 일어나자.’하지 않을까?
그러나 파티원들은 자신을 깨우는 대신, 무지갯빛이 걷히고 나타난 아이템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홍연화는 약간의 머쓱함을 느끼며 거기에 동참했다.
랜덤박스가 있던 곳에는 나무를 정교하게 깎아 만든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백전노장 같은 오크가 도끼를 든 채 달려 나가는 모습.
마치 자신을 따르라고 외치는 듯하다.
[오크 영웅 조각상(A)]▷A랭크 이하 전투 스킬의 숙련에 보정을 제공합니다.
효과는 달랑 한 줄이었으나 A랭크답게 파격적이었다.
고현우가 김호에게 물었다.
“숙련에 보정을 제공한다라……. 랭크 부스트라는 아이템과 비슷한 효과가 있겠소.”
“그렇지. 다른 점이라면 이건 소모품이 아니라는 거고.”
랭크 부스트는 사용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 반면, 조각상은 파괴되지 않는 한 영구적이다.
둘을 동시에 쓰는 것도 가능할 테고.
제한도 우리 입장에서는 있으나마나하다.
어차피 다들 전투 계열 클래스에, 스킬 대부분이 A랭크 이하니까.
“하면 적용은 어디까지 되는지 궁금하구려. 홍 소저 본인뿐인지, 그보다는 더 넓은지.”
“조각상 계열은 보통 어디 세워 두고 쓰는 거니까, 아마 범위 안에만 있으면 다 받을걸. 자세한 건 나중에 실험해 봐야지.”
“허어.”
요약하면 모두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은 셈.
홍연화에게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정말 대단한 운이오. 축하하오, 홍 소저.”
“이 정도면 100, 200 나왔던 건 아무것도 아니지.”
“먹보 포인트로 환산하면 2,500점이나 될 테니 말이오.”
“그것도 단순 랭크만으로 따졌을 때고, 이건 A랭크 중에서도 얻기가 많이 까다로워.”
김호는 어지간한 고등급 아이템을 보고도 미적지근하게 넘기곤 한다.
시공간 아이템쯤 돼야 조금은 관심을 보일 정도.
그런 김호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로 좋기는 한가 보다.
이어서 서예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대박 성공.”
마치 ‘내가 그랬지? 대박 예감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홍연화는 어쩐지 목이 메이는 것을 느끼며 더듬더듬 답했다.
“나, 나는…… 고, 고마워…….”
끝까지 믿고 맡겨 줘서.
물론 다른 이유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가령 자신을 믿은 게 아니라 서예인의 직감을 믿었다거나.
상자 몇 개쯤은 버려도 상관없다고 여겼다거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홍연화는 랜덤박스를 열기 전, 일행들에게 받았던 신뢰와 응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일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 * *
‘다시 멀쩡해졌구만.’
나는 홍연화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꼬리를 축 늘어뜨린 강아지를 연상시켰는데, 조각상을 뽑은 뒤로는 꼬리 프로펠러가 맹렬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덕분에 파티 전체 분위기가 한층 화기애애해졌다.
달라지지 않은 점을 하나 꼽자면, 여전히 랜덤박스 근처에도 안 가려 한다는 것.
겨우겨우 만회했는데 또 대차게 말아먹으면 어쩌나 싶은가 보다.
우리도 굳이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홍연화는 대리깡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이후 얻은 랜덤박스 대부분은 히든 피스를 활용하지 않고 순정품 상태로 먹였다.
그렇게 저녁 노을로 하늘이 붉어질 때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닌 결과,
[먹보 상자]▷먹보 포인트:5,300→7,800
퀘스트 목표치를 3/4 가량 달성할 수 있었다.
무리하면 한두 개는 더 먹을 수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컨디션 관리를 해 두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3일 차는 난이도가 더 올라가니까.
나는 파티원들을 둘러보며 지시했다.
“이쯤에서 자리 잡읍시다.”
우리는 텐트를 치고, 알람 마법을 설치한 뒤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바베큐를 굽기 시작했다.
불빛이나 냄새 때문에 찾아오는 거 아니냐고?
그래 주면 500포인트 추가지.
오히려 그걸 은근히 노리고 있기도 하다.
바베큐로 어느 정도 배를 채웠을 즈음.
나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다 모인 김에, 어제 하려던 얘기를 좀 할게.”
“어제 본인이 김 형에게 물어봤다오. 서 소저가 얼마 전부터 ‘예약’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말이오.”
고현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홍연화도 내심 궁금했는지 귀를 쫑긋거렸다.
나는 일행들을 눈에 담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기는 했지. 이왕 설명하려면 한 번에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어제는 얘기 안 했고.”
어제는 홍연화가 저녁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텐트에 처박혀 버렸으니까.
“스킬을 새로 얻었거든, [결속]이라는 건데, 쉽게 말하면 구성원들끼리 슬롯에 등록한 특성을 공유하는 거야.”
“듣기만 해도 상당히 강할 듯하군. 다만 아무에게나 쓸 수는 없으리라 짐작하오.”
“지금은 자리 다 찼지. 하나 있는 거 당 누님이 가져갔거든.”
“과연, 이제 전후 사정을 알겠소.”
왜 ‘예약’이란 단어가 나왔는지 깨닫고 쓴웃음을 흘리는 고현우.
서예인이 매우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예약.”
아직 설명할 게 남았기에 나는 일단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리는 걱정할 거 없어. 차근차근 늘릴 생각이니까.”
“언젠가는 모두가 들어갈 수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소?”
“그렇기는 한데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결속]은 한번 걸면 무슨 수를 써도 해제가 안 돼.”
