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77
477화 11~12주 차 중간고사 (4)
나는 홍연화와 함께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흐릿하게 보이던 도시 외벽과 대문이 점차 또렷해진다.
피난 행렬 역시 점점 더 규모를 키워 갔다.
가족 단위의 피난민,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나온 장인들, 정갈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들, 허리나 등에 무기를 찬 용병들…….
군데군데 용살학원 교복도 눈에 들어온다.
‘아는 얼굴들도 좀 보이고.’
같은 반 최정필, 창잡이 양지홍 등은 제법 낯익다.
반면 저쪽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는데, [기만의 손수건]이 제 성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역시 불량품은 아닌가 보군.
홍연화가 촉이 좋은 거였어.
학생들이 피난 행렬에 끼어든 이유는 아마 둘 중 하나일 거다.
‘단순 호기심일 수도 있고.’
배리어는 가까이서 보면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로 못 넘어가는 걸까?
넘어갈 수 있다면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
여러모로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기도 하겠지.’
배리어가 쳐진 이상 인파가 몰리는 건 필연적이고, 사람이 많은 곳에는 언제나 사건·사고가 뒤따르게 마련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피난 행렬을 따라 대문을 나섰고, 금세 배리어에 도달할 수 있었다.
– 웅성웅성…….
배리어 근처는 인파로 바글바글했다.
그 너머는 핏빛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은 배리어에 달라붙어서 밀거나 두드리거나 발로 걷어차 보았지만, 당연히 꿈쩍도 안 했다.
보다 못해 용병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섰다.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비켜 주십쇼!”
그에 사람들은 조금 물러나며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내 검을 뽑아 든 채 마나를 끌어 올리는 사내.
칼날을 선명한 푸른 기운으로 둘러싸곤 그대로 내지른다.
– 카가가각!
제법 강력한 일검이었음에도 배리어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에 피난민들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 용병 형씨가 해도 안 되나?
– 그럼 못 나간다는 소리 아니에요?
– 아직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 화력을 집중해 보죠.
– 그거 좋은 생각이군. 모여들 보쇼!
조금이라도 싸울 줄 아는 이들이 한곳에 모인 뒤, 벽의 한 지점에 연신 칼질을 해 댔다.
홍연화가 슬쩍 이쪽을 곁눈질하며 물었다.
“나도…… 해 볼까?”
“마나 낭비야.”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려 S랭크 드래곤이 오랜 기간 준비하고 설치한 배리어다.
같은 등급으로 때려도 될까 말까인데, 그보다 떨어지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지.
결정적으로 배리어 밖으로 나간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다.
일이 그렇게 쉬울 리가 있나.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슬슬 준비해 둬. 좀 있으면 온다.”
“……!”
홍연화는 뭐가 오는 거냐고 묻지 않고 즉시 마법 영창에 들어갔다.
한편, 용병들은 수차례 화력을 퍼부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보고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또 칼질을 하려는데, 개중 하나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야야, 잠깐만, 잠깐 있어 봐.”
“……?”
그에 다른 이들도 덩달아 정지했고, 용병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 드드드드…….
지면이 쉴 새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치 육중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달릴 때의 땅 울림.
심지어 그 무언가는 하나가 아닌 듯했다.
땅 울림은 배리어 너머에서 전해져 오는 것 같았고,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는 것 같았다.
– 드드드드드…….
사람들이 불안한 시선을 교환했다.
용병들도 얼굴을 굳히며 뒷걸음질 친다.
그런 와중에도 땅 울림은 계속 접근해 왔고, 이내 핏빛 장벽을 넘어 무언가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꾸오오오오—!”
오우거, 트롤 등의 중형 몬스터들.
한두 마리 처치하기도 쉽지 않은 놈들인데 그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놈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인정사정없이 곤봉을 휘두르고 내려 찍었다.
배리어 근처에 있던 피난민들이 단숨에 갈려 나간다.
– 꺄아아악—!
– 아아아악!
