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65
65화 No.388 깃털뱀 제단 (4)
제사장을 처치하기는 해야 하는데, 사실 D랭크 던전 보스는 아직 고현우가 맞상대하기는 버겁다.
이건 내가 해야겠지.
불주먹을 내지르기 전에,
‘미리 복사부터 해 두고.’
[‘복사-특성’을 사용합니다.] [대상의 특성 ‘제사장(D)’을 슬롯에 등록합니다.]▷복사-특성[2/2]
1. 원소 저항(S)
2. 제사장(D)
깃털뱀 제사장의 주요 특성인 [제사장]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능력이 섞인 특성인데, 그 중 ‘마나 감응력 증가’만 해도 마법사에게 매우 유용하다.
“놈!!”
제사장이 지팡이를 뻗자 금빛 빛 뭉치가 또다시 떨어져 내렸다.
여태까지 잘만 피하던 터라 맞아 줄 일은 없었다.
가볍게 스텝을 밟아 피하며 접근한다.
한 손은 불타는 주먹을 움켜쥔 채, 반대쪽 손을 앞으로 뻗는다.
[윈드포스]– 후웅—!
물리력이 담긴 바람이 전후좌우에서 동시에 불며 제사장을 압박했다.
몸을 움직이려 해 봤자 옴짝달싹할 수 없을 거다.
“이, 무슨……!”
제사장이 제자리에서 덧없이 꿈틀대는 사이, 나는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 갔다.
동시에 움켜쥔 주먹도 더욱 맹렬하게 불타올랐다.
그것을 보고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는지, 제사장이 삼류 악역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이게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다음에는 반드시—!”
“그래요, 다음에 또 봅시다.”
제사장의 안면에 인페르노 피스트가 꽂히고,
전방의 모든 것이 밀려드는 화염 폭풍에 삼켜져 버렸다.
– 콰콰콰콰콰—!
“김 형!!”
뒤이어 도착한 고현우.
제법 놀란 표정이었는데, 화염 폭발을 보고 나에게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나 보다.
멀쩡한 나를 보자 곧바로 안도한다.
“어, 왔냐.”
“다 끝났나 보오.”
“딱 너 오기 전에.”
아주 훌륭한 타이밍이었다.
고현우가 제 검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제사장의 영혼을 흡수했을 테니, 안 봐도 어떤 옵션일지 뻔하다.
[깃털뱀 주술검(C)]▷높은 수준의 내구도 보호
▷내구도 자동회복
▷원소 저항(F)
C급치고는 거창한 능력이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내구도 측면에서는 C급 이상이라 봐도 좋을 정도.
덧붙여 F급이나마 [원소 저항]이 붙어 있어 마법을 후려칠 때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고현우를 위한 맞춤형 아이템인 셈이다.
능력치를 확인하는 그의 얼굴이 밝았다.
“이런 성능이라니……! 전부 김 형의 안배였구려. 고맙게 쓰겠소.”
“우리 둘이 같이 해낸 건데 뭐. 대신 이건 내가 먹는다.”
제사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나무 상자 네 개가 놓여져 있었다.
[깃털뱀 제단 랜덤박스(D)] *4고현우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말이오? 본인은 이 검만으로도 차고 넘친다오.”
“그래. 나가자.”
던전이 서서히 붕괴되어 간다.
던전의 핵심이자 보스 몬스터인 제사장을 처치했기에 유지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계속 머물러 있어서 좋을 게 없으니 빨리 나가야 했다.
밖으로 나오자 신병철이 우리를 반겼다.
“오, 진짜 얼마 안 걸렸네?”
“금방 끝난다니까.”
D급 던전임에도 짧은 시간 내에 완벽하게 공략했다.
고현우와 손발이 척척 맞은 덕분이었다.
밖으로 나와 돌아보니 큼지막한 문 크기였던 던전 입구가 주먹만 하게 줄어들고, 색깔을 잃어버려 흑백이 되었다.
핵심이 파괴된 던전은 저렇게 입구가 폐쇄되며 출입이 불가능하다.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핵심이 재생성될 때까지.
그때가 되면 우리가 쓰러뜨렸던 깃털뱀 부족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던전 내부를 활보할 것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가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입장하고, 핵심이 파괴되고, 재생하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겠지.
