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63
63화 No.388 깃털뱀 제단 (2)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우중충한 하늘.
빽빽하게 초목이 우거진 열대우림.
그런 열대우림 사이로 보란 듯 길이 쭉 나 있다.
먼 저편에는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 눈에 띈다.
이번 던전의 핵심, 깃털뱀 제단이다.
다음 순서는 누가 보기에도 명료하다.
눈앞의 길을 따라 쭉 나아가면 목적지인 제단에 도달하겠지.
그러나 과연 그 길이 순탄할지는 의문이다.
– 쐐액!
가느다란 것 여러 개가 고현우와 나를 노리고 날아왔다.
슬쩍 옆으로 비켜서자, 우리를 지나쳐 뒤쪽 땅이며 나무에 푹푹 꽂힌다.
날카롭게 깎은 나무창이다.
뒤이어 풀숲에서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야만인들.
몸에 걸친 의복이 별로 없는 대신 붉고 흰 물감 같은 것을 덕지덕지 처발랐다.
“저러니까 좀 쎄 보이는데.”
표정이 험상궂어서 더 그래 보이기도 하고.
역시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한 것 같다.
“제물이다!”
“산 채로 잡아라!”
– 쉬익!
산 채로 잡으라면서 무기를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야만인들 일부는 재차 투창을 하고, 일부는 나무창을 앞세워 돌진해 왔다.
나는 한 손을 가볍게 저었다.
[윈드포스]물리력이 담긴 바람이 놈들의 진형을 한차례 강하게 헤집었다.
도미노처럼 와르르 쓰러지는 야만인들.
넘어지지 않은 놈들이 창을 찔러 오지만,
– 서걱!
고현우가 모두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대충 정리를 하니 또 길을 따라 일단의 야만인 무리가 달려오는 게 보인다.
대화를 나눌 겨를도 없는 상황.
고현우가 나를 보고 고개를 까딱였다.
“건투를 빌겠소.”
“너도.”
그리고 달려 나가 야만인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철검이 번뜩일 때마다 피가 흩뿌려진다.
던전 공략을 숙지하게 하면서 미리 정해 놓은바,
지금부터는 각자 행동할 것이다.
고현우는 저대로 길을 따라 제단까지 전진하게 두고, 나는 길을 벗어나 방향도 제대로 모를 열대우림 안으로 진입했다.
미리 사 온 F급 정글도를 X자로 휙휙 휘두르며 수풀을 뚫고 나아간다.
깃털뱀 제단의 핵심 규칙은 [레이드].
대충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최대 인원인 4인 파티가 입장해서, 덮쳐 오는 야만인들을 뚫고 제단까지 도달한다.
제단에는 의식 준비가 한창이라, 더 많은 야만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놈들과 피 튀기는 사투를 벌이다 보면 마침내 보스 몬스터, 깃털뱀 제사장이 등장한다.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레이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의식을 저지함과 동시에, 제사장과 야만인들의 파상 공세를 막아 내야만 한다.
어떻게든 보스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하면 던전 클리어.
‘정석적으로는 그렇고.’
당연한 얘기지만 정석적인 방식으로, 보이는 길만 따라가선 히든 피스는 꿈도 못 꾼다.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곳을 열심히 파헤쳐야 뭐가 나오지.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 팍!
정글도로 강하게 후려치자 앞길을 가로막던 나뭇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제법 트인 공간이 나왔다.
곳곳에 희미하게나마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남아 있다.
이 흔적들을 고스란히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게 부락이 나오지.’
조잡하게 지은 오두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락.
야만인들이 있으면 당연히 야만인들의 본거지도 있게 마련이다.
[깃털뱀 제단]은 워낙 노골적으로 나아갈 길과 목표를 보여 주는 편이라 놓치기 쉬운데, 이 사소한 맹점을 파악하느냐가 히든 피스의 획득 여부를 가르는 것이다.부락 내에는 야만족의 숫자가 적었는데, 대부분이 제단 쪽으로 몰려서 그렇다.
