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잡동사니를 분해하다 (1)
학생들의 포인트 사용처 일 순위는 다른 학생들의 리플레이,
다음으로 공략전에 쓰는 보조 도구,
마지막으로 특수연공실 같은 제한적인 수련 구역에 출입하는 용도다.
보통은 이 셋에만 분배해도 포인트가 거의 남아나지 않기에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가 없다.
그러나 포인트만 충분하다면.
학생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의 범위가 대폭 넓어진다.
당연히 무기도 거기에 포함되고.
고현우가 학생증 뒷면을 확인하고 답했다.
“5천 포인트가량 모였구려.”
“넉넉하네.”
내가 시즌 패스를 구해다 주기 전까지 특수연공실에 포인트를 모조리 쏟아부었는데, 그러고도 벌써 저만큼 쌓였다.
공략전 수석으로 스타트했기에 나름 인지도가 있고, 전체적인 실력도 유망주급은 아니지만 최상위권에 근접했다.
아마 꾸준히 리플레이를 챙겨 보는 사람 수가 제법 될 거다.
아무튼 이 5천 포인트를 어떻게 써먹는 게 좋을까.
무기를 사라는 의도로 언급한 것이기는 한데, 더 중요한 게 있다.
“먼저 [열촉매 시약] 세 개만 사자.”
가격은 한 개당 천 포인트씩, 도합 3천 포인트다.
고현우는 물주로서 당연한 의문을 던졌다.
“이것들은 어디에 쓰는 물건이오?”
“제작 재료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법공학에 들어가는 재료다.
시약 두 개는 앞으로 고현우에게 필요한 아이템,
“또 하나는 내 공임(工賃)이다.”
나는 당당하게 밝혔다.
나도 입에 풀칠은 해야지.
고현우는 거기까지 듣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3천 포인트를 털어 넣었다.
아이템들을 건네며 되레 나에게 묻는다.
“공임이 이걸로 충분하겠소? 김 형의 수고에 비해 너무 적지 않나 싶군.”
객관적으로 봐도 천 포인트는 내가 만들어 줄 아이템의 값어치에 비하면 거저먹는 수준이다.
뭐라도 더 해 주고 싶어 하는 고현우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나중에. 나는 급할 거 없어.”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고현우 쪽이다.
예산도 5천에서 2천으로 대폭 줄어서 빠듯해졌고.
내 입장에서도 사소한 욕심을 부리기보다, 나중에 던전 보상 등에서 내 몫을 더 요구하는 편이 이득이다.
나는 빠르게 카탈로그를 뒤져서 E랭크, D랭크 한손검을 하나씩 골라 주었다.
“남은 포인트로는 이거랑 이거 사면 되겠다.”
“알겠소.”
[표사의 장검(E)] [표두의 장검(D)]내구도 위주로 선택하자면 이 ‘표국 시리즈’만 한 게 없다.
F급 철검과 사용감이 비슷하다는 것도 장점.
그래서인지 고현우는 허공에 장검을 몇 번 그어 보는 것만으로 적응한 듯했다.
“나쁘지 않군.”
“E급부터 하나씩 시험해 봐. 얼마나 버티나.”
“마침 대인전이 두 경기 남았소.”
오늘 나와 함께한 두 경기 외에도 랜덤큐 두 경기를 더 진행해야 이번 주 할당량을 다 채운다.
당장이라도 매칭을 잡을 기세라 고현우를 만류했다.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 해. 무리했다.”
“아직 더 싸울 수 있소.”
“싸울 수야 있겠지. 근데 상대로 장삼이 또 나오면?”
“……!”
장삼뿐만 아니라 다른 유망주급과 붙게 될 가능성 역시 작지 않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싸워도 승리를 점치기 어려운데, 지금 같은 상태라면 필패.
고현우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작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새 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에 조금 들떴나 보오.”
“대인전은 내일 해도 안 늦어. 오늘은 회복에만 집중해라.”
“알겠소. 그게 좋겠구려.”
보건실에서 마저 치료받은 뒤 특수연공실에서 코어를 다듬는 쪽으로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고현우를 보내고.
아까 도착했던 알림 메시지를 다시 불러냈다.
[서브 퀘스트:3주 차 대인전]▷목표:대인전 4회 완료. (4/4회)
▷기한:~일요일 자정.
▷보상:승리 횟수에 따라 차등 지급. (4/4승)
[장신구 선택권(C)]▷원하는 C등급 장신구를 습득합니다.
깔끔하게 4연승을 한 덕분에 보상으로 C랭크 장신구 선택권을 받았다.
미리 정해 둔 것이 있었기에 고르는 데 몇 초 걸리지도 않았다.
[블랙 미스릴 밴드(C)를 획득합니다.] [블랙 미스릴 밴드(C)]▷매우 높은 마나 전도율
검은색 광택을 뿌리는 얇은 금속 팔찌.
