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80
480화 11~12주 차 중간고사 (7)
– 콰아아아앙—!
고요하던 도시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집집마다 창문을 살짝 열어 밖을 내다보고, 어떤 이들은 제대로 무장을 갖추지도 못하고 헐레벌떡 뒤쳐나온다.
서예인과 홍연화도 부스스한 상태로 걸어 나왔다.
“베개…… 어딨어…….”
옆에서 폭탄이 펑펑 터지는 건 상관없지만, 김호베개가 없으면 못 잔다는 마인드.
가까이 다가와서 두 팔을 뻗는다.
“업어 줘.”
“너 업혀서 자려고 그러지.”
“졸려.”
“금방 끝나니까 좀 참자.”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폭발의 진원지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모두가 시선을 집중하는 가운데 또다시 하얀 실선이 그어졌고,
– 콰아아아앙—!
또다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상당히 떨어져 있는 장소임에도 초토화되는 게 눈에 보일 정도.
고현우가 나지막이 감탄사를 흘렸다.
“실로 가공할 위력이로군. 예전에 봤던 브레스라는 것과도 비슷해 보이는데, 야장룡이 한 것이오?”
“아니. 야장룡은 이제 아무것도 안 해.”
모든 설계를 마쳤으니, 이제는 한발 뒤로 물러나서 지켜볼 뿐.
계속 관여하면 오히려 유희의 즐거움이 반감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야장룡을 제외하면 저만한 폭격을 가할 실력자는 하나밖에 없었다.
“용익병이겠구려. 처음 봤을 때부터 강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소.”
“나름 A+니까.”
S랭크까지 벽 하나를 앞둔 상태라 브레스를 약하게나마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야장룡의 역량이 조금 더 뛰어났거나 [용체주조]를 개선할 시간이 있었다면 용익병도 S랭크였겠지.
고현우가 말했다.
“한편으로는 섬뜩하기도 하오. 목표가 이쪽이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터이니.”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적어도 오늘 밤 목표는 정해져 있었으니까.”
놈들의 목표는 바로 도시에 상주하던 무력 집단들.
배리어 근처에서 봤던 이들은 중형 몬스터 군단과 용린 수준에서 쓸려 나갔지만, 용병 중에는 용익병조차 무시 못 할 A, B랭크 실력자들도 더러 존재한다.
그런 실력자들이 세력을 규합하고 반격해 오면 제법 골치 아파질 터.
따라서 적당한 수준의 재미를 유지하기 위해, 선제공격으로 숫자를 조절한 것이다.
이것이 놈들의 일차적인 노림수였고.
또 다른 노림수는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
폭발이 두 번이나 연달아 일어난 마당에 마음 놓고 숙면을 취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대부분은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테고, 오늘 밤 내내 그 상태일 거다.
그리고 곧 놈들의 세 번째 노림수가 드러났다.
– 딸랑, 딸랑…….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미약하여 들릴락 말락 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모두가 들었을 것이다.
– 딸랑, 딸랑…….
그와 동시에 두건을 쓴 사람 형체가 여럿 나타났다.
놈들은 종을 울리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때, 내 몸이 형형색색으로 요란하게 번쩍거렸다.
또 서브 퀘스트 핸디캡이 발동한 것이다.
눈이 부신지 서예인이 실눈을 뜬 채로 말했다.
“RGB김호.”
“솔직히 맞기는 해.”
은근히 별명 잘 짓는다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RGB로 동네방네 존재감을 자랑하는데 저쪽에서 나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두건을 쓴 존재가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경계하며 전투 태세를 갖추려 했으나,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별거 아니야.”
전투력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잡아 봤자 뭘 주지도 않는다.
다만 접선할 필요성은 있었기에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자 두건 안쪽이 보였다.
그것의 정체는 평범한 사내였다.
도시를 걷다 보면 흔하게 발에 채이는 행인 1 정도.
