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85
85화 5주 차 멘토링, 대인전 (8)
화요일.
점심시간 이후의 짧은 쉬는 시간.
고현우, 서예인과 한적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내용은 말할 것도 없이 어제 시작된 멘토링.
“그래서, 너네 멘토는 어때.”
“만족스럽소, 무척이나. 선배 고수분도 훌륭하고, 다른 분들에게서도 배울 게 많이 보이더구려.”
고현우는 아침부터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운 좋게도 실력이 뛰어난 멘토와 조원들을 만났나 본데, 무인이라면 누구든 들뜰 만한 일이었다.
“그래? 누구누구 있는데?”
“한 소저가 같은 조원이더구려.”
“한소미?”
“그렇소.”
어쩐지 어제 가는 방향이 같더라.
혹시나 했더니 진짜 같은 조가 됐네.
“잘됐다. 대련하자고 해 봐.”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았다오. 헌데 거절하더군.”
“벌써? 왜 싫대?”
“불필요한 싸움은 원하지 않는다 하더이다.”
돌이켜 보면 열차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싸움은 안 좋아하지만 승부는 피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굳이 대련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대련은 승부가 아니거든.
그래도 선도부에 대인전 상위권까지 유지하는 걸 보면 할 때는 하는 성격이라 봐야겠지.
“잘만 부탁하면 해 주지 않을까? 가령 맛있는 걸로 살살 꼬셔 보면.”
“음, 그럴 것도 같소. 허나 한 소저가 뭘 좋아할지 도통 모르겠군.”
“송천혜한테 슬쩍 물어보지 뭐. 걔는 또 우리 조거든.”
“정말이오? 그럼 부탁하리다.”
송천혜와 한소미는 같은 선도부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꽤 친해서 항상 붙어 다니기도 하니, 서로 관심사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거다.
그걸 나한테 순순히 알려 주겠는가 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 그에 관해서도 계획이 있었다.
고현우의 근황은 대강 일단락된 것 같아서, 이번에는 말없이 대화를 지켜보기만 하던 서예인에게 대화를 돌렸다.
“너는 어땠냐. 멘토링.”
“……재미없어.”
그러시겠지요. 재미없으시겠지요.
저쪽 멘토가 고생하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멘토가 뭐라 말은 안 하고?”
“너 보고 싶대.”
“나를?”
“응.”
총사 멘토가 나는 무슨 일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금방 들을 수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아가씨.”
“?”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그곳에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뭘 시키든 기본으로 2인분 이상 하겠군.’
이 사람이 엄청나게 유능하다는 사실을.
교직원 같지는 않고, 멘토링 한다고 들어온 졸업생일 확률이 높다.
거기다 서예인에게 ‘아가씨’라는 호칭을 쓴다는 건 예전부터 인연이 있다는 뜻이겠지.
정장 여성이 먼저 우리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가씨의 친구분들이시군요. 저는 안정미라고 합니다. 이번에 멘토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현우입니다.”
“김호입니다.”
우리도 예를 갖추어 답했다.
그런데 내 이름을 듣는 순간, 안정미의 눈이 강렬한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거의 레이저가 쏘아져 나올 지경이라 조금 부담스러웠다.
“……김호 님이시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고현우가 순식간에 눈치를 챙기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는 제가 자리를 비켜 드리는 것이 좋겠군요.”
“배려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그럼 김 형, 서 소저, 나중에 봅시다.”
그리고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서예인의 멘토라니 대화 주제는 사실상 정해진 셈이었다.
또 당사자를 옆에 두고 못 할 말을 할 것도 아니라, 굳이 서예인을 다른 데로 보낼 필요는 없었다.
안정미가 나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다시 소개 올리겠습니다.”
명함 위에 정갈한 글씨체로 적혀 있는 직책과 이름.
[혜성그룹 미래전략실 제2팀장] [안정미]‘혜성그룹이라.’
