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508
508화 책 좀 빌려주세요
경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고현우와 서예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 형.”
“잘들 했나?”
“아쉽게도 두 경기 연속으로 합공 팀만 걸렸다오. 그래도 제법 유익한 경험이었소.”
승패를 떠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 마인드.
이어서 고현우가 나는 어땠는지 되물으려는데, 한소미가 빠르게 다가와서 대신 답했다.
“방금 쟤랑 붙었어!”
“김 형과 말이오?”
“그렇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구려.”
“그럼 매점으로 출발!”
한소미는 고현우의 팔을 잡아끌면서 이쪽에 대고 히히 웃어 보였다.
‘학습을 하셨구만.‘
여태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고현우에게는 김형팔이가 가장 잘 통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대인전 얘기는 당사자인 내가 직접 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둘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해서 둘을 보낸 다음 고개를 돌려 보니, 홍연화가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또르르 눈알을 굴린다.
“그게…… 수고했어.”
“너도 고생했다. 판단 좋더라, 팀워크도 잘 맞고.”
패착이라면 나한테만 ★블링크★가 있었다는 점이겠지.
홍연화는 그 부분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칭찬받은 게 기쁜지 안색이 밝다.
그러곤 또 쭈뼛거리다가 조심스레 묻는다.
“커피…… 마실래?”
“그럽시다. 할 얘기도 있으니까.”
나는 서예인, 홍연화와 함께 매점으로 걸음을 옮겼고, 마실거리 한 잔씩을 사들고 나왔다.
근처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얼마간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다가, 내가 서예인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땠는가? 대인전.”
“방어 두 번.”
“원하는 대로 됐네. 이김?”
“이김.”
손으로 V자를 그려 보이는 서예인.
자신있게 몰살 선언을 하더니 정말로 그렇게 했나 보다.
나는 또 질문을 던졌다.
“하면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고?”
“……조금?”
“어떤 게?”
“블링크.”
요즘은 거의 입버릇처럼 블링크 타령을 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해서 우리는 다 같이 서예인의 리플레이를 확인해 보았다.
수정구 속으로 각기 다른 클래스를 가진 학생 넷이 비췄다.
서투르게나마 보조를 맞추며 합공을 가한다.
날아드는 검기와 칼날, 마법과 화살 등을 서예인은 뛰어난 컨트롤로 회피했고, 가끔은 불멸 냄비를 슬쩍슬쩍 들어서 막기도 했다.
그러나 미세한 차이로 공격이 스쳐 지나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방어 팀에게는 특수 실드 5%가 적용된 상태였기에, 스치는 정도로는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다.
반면 마력총이 불을 뿜을 때마다 합공 팀의 체력이 뚝뚝 떨어졌고, 결국에는 하나둘 쓰러져 갔다.
나는 다시금 서예인에게 칭찬을 건넸다.
“잘 싸웠네.”
다만 비슷한 구도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져서 더 볼 필요는 없을 듯했다.
뭐가 아쉬운지도 대강 파악했고.
“떼어 내질 못하네, 칼잡이들.”
“달리기 빨라.”
서예인이 익힌 깃털걸음은 복합적인 효과를 가진 이동 스킬.
몸이 가벼워지거나 난기류를 발생시키는 효과는 차치하고, 단순히 속도만 놓고 보면 비슷하거나 그 이상 가는 보법은 꽤 많다.
그리고 원거리 클래스가 근거리에게 따라잡힌다는 건 사실상 패배를 의미한다.
금주 대인전은 특수 규칙도 적용된 데다, 서예인의 실력이 상대팀 4인방에 비해 월등해서 저렇게 보였을 뿐이다.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두 가지 해결책이 있어요.”
“뭐죠.”
“간단해. 네가 더 빨라지면 되지.”
블링크는 몰라도, 총사/궁수/도적 계통 보조 스킬들은 얼마든지 더 배울 수 있다.
당장 유령무영도 갖고 있고.
여러 개 익혀서 적절하게 섞어 쓰면 어지간해서는 잡힐 일이 없어질 거다.
“다른 방법은 상대를 느리게 하는 거야.”
빙결, 둔화, 속박 등 다양한 디버프를 걸어서.
마침 쓸 만한 함정 스킬도 갖고 있으니, 그쪽으로 파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가령 이동하면서 함정을 설치하는 스킬이라던가.
“당연히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지.”
“전부 습득.”
“그래, 나중에 집사님이랑 얘기해 보는 걸로 하고. 일단은 하던 것부터 끝내야지.”
“코어.”
“A랭크부터 찍고 봅시다.”
서예인이 고개를 살짝 위아래로 흔들곤, 의욕이 넘치는 기색으로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트레이닝 센터.”
“먼저 가 있어. 오늘은 좀 돌아다녀야 되거든.”
“응.”
평소에는 김호베개가 있어야 마나 연공을 하는 서예인이었지만, 오늘은 한시라도 빨리 코어를 올리고 싶은지 혼자 트레이닝 센터로 떠났다.
다음으로 나는 홍연화를 쳐다보았다.
“너네 부실 좀 가자.”
“우리 부실……?”
“선배님이랑 상의할 게 있어서.”
“……?”
홍연화는 궁금증이 늘어만 가는 눈치였으나, 종종 있는 일이기도 했기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우리는 루비 마탑 동아리실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외치는 홍연화.
