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66
66화 No.388 깃털뱀 제단 (5)
– 번——쩍——!!
섬광탄을 터뜨린 것처럼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빛이 가신 뒤에도 고현우와 서예인은 한동안 멍한 상태였다.
이런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았기에 나 역시도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무슨 아이템이 나왔나 확인해 보았다.
단출한 디자인을 가진 큼지막한 쿠션.
유감스럽게도 방금 고현우가 뽑은 나무잔과 같은 생활 계열 아이템이다.
그런데 생활 아이템의 등급이 예사롭지 않다.
[깃털 쿠션(B)]‘쿠션 주제에…… B랭크나 돼?’
D급 랜덤박스에서 C, B급 아이템이 나오는 건 가능은 하지만, 확률이 지극히 낮아서 그냥 없다고 치부해도 될 수준이다.
그런데 서예인이 그 기적적인 확률을 뚫고 이 쿠션을 뽑아 버릴 줄은.
B랭크는 대개 3학년들이 착용하는 등급으로, 서예인이 쓰는 [투명 길리슈트]나 일전에 선물 받은 [구름밟이]같이 귀하디귀한 것들이다.
그런 귀한 장비들과 등급이 같다는 건 쿠션의 가치도 그와 엇비슷하다는 뜻이고.
그 사실을 증명하듯 무슨 옵션이 덕지덕지 많이도 붙었다.
[깃털 쿠션(B)]알 수 없는 신수의 깃털이 들어간 쿠션.
▷피로 해소 속도 가속
▷정신 계열 상태이상 회복
▷장기간 사용 시 정신 계열 상태이상 저항력 소폭 증가
…….
….
피로 해소 가속은 쉽게 표현하면 1시간 수면으로 2시간어치 피로를 해소한다는 뜻.
정신 계열 상태이상 회복과 저항력 증가도 알차다.
그 외에도 불면증 해소, 목디스크 완화 등, 사용자의 숙면을 돕는 이로운 효과들이 가득하다.
성능만 놓고 보면 심층부 던전에서 드랍하는 장비들 못지않다고 해야겠지만…….
‘잘 때 쓰는 물건인 게 아쉽네.’
생활 아이템들의 옵션은 ‘편안하고 윤택한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는 전투와 성장을 중요시하는 극한의 효율충이라, 저 옵션 중 절반 정도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
자유 시간 대부분을 트레이닝 센터에서 보내기에 쿠션을 쓸 일이 적기도 하고.
물론 전투, 성장 관련 옵션만 놓고 봐도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바에는 처분해서 다른 아이템을 확보하는 편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B급 생활 아이템쯤 되면 구매할 사람이 꽤 많을 테니까.
‘심부름 센터 쪽에 넘겨 볼까, 경매에 내놔 볼까.’
여러 방향으로 고민을 하던 도중 서예인을 보니,
“…….”
쿠션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늘상 그렇듯 아무 표정도 없지만, 회색빛 눈동자가 반짝반짝거린다.
척 봐도 엄청 갖고 싶어 한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갖고 싶냐?”
“…….”
확인차 묻자 즉시 고개를 끄덕인다.
보통은 반응이 반 박자가량 늦게 돌아오는데,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라니.
이게 쿠션의 위력?
나는 ‘우린 친구니까!’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마음속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은.
팔아먹는 게 나은가?
얘한테 주는 게 나은가?
‘이건 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서예인의 하루 수면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잠이 많은 건 확실하다.
쿠션의 피로 회복 가속 옵션을 쓰면 휴식 시간을 꽤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휴식 효율이 올라가면 그만큼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날 테고, 크게 보면 수련 시간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물론 예상과는 달리 변화가 없을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도 걸어 볼 만해.’
성공했을 때 확보될 여유 시간을 생각하면, 충분히 B급 생활 아이템을 내줄 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쿠션을 서예인 쪽으로 슬쩍 밀어 주었다.
“그래, 줄게.”
“정말?”
내가 선뜻 준다고 하니 안 믿기는지, 아니면 남한테 뭘 받아 본 적이 별로 없는지, 반신반의한 기색이다.
나는 아예 쿠션을 들어 서예인의 품에 안겨 주었다.