모닥불을 피우던 놈들이 나를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일단 살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하, 안녕들 하십니까. 식사는 하셨나요?”
“제물?”
“제물이 찾아왔다.”
“산 채로 잡아라!”
– 쉬익!
그러면서 대뜸 죽창을 집어 던지신다.
그것도 정확히 내 가슴팍을 노리고.
사람은 심장이 날카로운 것에 꿰뚫리면 죽는데, 이래놓고 어떻게 산 채로 잡으려는지 모르겠다.
죽을 생각도 잡힐 생각도 없어서, 날아오는 창에 윈드포스를 집중시켰다.
창이 부르르 떨더니 급격히 속도를 잃고 내 손에 턱 잡혔다.
그것을 도로 집어 던지는 동시에 바람을 강하게 쏘아 보내자,
– 퍽!
원래 주인의 몸을 관통하고 나아가 그 뒤 야만인의 몸에 틀어박혔다.
이런 식으로 일점에 물리력을 집중시키면 투사체의 속도를 늦추거나 가속할 수도 있다.
근접 계열 클래스가 우월한 근력과 마나를 써서 던지는 것이나 원거리 계열의 고유한 투사체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보통 이상의 파괴력은 나와서 잘 써먹는 중이다.
홍연화와 공략전을 할 때는 이 방법으로 트롤의 손도끼를 받아치기도 했었다.
“강한 제물!”
“무조건 잡아야 된다!”
“산 채로 잡아라!”
동료 두 명이 쓰러졌는데 야만인들은 오히려 더욱 흥분한 기색이었다.
눈빛에서 복수심보다는 제물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이 엿보인다.
그래도 뭐 물어보면 답변은 해 주지 않을까?
해서 넌지시 물었으나,
“족장님 안에 계신가요?”
“죽어라!!”
대답 대신 장창이 찔러 들었다.
방금은 산 채로 잡으라면서요.
그새 생각이 바뀌었나.
아무튼 이런 곳에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가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날카롭고 뾰족한 것들이 간발의 차로 스쳐 지나간다.
앞길을 가로막는 놈들은 윈드포스로 멀찍이 튕겨 내고, 손에 잡히는 건 사람 팔이든 목덜미든 족족 위로 집어 던진다.
“으아아—”
비명 소리가 하늘 높은 곳으로 멀어져 간다.
착지는 알아서들 잘할 거라 생각한다. 아님 말고.
인간의 벽을 불도저처럼 뚫으며 전진한다.
야만인 족장, 제사장을 찾으려고 이곳저곳 헤집고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냥 부락 내에서 제일 큰 오두막으로 가면 된다.
상식적으로 제사장이란 양반이 조촐하게 부락 한구석에 거처를 마련했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 펑!
그때까지도 달려드는 야만인들을 가볍게 날려 보내고,
입구에 쳐진 주렴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윽한 향냄새가 나를 반겼다.
한켠에 마련된 간이 제단에서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 앞에는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중년 사내가 무릎을 꿇은 채였다.
제사장이라 그런지 온몸에 깃털 장식이 치렁치렁하고 얼굴 분장도 더 짙다.
“…….”
인기척을 느낀 제사장이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나를 발견했다.
품평하듯 찬찬히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한다.
“……보기 드물게 강한 기운을 품은 놈이로다. 좋은 제물이 되겠구나.”
“거 보는 놈들마다 제물 얘기밖에 안 하네. 다른 주제는 없소?”
“기르는 가축에게 긴말해서 무엇 하겠느냐. 어차피 결국에는 배를 가를 운명인 것을.”
“그건 맞지.”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사장이 매우 자비로운 어조로 제안했다.
“순순히 잡힌다면 고통스러운 순간도 짧아질 것이다.”
“저는 잡히는 것도 아픈 것도 싫은데요.”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 보고 싶거든요.”
“그러려무나.”
제사장이 인자하게 웃었다.
야만인 몇 명이 따라 들어와서 내 배후를 점했고,
“잡아라.”
일제히 나에게 손을 뻗어 왔다.