아무튼 이걸로 첫 번째 지하층 던전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돌아가는 일이 남았거든.’
우리는 지하층 던전을 공략하는 절차를 아무것도 밟지 않고, 몰래 입장해서 핵심을 파괴했다.
신병철이 흔적은 최대한 지웠어도 던전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다.
곧 누군가가 사태를 파악하러 내려올 것이다.
십중팔구 던전동을 관리하는 교직원 중 하나가.
가능한 빨리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다.
신병철이 앞장서며 우리를 재촉했다.
“빨리빨리 올라가자. 이러다 걸릴라.”
* * *
계단이란 내려갈 때보다 올라갈 때가 더 힘든 법이다.
내려가는 길도 밑도 끝이 없이 느껴졌는데, 그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려니 장난이 아니었다.
지상으로 나올 즈음엔 마나로 단련된 육체조차 고통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거리라면, 올라가면서 교직원이나 선도부를 마주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올라가면서는.
밖으로 나와서 몇 걸음 떼기가 무섭게 송천혜와 한소미를 딱 마주치고 말았다.
한소미가 세상 해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안뇽안뇽!”
“…….”
우리는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지하층에서 나온 건 눈치채지 못한 듯하니, 이대로 자연스럽게 가자는 결론이 나왔다.
마주 손을 흔들어 주자 한소미가 손을 흔드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반면 송천혜는,
– 파지직,
신병철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손에서 스파크를 튀겼다.
그냥 만나기만 하면 무슨 나쁜 짓을 꾸미는 건 아닌가 조건반사적으로 의심을 하는 모양이다.
대머리 가발 훔치기부터 시작해서 업보를 많이 쌓기는 했지.
신병철은 또 얼굴 가죽이 보통 두꺼운 게 아니라,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넨다.
“아이고, 선도부 여러분. 굿 이브닝입니다.”
“여긴 무슨 볼일이시죠.”
날 선 질문에 신병철이 당연한 걸 묻는다는 투로 답했다.
“던전동에 무슨 볼일이겠니. 당연히 던전 공략이지.”
“잘 안 믿기는데요.”
송천혜가 눈가를 지그시 좁혔다.
그 뒤에 생략된 말을 대강 짐작해 보면,
‘네가? 공략전을? 월요일부터? 진짜로?’
정도가 되시겠다.
신병철이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 속고만 사셨나? 사람 말을 못 믿네. 야야, 너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뭐라 말 좀 해 봐.”
나에게 지원사격 요청이 들어왔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도움을 주는 게 나을 것이다.
송천혜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도 공략전 치고 오는 길이냐.”
“그런데요.”
“몇 퍼센트?”
“몰라도 돼요.”
“그러냐.”
말하기 싫으면 말든가.
애초에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라, 화제를 전환하려고 물어본 거였다.
신병철이 의심을 벗어난 것 같으니, 이제 ‘수고하고 좋은 밤 되십쇼!’ 말하고 떠나면 된다.
그렇게 내가 작별 인사를 건네려는 찰나.
“아이, 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점수가 좀 안 나왔으면 말 못 할 수도 있지.”
신병철이 다 된 밥에 잿가루를 한 움큼 뿌렸다.
딴에는 도와주려고 꺼낸 말일 텐데, 방향이 심히 엇나간 것 같다.
송천혜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은 걸 보면 말이다.
송천혜가 화를 삭이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쪽이 몇 퍼센트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그쪽보단 높을 겁니다.”
“그건 아닐걸.”
“어떻게 확신하시죠.”
‘그야 나는 100%니까.’
소탕전에서 100%를 넘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몬스터를 만들어서 잡는 게 아니고서야.
하지만 나는 일단 말을 아꼈다.
그편이 더 이득일 것 같아서.
“그냥 감이야.”
“감이 부족하신 것 같네요.”
“그럼 내기할까? 누구 완성도가 더 높은가.”
“뭐 거는데요.”
예상대로 송천혜는 물러나지 않았다.
보면 얘도 지는 걸 엄청 싫어하는 성격 같다.
“가볍게 소원권 어때.”
“소원권이요?”
“어. 부탁 하나 들어주거나 궁금한 거 알려 주는 걸로.”
송천혜가 잠시간 눈썹을 찡그리고 고민하다가, 이내 내기를 수락했다.