“언니, 나 왔어!”
“응, 쉬어.”
홍예화는 동아리 관련 업무로 바쁜지 이쪽을 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답했다.
이에 홍연화가 다시 외쳤다.
“김호도 왔어!”
“……?”
그제야 고개를 홱 돌리는 홍예화.
우리가 나란히 커피잔을 든 것을 보자 대번에 미간이 좁아진다.
그러나 동아리 부장답게 빠르게 표정 관리를 하고 말한다.
“김호 왔구나.”
“예, 선배님. 상의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래, 앉아.”
홍예화는 부실 한쪽에 마련된 손님 접대용 소파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런데 홍연화가 무슨 이유에선지 다급히 우리를 앞질러 가더니, 어질러져 있던 쿠션들을 척척 정리했다.
그러곤 딴곳을 쳐다보며 둘러댄다.
“아, 아니이. 너무 지저분한 거 같아서……?”
“평소에 좀 그렇게 치워 봐라!”
“지금이라도 치우면 됐지!”
“어휴, 저걸 진짜.”
홍예화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젓곤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고, 나도 맞은편에 앉았다.
또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가는 홍연화.
고급진 쿠키 세트를 갖고 와선 내 앞에 내려놓는다.
“이거…… 먹어.”
“야, 홍연화. 그거 아직도 남아 있었어?”
“숨겨 놨지. 그냥 두면 언니가 다 먹잖아.”
“그걸 김호 왔다고 홀라당 내줘?”
“김호 왔다고 홀라당이 아니라! 손님이잖아, 손님.”
“가지가지 한다.”
홍예화는 기도 안 찬다는 듯 헛바람을 터뜨렸다.
그러곤 가볍게 숨을 고른 뒤 나를 쳐다보았다.
“미안해, 오늘은 좀 바빠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예. 그럼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혼돈의 서]를 대여할 수 있을지요.”
혼돈의 서.
혼돈 주문서 여러 장을 엮어 놓은 책으로, 사용할 때마다 던전의 불확실성과 보상이 동시에 증가한다.
예전에도 빌린 적이 있는데, 그때는 D랭크 던전에서 두 장을 연달아 사용해 보스 몬스터를 대폭 강화했었다.
놈을 쓰러뜨린 결과 무려 B랭크 랜덤박스가 드랍됐었고.
그걸 빌려 달라니 홍예화가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
“너도 알겠지만, 그건 백마법 동아리에서 관리하는 아이템이야. 부원들조차 공헌도를 쌓아야 대여할 수 있고.”
그때는 임시 보관소에서 무사히 탈취한 보수로 특별히 예외를 둔 거란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또다시 예외를 둬 주십사 해서 말씀드리는 거고요.”
“둘 수는 있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면.”
예상한 답변이었다.
아무리 상부상조하는 관계라지만, 동아리 이권까지 턱턱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당연히 제시할 것도 준비해 둔 상태.
“다음 공략전 주간에는 코어에 도움이 되는 히든 피스를 노리려고 합니다.”
지하 던전들 중에는 영약의 드랍률이 특출나게 높거나, 특수연공실 이상으로 마나 밀집도가 높은 곳도 더러 존재한다.
홍예화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거기서 쓰려는 거구나? 혼돈의 서.”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한테는 어떤 이득이 있지?”
그 물음에 나는 홍연화를 가리키며 답했다.
“데리고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
홍예화는 확연히 구미가 당기는 표정이 되었다.
홍연화가 코어 A랭크를 달성하면 엎치락뒤치락 하는 유망주 레이스에서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을 거다.
그만큼 루비 마탑의 위상도 높아질 테고.
홍연화는 홍연화대로, 코어 A랭크를 찍고 블링크를 배울 생각에 설레는 기색이었다.
제 언니한테 연신 눈치를 준다.
거의 다 넘어온 느낌이라, 나는 두 자매를 조금 더 부추기기로 했다.
“아직은 공개되지 않았을 텐데, 송천혜가 A랭크에 올랐더군요.”
“송천혜가? 언제?”
“바로 오늘 아침입니다. 직접 확인했어요.”
의도한 대로 두 자매의 눈에서 경쟁심이 활활 타올랐다.
픽스 존 대회에서 겨우 눌러 놨는데, 이후에 대인전에서 붙기라도 하면 코어 차이로 지게 될 터.
그럼 루비 마탑이 우세하다는 여론이 도로 뒤집혀 버릴 거다.
홍예화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그 던전에서 혼돈의 서까지 쓰면 얼마나 쌓을 수 있어?”
“수치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A랭크까지 꽤 많이 단축시킬 수 있을 거에요.”
“좋아, 언제 들어갈지 정해지면 메시지 줘. 그때 맞춰서 책 빌려 둘게.”
“감사합니다.”
용건은 여기까지였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홍 씨 자매와 인사를 나누곤 루비 마탑을 나섰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다투는 소리가 넘어왔다.
“아주 김호한테서 눈을 못 떼더라?”
“그럼 손님 왔는데 딴 데 보고 있어? 무시해?”
“딴 손님 왔을 땐 관심도 없으면서.”
“아니거든? 왜 이렇게 예민해!”
“예민한 게 아니라 네 눈에서 하트 빔이 나가잖아!”
“……하트 빔 아니라고!”
점점 격해지는 자매 싸움을 뒤로하며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