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511
511화 타임 리프
교장 선생님은 나를 몇 번 겪어 봐서인지, 올 게 왔다는 태도였다.
“조건이라, 가능한 선까지는 최대한 들어줘야지. 뭔데?”
“아시다시피 저희가 후원을 받고 있거든요.”
“학생들 내는 만큼은 내라 이거구만? 아니다, 나는 더 내는 게 맞지.”
자신을 조각상 모델로 삼아 달라는 요구를 하는 참이니까.
참고로 현재 후원 1위는 검술 동아리,
2위는 대장장이 동아리다.
같은 제작 계열로서 경쟁하더라도, 때때로 협업을 해서 나쁠 건 없기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리고 3위는 의외로 무투가 동아리였다.
교장이 정말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고자 한다면 적어도 김갑두보다는 더 많이 후원할 터.
그러는 김에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요구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랭크가 높은 거 위주로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희귀 금속이나 보석류도 좋고요. 반짝거리는 걸로.”
“……그래, 잘 뒤져 보면 있을 거다.”
S랭크 영웅이라면 인벤토리에 꿍쳐 놓은 재료가 한두 개가 아니겠지.
일부는 용살학원 금고에서 충당해도 될 테고.
교장이 흔쾌히 수락하는 한편, 조각사 부장은 내 쪽에 묘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대충 무슨 뜻인지 짐작해 보면,
‘그건 이번 프로젝트에는 안 들어가는데?’
물론 그것들은 들어갈 데가 따로 있다.
바로 김호 뒷주머니.
이후 다양한 조각상 제작에 쓰일 예정이다.
조각사 부장은 재주는 자기가 넘고 후원은 내가 받는 게 다소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이내 그렇게까지 나쁜 것도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희귀 재료를 써서 작업하면 랭크가 쑥쑥 잘 오르니까.
교장과 교감 선생님도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는지 별말은 하지 않았다.
“조건은 그게 다냐?”
“하나 더 있어요.”
“그래, 하나쯤이야.”
“다소 어려운 요구일 수도 있습니다.”
“뭔데 그래?”
교장의 닦달에 나는 조각사 부장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제작에 들어갈 때, 조각상에 진기(眞氣)를 불어넣어 주셨으면 합니다.”
“……진기를?”
“네, 아주 조금이면 됩니다.”
“…….”
예상대로 교장은 다소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진기는 일반적인 마나, 내공과는 달리 보충이 쉽지 않기에 콩알만큼 빼서 쓰더라도 손실이 크다.
“왜 해 달라는 건지는 알겠어.”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S랭크 전대 용사를 본따서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니, 그의 진기가 더해진다면 효과가 한층 배가될 터.
옵션이 하나 더 붙을 가능성도 꽤 높다.
“그리고 진기가 들어가면 더욱 교장 선생님을 닮은 멋진 조각상이 완성될 겁니다. 없이 만들어도 모델이 워낙 훌륭하니 잘 나오겠지만요.”
“……커허험! 아부해도 나오는 거 없어 임마!”
손을 내젓는 교장이었으나, 그의 입꼬리는 이미 헤벌쭉 풀어진 상태.
간신배 사탕발림에 제대로 넘어간 것이다.
그는 교감이 한심하게 보든 말든 연신 히죽거리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어쩔 수 없구만! 학교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해야지. 대신 잘 만들어 줘야 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구도를 정해 볼까?”
다시 검을 움켜쥐며 각종 포즈를 취하는 교장 선생님.
교감은 더 이상은 못 봐주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 * *
이후의 절차들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교장과 대면한지 며칠도 되지 않아, 트레이닝 센터에 넓은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곳에 서서 거대한 금속 기둥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후원받은 주괴들을 모아 일정 비율로 합친 것으로, 오묘한 금빛 광택이 비춘다.
“…….”
교장, 교감을 비롯한 교직원들, 그리고 모여든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조각사 부장은 천천히 금속 기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영웅의 용맹한 기상(A+)]을 꺼내 들었다.
– 파아앗—
환한 빛 덩어리가 그대로 스며들고.
다음으로 교장이 금속 기둥에 가까이 다가가더니 한쪽 손을 가져다 댔다.
순간적으로 온몸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다가 사그라든다.
진기를 주입하는 단계까지 마쳤다는 뜻이라, 조각사 부장이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러곤 미리 설치해 놓은 로프를 타고 기둥 꼭대기로 올라갔다.
허리춤에 찬 다양한 공구들 중에서 망치와 정을 꺼내더니, 조금씩 깎아 내려가기 시작한다.
– 깡, 깡, 깡,
규칙적인 소음이 울릴 때마다 금속 기둥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다만 워낙 크기가 커서 결과물을 보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듯했다.
처음에는 흥미롭게 지켜보던 군중들도 슬슬 지루함을 느끼는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것은 나와 조각사 부장 둘뿐이었다.
– 깡, 깡, 깡,
나는 계속 작업을 올려다보다가 뻐근해진 목을 풀었다.
“제 할 일은 여기까진 거 같으니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연락 주십쇼.”
“야, 잠깐만.”
발걸음을 돌리려는 나를 조각사 부장이 불러 세우더니, 얼마간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이렇게 기회 만들어 줘서.”
“서로서로 돕는 거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근데 너 이름이 뭐라고?”
“그걸 이제 물어보십니까?”
“너도 안 물어봤잖아. 쌤쌤으로 쳐.”
“그럽시다. 저는 김호예요.”
“나는 강별이야.”
통성명을 하곤 강별은 곧바로 작업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시 규칙적으로 망치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 깡, 깡, 깡,
나는 그 모습을 일별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걸로 조각 노예가 하나 생겼군.’