“어. 선물.”
“……고마워.”
서예인은 잠시 자기 품속의 쿠션을 말없이 내려다보다가, 꼭 끌어안았다.
* * *
월요일부터 공략전을 뚝딱 해치워 버리고 나니, 남은 시간은 오롯이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랭크 업(E)’을 사용합니다.] [‘증폭’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E->D)] [지속 시간 2:00->3:00] [재사용 대기시간 50분->40분]랜덤박스에서 나온 E급 랭크 업은 [증폭]을 올리는 데 사용했다.
지속 시간이 짧고 대기시간이 긴 스킬이라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만 사용하는데, 앞으로 더 등급을 올리면 그런 제약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다음은 깃털뱀 제사장에게서 복사한 특성, [제사장].
이 특성을 우선순위로 삼은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마나 감응력 증가.
모든 마법적 행동에 긍정적인 보정이 붙고, 그중에서도 [코어]를 쌓는 속도를 가속해 준다.
관련 아이템인 [제사장의 검은 팔찌]에는 이 마나 감응력을 배가시켜 주는 효과가 있고.
거기에 일전에 얻은 [블랙 미스릴 밴드]까지 더하면, 특수연공실에는 못 미치더라도 제법 만족스러운 효율이 나온다.
‘이대로 C급까지 달린다.’
보유한 스킬들의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슬슬 D급 [코어]만으로는 버거워지던 참이다.
다음 단계로 올려놓아야 전투 도중 마나 부족에 허덕일 일이 없다.
며칠 이내, 심층부 던전에 들어가기 전까지 해결을 볼 심산이었다.
나는 날이 저물고 다시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마나 연공에 매진했다.
* * *
다음 날,
방과 후 신병철이 나를 불러냈다.
용건이야 안 봐도 뻔했다.
“야, 전에 심층부 던전 말인데.”
“어떻게 됐냐.”
신병철은 다소 난감한 기색이었다.
“그게 좀……. 일이 복잡해졌다. 누님이 한번 보재.”
“뭐 그럽시다. 지금?”
“지금 오면 좋고.”
“바로 가지.”
그렇게 신병철과 함께 다시 찾은 도둑 동아리 부실.
또 어디서 주워 왔는지 중고 가구들이 잔뜩 늘었다.
인테리어가 전보다 더 난잡해진 느낌이다.
부실이 부원들로 붐비는 것도 그 난잡함에 한몫을 더했다.
동아리 부실보다 선술집에 더 가까운 분위기.
가죽이 까진 소파에 쌍둥이를 비롯한 남정네 여럿이 구부정하게 앉아서 카드를 치는 중이고, 태블릿 여학생은 한쪽 구석에서 바쁘게 태블릿을 두들겨 댄다.
그리고 당규영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나무 테이블 위에 같은 자세로 걸터앉아 있었다.
할 일 없는 한량 같은 자세인데 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인기척을 느끼곤 까만 눈동자가 천천히 우리 쪽으로 움직인다.
그와 동시에 신병철이 말했다.
“누님, 데려왔습니다.”
“어, 왔냐.”
당규영은 반갑게 인사하려다가,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표정 관리를 했다.
쌍둥이 하나가 카드에서 시선을 떼고 내 얼굴을 기웃거렸다.
“이 친구가 그 친구요? 누님이 요즘 작업한다던?”
그가 말하는 ‘작업’이란 나를 도둑 동아리로 영입하는 것을 말한다.
임시 보관소 침입 후에 제안이 들어왔었지.
사실이기는 했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당규영이 눈썹을 찡그렸다.
“작업? 너 단어 선택이 좀 그렇다?”
“아, 맞지 않소. 마법공학 동아리하고도 한바탕 하셨더만, 우리 후배한테서 손 떼라고.”
다른 쌍둥이가 추가타를 넣었다.
“내 말이. 봉재석 선배 까였다니까 아주 좋아 죽던데, 누님 그런 모습은 내 살다 살다 처음 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아래에서부터 큼지막한 그림자 손아귀가 솟아올라 얼굴을 콱 움켜잡았기 때문에.
아이언 클로가 아주 제대로 들어갔다.