혜성그룹은 에서 1, 2위를 다투는 거대 군수산업체로, 마력총을 비롯한 각종 고등급 마법공학 장비들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서예인이 이들과 연관이 있다면 [광학미채 길리슈트]나 [구름밟이] 등의 온갖 고등급 장비로 무장한 것도 상당 부분 설명이 되었다.
무려 팀장급이 찾아와서 아가씨라고 부를 정도라면 못해도 간부급 인사의 손녀딸일 테니까.
게다가 안정미는 유능해 보이는 인상만큼 맡은 직책도 팀장뿐만이 아닌 듯했다.
예상대로, 서예인이 안정미를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집사야.”
“집사? 이분이?”
“응.”
“예, 과분하지만 집사의 업무 역시 병행하고 있습니다.”
안정미가 긍정했다.
이 사람이 그 집사구나.
몇 주 전 서예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상기해 보았다.
– 갖고 싶은 거 있어?
– 갑자기?
–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된대.
– 누가?
– 우리 집사가.
서예인이 마력탄 특강의 보답이라고 신발을 선물한 것은 집사에게 이런 상식을 배운 덕이 컸다.
누군지는 몰라도 가끔 언급될 때마다 존경심이 솟아오르곤 했는데, 눈앞의 안정미가 바로 그분이시란다.
존경스러운 분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김호 님을 찾아뵙고자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가씨의 진로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일개 학생인데, 진로 상담이라면 저보다 나은 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짐짓 겸손한 척 한발 물러섰으나, 안정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김호 님 외에는 적임자가 없습니다. 겨우 한 달 만에 아가씨께 [마력탄]과 [사출]을 가르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물론 숱한 가정교사분들 중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셨으니, 매우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어조가 단정적인 걸 보니 이 용건을 꺼내는 건 나를 만나기 한참 전부터 계획해 둔 듯했다.
그런데 안정미의 말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마력탄]과 [사출]이면 사실 총사 클래스 스킬 중에서는 아주 기초적인 것들인데, 여태까지 제대로 가르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가정교사들 실력이 부족했을 리도 없고, 서예인이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얘 집에서는 말 잘 안 들어요?”
“…….”
안정미가 순간적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난감한 질문이었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빠르게 적절한 단어들을 고르는 듯했다.
대답이 몇 초 이내에 나왔으니 확실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인 것 같다.
“……조금 더 관심이 가는 분야에 시간을 투자하시는 편입니다.”
나는 ‘관심이 가는 분야가 뭔데요?’라고 물어서 안정미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보나 마나 낮잠일 게 뻔하거든.
정말로 하고 싶은 말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했다.
‘네, 집에서는 더럽게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런 서예인을 내가 가르쳤다니, 누군지 궁금해서라도 한 번은 찾아올 법하지.
나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얘는 제 친구기도 하니까, 힘닿는 데까지 최대한 해 볼게요.”
“감사드립니다. 어제 아가씨의 실력을 조금 더 정확히 확인해 보니, 마력탄과 사출을 C랭크까지 올리셨더군요.”
“그래요?”
이건 나도 의외인데.
그냥 목표를 높게 잡으면 열심히 할 것 같아서 C랭크로 잡은 건데, 그걸 진짜로 해 버리네.
서예인에게 시선을 보내자 나를 마주 보며 천천히 손가락을 들더니, 어설픈 V자를 그려 보였다.
다시 안정미와 시선을 교환했다.
신기하게도 눈빛만으로 뜻이 통한다.
‘쟤 평소에도 저래요?’
‘아니요, 저도 오늘 처음 봅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둘 다 프로였다.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고 하던 대화로 돌아온다.
“둘 다 C급이면 이제 파괴력은 필요한 만큼 확보했다고 보는데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력탄을 계속 상대에게 적중시켜 피해를 줄 수만 있다면 1학년 중 누가 오든 골로 보내 버릴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계속.’