거래 재료 확보도 시간 문제.
교장(풀세팅) 조각상부터 완성해야 하고 거기에만 최소 일주일은 걸릴 테지만, 끝난 뒤에는 바로 내 차례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다음 공략전 주간에 받아 보겠지.
이건 기다려 보는 걸로 하고.
나는 며칠간 치워 두었던 서브 퀘스트 창을 다시 불러냈다.
[서브 퀘스트:13주 차 대인전](완료)▷방어 팀 고정, 랭크 보너스 및 실드 삭제
▷특성 비활성화:레트로커버리, 고통 지연
▷목표1:체력 90% 이상으로 승리(2/2회)
▷목표2:적 처치(4/2명)
[보상을 선택해 주십시오.]▷무난한 보상
▷대박 또는 꽝
평소였다면 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전자를 골랐을 거다.
‘내 운은 내가 아니까.’
복덩이 도움도 못 받는 상황에 함부로 도박을 시도했다간 찻집 주인처럼 패가망신할 터.
무려 챌린지 북으로 강화한 보상이니 무난한 보상이라도 꽤 쓸 만하리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런데 왜 여태까지 미뤄 두고 있었는가,
‘이상하게 안 내켰단 말이야.’
갑작스런 변덕에 아무것도 고르고 싶지 않았었다.
급하지도 않았고, 최근 며칠간은 조각사 동아리 돕느라 바쁘기도 했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미룰 수도 없는 노릇.
나는 퀘스트 창을 응시했다.
‘오늘은 왠지 될 것 같은데.’
한 번쯤은 운에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나도 어느덧 서예인, 또는 신병철에게 물들어 버린 모양이다.
이러다가 꽝이 나오면?
‘화풀이 가야지.’
송천혜를 불러내서 분노의 뿅망치 수련 시간을 가질 거다.
이후에도 이성이 나를 몇 번 붙잡았으나 뿌리치고, ‘대박 또 는 꽝’을 선택했다.
‘…….’
퀘스트 창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얼마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뿅 하고 둘둘 말린 양피지 한 장이 나타났다.
뒤이어 출력되는 알림 메시지.
[‘마법 스크롤 – 타임 리프(S)’를 획득합니다.]‘대박.’
챌린지 북으로 강화했다지만, 1학년 주간 퀘스트에서 S랭크 보상이 나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시간 계열 스킬이다.
종결 장비인 [황금 회중시계]의 옵션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 효과는 무려,
‘쿨타임 초기화.’
쓰는 순간 모든 스킬/특성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0이 된다.
일주일이든, 100일이든, 1년이든 상관없이 0.
쿨타임 스킬들을 마구 난사한 다음 스크롤을 부욱 찢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써도 되고, 서예인한테 주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
짐작대로라면 초필살기 쿨타임도 초기화할 수 있을 테니까.
누가 쓸지는 상황에 따라 정하도록 하고.
이래저래 비장의 한 수가 생긴 셈이다.
나는 스크롤을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리고 복덩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되뇌어 보았다.
“운이 좋군.”
지금쯤 혼자서 마나연공을 하는 중일 텐데, 오늘은 편하게 김호베개도 해 줘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홱 숨는 누군가.
물론 저렇게 미행이 어설픈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국어책 읽는 톤으로 허공에 대고 말했다.
“뭐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리고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리며 걷다가, 갑작스레 홱 몸을 돌리며 블링크를 시전했다.
눈앞이 홱 바뀌고 화들짝 놀라는 송천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힉.”
“여기서 뭐 하십니까?”
“아니, 놀랐잖아요.”
“그러니까 놀랄 짓을 왜 해, 잘 숨지도 못하면서.”
이에 송천혜가 딴청을 피우면서 답했다.
“그냥…… 지나가다가 보여서 따라온 거거든요?”
“보이면 그냥 말 걸지 왜 몰래 따라와?”
“그게…….”
또 딴청을 피우는 송천혜.
얼굴에 조금 부끄러운 기색이 스친다.
그걸 보니 대강 이유를 알 것도 같아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블링크 썼다가 벽에—”
“!!”
황급히 내 입을 틀어막는 송천혜.
혹시나 누가 듣지는 않았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나를 쳐다본다.
“……꼭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해했으면 됐지.”
“내가 배려심이 부족했구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나가던 송천혜가 나를 보고 말을 걸려 했는데, 며칠 전 블링크 벽꿍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냥 가기도 애매해서 갈팡질팡하다가 본의 아니게 미행을 하게 된 거고.
다소 허술한 부분들이 보였지만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해서 고개를 끄덕이자, 송천혜가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어떻게 알았니?”
“그냥, 좀 순순히 넘어간다 싶어서요. 원래는 한두 마디 더 했을 텐데.”
김호 리플레이 애청자다운 뛰어난 관찰력이었다.
“좋은 일이 있기는 했지.”
“뭔데요?”
“안알랴줌.”
“아니 왜요, 또.”
“내맘이야.”
뾰로통해진 송천혜에게 내가 말했다.
“아무튼 잘 만났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거든.”
“수련 때문에요?”
“응.”
“혹시…… 블링크…….”
약간의 기대감을 담은 물음이었으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안 된다니까. 전에도 말했잖아, 몸 움직이는 것부터 익혀야 한다고.”
“……알았어요.”
“그럼 갑시다.”
우리는 훈련실 하나를 잡고 대련을 이어 갔다.
나는 강별 선배의 망치질을 떠올리며 뿅망치를 휘둘렀다.
– 뾱, 뾱, 뾱!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