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90
90화 5주 차 멘토링, 대인전 (13)
– 화르르륵!
홍연화의 눈앞에 작은 불기둥이 활활 타올랐다.
불기둥 안에는 검은 광택을 뿌리는 주괴가 겉 부분부터 아주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홍연화의 시선이 하릴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뚱한 표정, 팔짱을 낀 두 팔, 탁탁 바닥을 두들기는 한쪽 발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랭크. 왜. 안 올라.’
김호의 제안에 넘어가, 대장장이 공방에서 만년한철 합금을 녹이기 시작한 지 3일째.
[아쿠아플레임]의 랭크는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E급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물론 홍연화도 스킬 랭크업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정도야 알고 있었다.
그게 됐으면 온 세상이 S급 영웅들로 가득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대치라는 게 있다.
E급이면 F 바로 아래, 사실상 초기 단계 아닌가.
성장 속도가 빨라야 정상이다.
또한 홍연화가 과거에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였던 것까지 포함하면, 길어야 하루 이틀 중으로 랭크업을 하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3일이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슬슬 조바심과 함께 부정적인 생각이 고개를 치켜든다.
‘나 속은 거 아냐?’
사실 특성 랭크업을 시켜 주겠다는 건 거짓말이었다면?
단순히 화염 마법을 써 주길 바란 거라면?
처음부터 자신을 휴대용 용광로로 써먹을 속셈이었다면?
이래 놓고 김호 본인은 어디 다른 데서 편히 쉬는 중이라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홍연화는 엄청난 허무함을 느꼈다.
안 그래도 요즘 멘토링 때문에 휴식 시간이 줄어들었는데, 그렇게 줄어든 휴식 시간마저 이렇게 대장간 한구석에서 보내고 있다.
오직 특성을 키워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고 있었던 건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자 급격히 의욕이 떨어져 갔다.
‘그냥 때려 칠까?’
홍연화가 처음부터 하나하나 따져 보았다.
김호는 자신과 따로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그저 갑자기 ‘특성을 성장시킬 방법을 알려 주겠다’며 저를 멋대로 데려다 썼을 뿐이다.
거기에 혹해서 쫄래쫄래 따라온 자기 잘못도 없잖아 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한다는데, 뭐라 하겠어.’
그러나 순간 김호의 싸늘한 얼굴이 스쳐 지나가자, 홍연화가 오한에 몸을 떨었다.
여태까지 이곳저곳에서 마주치며 봤던 모습들.
자신의 화염 마법을 간단히 뚫고 들어오고, 백준석을 휙 바닥에 던져 버리고, 쌍둥이 트롤의 손도끼를 가볍게 잡아채서 날리고…….
그런데 내가 안 한다고 하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홍연화가 빠르게 고개를 붕붕 저어 생각을 털어 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래, 관두자.’
더욱 굳게 결심을 다진다.
그리고 막 불기둥을 거둬들이려는 순간.
홍연화의 시야 한 켠에 알림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아쿠아플레임’의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E->D)]“어……?”
홍연화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지, 진짜 되네……?’
곧 정지했던 사고가 다시 회전하며 오만가지 감정들이 홍연화의 머리를 지배했다.
여태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못 뚫던 아쿠아플레임의 벽을 드디어 뚫었다는 감격스러움과 홀가분함.
이 방법대로라면 D급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과 기대감.
그리고 김호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흠, 흠.”
고마움 뒤에는 부끄러움이 뒤따라와서, 홍연화는 저 혼자 헛기침을 해 댔다.
김호는 순수하게 도와주려는 의도에서 방법을 알려 주고, 심지어는 귀중한 재료를 쓰도록 기회까지 주었는데, 자신은 섣불리 그를 판단하고 의심했으니.
‘하긴, 조금 무섭기는 해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으니까.’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협조적으로 대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홍연화였다.
파이어 필라를 시전하는 손짓에 의욕이 넘쳤다.
한층 선명해진 불꽃이 빠르게 주괴를 녹여 갔다.