– 드드드드득,
인간의 두개골에서 나기에는 다소 험악한 소리가 울리고, 버둥거리던 쌍둥이가 축 늘어졌다.
그림자 손이 검지를 펴서 문 쪽을 가리켰다.
“다 나가.”
도둑 동아리 부원들이 자리에서 우르르 몸을 일으켰다.
태블릿 여학생도 그들과 함께 나가려 했으나 당규영이 그녀를 불렀다.
“다빈이는 남아. 병철이도.”
순식간에 조용해진 동아리실.
그림자 손이 내 근처에 의자 하나를 빼 주었다.
의자에 편하게 기대자 당규영이 작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흠, 흠, 방금 들은 건 신경 쓰지 마라.”
“예. 선배님.”
“……조금은 신경 써.”
“생각해 볼게요.”
두루뭉술하게 답하자 당규영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도둑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같은 대답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어림도 없는 소리.
곧장 본론으로 넘어간다.
“일이 복잡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응, 문제가 좀 생겼어. 외적인 문제.”
던전 공략이나 보수 같은 세부적인 사항들을 논하기 전에, 내 의뢰를 받을 수 있냐 없냐부터 논하는 게 순서다.
그리고 당규영이 말하는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의뢰가 성사되지 않는다.
지하층 관련해서 외적인 문제라면 십중팔구,
“입찰이 걸렸나 보네요.”
“그래.”
“일반 입찰입니까, 우선 입찰입니까?”
“우선 입찰이야.”
입찰.
지하층 던전들은 한번 핵심이 파괴되면 시간이 흘러 재생성될 때까지 입장이 불가능하다.
고현우와 내가 [깃털뱀 제단]을 공략한 후, 포탈이 회색이 되며 막혀 버린 것이 좋은 예시다.
이처럼 일정 주기 내에 특정 던전에 도전할 수 있는 인원수는 제한적이고, 좋은 보상을 드랍하는 던전에는 반드시 경쟁이 붙는다.
이 경쟁을 원만한 방식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용살학원에서 도입한 것이 입찰 제도.
입찰하는 파티들의 전투력, 기존 공략의 성공률, 예상 공략 기간 등의 데이터들을 취합하고, 가장 적합한 파티부터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입찰 방식이고,
각 동아리마다 일정 횟수의 [우선 입찰권]을 보유하고 있다.
[제작 VIP 티켓]을 쓰면 대기열을 무시하고 최우선으로 제작 의뢰를 넣을 수 있듯이, 우선 입찰권을 쓰면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가장 먼저 던전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다.그리고 지금 [흑사방]에 이 우선 입찰권이 걸려 있단다.
우선 입찰권이 걸렸다는 건 해당 동아리가 그 던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
이를 무시하고 들어가 버리면?
‘대놓고 싸우자는 소리지.’
분쟁이 발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때문에 의뢰주 측에서도 이런 던전은 가급적 피해 가려는 편이고, 도둑 동아리 측에서도 내 의향을 확인하고자 부른 것이고.
“어쩔래? 다른 데 알아봐 줘?”
다만 여기서 문제라면, 지금 나에게 흑사방 공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흑사방에서 획득할 수 있는 특정 보상이.
다음 기회를 노리기도 애매한 것이, 심층부 던전같이 막대한 에너지를 내포한 던전은 한번 핵심이 파괴되면 재생하는 데 매우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비슷한 보상을 주는 다른 던전을 공략하기에는 난이도가 훨씬 높고.
해서 나는 상대측 동아리와의 충돌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니요, 강행했으면 합니다.”
당규영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우선 입찰이 걸렸는데도 뚫어 달라고?”
“예, 안 돼요?”
“…….”
웬만하면 피해 가려 하지만, 보수만 충분하다면 안 될 것도 없다.
나에게 보수를 지불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도 보여 줬었다.
그럼에도 당규영은 여전히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하나.
우선 입찰을 건 세력이 도둑 동아리를 주저하게 만들 정도의 거대 세력이라는 뜻이다.
내가 다시 물었다.
“어느 동아리인데 그래요.”
“……좀 큰 데야.”
이어지는 당규영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검술 동아리.”
……거긴 좀 크긴 하지.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