“……!”
“그리고 무엇보다 군주와의 유대가 최우선 사항이 되지. 너희가 소속된 사문이나 마탑, 스승이나 가족보다도.”
[결속] 자체의 강제력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추후 얻을 연계 스킬/특성들을 쓰다 보면 싫어도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될 거다.당규영이야 사실상 독립한 셈이라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오롯이 자신만의 의지로 결속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어떤가.
나는 고현우를 쳐다보았다.
“너는 아직 할 일이 많지. 신물부터 시작해서.”
“……그렇소.”
현재 그의 목표는 사문의 신물인 혈풍검(아님)을 계승하는 것.
이후에도 나름대로 이뤄야 하는 사문의 숙원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결속]으로 묶이면 실질적인 무력은 강해지더라도, 사문과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족쇄를 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이어서 나는 홍연화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는 루비 마탑주가 꿈이라고 했고.”
“으, 응…….”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홍연화.
한 집단의 수장격이 되고자 한다면 절대로 어딘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저 동네 장로들도 바보가 아니니, 스킬에 묶였다는 점만으로도 결격 사유가 될 거다.
“그러니까 신중히들 생각하고 결정해. 다른 걸 다 포기하고서라도 나를 따라올 가치가 있는지. 어차피 슬롯 늘리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리니까 급하게 정할 필요는 없고.”
“숙고하리다.”
“응, 알았어.”
고현우와 홍연화가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면 서예인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말했다.
“할래.”
“고민을 좀 하시라니까요.”
“고민 끝.”
“혜성그룹은 어쩌고? 이대로만 가도 도시 하나가 다 네 건데.”
“필요 없어.”
고개를 가로젓는 서예인.
애초에 그쪽으로는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소속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단순히 세상 물정을 몰라서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리고 해결되었다고 쳐도 고려할 부분은 더 남았다.
“이건 부모님이랑도 상의해 봐야지. 가능하면 용삼촌이랑 회장님도.”
“독립했어.”
“아직 안 했거든. 너는 나가면 면담이야.”
“슬픔…….”
학부모 면담이 예약되고.
저녁 식사를 마쳤기에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잘 준비를 했다.
서예인과 홍연화는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내 침낭 양옆에 자기 침낭을 붙이고 있었다.
나는 작게 헛바람을 터뜨렸다.
“아주 이제는 자리 맡아 놨구만.”
“지정석.”
서예인이 당당하게 답하는 한편, 홍연화는 아직은 부끄러운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걸 보고 고현우가 싱긋 웃었다.
“듣자 하니 김 형에게 숙면을 도와주는 신묘한 효과가 있는가 보오.”
“뭔진 나도 모르겠는데, 그런가 보더라.”
“기회가 된다면 본인도 시도해 보고 싶구려.”
장난스러운 어조로 던지는 고현우.
나는 정색을 하며 반문했다.
“무인이 왜 잠을 자야 하지? 운기조식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음.”
“빨리 강해져서 사문의 신물을 계승해야 할 것 아닙니까.”
“……틀린 말은 아니오.”
고현우는 텐트 밖에서 밤새 운기조식을 했다.
물론 본인 의지로.
* * *
다음날.
우리는 아침 해가 뜨자마자 이동하기 시작했다.
홍연화가 나란히 걷다가 물었다.
“지금 7,800포인트…… 맞아?”
“어. 5개만 더 먹으면 돼.”
“오늘 드랍률은 어때?”
“2일 차에다 50% 더 얹어서 150%. 버프까지 하면 225%지.”
두 개는 확정 드랍.
다소 낮은 확률로 세 개째가 나온다.
“그럼 5개를 채우려면…….”
“운 좋으면 두 마리, 아니면 셋은 잡아야 될걸.”
고현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김 형이 보기에는 오늘 내로 결판이 날 것 같소?”
“아마. 우리가 잡은 것도 꽤 많으니까.”
“그렇군. 한데 조금은 걱정이 되는구려. 여러모로 놈들의 숫자가 더욱 줄었을 터인데, 땅은 이리도 넓으니 말이오.”
계속 오크 투사들과 엇갈리다 보면 아무 성과도 없이 시간만 흐르지 않을까 싶은 거다.
어쩌면 챔피언이 결정될 때까지 한 마리도 못 만날 가능성도 있고.
물론 이건 괜한 걱정이었다.
여느 배틀 로얄처럼 자기장 같은 게 일대를 둘러싸고 있다가 서서히 줄어드는 건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비슷한 장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얘네한테도 토속 신앙 같은 게 있는데, 쉽게 말하면 전쟁의 신이 전사들을 서로에게 인도한다, 그런 거야.”
“흥미롭군. 어느 정도는 믿을 만한가 보오.”
“어느 정도는. 저기 오네.”
나는 그렇게 답하며 전방에 대고 턱짓했다.
과연 인기척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풀숲을 헤치며 오크 투사 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취익.”
둘째 날에는 그나마 두셋은 거느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아예 혼자다.
방어구나 의복은 거의 넝마가 다 됐으며, 그렇게 드러난 몸에는 아물다 만 상처들이 가득하다.
투사의 태도 역시 1, 2일 차에 만난 놈들과는 많이 달랐다.
대뜸 도끼를 그러쥐며 내뱉는다.
“취익, 무기 들어라.”
상대가 인간이든 말든, 머릿수가 많든 적든 상관없다는 투.
고현우가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서자,
“한 수 부탁드리겠소.”
“싸운다—!”
놈은 즉시 땅을 박차며 짓쳐 왔다.
마나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도끼와 부드러운 바람이 깃든 검이 충돌했다.
– 쩌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