다만 상태는 평범하지 않았는데, 이지를 상실한 듯 표정이 흐리멍텅하고 눈은 흰자위만 보였다.
자세히 보면 움직임도 꼭두각시 인형처럼 부자연스럽다.
실제로도 도시에서 주민을 잡아다가 조종하는 거다.
이내 무언가가 복화술을 하듯 두건 사내의 입을 빌려서 말했다.
“자격을 갖춘 인간들이여, 거래를 제안하겠다. 받아들이는 편이 생존에 이로우리라.”
놈이 말하는 ‘자격’이란 용체병을 한 기 이상 처치할 정도의 강함을 말한다.
어중이떠중이한테는 거래는커녕 반응조차 안 해 주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일단 뭐 있는지 구경이나 합시다.”
그러자 두건 사내가 말없이 목록을 띄워 올렸다.
1. [보호의 부적(12시간)]
▷지속 시간 동안 야장룡의 군세에 공격받지 않습니다.
– 선제 공격시 해제.
– 최대 4인에게 적용.
▷가격:무작위 구성원 1인 희생.
2. [보호의 부적(8시간)]
▷지속 시간 동안 야장룡의 군세에 공격받지 않습니다.
– 선제 공격시 해제.
– 최대 3인에게 적용.
▷가격:제한시간 이내에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1인 이상 처치
3. [하수인의 낙인]
▷야장룡의 군세에 공격받지 않습니다.
▷하수인 전용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격:특수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 특수 퀘스트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 중간고사 생존 일수 -3
4. [브레스 알림]
▷다음날, 브레스가 발사되기 전에 위치를 공유받습니다.
▷가격:지정한 스킬/특성 봉인.
“…….”
일행들의 표정은 가히 좋지 않았다.
고현우조차 인상을 찌푸릴 정도.
거래 항목 하나하나가 악의로 똘똘 뭉쳐 있었기 때문이다.
1번은 쉽게 말해 러시안 룰렛.
한 명을 희생해서 반나절을 버티는 것은 상황에 따라 괜찮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무작위라는 거지.’
룰렛에 걸리는 게 파티의 리더 또는 핵심적인 인원이 희생된다면?
순식간에 파티의 전력이 급감하게 된다.
생존이 어려워지는 만큼 거래의 의존도는 더 커질 테고.
‘신뢰가 무너진다는 점도 치명적이고.’
살기 위해서라면 동료를 희생하는 것도 감수하는 집단.
그런 집단에서 서로에게 목숨을 맡긴 채 전투에 임할 수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거래를 트는 순간 분열이 시작되는 셈이다.
2번은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처치해야 하니, 사실상 사냥이 아니라 집단과 집단이 상잔하는 형태가 될 터.
짐작건대 양측이 한 명씩 잃는 수준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1, 2번은 지속 시간도 짧아.’
12시간과 8시간.
밤잠이야 마음 편히 잘 수 있겠지만, 그러고 다음 거래까지 반나절 가량은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
당연히 의도적으로 짧게 설정한 거다.
거래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도록.
‘선제공격 시 해제된다는 점도 교묘하지.’
효과를 온전히 받으려면 지속 시간 동안 전선에서 이탈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강자들을 무력화하고 내분을 일으키는 것만 해도 야장룡 입장에서는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다.
3번은 아예 야장룡의 하수인이 되는 것.
크래프트 헤이븐이 완전히 붕괴하기까지, 최대 7일을 생존할 수 있다.
중간고사 성적은 여기서 3일을 차감하여 4일.
실력이 떨어지면 이렇게라도 4일을 채우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특수 퀘스트 내용이 문제지.’
애초에 사람을 벌레처럼 여기고 죽이는 드래곤인데, 하수인이 되었다고 대우가 달라질 리가 있나.
특수 퀘스트 내용은 2번 항목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는 않을 거다.
뒤늦게 거역해 봤자 죽음만이 기다릴 뿐.
