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490
490화 11~12주 차 중간고사 (17)
야장룡은 얼마간 가만히 우리를 굽어보았다.
고생 끝에 만들어 낸 역작을 감상하듯 흡족한 기색으로.
우리가 유희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내 놈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따분한 삶에 잠깐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으니. 당초 계획과는 많은 것이 어긋났으나 이 또한 유희의 묘미이리라.”
“…….”
“하여 너희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려 한다.”
– 딸랑…… 딸랑…….
언제부터인가 나는 두건을 쓴 사내와 단둘이서 마주하고 있었다.
야장룡도, 일행들도, 포위망을 형성한 몬스터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
‘정신 마법.’
그중에서도 환상을 보여 주는 계통으로 짐작된다.
S랭크가 시전한 탓에 [군주]의 방벽을 약간이나마 비집고 들어온 모양.
내가 이런 상황이니 다른 이들은 제대로 걸렸겠지.
‘마음만 먹으면 그냥 풀 수도 있는데.’
나아가서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나는 굳이 나서지 않기로 했다.
‘위협적인 마법은 아니니까.’
정신을 갉아먹거나 조작하는 부류가 아니라 단순히 환상으로 개개인을 격리하는 용도.
집단에 영향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판단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 입장에서도 은근히 결과가 궁금하니 이대로 지켜볼 생각이다.
‘물론 내꺼부터 해결한 다음에.’
이윽고 두건 사내의 손 위에 선명한 인장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인장을 받아들이고 하수인이 되어라. 그리하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물론 측근으로서 중용될 것이다.”
거래의 3번 항목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가치를 증명한 상태.
하수인으로 삼더라도 사공욱 패거리처럼 인간 수류탄으로 날려 먹지는 않을 거다.
여기 있는 일행들은 배신해야 할 테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중간고사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가정해 보았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찾아온 마지막 기회라고.
인간으로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많은 것을 포기하더라도 살아남을 것인가?
오래 고민하지 않아 결론이 나왔다.
나는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거절한다.”
“흥미롭군. 이유가 뭐지?”
“내 삶이니까. 남한테 맡기는 건 영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내 힘으로 쟁취할 수 없는 삶이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아저씨는 신용이 없어요, 신용이.”
다른 평판 좋고 착한 드래곤이라면 눈곱만큼이라도 고려해 봤을 테지만, 야장룡 밑에 들어가는 건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다.
말이 측근이지 결국에는 용체병으로 제작되지 않을까.
여기까지 말했을 때쯤 [군주]의 정신 방벽이 환상을 완전히 몰아냈다.
장대비가 다시 얼굴을 두드리고, 일행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 역시 대답을 내놓는 중이었다.
“일고의 가치조차 없군.”
“거절하겠어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싫어.”
“측근? 그 따위 사탕발림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나?”
결과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거절.
혹시나 했던 신병철조차도 말이다.
그에 야장룡은 정신 마법을 거두어들이며 감탄사를 흘렸다.
“참으로 숭고하도다. 그 결정에 걸맞는 최후를 선사하도록 하마.”
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풍처럼 자리하고 있던 몬스터 군단이 일제히 전투 태세를 갖췄다.
– 척!
쏘아져 오는 살기에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나는 찬찬히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해 둬. 내년에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할 수 있게.”
“좋은 생각이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송천혜.
이 멤버 그대로 도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거기다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병철이는 뺄까 봐.”
“아니, 나는 왜?”
“지금 뭘 들고 계시죠?”
“……크흠.”
신병철이 머쓱하게 젓가락을 고쳐 쥐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환기됐는지 모두가 호기롭게 미소 지었다.
뒤이어 이성현이 타워실드를 바닥에 강하게 찍었다.
– 쿵!
“와라!”
용조병 수십 마리가 일제히 훌쩍 도약하며 사방에서 짓쳐 들었다.
그 즉시 나는 스킬들을 연계했다.
