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11~12주 차 중간고사 (3)
마치 하늘색 도화지에 붉은 물감을 쏟은 것 같았다.
핏빛 기운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 하늘을 뒤덮고, 그다음에는 주르륵 아래로 흘러내리며 도시를 감쌌다.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보이는 건 온통 붉은색뿐.
도시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 꺄아악!
– 하, 하늘이 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행인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닌다.
반면 야장룡은 무심한 눈으로 붉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친 결계를 감상하듯이.
그러다가 다시 나를 돌아보곤 호기심을 드러낸다.
“……차분하군. 마음의 동요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어쩌면 너 같은 인간에게는 당연한 일인가.”
뭐라 답하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결론을 내리고 납득한다.
‘너 같은 인간’은 군주를 말하는 거겠지.
S랭크에 드래곤이면 못 알아봤을 리가 없다.
내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군주 덕분이라고 여기는 듯하고.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군.”
다른 참가자들과 인사처럼 주고받던 말이었지만, 야장룡의 입에서 나오니 진득한 악의가 느껴졌다.
오래 살아남으며 발버둥치고, 자신을 즐겁게 해 달라는 뜻이니까.
어쨌든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그럴 생각입니다.”
“기대하겠다.”
야장룡은 거기까지 말하고 돌아섰다.
용익병 역시 내 쪽에 공손히 허리를 굽힌 뒤 그의 곁에 따라붙었다.
이내 둘은 둥실 허공으로 떠오르나 싶더니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다음 순간 야장룡이 서 있던 자리에 반짝이는 카드 한 장이 떠올랐다.
내가 만사를 제쳐 두고 이곳으로 향한 이유였다.
‘여기서도 아이템이 나오거든.’
이 중간고사의 일차적인 의도는?
크래프트 헤이븐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직접 보고 겪게 하는 것이다.
야장룡의 결계는 그중에서도 중요도가 굉장히 높고, 학사 측에서도 이점을 고려해서 아이템을 배치했을 터.
그것도 성능이 뛰어나고 한정적인 걸로 말이다.
[드래곤 나침반]문제는 아이템은 하나고, 비슷한 생각을 한 참가자는 여럿이라는 점.
야장룡이 진작에 떠났음에도 사방에서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일부는 적의까지 드러내는데, 가서 뺏어야 하는지 고민 중인 듯했다.
그런 와중 인기척이 다가오는 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보니, 기사단 유망주 이성현이 있었다.
가볍게 턱을 까딱여 인사하곤 묻는다.
“역시 아이템이 나왔군. 한번 봐도 되겠나?”
“안 될 건 없지.”
나는 내친김에 시연까지 하기로 했다.
아이템을 사용하자 카드가 있던 자리에 손바닥만 한 나침반이 생겨났다.
[드래곤 나침반]▷가장 가까운 드래곤, 용체병, 또는 하수인을 가리킵니다.
화살은 정확하게 야장룡과 용익병이 날아간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금세 또 휙 하고 회전하며 다른 방향을 가리켰는데, 놈들과의 거리가 벌어지면서 비교적 가까운 대상을 잡아낸 듯했다.
이성현이 눈을 빛냈다.
“대략적으로나마 추적이 가능해지겠군.”
“그렇겠지.”
그대로 따라가면 강적들을 만날 수 있고, 나침반이 지목하는 곳을 경계하며 전투를 대비할 수도 있다.
이내 이성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에게 양보해 줄 수는 없겠나? 이미 언질을 받았을 테지만 우리는 꽤 큰 규모의 원정대를 운영할 생각이다. 이게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될 거야.”
“미안하다, 우리한테 더 필요한 아이템이라. 좀 적극적으로 움직일 거거든.”
“적극적이라는 말은……?”
나는 그 추측이 맞다는 의미로 턱을 까딱였다.
“잡으러 다닐 거다. 용체병.”
“그런……!”
이성현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용체병들의 무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붙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다만 ‘주변 몬스터들보다 수준이 최소 한 단계 이상 높다’고 했으니, 위험천만하고 힘겨운 싸움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유망주와 선도부조차 용체병들과의 충돌을 피하는 것을 전제로 작전을 세웠는데, 나는 놈들을 굳이 잡으러 다닌다니.
이내 이성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토록 사나이의 길을 추구해 왔건만, 나는 아직 멀었나 보군. 역시 진짜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나이 클럽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어.”
쓸 만한 탱커를 하나 더 영입해서 나쁠 건 없거든.
그러나 이성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나는 이미 모두와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신의를 지키는 것 또한 사나이의 길만큼이나 중요한 법.”
“좋은 마음가짐이야.”
“나침반은 확실히 너한테 더 필요하겠군. 무운을 빈다.”
“고맙다. 너희도 힘내고.”
우리는 마주 보며 싱긋 웃은 뒤 각자 갈 길을 나섰다.
아직도 지켜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으나, 유망주급이 손을 쓰지 않고 물러나는 걸 봐서인지 그들 역시 하나둘 포기하고 떠나갔다.
걸음을 옮기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혼란이 더욱 가중된 상태.
사람들이 불안한 눈으로 핏빛 결계를 올려다본다.
– 도대체 저게……?
– 이러다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 일단 피합시다.
– 나가요, 나가야 돼요.
그리고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외곽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고 문을 걸어 잠그는 집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반면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들의 행동거지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 하여간 호들갑은.
– 야장룡도 다 생각이 있겠지.
– 기다리면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겠나?
저들 입장에서 야장룡은 도시의 수호룡쯤 되는 존재니 이 상황이 일시적이라고, 해가 될 리 없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당장은 하늘이 붉어진 게 전부기도 하고.