장내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온 힘을 다해 도시로 내달리는 피난민들과 그들을 추격하는 몬스터 군단.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오우거의 속도를 이길 수 없었다.
놈들은 금세 피난민들을 따라잡아 곤봉을 휘둘렀고, 그럴 때마다 사람 몸뚱이들이 쓰레기처럼 나뒹굴었다.
한편으로는 맞서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용병들과 총포로 무장한 장인들, 용살학원 학생들.
– 서걱—!
– 퍼퍼펑!
검광이 번쩍이고 폭발음이 울릴 때마다 오우거와 트롤들이 하나둘 쓰러진다.
홍연화 역시 화염 마법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몬스터들을 구워 버린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중형 몬스터 군단은 끊임없이 배리어를 넘어오고 있었다.
두셋을 잡을 때마다 열 마리가 추가되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오우거와 트롤들 군데군데에 이질적인 존재들이 끼어 있다.
[드래곤 나침반]이 가장 가까운 놈을 가리킨다.‘슬슬 나오는구만.’
‘슬슬 나오는구만.’
놈들은 인간의 형상에 용의 머리를 했으며, 온몸이 견고한 비늘 갑옷으로 뒤덮여 있었다.
야장룡의 비늘로 만들어진 몬스터.
‘용린병.’
놈들은 찬찬히 전장을 둘러보더니, 한데 모여서 분전 중인 용병들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
– 퍼엉!
막대한 기운이 날아들며 용병의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다음 용병도, 그 다음 용병도 연달아 머리통이 터지는 신세가 되었고, 용병 그룹은 순식간에 궤멸되어 버렸다.
이어서 용린병들의 시선이 용살학원 학생들을 향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는 양지홍이 오우거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창을 찔러 대는 중이었다.
용린병 하나가 그에게 다가가며 손을 휘둘렀으나, 회피와 동시에 반격이 돌아왔다.
– 푸욱,
창날이 비늘과 비늘 사이를 파고든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만큼 방어력이 월등한 까닭이다.
“쯧.”
혀를 차며 창을 회수하는 양지홍.
다음 찰나 다른 곳에서 막대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용린병 하나가 더 가세한 것이다.
양지홍은 가까스로 회피한 뒤 이대일로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으나 전력 차가 여실했다.
그는 전투가 이어질수록 여유가 없어졌고, 결국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 퍼엉!
“……!”
비틀거리는 양지홍.
미처 자세를 회복할 틈도 없이 오우거의 곤봉이 날아왔다.
그는 허리가 꺾인 채 널브러지곤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최정필이 비슷하게 용린병들에게 합공을 받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오래 못 버티겠지.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용린병의 랭크는 C+.
1학년과 엇비슷하거나 살짝 떨어지는 수준이다.
그런 놈들이 여럿에 오우거들까지 가세하면 답이 안 나올 만도 하지.
‘나중에는 더 힘들어질 테고.’
최하위 개체인 용린한테 고전할 정도면 용아, 용조는 안 봐도 뻔하니까.
‘그래도 가능하면 살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도와주러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괜히 자리를 비웠다가 홍연화가 다치면 오히려 손해.
게다가 조금 있으니 우리 쪽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내 머리 위에 마나가 모여들더니 큼지막한 나팔이 생겨났다.
그리고 일대가 떠나가도록 요란하게 울려댔다.
– 빰빠라빰빰빰~!
‘발각되기 쉬워진다더니.’
서브 퀘스트 핸디캡이 터진 모양이다.
덕분에 주변 이목이 모조리 나와 홍연화에게 집중된 상태.
용린병들과 오우거들이 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 온다.
– 콰아아아—!
홍연화가 연달아 파이어 필라를 시전하고 히드라를 소환하지만, 여전히 수적으로는 한참 열세.
‘슬슬 나도 싸워야지.’
나는 한 걸음 내디디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검붉은 불꽃을 가까이 접근한 용린병에게 내뻗었다.
