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잡동사니를 분해하다 (4)
제4공방 밖에서 안쪽을 엿보는 여학생 둘.
나한테 볼일이 있어 왔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어서 그렇다.
게다가 딴에는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하지만, 멀리서도 대화 내용이 다 들렸다.
– 확실해? 쟤?
– 우리 부원도 아니잖아. 그리고 여기서 작업한다고 들었으니까 백 프로야.
– 그럼 네가 가서 말 걸어 봐.
– 같이 가자 좀. 넌 의리도 없냐?
나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고 찾아온 듯했다.
물론 내가 그 소문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특정하기는 쉬웠을 것이다.
저기 한구석에서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는 제4공방 지박령 선배를 제외하면, 자연스레 소거법으로 나만 남으니까.
여학생들이 마침내 공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나는 굳이 먼저 반응하기보다 모르는 척, 하던 일에 집중하는 걸 택했다.
여학생들 역시 나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런 걸음으로 다가왔고, 근처에서 내가 실패작 하나를 깔끔하게 해체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나는 다음 아이템으로 넘어가기 전 잠시 공구를 내려놓고, 시선을 들어 올려 여학생들을 마주했다.
제1공방을 오가며 한두 번쯤 스쳐 가듯 봤던 얼굴들이다.
덧붙여 넥타이에는 3학년 핀이 꽂혀 있다.
마법공학 동아리 3학년 선배들, 그중에서도 1군에 드는 장인들이다.
“안녕하십니까.”
“안녕. 봉재석한테 의뢰받았다고 들었는데, 맞아?”
짐작대로 선배들의 용건은 실패작 분해였다.
귀찮게 그지없는 일이다 보니, 누군가 그 귀찮은 일을 대신 해 준다면 무조건 확인하러 찾아오게 되어있다.
그 누군가의 실력이 꽤 괜찮다고 한다면 더욱.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작 몇 개 맡기셨습니다.”
“봐라, 내 말 맞지!”
선배 하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다른 선배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우리 거도 같이 해 줄래?”
내 손재주는 방금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테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가격 흥정만이 남았을 뿐.
“공임만 충분하면 못 할 것도 없죠.”
“봉재석한테는 뭐 받았어?”
“고급 재료 하나 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주면 돼? 뭐 필요해?”
“예, [웨더 칩]이나 [부유석 추출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봉재석에게 의뢰 보수로 받을 [마력기관]과 마찬가지로, 모두 내 무기에 들어갈 핵심 부품들이다.
곁가지 부분은 분해한 아이템을 쓰더라도, 무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파트는 고등급 재료를 써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EX급을 노리고 있으니까.
“어, 나 그거 있어!”
선배 하나가 즉시 인벤토리에서 [웨더 칩]을 꺼내더니 아예 선불로 건넸다.
다른 선배도 순간 움찔하는 걸로 보아 같은 아이템을 보유한 듯했는데, 이미 한발 늦었다.
다른 아이템으로 대신 주면 안 될까? 묻고 싶은 표정.
그러나 선배가 돼서 그러기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눈치다.
“부유석 추출물……은 지금 없는데, 내일까지 구해다 줄게.”
“좋습니다. 하죠.”
곧바로 실패작들을 넘겨받았다.
이 사람들도 마법공학 동아리 소속이라 그런지 밀고 당기기 없이 시원시원하다.
제작 계열 클래스들은 항상 시간에 쫓겨 살다 보니, 자기 시간을 아끼는 데는 꽤 후하게 비용을 지불하는 편이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듬뿍 담아 고개를 숙였다.
“자정까지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천천히 해도 되는데.”
“시간 충분합니다.”
“알았어. 고마워~ 이따 봐~”
용건만 처리하고 급히 제1공방으로 떠나는 두 선배였다.
본인들 앞으로 들어온 제작 의뢰도 잔뜩이니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순 없겠지.
나는 다시 공구를 들었다.
곧 작업대 위가 푸른빛으로 채워졌다.