현재 서예인은 저격 두세 번이 실패하는 시점에서 승률이 급격하게 떨어지는데, 전투를 이어 나갈 유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파괴력은 뛰어나지만, 그 파괴력을 유지해 줄 기동성이나 방어력 등이 없다시피 해서, 역공이 들어오면 고스란히 다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화력전에 들어가 힘겨루기를 하면 먼저 나가떨어지는 거고.
가령 2 대 2 대인전에서 붙었던 홍연화-백준석 듀오는 마력 방패를 소환해 저격을 막아 내고, 서예인의 위치를 파악해 반격했었다.
그다음에 내가 판을 엎어 버리지 않았다면 금방 체력이 깎여 전투 불능이 됐을 거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가장 먼저 보완해야 할 것은,
“먼저 이동스킬을 하나 익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 생각과 같군요. 추천하시는 스킬이 있으십니까?”
안정미가 물었다.
여느 원거리 계열처럼 [도둑걸음]을 익혀도 괜찮겠지만…….
이왕이면 프리미엄을 붙이는 게 어떨까.
나는 다른 스킬을 입에 담았다.
“[깃털걸음]이 적당할 것 같아요.”
깃털걸음(Featherwalk).
시전자의 몸을 가볍게 하고 이동속도를 빠르게 한다는 점에서는 도둑걸음과 비슷하다.
차이점을 꼽자면 깃털걸음을 시전하는 동안 시전자 주위에 약한 난기류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상대의 공격을 일부 빗겨 내고 흘려 내는 역할을 한다.
적게나마 방어스킬의 역할도 겸하는 셈이다.
당연히 바람 계열 스킬들과 시너지도 좋다.
내가 앞으로 익힐 스킬들과 조합하면 보너스를 더 크게 받을 거다.
반면 단점은 딱 하나.
‘비싸지.’
[깃털걸음] 스킬북은 [도둑걸음]에 비해 극도로 희소하다.을 플레이할 당시의 시세는 100배가 넘었는데, 이곳은 어떤지 몰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도둑걸음보다 좋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쳐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
대부분의 경우 100배나 되는 값을 치르고 깃털걸음 스킬북을 구매하느니, 비슷한 도둑걸음을 익히고 그 재화를 다른 데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근데 얘네는 혜성그룹이라며.’
혜성그룹쯤 되는 대기업 영애가 모처럼 스킬 하나 배워 보겠다는데, 그까짓 돈이 대수겠는가.
과연 안정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스킬북을 구해 보겠습니다.”
나는 거기에 한 가지 요구를 덧붙였다.
“당분간은 무기도 바꾸면 어떨까 싶어요.”
이동스킬을 배우는 동안은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저격 소총보다는, 조금 더 기동성을 살리는 계열의 마력총을 쓰는 게 어떻냐 하는 말이다.
이것 또한 혜성그룹에는 어려운 요구가 아니었다.
총기라면 넘치도록 쌓여 있을 테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걸로 당분간 서예인의 수련 방침은 정해진 셈이었다.
그 뒤는 경과를 보고받으면서 계속하든 바꾸든 하면 될 테고.
나는 서예인에게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스킬 열심히 배우고, 집사님 말 좀 잘 듣고 그래.”
서예인이 나를 몇 초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정미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나를 향해서는 감탄과 존경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서예인을 보는 눈빛은 어딘가 배신감과 허탈함이 담긴 듯했다.
‘알 만하지.’
왠지 모르게 안정미의 입장도 이해되었다.
고양이를 예로 들면, 몇 년씩이나 오냐오냐하고 최선을 다해 키웠는데 자신한테는 관심조차 안 주다가, 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즉시 배를 깔고 드러눕는 모습을 보는 그런 느낌 아닐까.
그러나 다시 말하듯, 안정미는 프로였다.
또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고 대화를 잇는다.
“이번 멘토링은 미래전략실에서도 관심을 두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김호 님이 아가씨의 성장에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점, 잊지 않고 반드시 사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필요한 게 많아서요.”
“충분히 만족하실 만한 것으로 준비하겠습니다.”
벌써 뭔가 좋은 걸 준다니.
역시 안정미는 인의예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