어디까지나 가벼운 소원권이라 지더라도 크게 문제는 안 되리라 생각했겠지.
“……좋습니다.”
“셋 세면 동시에 말하기?”
“그러죠.”
“그럼 센다. 셋.”
“둘.”
“하나.”
“100%”
“97%”
송천혜의 얼굴에 금이 쩍 갔다.
* * *
송천혜는 한참이나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매우 사소한 내기였지만 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혹은 나보다 공략전 성적이 낮다는 점이 충격이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우리는 이때다 싶어서 잽싸게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뒷일은 한소미가 알아서 하겠지.
소원권은 당분간 마음의 빚으로 달아 두기로 했다.
어차피 거창한 요구를 하려고 건 내기도 아니었으니, 나중에 선도부 쪽 근황이나 물어볼 생각이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깐 비는 시간.
서예인, 고현우와 한적한 장소에 모여 앉았다.
신병철은 심부름센터 일이 바쁘단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인벤토리에서 나무 상자 네 개를 꺼냈다.
[깃털뱀 제단 랜덤박스(D)] *4“…….”
고현우가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상자들을 내려다보고, 서예인도 드물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상자를 콕콕 찔러 보았다.
고현우가 물었다.
“이걸 열면 무엇이 나오는 거요?”
“나도 몰라. 워낙 종류가 많아서.”
정말 온갖 아이템이 튀어나오는 데다 확률도 공개된 게 없어서, 나조차도 내용물을 완벽하게는 모른다.
다만 꽤 자주 나온다고 알려진 아이템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 내 목표는 ‘제사장의~’ 수식어가 붙은 아이템들.
수식어가 붙기만 하면 D등급이니, 종류는 뭐가 되었든 만족할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개봉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와—”
서예인이 소리 없는 박수를 보냈다.
영혼 없어 보이지만 저게 쟤가 할 수 있는 최대 리액션이다.
나는 랜덤박스 하나를 들어 마술쇼를 하듯 이리저리 보여 준 다음에, 마음가짐을 경건하게 하고 덮개를 열어젖혔다.
– 번쩍!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썩 밝지는 않다.
그래도 내용물을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
[랭크 업(E)]‘나쁘지 않아.’
랜덤박스의 등급을 고려하면 중박 정도라 하겠으나, 랭크 업은 나에게 꽤 중요도가 높은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그저 감사히 받았다.
“다음.”
두 번째 상자를 개봉한다.
이번에는 제자리에 둔 채 덮개만 슬쩍 열었다.
– 번쩍—!
“오.”
“오.”
고현우와 내가 동시에 감탄성을 흘렸다.
첫 번째보다 확연히 강렬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검은 팔찌(D)]‘나왔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제사장’ 아이템인 데다 내가 선호하는 장신구 쪽.
거기에 앞서 나온 랭크 업까지 포함하면 본전치기 이상은 한 셈이다.
해서 나는 한결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두 사람에게 제안했다.
“한 번씩 열어 볼래?”
“그래도 괜찮겠소?”
주술검만으로 충분하다며 나에게 모든 랜덤박스를 양보하기는 했지만, 내심 내용물이 궁금하기는 한가 보다.
고현우가 조심스레 세 번째 상자를 들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덮개를 들어 올렸다.
– 달칵.
[깃털뱀 부족의 나무잔(F)]“크흠…….”
고현우가 무안한지 연신 헛기침을 해 대기 시작했다.
열 때부터 빛이 한 줄기조차 안 보이더니, 역시나.
가끔씩 랜덤박스에서 전투와는 아예 무관한 생활 계열 아이템도 나오곤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없군.”
“김 형에게 면목이 없구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럴 수도 있지.”
대리깡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기, 남 탓하지 않기가 이 바닥의 관례다.
고현우가 운이 없다 한들 맡기기로 결정한 건 나이기 때문이다.
나무잔은 고현우가 찻잔으로 쓰기로 했다.
이제 남은 랜덤박스는 하나.
고현우와 내 시선이 서예인에게 집중되었다.
분위기상 부담감을 느낄 만도 한데, 서예인은 무덤덤한 얼굴로 랜덤박스를 제 앞으로 가져가더니, 더없이 자연스럽게 열어젖혔다.
– 번——쩍——!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