순도 높은 블랙 미스릴을 띠 모양으로 가공한 아이템이다.
‘매우 높은 마나 전도율’이라는, 듣기에 따라 애매할 수도 있는 성능을 가졌다.
팔찌를 차고 있으면 [코어] 연공에 도움이 되거나 마나 회복이 빨라지는 소소한 효과다.
그러나 이 마나 전도율이야말로 내가 다른 C급 팔찌들을 제쳐 두고 이것을 선택한 이유였다.
지금이야 소소하지만 머지않아 C급 이상의 이득을 보게 해 줄 테니까.
블랙 미스릴 밴드를 착용하고,
다음 순서는 3천 포인트어치 재료를 써먹는 것.
나는 마법공학 공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장 봉재석에게 제1공방 사용 허가를 받아 놓기는 했는데, 지금 시간대에는 정원이 꽉꽉 들어차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것이다.
부장 권한으로 나에게만 예외를 둔 터라 조금은 부원들 눈치를 봐야 되고.
비교적 한산해지는 자정 무렵까지 대기하는 게 맞다.
물론 그때까지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는 건 내 성미에 안 맞기 때문에,
미리 필요한 밑 준비를 다 끝내 놓을 예정이다.
제4공방에서.
* * *
제4공방은 첫날이나, 며칠 전이나, 오늘이나,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안에도 늘상 그렇듯 한 사람뿐.
나와 10x10x10 큐브 설계도를 거래했던 3학년 선배였다.
“…….”
인기척이 느껴지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본다.
뭐라 말은 안 하지만 ‘또 너냐?’ 비슷한 표정이다.
나는 후배 된 도리로서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안녕.”
그는 떨떠름하게 답하곤 하던 일로 돌아갔다.
내가 관심을 꺼 줬으면 좋겠는지 일부러 집중하는 티를 팍팍 낸다.
큐브 설계도 때문에 봉재석한테 깨졌었다니까, 나를 대하기가 다소 불편하겠지.
반면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4공방에 온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먼저 복사부터.’
[‘복사-스킬’을 사용합니다.] [대상의 스킬 ‘마법공학(B)’을 슬롯에 등록합니다.]▷복사-스킬[2/2]
1. 마법공학(B)
2. 도둑걸음(B)
짧고 굵게 썼던 [대수인]을 보내 주었다.
근접 공격 스킬이야 찾으면 많으니 나중에 새로 구하면 된다.
다음으로 한구석에 쌓인 잡동사니의 산으로 다가갔다.
봉재석 말로는 나중에 도면만 그려서 제출하면 마음껏 뒤적거리고 가져다 써도 괜찮단다.
이 안에 히든 피스가 몇 개 더 묻혀 있기는 하지만 [생명의 큐브]처럼 대단한 건 이제 없다.
굳이 더 발굴하기에는 영양가가 부족하다.
지금 내가 잡동사니들을 뒤적거리는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재료를 구해야 돼.’
고현우에게 넘겨받은 재료들은 극히 일부분.
정확히는 ‘포인트가 들어가는’ 부분만 해결된 상태다.
사실 촉매 하나 집어넣고 멀쩡한 아이템이 불쑥 튀어나오길 바라는 건 욕심 아니겠는가.
당연히 재료를 더 모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서 그 재료를 별다른 대가 없이 구할 곳은 여기뿐이다.
이 잡동사니의 산을 이루는 아이템들은 대개 제작 도중, 모종의 이유로 만들다 만 실패작들이다.
바꿔 말하면, ‘제작하던’ 부분은 생각보다 멀쩡하다.
그리고 그 멀쩡한 부분을 잘 분해하면 재료를 살려 낼 수 있다.
마법공학 동아리에서도 이 사실을 알기는 안다.
그렇다면 이 잡동사니들이 하루가 다르게 쌓여만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그 분해하는 작업이 엄청나게 수고스럽기 때문이다.
이 반쪽짜리 기계 덩어리가 대체 어떤 아이템의 일부인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어느 단계에서 중단되었는지 파악하는 걸로 시작해서,
알맞은 마법공학 술식을 새로 짜고,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듯 차근차근 분해해 나가야 한다.
이 짓거리를 하는 것보다 차라리 새 재료를 구해다 쓰는 게 나을 지경이다.
‘물론 나는 아니고.’
[생명의 큐브]도 며칠 만에 뚝딱 완성시켰던 나에게 이런 건 수고스러운 축에도 못 끼었다.내 눈에는 재료들이 한가득 널린 것처럼 보였다.
유용한 것들만 쏙쏙 골라내서 모은 후 작업대로 가져간다.
마법공학을 시전하자 손이 은은한 푸른빛을 머금었다.
그 상태에서 작업대 위 공구를 조작해 실패작들을 하나씩 해체해 나갔다.