* * *
“킁, 킁.”
당규영은 옷소매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교복에 냄새가 밴 것 같았다.
지하 수로 청소.
던전섬 지하에 미로처럼 펼쳐진 통로를 꼼꼼히 수색하는 작업이다.
간혹 외부에서 흘러들어 오는 몬스터를 발견하고 처치하는 게 목표다.
당연한 얘기지만 하수구 특유의 퀴퀴한 악취를 맡아 가며, 어둡고 비좁고 습한 지하 수로를 돌아다니고 싶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끔씩은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쓸 일도 생기기에 더욱.
그렇다고 방치하면 몬스터들이 교내까지 침입할 수도 있는 터라,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해서 지하 수로 청소는 대개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에게 징계로서 주어지곤 했다.
바로 당규영과 도둑 동아리 부원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당규영 일당이 오늘치 작업을 끝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자, 곽승재가 그들을 맞이했다.
항상 끝나는 시간을 칼같이 맞춰서 나타나는 그였다.
“끝나셨습니까, 선배님.”
“엉. 봐라.”
당규영이 영상기록 수정구를 휙 던지듯 건넸다.
이 수정구는 학생들의 대인전, 공략전에 쓰이는 리플레이 수정구와 마찬가지로, 지하 수로에서 벌어졌던 일을 낱낱이 기록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렇게 농땡이 안 치고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를 보여야 선도부 측에서 그날 치 징계를 빼 주는 것이다.
곽승재가 빠르게 수정구를 재생하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인했습니다.”
그는 수정구를 회수한 뒤, 가져온 단말기로 도둑 동아리 부원들의 학생증을 한 번씩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당규영이 물었다.
“야, 승재. 우리 얼마나 남았냐?”
앞으로 남은 징계 일수가 얼마나 되는가 묻는 것이다.
곽승재의 대답이 즉시 돌아왔다.
“앞으로 지하 수로 9일, 건물 보수 작업 5일, 외부 의뢰 2회씩 남으셨습니다.”
“……졸라 한참이네.”
그 말에 맞장구치듯 곳곳에서 무거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딴에는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의 징계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당규영 역시 사람이라 더러운 일, 궂은일 싫어하는 건 남들과 같았다.
특히 이 비릿한 냄새.
지하 수로 청소를 하고 나면 한동안 그 냄새가 코끝을 맴돌아서 식욕이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불퉁한 표정을 짓는 당규영에게 곽승재가 담담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부장님의 전언을 가져왔습니다.”
“실눈이가?”
“예, 선배님에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선도부장 오세훈의 전언, 그리고 당규영에게 좋은 기회.
대화의 흐름으로 미루어 보아 징계를 줄일 방법일 가능성이 컸다.
다만 거래라 함은 얻는 게 있으면 내어 주는 것도 있는 법.
당규영이 선수를 쳤다.
“미리 못 박아 두겠는데, 그때 얘기면 난 더 할 말 없다.”
지난 임시 보관소 침입 사건에서 탈취당한 금지 아이템들, 그리고 [인페르노 피스트]를 썼던 복면인은 아직도 학생선도부 차원에서 추적 중이다.
오세훈의 전언이 이것들과 연관되어 있다면 당규영은 절대 입을 열지 않을 심산이었다.
이제 와서 김호를 팔아먹기도 싫고, 아이템들 대다수는 진작에 현금화했고.
곽승재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기대도 안 합니다.”
“그럼 뭔데?”
“한번 보시죠.”
당규영은 곽승재가 건넨 서류를 받아 들었다.
표지부터 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휙휙 넘기며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리자면 대강 이랬다.
금년도 신입생들의 수준이 매우 높은바, 학사 측에서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해서 이번 멘토링을 보다 밀도 있게 진행하고 싶다.
멘토 한 명당 신입생의 수를 평균 다섯 명 이하로 유지하는 게 목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보다 더 많은 숫자의 멘토가 필요하다.
