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504
504화 서 씨 부부
안정미에게 듣기로는 서 씨네 아버님과 어머님 모두 공방에 계신단다.
해서 그쪽으로 통화를 연결하자, 곧 수정구에 차분한 인상의 여성이 나타났다.
나는 흘긋 서예인을 곁눈질했다.
‘거의 판박이 수준이네.’
어른 버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지만 말이다.
서 씨 어머님이 포근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 딸, 잘 지냈어?
“어디 갔었어?”
– 아빠나 안 팀장님한테 못 들었니?
“……여행?”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투로 답하는 서예인.
내 추측으로는 안정미가 적어도 세 번은 얘기했을 거다.
그걸 조느라 제대로 안 들었거나,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했겠지.
집사의 삶이 이렇게나 고달프다.
서 씨네 어머님으로서는 늘상 있는 일인지,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 요새 분위기 안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
“나쁜 용용이들.”
– 그것 때문에 회의할 일이 늘어났거든.
혈교와 드래곤들의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고, 세간의 경각심이 고조되는 상황.
혜성그룹으로서도 다른 문파, 기업, 마탑 등과 관계를 다져 둘 필요가 있었다.
힘을 합쳐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면 양측 모두에게 이득 아니겠는가.
원래는 미래전략실 1팀에서 처리할 일이었는데,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서 씨네 어머님에게도 손을 벌리게 되었단다.
해서 거의 세계 일주를 하다시피 하며 회의, 또 회의를 거치다가 다른 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고.
여기까지 설명하니 서예인도 전부 이해한 듯했다.
그제야 내 쪽을 쳐다보는 서 씨 어머님.
나는 곧바로 묵례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호라고 합니다.”
– 얘기 들었어요. 예인이가 많이 의지한다고.
그 말마따나 지금 서예인은 내 등에 빨래 널리듯 업힌 채 어깨에 턱을 올리고 있다.
대개 부모님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타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곤 하는데, 이 녀석은 다 필요 없고 자기가 편한 게 제일 중요한가 보다.
그 상태로 짤막하게 한마디 던진다.
“종신 집사.”
– 그렇게 좋아?
“1등 집사.”
– ……누구를 저렇게까지 잘 따르는 애가 아니었는데, 부모로서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요. 벌써 [결속]까지 맺었다지요?
“예, 미리 상의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른 분들께 충분히 상의했다고 들었고, 이래저래 예인이의 선택을 존중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 직접 들으니 더 안심이 되네요.
부드럽게 웃는 서 씨네 어머님.
이만하면 첫인상은 합격이라고 봐도 되겠지.
이후에도 나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들이 날아왔다.
거기에 막힘 없이 답하는 한편, 나도 나대로 상대방을 관찰했다.
모녀의 외모가 굉장히 비슷하다는 점은 차치하고,
‘당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머리색.’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갈색이다.
아무래도 서예인의 회색 머리는 아버님 쪽에서 물려받은 모양이다.
‘그럼 아버님은 어느 쪽에서?’ 라는 의문이 남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
다음으로는 내적인 면을 살펴 보았다.
‘처세가 아주 능숙하셔.’
서 씨 부녀는 간략하게 자기 할 말만 딱딱 하는 반면, 어머님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화법을 구사하여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얻고자 하는 답변은 전부 얻어 내는 중이고.
하기야 혜성그룹쯤 되는 거대 기업의 이사직이라면 사람을 한둘 다루는 게 아닐 테니까.
‘유성룡이나 명왕룡과의 연결점은 딱히 안 보이는데.’
수정구를 통해 나눈 짧은 대화만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그렇다.
얼마간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다가, 서 씨 어머님이 시간을 확인하곤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 미안해요, 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곧 회의라서.
“다음에는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 그렇게 해요. 당신도 한마디 해.
– ……바쁘다.
– 예인이가 모처럼 연락했잖아.
조곤조곤한 어조로 핀잔을 건네는 어머님.
그에 배경에서 번쩍거리던 푸른빛이 잦아들더니, 수정구 한 켠에 불쑥 용접 가면이 솟아났다.
장갑을 낀 손이 그걸 위로 젖히자 서 씨 아버님의 얼굴이 드러난다.
– 딸.
“아빠.”
“안녕하십니까.”
서 씨 아버님은 얼른 하던 작업이나 마저 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를 보며 짤막하게 한마디 건네는 게 전부.
– 놀러 와라. 연습 많이 했다.
“예, 꼭 찾아뵙겠습니다.”
연습이라는 건 미니 게임 얘기겠지.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 1승을 따내겠노라 벼르고 계신가 보다.
이어서 우리는 당초의 목적대로, 명왕룡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복덩이 행운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자, 그가 얼마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 어림잡아 열흘 정도 걸렸구나. 고생 많았다, 조카야.
“……힘들었어.”
– 필살기는 앞으로 조금 더 신중하게 쓰려무나.
열흘씩이나 행운을 봉인할 가치가 있는지 저울질해 본 다음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고서야 아끼는 게 나을 듯하다.
명왕룡의 조언이 이어졌다.
– 전에도 말했듯이 코어 랭크를 올리면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게다.
“페널티가 완화된다고 말씀하셨지요.”
열흘이었던 것이 일주일, 혹은 그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 말에 서예인이 관심을 드러냈다.
“……A랭크.”
– 얼마 안 남았으니 열심히 하거라, 조카야. 내가 보내 준 것들도 잘 써먹고.
얼마 전 명왕룡이 보낸 영약들이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다.
한 번에 모조리 때려 넣으면 역효과라 마나 연공 한 바퀴에 단약 하나, 혹은 하수오 한 뿌리 식으로 야금야금 먹이는 중이다.