– 콰콰콰콰—!
화염 폭풍이 전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경로에 있던 오우거와 트롤들이 그대로 삭제된다.
반면 용린병은 너덜너덜해졌을지언정 버틴 상태.
방어에 치중한 만큼 관련 특성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원소 저항] C+랭크.
‘마무리를 하기는 해야 되는데.’
빈사 상태지만 놔두면 여전히 위협적이다.
그렇다고 인페르노 피스트를 또 갈기기에는 아까웠기에, 나는 홍연화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바로 내 의도를 캐치하고 히드라들을 조작하는 홍연화.
불덩이들이 용린병에게 쏟아진다.
– 퍼퍼펑!
그러나 놈은 한참을 더 버티고 나서야 쓰러졌다.
그 모습을 일별하며 나는 다른 곳에 인페르노 피스트를 내질렀다.
– 콰콰콰콰—!
또 몬스터 군단이 대거 삭제되고 용린병은 버틴다.
그리고 또 홍연화가 마무리한다.
‘조금씩 어긋나네.’
이상적인 그림은 우리가 광역 스킬을 쉴 새 없이 퍼부어 놈들을 쓸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용린병이 한 방에 쓰러지지 않는 탓에 홍연화가 계속 뒤처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신경이 분산되니 그만큼 광역 마법을 덜 쓰게 되고.
그 점을 눈치챘는지 용린병들도 작전을 바꾸었다.
물량으로 밀어붙이기로 한 듯, 곳곳에서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이쯤에서 후퇴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불주먹을 내뻗었다.
‘이제 올 때도 됐거든.’
– 투두두두두!
마력탄들이 빗발치며 용린병의 몸을 두드렸다.
동시에 칼날처럼 예리한 바람이 몬스터들을 휩쓴다.
– 카가가가각!
“김 형.”
“장려상 줘.”
고현우와 서예인이 각자의 할당량을 채우고 합류한 것이다.
파티원들이 전부 모이자 전투가 한결 수월해졌다.
– 콰아아아—!
다시 광역 마법에 집중하는 홍연화.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치솟고, 히드라들이 연신 불덩이를 토해 낸다.
중형 몬스터들 상당수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휩쓸려 버리기 일쑤였다.
용린병을 마무리하는 역할은 고현우와 서예인이 넘겨 받았고, 때로는 저들끼리 화력을 집중해서 한 놈 한 놈 쓰러뜨렸다.
▷용린병:14
그렇게 얼마간 전투가 이어지자 우리 근처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용린병들은 멀찍이서 이쪽을 응시하다가, 몬스터 군단을 이끌고 도시 외벽으로 향했다.
아무 소득도 없이 병력을 낭비하기보다는 당초의 목표인 도시 함락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고현우가 걱정스런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도우러 가야 하오?”
“아니. 어차피 얼마 못 버텨.”
– 쾅! 쾅! 쾅!
– 쾅! 쾅! 쾅!
오우거들이 미친 듯이 곤봉을 찍어 대고, 그럴 때마다 외벽이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중형 몬스터가 하나도 아니고 기백에 가까우니 공성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우리가 돕는다면 얼마간 시간은 끌 수 있겠지만, 문제는 성벽이 여기 말고도 더 있다는 점이다.
필연적으로 다른 곳이 뚫릴 터.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지. 일단 아이템부터 챙기자.”
사방에 반짝이는 카드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을 빠짐없이 줍고, 파티원들이 도시를 돌며 확보한 카드까지 합치면 무려 수십 장.
다만 정산은 조금 미루는 걸로 하고.
나는 일행들과 함께 배리어로 향했다.
여전히 불길한 핏빛이 일렁거리며 그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곳저곳을 더듬다 보니 고인물의 경험과 직감이 무언가를 감지했다.
‘여기가 좀 약해 보이네.’
이내 나는 까마귀 나무를 들어 그 부분을 짚었다.
그리고 한껏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 시동어를 입에 담았다.
“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