나는 가장 가까운 놈의 인중을 후려친 다음, 목덜미를 움켜잡고 제사장에게 집어 던졌다.
제사장 주변의 반투명한 막에 충돌하고 벽에 처박힌다.
– 텅!
‘D급 배리어.’
연달아 네다섯 명을 더 집어 던졌으나 별 의미가 없는 건 마찬가지.
물론 내 노림수는 배리어를 뚫는 게 아니었다.
나가는 길을 막는 놈들을 치우는 거지.
인파 사이에 생긴 약간의 틈을 비집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얄밉게 한마디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 잡아 봐라.”
– 콰쾅!
금빛 기운이 방금까지 내가 지나간 자리를 짓이겼다.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제사장이 제 거처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덧붙여 부락 내의 모든 야만인이 주변을 둥글게 포위하는 상태.
날아드는 금빛 기운과 투창을 피하며 생각했다.
‘최소 조건은 클리어했고.’
[깃털뱀 제단]의 히든 피스를 얻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최소 전제조건.바로 제사장을 부락에 묶어 두는 것이다.
제사장이 제단에 도달하는 순간 잠자고 있던 히든 피스가 저절로 제사장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고현우가 완전히 소유권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분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굳이 숲을 뒤져 가며 부락까지 찾아온 거고.
여태까지는 전부 계획대로 돌아가는 중이다.
– 쾅!
땅을 걷어차며 물러나자 또 황금색 빛 뭉텅이가 떨어져 내렸다.
나를 추격하던 야만인 몇 명이 대신 얻어맞고 온몸이 찌그러졌다.
저건 원소 공격이 아니라서 한 대라도 맞으면 골로 간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안 맞으면 되지.’
피하는 것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인페르노 피스트]주먹이 검붉은 불꽃으로 달구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하게 내지르고 싶지만, 힘 조절을 잘못해서 제사장이 죽어 버리면 고현우가 히든 피스를 얻기 전에 던전이 닫혀 버린다.
당분간은 살려 둬야 하니 참는다.
내가 인페르노 피스트를 시전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오버히트]주먹에 깃든 막대한 힘이 온몸으로 퍼지며 에너지를 공급했다.
날아드는 금빛 기운을 피하며 앞으로 돌진했다.
– 팟! 팟!
바닥을 박찰 때마다 시야가 휙휙 변하고 제사장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제사장이 눈을 부릅뜨고 방어 주문을 외우려는 찰나.
내 손이 앞으로 쭉 뻗어졌다.
손은 투명한 막을 단숨에 깨뜨리며 제사장의 가슴팍에 닿았다.
– 펑—!
제사장의 신형이 거처 안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안쪽에서 와장창하고 집기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쓸만하네.’
나는 조금 얼얼해진 손을 털었다.
오버히트로 강화한 육체에 윈드포스를 담아서 후려쳐 봤는데, D급 배리어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박살 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명색이 보스급이라 본체에는 별 피해가 없을 거다.
안쪽에다 대고 말했다.
“거, 방어에도 신경 좀 쓰고 그러세요. 너무 허술한 거 아닐까 싶네—”
즉시 고개를 옆으로 젖히자 선명한 황금빛 막대기가 지나갔다.
안쪽에서 거대한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요. 화가 많이 나셨네.”
“……곱게 죽이진 않을 것이다.”
– 콰콰쾅!
이제 황금빛 뭉텅이가 두 개, 세 개씩 떨어져 내린다.
이것 역시 의도대로였다.
깃털뱀 제사장의 최우선 순위는 ‘의식’을 진행하는 것.
어설프게 어그로를 끌면 전투 도중에 떠나 버리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려면?
잔뜩 화를 돋워 놓으면 된다.
– 콰콰콰쾅!
물론 그만큼 피하는 난이도가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나는 열심히 발을 놀리면서 흘긋 뒤쪽 먼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우뚝 솟은 깃털뱀 제단에서 지금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잘해라, 고현우.’
나머지는 너 하기에 달렸단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