[‘문어발’을 사용합니다.] [‘부여’를 사용합니다.] [‘부여’를 사용합니다.] [대상에게 ‘왜곡’을 부여합니다.] [대상에게 ‘왜곡’을…….] [대상에게 ‘왜곡’…….]고현우, 서예인, 홍연화, 그리고 신병철에게 왜곡을 넘겨준다.
다음으로 나 자신의 스펙을 끌어올린다.
[‘문어발’을 사용합니다.] [‘증폭’을 사용합니다.] [‘코어’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B+→S+)] [‘인페르노 피스트’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B→S)] [‘윈드포스’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B+→S+)] [‘나선폭발’의 등급…….] [‘깃털걸음’의 등급…….]…….
– 펑!
용조병 두 마리가 압축된 바람을 얻어맞고 날아갔다.
그렇게 생겨난 자리에 또 두 마리가 비집고 들어오며 검을 휘두른다.
이리저리 몸을 기울여 피하는 서예인.
한 놈의 장검이 정수리에 내려꽂히지만,
– 땡,
불멸 냄비를 뒤집어쓴 덕분에 무사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적.
전투가 막을 올리기 무섭게 끝으로 치달아 간다.
– 파지지직—
넓은 범위에 전류를 흩뿌리는 송천혜.
그러나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그녀의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용조병 두 마리가 미친 듯이 장검을 휘젓는다.
– 서거거걱!
거기에 휘말린 모용준과 선도부원들이 조각조각 분해된다.
망치 용조병 여럿이 이성현을 마구 두들겼다.
– 쿵, 쿵, 쿵!
방패가 날아가고 그 주인 역시 갑옷째로 형편없이 찌그러져 버렸다.
장검 용조병과 힘겹게 공방을 나누는 고현우.
부여해 준 왜곡은 진작에 빠진 상태다.
두 칼잡이가 재차 검을 맞대는 찰나, 불쑥 용조병 한 놈이 끼어들며 사선으로 검을 그었다.
– 서걱—
고현우의 상반신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 한소미가 비명처럼 외쳤다.
“안 돼—!”
그리고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으나, 그녀 역시 금세 같은 최후를 맞게 되었다.
– 푸욱!
두꺼운 창 두 자루가 홍연화의 가슴팍과 복부를 관통했다.
꿰인 채로 내 팔을 붙잡고 씁쓸하게 웃는다.
“나가서…… 봐.”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장내에 남은 건 세 사람뿐.
나, 서예인, 그리고 의외로 신병철이다.
용조병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그가 빛나는 카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탈—!”
– 파아앗!
그리고 빛에 휩싸인 채 하늘 높이 쏘아져 올라갔다가, 그 자리에 그대로 떨어져 내린다.
남아 있는 참가자가 우리뿐이라 그렇다.
신병철이 뻘쭘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었다.
“아이,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안 되네. 근데 솔직히 유쾌했죠 행님들? 인정?”
그에 용조병들은 인정사정없이 무기를 휘둘렀고, 신병철은 외마디 단말마를 남기며 사라져 버렸다.
“끼에에엑—!”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서예인.
이어서 일행들이 서 있던 곳을 찬찬히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야장룡을 똑바로 응시한다.
“……화가 난다.”
“친구들을 잃어서인가?”
“친구들.”
겉으로는 관심 없어 보여도 내심 친구로 여기고 있었나 보다.
야장룡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분노는 때때로 강한 동기가 되기도 하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혼내 준다.”
“나를? 그게 가능하면 왜 진작 하지 않았나?”
“아껴 두라고 했어.”
“누가?”
“삼촌이.”
야장룡이 또다시 웃음을 흘렸다.
“기대되는구나. 그렇게나 아끼고 아꼈던 한 수가 무엇일지.”
“…….”
– 스으으…….
회색빛 머리카락이 정수리부터 새하얗게 물들어 갔다.
동시에 환한 광채가 서예인의 온몸을 휘감았다.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
그 상태로 한 손을 머리 위로 뻗는다.
– 콰아아아아—!
빛 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검붉은 배리어를 그대로 뚫어 버리는 것은 물론,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까지 헤집어 놓는다.
