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71
471화 마탑주 하지 말까?
나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퀘스트 끝났다. 고생들 많았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싱긋 미소 짓는 고현우와 고개를 끄덕여 동조하는 홍연화.
그리고 서예인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뭐 얻었어?”
“바로 보여 줄게.”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실피드]를 시전했다.
– 휘이잉—
이내 장내에 부드러운 바람이 감돌기 시작했다.
실피드는 바람의 정령으로, 존재 자체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준다.
같은 속성 마법을 다루기가 쉬워지고, 마나 등 소모량은 낮아지는 것이 기본 효과.
– 휘잉—
뒤이어 내 앞에 바람이 모여들더니 반투명한 찐빵이 나타났다.
평소에는 흩어진 상태라 보이지 않지만, 필요에 따라 이렇게 실체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
서예인의 두 눈에 흥미가 가득 차올랐다.
만져 보고 싶은 듯 손을 가져다 댄다.
그러나 실피드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슬쩍 몸을 뒤로 잡아 뺐다.
서예인이 더 가까이 손을 뻗으니 더 뒤로 물러난다.
술래잡기가 잠깐 이어지다가, 녀석은 잡히기 직전에 몸을 풍선처럼 부풀렸다.
– 펑!
그리고 그대로 폭발하며 서예인의 손을 뒤로 튕겨 냈다.
고현우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김 형의 바람 마법 아니오?”
“내가 익힌 건 얘도 쓸 수 있어.”
정령들은 독립된 자아를 갖고 있으며, 주인의 의지를 이해하고 마법을 대신 시전하기도 한다.
사각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차단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가 ‘기본’ 성능이고.”
마지막으로는 내 목표였던 연계 스킬을 보여 줘야겠지.
나는 허공에 가볍게 손짓해서 실피드를 다시 불러냈다.
– 휘잉—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바람이 모여들더니 반투명 찐빵이 나타났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회전한다.
이윽고 나는 차례차례 스킬 셋을 시전했다.
[현명 갑옷] [윈드 배리어] [실피드]– 휘이잉—
내 몸 주위로 옅은 마나의 갑옷이 떠오르고, 둥그런 바람의 보호막이 생겨났다.
거기에 실피드가 달라붙자, 보호막이 빠르게 수축하더니 갑옷과 하나로 합쳐졌다.
[실피드 아머]조합 스킬답게, 다양한 방어 마법을 겹겹이 두른 것보다 방어력이 뛰어나다.
물론 나는 방어력만 보고 이걸 완성한 게 아니다.
‘추가 효과가 있지.’
가볍게 발을 구르자, 내 몸이 지면에서 한 뼘 정도 둥실 떠올랐다.
지금은 주요 부품인 실피드가 F랭크라 한 뼘이 고작이지만, 계속 성장시키다 보면 공중전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거다.
스킬을 해제하며 바닥에 내려앉자, 서예인이 가까이 다가와선 눈을 반짝였다.
“……!”
“너도 하고 싶다고?”
“둥실둥실.”
물론 남에게 걸어 주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스킬 시연은 여기서 끊어야 할 듯했는데,
– 쿠르릉…….
던전이 붕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크 챔피언을 때려잡은 지도 좀 됐으니까.
더 미적거렸다간 말려들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 차례대로 출구에 몸을 집어넣었다.
밖으로 나오니, 던전동 지하층은 많이 한산해져 있었다.
상당수가 던전에 들어가 버렸거나 공략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탓일 거다.
그래도 몰래 섞여들기에는 충분히 북적거리는 편이었다.
우리는 아무개 뱃지를 착용하곤 빠른 걸음으로 원형 계단을 밟았다.
지상에 올라오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상자까지 열고 해산할까?”
C랭크 하나, C+하나가 남았다.
덤으로 전에 먹었던 ‘나중에 상자(A)’까지 열면 더 좋고.
고현우와 홍연화가 답했다.
“본인은 김 형과 서 소저의 결정을 따르리다. 이래저래 지켜보는 입장일 테니 말이오.”
“나도 상관없어.”
나는 물론 일찌감치 해치워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복덩이님이 벌써 굉장히 졸려 보인다는 점.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눈이 반쯤 감긴 채다.
해서 넌지시 물었다.
“그럼 그냥 딴 날 열까?”
“내일.”
“나중에보단 낫네. 그럽시다.”
우리는 가벼운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 * *
루비 마탑 동아리실.
홍연화가 들어서자 부원들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연화 왔네?”
“요 며칠 안 보이던데, 던전 갔다 왔어?”
홍연화 역시 살가운 인사를 돌려주었다.
“안녕하세요. 네, 던전 갔다 왔어요.”
“고생했네, 푹 쉬어.”
“감사합니다.”
선배들을 지나쳐, 홍연화는 자연스레 제 언니를 찾았다.
홍예화는 부장들이 으레 그렇듯 서류 작업에 정신이 없었다.
“언니, 나 왔어.”
“어, 그래.”
건성으로 대화를 받는 홍예화.
홍연화도 그러려니 하곤, 손님 접대용 소파에 철푸덕 파묻혔다.
곧바로 표정이 흐물흐물 풀린다.
“힣, 역시 집이 최고야.”
최근 김호베개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지만, 아무래도 침낭보다는 소파와 침대가 편한 법 아니겠는가.
홍연화는 더욱 신나게 소파를 어질렀고, 쿠션 하나가 떨어져서 바닥을 굴렀다.
그 꼴을 보곤 홍예화의 이마에 힘줄이 불거졌다.
읽던 서류를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곤 말한다.
“또 오자마자 저러네. 거기 눕지 말라니까? 누울 거면 바닥에 누워!”
“아, 뭔 바닥이야! 누울 거라고! 내 맘이라고! 신경 쓰지 말고 언니 할 거나 하라고!”