이 짓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라 내 손놀림에는 거침이 없었다.
제삼자의 눈에는 내가 공구를 대충대충 휘젓는데 아이템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한쪽에는 멀쩡한 재료, 반대쪽에는 도저히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를 분류하여 쌓았다.
작업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잡동사니가 줄어들고, 산 두 개가 높이 쌓여 간다.
“…….”
그런 와중 뒤편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볼 것도 없이 3학년 선배가 내 쪽을 훔쳐보는 중이겠지.
나와의 다소 불편한 관계 이전에 그 역시 한 사람의 마법공학자다.
내가 10x10x10큐브를 완성시켰다는 소문은 전해 들었을 터.
내가 일 처리를 물밑에서, 번개처럼 진행해서 소문이 덜 퍼진 거지, 마법공학자에게 [생명의 큐브] 제작은 가히 전설적인 업적이다.
그런 전설을 쓴 내가 또 잡동사니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으니, 또 무슨 대단한 걸 만드나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다.
얼마간은 선배로서의 체면 때문에 참는 듯했으나, 결국에는 호기심을 못 이기고 슬쩍 근처로 다가왔다.
봉재석에게 무슨 언질을 받았는지 나에게 질문하는 태도가 몹시 조심스럽다.
“그……. 뭐 만드냐?”
“분해 중입니다. 재료 좀 구하려고요.”
“그 귀찮은 짓을?”
“귀찮은 짓이라도 해야죠.”
물론 말과는 달리 전혀 귀찮지 않았다.
작업이란 들이는 수고에 비해 성과가 클수록 의욕이 솟는 법.
건드리는 족족 아이템이 튀어나오는데 이 정도 수고쯤이야.
“한번 봐도 되냐?”
“예, 괜찮습니다.”
재료들을 살펴보기 앞서 나에게 허락을 구한다.
그래도 아주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네.
사실 곧장 인벤토리에 수납해도 되는 걸 저기 쌓아 놓은 건 다분히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가 재료들을 이모저모 뜯어보더니 감탄성을 흘렸다.
“분해한 건데 재료가 이렇게 깨끗하게 나와? 완전 새 건데?”
제작되고 분해되는 과정에서 두 번이나 마법공학이 가해지다 보면 작게나마 손상이 생길 법도 한데,
이 재료들에서는 거의 하자를 찾아볼 수 없다.
그대로 다른 아이템 제작에 가져다 써도 성능에 페널티를 입지 않을 정도.
S급 마공학자를 십수 명씩 키워 낸 고인물의 관록이 담겼다 보니, 내 손으로 직접 하는 분해는 완벽 그 자체였다.
“…….”
선배가 연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눈앞의 재료들이 탐나지만 나를 따라서 잡템들을 분해하기에는 엄두가 안 난다.
자신의 마법공학 실력으로는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작업 도중 재료에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입맛을 다시며 지켜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 같은데.’
일부러 깨끗한 재료들을 보여 주고 부러움을 샀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지.
마법공학 공구를 조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운을 뗀다.
“선배님, 재료 몇 개 교환하시겠습니까.”
“이거랑?”
“예. 싸게 쳐 드립니다.”
“나야 좋지.”
선배는 내 제안에 반색을 했다.
괜찮은 재료가 많아 보이던 차에, 내가 싼값에 물물 교환을 열어 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뭐 뭐 필요한데?”
“[쿨러]랑, [중심축], [고강도 철사], 또…….”
필요한 아이템의 목록을 읊자, 선배가 줄 수 있는 것을 내어 주고 테이블 위 재료 몇몇을 챙겼다.
그렇게 내가 가진 것들을 종합해 보면,
‘하나는 해결했네.’
내가 마법공학 공방에서 만들고자 하는 아이템 셋 중 첫 번째.
고현우에게 만들어 줄 아이템의 재료가 모두 모였다.
포인트 들어가는 것들은 고현우에게 받고, 잡동사니 분해로 일부를 충당하고, 마지막으로 몇 군데 뚫린 구멍을 선배와의 거래로 메꿨다.
이제 1공방에 자리가 날 때쯤 가져가서 제작하면 된다.
“야, 근데 이거……. 봉재석이 뭐라 하는 거 아니냐?”
재료를 쉽게 구해서 희희낙락한 것도 잠시, 불안한 기색을 비치기 시작하는 선배였다.
아무래도 봉재석한테 깨진 전례가 있다 보니 또 그럴까 걱정되나 보다.
“다 허락받았잖아요. 별문제 없을 겁니다.”
“쓰읍……. 그래도 괜히 불안하네.”
“우리가 뭐 죄짓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정 불안하시면 아예 이것도 허락을 받아 버리죠.”
“……그럴까? 그럼 메시지 보낸다?”
선배가 그 자리에서 봉재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방금 전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짧게 간추려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쾅!
봉재석이 제4공방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 왔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