장대비가 드문드문해지고 서광이 비친다.
이내 광채는 별무리로 변하여 하늘 위에서 소용돌이쳤다.
야장룡은 여태까지와는 달리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기술은……!”
“초필살기.”
서예인은 또다시 그렇게 말하며 새하얗게 빛나는 돌격소총으로 야장룡을 겨누었다.
총구가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별무리가 떨어져 내렸다.
– 파아아앗!
수십 수백 개의 빛나는 별들이 야장룡을 둘러싼 배리어를 두들긴다.
그에 놈이 다급하게 외쳤다.
– 죽여라!!
모든 용조병들이 일제히 서예인을 향해 짓쳐 들었다.
무수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지만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나는 서예인 곁에 자리 잡은 채 까마귀 나무를 저었다.
– 퍼엉!
압축된 바람이 폭발하며 용조병이 나가떨어졌다.
뒤이어 몰아치는 화염 폭풍.
– 콰콰콰콰—!
주먹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실제로도 숯덩이가 되어가는 중이고.
[레트로커버리]도 없는데 원소 페널티를 S랭크로 받았으니 당연한 결과다.물론 다 끝나가는 마당에 몸을 사릴 이유도 없다.
불타는 주먹을 또다시 앞으로 뻗는다.
– 콰콰콰콰—!
그러나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
계속 밀어내고 불태웠음에도 용조병들은 꾸역꾸역 밀고 들어왔고, 끝내는 서예인의 몸에 날붙이들을 박아넣었다.
– 푸욱,
“…….”
환한 광채가 서서히 사그라들고, 순백이었던 머리카락도 다시 회색으로 돌아온다.
이내 서예인은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려상.”
“그래, 나가서.”
그리고 그대로 입자로 화해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자 하니 야장룡이 물었다.
“인간이 느끼는 상실의 고통이란 실로 엄청나다지. 그 점을 감안해서 네놈은 마지막까지 남겨 두고자 마음먹었다.”
“이 아저씨 뒤끝 장난 아니네.”
용익병을 처치한 게 나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 복수를 하려는 거다.
눈앞에서 일행들을 전부 죽이고 마지막에 나를 죽이는 식으로.
놈이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군. 네 애인처럼 분노가 끓어오르는가?”
“그 정도까진 아니고.”
어차피 과거의 존재에 인공 던전의 일부.
화내면 나만 손해다.
“그래도 목표를 되새기는 계기는 됐지.”
“목표라면?”
“강해지는 거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야 인간들 대부분이 추구하는 가치 아닌가?”
“그렇기는 한데 나는 욕심이 아주 많거든. 그냥 강해지는 걸로는 부족하고, 압도적인 힘이 필요해.”
내 말에 야장룡이 흥미를 드러냈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 하나?”
“그래야 아무도 잃지 않을 테니까.”
상대방보다 전력이 부족하면 조금 전처럼 패배하고 전멸할 터.
비슷하거나 우위라면 승리는 거머쥘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할 거다.
그 피해는 십중팔구 사상자로 이어질 테고, 어쩌면 나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 거기 포함될지도 모른다.
과연 그걸 해피 엔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압도적으로 강해지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지. 너희가 그랬던 것처럼 그냥 밟아 버리면 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나름 자신도 있어 보이는군.”
“무조건이야.”
“기대된다는 말을 하고 싶으나…… 참 얄궂지 않은가? 그게 네놈의 마지막 유언이라는 것이.”
“너는 이해 못할 거다.”
여기가 인공 던전이고 우리가 내년에 다시 맞붙게 되리란 사실을.
나는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다음에 만날 야장룡은 기억조차 못 할 테니까.
여태까지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 역시 사실상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씩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럼 내년에 보자고들.”
“……죽여라.”
용조병들이 시야를 가득 뒤덮으며 짓쳐 왔다.
나는 마주 걸음을 내디디며 인페르노 피스트를 내뻗었다.
– 콰콰콰콰—!
양팔이 다 타고 재가 되어 부스러질 때까지.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