“신경 안 쓰려는데 네가 방해를 하잖아!”
부실 온도가 조금 올라간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부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 할일에 열중했다.
두 자매의 싸움은 그들에겐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
홍예화가 험악하게 으르렁거렸다.
“너, 소파째로 태워 버리기 전에 비켜. 잘 거면 기숙사 가서 자.”
“아! 갈 거거든! ……좀만 더 누웠다가.”
“어휴, 저걸 진짜.”
정말로 태워 버릴 생각은 없었는지, 홍예화는 쯧 혀를 차곤 서류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에 홍연화는 승리자의 미소를 머금고 더욱 신나게 뒹굴거렸다.
얼마간 그러다가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는 홍연화.
던전에서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 눈앞에 재생된다.
‘완전 감정의 롤러코스터였지.’
2연속 실패로 나락까지 처박혔던 기분, 만회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끝끝내 A랭크 조각상을 뽑았을 때의 희열…….
무엇보다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 공략이었다.
한편으로는, 김호가 모두를 모아 놓고 꺼냈던 얘기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결속이라고…….’
효과만 들어도 엄청난 스킬이었다.
쓰는 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호라 더욱 엄청날 테고.
하지만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가려면 아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루비 마탑주.’
여태까지 자신이 꿈꿔 왔던 목표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도 한둘이 아닐 터.
목표를 포기하는 것도 어렵지만, 기대를 저버리는 것 역시 만만치 않게 어렵다.
‘지금은 그냥 하던 거 하는 게 낫겠지?’
그래도 워낙 중대한 문제인 만큼, 이왕이면 가까운 사람에게도 조언을 구해 보고 싶었다.
홍연화는 소파에서 일어나 앉으며 제 언니를 불렀다.
“언니.”
“왜, 또.”
홍예화는 또 시답잖은 일이겠거니 싶었는지, 서류만 쳐다볼 뿐 이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점이 조금 불만스러웠으나 홍연화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만약에, 진짜 만약에 있잖아.”
“어. 만약에 뭐.”
“내가…… 루비 마탑주 안 한다고 하면……?”
“……?”
즉시 고개를 번쩍 드는 홍예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묻는다.
“야, 너 또 어디서 이상한 거 주워 듣고 왔어? 마탑주를 안 해?”
“아니, 만약에! 만약에!”
언니가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달려올 것 같아서, 홍연화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러곤 한층 쭈굴해진 태도로 덧붙였다.
“……만약에 안 하면 어떻게 되냐고. 가정을 해 보는 거지.”
홍예화로서는 가정부터가 굉장히 못마땅했다.
출처가 어디인지 캐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다만 질문에 답해 주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정 네가 안 하면 내가 하겠지. 아니면 사촌이 하거나, 다른 가문에서 하거나.”
“그게…… 다야……?”
“하겠다는 사람은 많아. 마탑주잖아.”
“……그렇네?”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였네?
생각해 보니까 참 바보 같은 걱정에,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홍연화가 멍청하게 눈을 깜박거리고 있으니, 이번에는 홍예화가 물었다.
“그래서, 왜 물어봤는데.”
“아니이…… 안 한다고 하면…… 다들 실망할 것 같아서……?”
“실망이야 하겠지.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정도까진 아니고.”
“아…….”
그렇게까지 압박감을 받을 일은 아니었나 보다.
홍연화는 어쩐지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홍예화의 추궁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제 말해. 어디서 이상한 바람이 불어서 마탑주를 안 한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여태까지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이건 그냥 들 수가 없어. 누구야, 김호야?”
“그냥 들었다니까?”
그러나 홍예화는 놓치지 않았다.
제 동생의 시선이 동아리실 곳곳을 바쁘게 오가는 것을.
정말이지 치명적으로 서투른 시선 처리였다.
“김호 맞았네.”
“아, 아니라고오…….”
“야 홍연화! 너 진짜 정신 못 차려? 남자한테 홀라당 빠져 가지고! 아빠도 암말 안 해서 내버려뒀더니, 아주 갈수록 태산이야!”
홍연화는 억울했다.
당장 안 한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고, 가정을 들어서 물어본 건데.
저렇게까지 몰아붙일 필요가 있나?
그 때문일까. 원래는 이러이러해서 물어봤다고 정정을 하는 게 맞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언니가 뭘 알아! 남자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으면서!”
“……뭐?”
“당연히 없겠지! 연애를 안 해 봤으니까! 아니, 못 해 봤으니까! 나는 1학년부터 하는데 언니는 3년 내내 못 하고 곧 있으면 졸업—”
되는 대로 쏘아붙이다가 홍연화는 순간 아차 싶었다.
자신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더없이 싸늘해진 홍예화의 표정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황급히 수습하려 들었지만,
“아, 아니이, 그게 아니라……. 방금 전에는 내가 말이 좀…….”
“…….”
홍예화는 대답 대신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한 손을 활짝 폈다.
– 지글지글지글…….
손바닥이 시뻘겋게 물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반쯤 액체 상태가 되어 흐물거리는 것 같았다.
불꽃 등짝 스매쉬가 용암 등짝 스매쉬로 진화한 것이다.
그걸 보자마자 홍연화는 문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경종이 울려 대고 있었다.
‘저건 맞으면 죽어! 진짜 죽어!’
반면 홍예화는 뒤쫓아 오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단순 위협용이었나? 부실에서 내쫓으려고?
그러다가 홍연화가 막 탈출하려는 순간, 바로 등 뒤에서 기척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나, 나만 블링크 없어!’
홍연화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다음 순간 등짝에 뜨끈한 일격이 가해졌다.
– 철—썩—!
“께에엥!”
찰진 소리가 부실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