어중간하게 하수인이 됐다가 3, 4일쯤에 죽으면 첫날 개죽음당한 것만 못하게 된다.
4번도 거의 대동강 물 팔아먹기 수준.
오늘은 용병들을 겨냥하여 브레스를 쐈지만, 내일은 무작위일 거다.
그 위치를 사전에 통보해 줄 테니 스킬/특성을 하나 잠그라는 소리다.
‘그래도 이건 하는 게 나아.’
이미 위력은 선전이 끝났고, 운이 나쁘면 그게 머리위에 떨어질 터.
자다가 객사하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4번은 거래를 하는 게 맞다.
나는 흘긋 서예인을 쳐다보았다.
‘복덩이 레이더가 있기는 한데.’
전적으로 여기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
100% 확실한 방법으로 피해 가는 게 낫다.
‘전력 감소가 큰 것도 아니고.’
비교적 효율이 떨어지는 스킬/특성은 다들 한둘씩 갖고 있으니, 번갈아서 하나씩 포기하면 그만이다.
계산을 마치고 나는 서예인에게 지시했다.
“오늘은 네가 거래해. 4번으로.”
“응.”
고개를 끄덕이곤 두건 사내를 쳐다보는 서예인.
오가는 대화를 들었는지 놈이 말했다.
“무엇을 봉인할지 정하라.”
다시 서예인의 시선이 내쪽을 향했다.
“……?”
“[충격탄] 잠그자.”
“확인.
이윽고 두건 사내의 손에 마나가 모여들며 자그마한 자물쇠가 생성되었다.
서예인은 그것을 건네받은 다음 최후의 결정을 내렸고, 자물쇠가 스르르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중간고사를 치르는 동안에는 [충격탄], 그리고 조합 스킬인 [충폭탄]까지 봉인된 셈이다.
그래도 [폭발탄]은 아직 유효하니 위력 자체는 그리 떨어지지 않았을 거다.
두건 사내가 말했다.
“거래가 성사되었다. 또 선택할 것이 남았는가?”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
“좋다.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 딸랑, 딸랑…….
이내 놈은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종을 흔들며 길을 나섰다.
그리고 점점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홍연화는 놈이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불쾌한 기색이었다.
“저게 무슨 거래라고.”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지독한 처사 같구려. 특히 1번에서 3번은…… 과연 선택하는 이가 있을지 의문이었소.”
고현우도 쉽사리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에 내가 말했다.
“오늘 밤에는 없었겠지. 대부분 엎어 버리거나 우리처럼 4번으로 갔을 거다. 그런데 내일은 또 모르는 일 아니겠냐.”
오늘이야 조금 버겁기는 해도 해볼 만했으니 ‘보호’의 중요성이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과연 내일도, 모레도 해볼 만할까?
그리고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워졌을 때, 사람들의 생각이 지금과 변함없을까?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일행들과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말만 거래지 사실상 횡포야. 압도적으로 강하면 저런 짓도 가능해지는 거다.”
거래 역시 야장룡이 준비한 유희의 일환.
밟아 죽이는 건 정해져 있지만, 그 전에 자신을 조금 더 재밌게 만들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우리도 강해져야겠지.”
“절절히 실감하는 바요.”
고현우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나머지 일행들 역시 말없이 동의를 표했다.
나는 브레스가 떨어졌던 먼 저편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원하는 대로 놀아나 준다.’
하지만 다음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의를 다지던 도중, 서예인이 내 팔을 톡톡 건드리길래 쳐다보았다.
“왜?”
“끝?”
“끝났지, 오늘은.”
“베개?”
곧바로 두 팔을 뻗어오는 서예인.
결의는 결의고 일단은 좀 자야겠다는 마인드다.
나 역시 천천히 두 손을 마주 뻗었다.
그리고 서예인의 양 볼을 찝은 다음 쭉 잡아당겼다.
“머릿속에 베개 생각밖에 없지.”
“볼따구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