자격에 부합한다면 부디 멘토링에 참여해 주길 바란다.
당규영의 실력은 3학년 상위권.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이끌기에는 충분한 자격을 지녔다.
다만…….
‘또 귀찮은 게 튀어나왔네.’
보모 노릇은 딱 질색인데.
지금 뒤에 있는 도둑놈들 이끄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픈 그녀였다.
그런데 여기서 케어할 사람이 더 늘어난다면?
심지어 멘티로 들어올 병아리들은 십중팔구 다른 동아리 소속, 즉 ‘남의 집 자식들’이다.
도둑놈들 대하듯 막 대했다간 그쪽 동아리와 마찰을 빚을 확률이 매우 높다.
반쯤은 상전 모시듯 해야 한다는 뜻.
거절하는 쪽으로 급격히 무게추가 쏠렸지만 당규영은 일단 말을 아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보고 결정해야지.
“그래서, 받으면?”
“이번 징계를 전면 탕감해 준다 하셨습니다.”
“나만? 아니면 얘들도?”
“이번 징계에 포함된 인원 모두입니다.”
“……!”
“……!”
당규영뿐만 아니라 임시 보관소 침입 사건에 연루된 모든 부원들이 해방된다.
도둑 동아리 부원들이 일제히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누가 보면 눈에서 레이저 빔이 뿜어져 나오는 줄 알겠다.
‘부장님, 제발!’
‘누님, 그냥 눈 딱 감고 오케이해 버리쇼.’
‘받아들이는 게 부장님도 살고, 우리도 사는 길입니다……!’
거절하면 하극상이라도 일으킬 기세.
‘근데 이것들이……?’
감히 하늘 같은 부장님한테 무언의 압박을 가해?
당규영이 째릿 눈빛을 마주 보내자 시선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제 날 잡아서 한번 기강을 바로잡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당규영이 선도부 측의 제안을 짧게 요약했다.
“한마디로 징계 대신 멘토 해라, 이거지?”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으흠……. 이걸 받아, 말아?”
당규영이 한쪽에는 징계, 반대쪽에는 멘토링을 놓고 열심히 저울질을 해 댔다.
어느 쪽이 명백히 이득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하수구 냄새를 안 맡는 대신 상전이 너덧 명 생기면 우환거리는 그대로니까.
곽승재는 당규영의 고민이 길어지는 듯하자,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해 봐.”
“받으시는 게 맞다 생각됩니다.”
“왜?”
“지금 도둑 동아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간 아니겠습니까. 심부름센터도 운영하셔야 하고, 곧 열릴 암시장도 준비하셔야 하고.”
당규영이 홱 고개를 돌려 뒤쪽에 대고 물었다.
“야, 우리 보안 이대로 괜찮은 거 맞냐? 선도부가 우리 일정을 다 꿰고 있네!”
“공공연한 비밀 아닙니까.”
도둑 동아리가 밴 웨이브 다음에 임시 보관소를 노리리라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심부름센터 운영도, 암시장도.
게다가 곽승재의 말마따나 시간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선도부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부원들은 아예 징계가 탕감되니 훨씬 운신이 자유로워지며, 당규영 본인에게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멘토링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신다면,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질지도 모르지요. 용살학원이 이런 데는 철저하니 말입니다.”
“그건 너무 긍정적인 관점 아닐까?”
“그래서 저도 크게 기대는 안 합니다.”
“…….”
당규영이 표정을 구겼다.
재수 없게 솔직한 놈.
그래도 곽승재의 말이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은 되었다.
나지막이 혀를 차고 답한다.
“쯧, 하겠다고 전해.”
“잘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로그 계열 스킬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나?”
“제가 알기로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곽승재가 고개를 젓고 덧붙였다.
“……선배님의 특기 분야는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림자 술사 당규영.
그녀는 도둑의 온갖 비기에 통달한 달인임과 동시에,
마탑회 부장들과도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강력한 배틀메이지였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