다 해치우는 데에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A랭크는 찍고도 남겠지.
여기까지 하고 명왕룡이 통신을 끊으려는데, 서예인이 수정구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대부.”
– 왜 그러느냐.
“나도 블링크.”
A랭크가 가깝다니 다시 미련이 생기나 보다.
시공간 계열 스킬을 하나둘 배우는 단계라니까.
물론 명왕룡의 답변은 내가 했던 말과 비슷했다.
– 네 할아버지를 지켜본바, 총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유감스러운 일이야.
서예인이 축 늘어지려다가, 얼굴에 약간의 희망을 떠올렸다.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조금이나마 있기는 있다는 뜻.
“……뭐 있어?”
– 내 분야가 아니라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드래곤이라도 이 세상 모든 스킬을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슬픔…….”
– 정 방법을 강구하고 싶다면 까마귀들을 찾아가 보려무나. 공간 마법에는 도가 튼 녀석들 아니더냐.
“! 까악.”
– 만나기가 까다롭다는 것이 문제기는 한데…… 군주 꼬맹이랑은 이미 몇 번이나 거래를 했다지?
“……!”
서예인이 기대감이 잔뜩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바톤이 넘어왔군.
드래곤의 연륜이 느껴지는 떠넘기기였다.
“찾아가는 건 가능합니다. 다만 순순히 스킬을 내줄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차원 까마귀들이 나름대로 온건한 성향인 것은 맞지만, 마냥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녀석들에게 무언가를 얻어 내려면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러야 하며, 공간 마법의 경우 거래 자체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명왕룡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나도 안다. 그래도 시도쯤은 해 볼 만하겠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번 데려가려고요.”
–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마.
이내 수정구에서 명왕룡의 모습이 사라졌다.
곧바로 엉겨 붙는 서예인.
“까마귀.”
“가는 건 정해졌는데, 그 전에 할 일이 있지요?”
“뭐죠.”
“코어부터 올려야지.”
만에 하나 차원 까마귀들에게 공간 계열 스킬을 배운다 쳐도, B랭크 [코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공간 단절]을 쓸 때처럼,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나무늘보 배터리가 바닥날 뿐.최소 조건도 만족하지 못했는데 찾아가서 무슨 소용이겠는가.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서예인이 인벤토리에서 하수오 한 뿌리를 꺼내 들었다.
“연공실.”
“분노의 마나연공 가나요?”
“출발.”
우리는 밤새 특수연공실에서 코어를 연마했다.
* * *
월요일 아침.
수업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각자의 기숙사에 들르기로 했다.
해서 막 특수연공실을 나서는데, 맞은편 문이 열리며 송천혜가 걸어 나왔다.
우리를 보자마자 흠칫 놀란다.
“왜, 왜…… 둘이서, 나와요?”
“둘이서 연공을 했으니까 둘이서 나오지.”
“둘이서 마나 연공을요?”
굉장히 미심쩍고 수상하다는 표정을 짓는 송천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안심하고.”
“그런 생각 안 했거든요?”
“아무렴요. 코어작은 잘 되고 있니?”
그에 송천혜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젯밤에 막 벽을 넘었습니다. 이제 저도 A랭크에요.”
“축하한다. 학년 2위네.”
“왜 2위에요?”
“내가 1위니까?”
“그쪽도 넘은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공동 1위로 치시죠.”
괜스레 호승심이 들었는지 억지를 부린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안 될 말씀이야. 같은 A랭크라도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거든.”
“무슨 격차인데요?”
“넌 블링크 못 쓰잖아.”
“저도 배웠거든요?”
“배우기만 하면 뭐 해. 쓸 줄 알아?”
그에 잠시 말문이 막힌 송천혜.
우물쭈물하다가 딴 곳을 보며 말한다.
“당연히? 쓸 줄 알죠. 별로 어렵지도 않던데요, 블링크.”
“그래? 한번 보여 줘 봐.”
“지금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수, 수업 준비! 하러 가야 돼서.”
“얼마나 걸린다고?”
핑계를 원천차단하기 위해 나는 블링크를 시연했다.
슉 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나타난다.
“몇 초면 되는구만.”
“아니 그게…….”
“허허, 왜 이렇게 말이 길어지실까. 못 쓰는 거 맞지? 배우기만 하고.”
“그게 아니라요…….”
나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살살 긁었다.
“그냥 2위 해. 야, 1학년이 수백 명인데, 거기서 2위도 나쁘지 않아.”
“할 줄 안다고요! 보여 주면 될 거 아니야.”
버럭 역정을 내곤 두 손에 장갑을 끼는 송천혜.
제법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지만, 자세히 보면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 중이다.
불안감을 떨쳐 내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한다.
“후우우…… 그럼 쓰, 쓸게요?”
“예, 쓰세요.”
이내 송천혜가 전방을 응시하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전류가 파직거리고 복잡한 술식이 완성되어 간다.
다음 순간 슉 하고 신형이 사라지더니,
– 쿵!!
뒤쪽에서 요란한 충돌음이 울렸다.
“쟤는 왜 뒤로 날아갔대.”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니 송천혜가 벽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뒤로 날아간 걸로도 모자라 벽에 온몸을 들이받은 모양이다.
“……! ……!”
얼굴을 감싼 채 몸부림치는 송천혜.
귀까지 빨개진 걸 보면 고통보다 수치심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나는 끌끌 혀를 차곤 지켜보던 서예인에게 말했다.
“보셨습니까? 블링크가 저렇게 위험한 거예요.”
“……허접.”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