조금 있으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나는 혼란 속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야장룡, 용익병과 눈도장도 찍었고 나침반도 챙겼으니, 당초의 목표대로 움직일 생각이다.
‘아이템 몇 개 더 챙기고 합류하자.’
이수독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템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
도시 곳곳에 숨겨져 있는 걸 찾아내거나, 몬스터를 때려잡다 보면 드랍된다.
다만 그가 언급하지 않은 점이라면, ‘도시에서만’ 나오는 아이템과 ‘몬스터에게서만’ 드랍되는 아이템이 일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방금 얻은 [드래곤 나침반]만 해도 용체병을 아무리 때려잡아 봤자 안 나온다.
따라서 지금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하는 건 ‘도시 한정’ 아이템.
때마침 첫 번째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반딧불 양복점>안에 들어서니 양복점답게 각양각색의 정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점원은 보이지 않았는데, 벌써 도망치거나 숨어 버린 모양이다.
‘오히려 좋아.’
나는 가게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구석에는 작게 악세사리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신사 모자나 지팡이, 넥타이 등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활짝 펴진 채로 진열된 손수건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사이에 반짝이는 카드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기만의 손수건]▷착용자의 외형을 변경합니다.
▷착용자가 시전하는 스킬이 다르게 보입니다.
외형뿐만 아니라 스킬까지 일부 속일 수 있으니 관련 아이템 중에는 거의 끝판왕급.
중간고사 한정 아이템이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금지 스킬도 신나게 쓸 수 있지.’
비공개로 기록이 남지도 않는 데다 외형까지 바꿨으니.
인페르노 피스트를 갈기는 걸 누군가 목격하더라도, 그게 나라는 사실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을 거다.
스킬이 다르게 보이니 애초에 별 경계심을 갖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고.
‘아예 지금부터 쓰고 다니는 게 낫겠다.’
나는 손수건을 교복 앞주머니에 꽂은 다음, 한쪽에 세워진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용살학원 남학생 대신 멋들어진 정장 차림의 남성이 서 있었다.
까마귀 나무도 신사 지팡이로 바뀐 상태.
‘성능 훌륭하고.’
이 정도면 아무도 못 알아보겠지.
나는 흡족함을 느끼며 [반딧불 양복점>을 나섰다.
다음으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관리를 거의 하지 않는 듯 부서진 가구나 상자 따위가 대충 놓여 있다.
그중 하나를 슬쩍 옆으로 치우자 카드 한 장이 나왔다.
[야영지(1인)]도시 한정 아이템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도가 꽤 높다.
하룻밤을 버티려면 인원수만큼 필요하니까.
나는 비슷한 골목을 뒤져서 [야영지]를 한 장 더 확보했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 퍼펑!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벌써부터 도시에 몬스터가 출몰했을 리는 없고, 십중팔구는 학생들끼리 마찰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아이템을 두고.
– 콰아아아—!
이번에는 폭발 대신 불기둥이 치솟아 오른다.
척 봐도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
‘쟤도 근처에 떨어졌나 보네.’
시작 지점은 랜덤이니까 겹칠 수도 있지.
나는 방향을 틀어 그쪽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있었다.
남학생 하나가 몸에 불이 붙은 채, 아이템 카드를 내보이며 손을 내젓는다.
“알았어, 알았어! 미안하다니까! 가져가, 가져가!”
“거기 놓고 꺼져.”
차갑게 내뱉는 홍연화.
남학생은 아이템 카드를 바닥에 내려놓곤, 뒷걸음질로 물러나다가 후다닥 도망쳐 버렸다.
“흥.”
홍연화는 콧방귀를 뀌곤 아이템을 회수했다.
뒤이어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 쪽을 돌아보며 으르렁거린다.
“넌 또 뭐야?”
외견이 바뀌었으니 못 알아볼 만도 하지.
한 번쯤은 원래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나을 것 같다.
해서 막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빼내려는데, 홍연화가 반짝 눈을 치켜떴다.
“……!?”
험상궂던 표정이 금세 순둥순둥하게 변한다.
꼬리가 있었다면 점점 빠르게 살랑거리지 않았을까 싶다.
홍연화가 다가오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그거…… 아이템 쓴 거야?”
“뭐야, 어떻게 알았어.”
이 손수건 불량 아니야?
바로 조금 전에 끝판왕급이라고 칭찬했더니만.
그러자 홍연화가 반쯤은 쑥스러운, 반쯤은 뿌듯한 태도로 답했다.
“그냥…… 분위기가……? 비슷해서…….”
“분위기로 알아볼 수 있다고?”
“으응…….”
돌이켜 보면 [의태의 토템]을 썼을 때도 당규영은 한눈에 내 정체를 간파했었다.
다들 촉이 보통 예리한 게 아니군.
나는 등줄기가 조금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질문을 던졌다.
“저 친구랑은 왜 싸웠어?”
“그게……. 겨우 찾았는데 가로채 가서…….”
“완전 나쁜 놈이네.”
역시 홍연화가 먼저 시비를 걸었을 리가 없지.
세상에 나쁜 강아지는 없는 법이라지 않던가.
‘살려서 보낸 것도 좋은 판단이고.’
인류애가 넘치는 게 아니라 그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생존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우리 쪽 생존 확률도 조금이나마 올라갈 테니까.
나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파밍은 얼마나 했니?”
“이만큼……?”
홍연화가 한 손 가득 카드들을 꺼내 보였다.
중간고사가 시작되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인 모양이다.
“이 근방에서 얻을 만한 건 다 얻었겠네.”
“응, 아마 두세 개……? 남았을 거야.”
“그럼 아이템은 여기까지만 하고, 가자.”
나는 눈짓으로 시야 저편을 가리켰다.
배리어를 확인하러 갈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