– 화르르르륵!
* * *
일요일.
홍연화는 스티커 대인전에 마지막으로 도전하기 위해, 약속된 시간에 아레나에 도착했다.
경기장 근처로 다가가니 김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대뜸 한마디 한다.
“랭크 올렸네.”
“어떻게 알았어!?”
홍연화가 흠칫 놀라서 되물었다.
아직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공방에 수정구라도 설치해 놨나?
김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표정에 다 드러나.”
‘표정에?’
홍연화는 빙글 등을 돌리고 손거울을 꺼내 제 얼굴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그리고 눈썹을 조금 찡그렸다.
‘……그냥 똑같은데.’
평소와 다른 점을 모르겠다.
물론 모르는 것은 홍연화 본인뿐이었고, 주변 사람들은 진작에 달라진 점을 눈치챈 뒤였다.
한 주 내내 죽을상을 하고 다니던 그녀가 어제부터 내내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채 실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지 않고서야 이런 급격한 변화를 보일 리가 없다.
특히 김호는 이번 주 그녀의 행적을 거의 파악하고 있던 터라, 그 ‘좋은 일’이 특성 랭크업이라는 것을 곧바로 눈치챈 것이고.
“C급에 오르면 주괴가 다 녹을 거다.”
“그래?”
그 말에 홍연화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대장장이 동아리 부장에게 넌지시 물어 주괴의 정체가 무려 만년한철과 블랙 미스릴의 합금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참이었다.
특성을 성장시킬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한들, 그런 고등급 금속을 다룰 기회가 흔히 오지는 않을 터.
주괴가 다 녹으면 당분간 다시 성장이 멈춘다는 뜻이다.
‘그래도 C급이 어디야.’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D급조차 못 뚫고 있었는데.
욕심을 부린다고 기회가 더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나으리라.
“…….”
김호는 거기서 대화를 끊고 경기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홍연화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막으로 뒤덮여 있어 벽이나 다름없었지만,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좋은 기회였다.
곧 홍연화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들보다 한발 앞서 대인전을 치르고 있을 송천혜, 곽지철 페어였다.
‘걔네는 몇 개나 뗄까 모르겠네.’
당규영과의 근접전 대련은 각자 시간을 정해 한 명씩 진행했기에 조원들끼리 마주칠 일이 적었다.
때문에 송천혜와 곽지철의 실력이 한 주간 얼마나 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홍연화의 짐작으로는 자신보다 더 급격히 늘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한 개, 아니면 두 개?’
“크억!”
그 순간, 곽지철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밖으로 튕겨 나왔다.
경기장에 설치된 안전장치가 전투 불능 판정을 내리고 쫓아낸 것이다.
홍연화는 그 꼴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쟤는 월요일이랑 달라진 게 없네.’
한 주 동안 그 지옥 같은 일대일 대련을 겪었다면 맷집이라도 더 늘어야 하는데, 퉁겨나온 시간대를 가늠해 보면 첫날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발전을 하기는 한 걸까?
반면 송천혜가 마법진을 타고 걸어 나온 것은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월요일에 곽지철이 리타이어하고 곧바로 뒤따라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는 혼자 남아서도 꽤 오래 버틴 셈이다.
“…….”
송천혜는 바닥에 널브러져서 신음하는 곽지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팀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 못하고 일찌감치 리타이어 해 버렸으니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렇게 지나치다가 홍연화와 눈이 마주치자 짧은 시간 싸늘한 시선을 교환했으나, 둘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천혜가 그대로 김호도 지나치려는 찰나,
“송천혜.”
“무슨 일이시죠.”
“얘기 좀 하지.”
송천혜가 승낙하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 두 사람이 인적이 뜸한 관중석 한 켠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홍연화가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둘이 무슨 사이야?’
저 조합은 상당히 의외였기 때문이다.
홍연화가 아는 것이라곤 배치 고사 당시 김호가 송천혜와의 대결을 피했다는 것뿐이다.
그대로 붙었으면 분명 김호가 이겼을 걸 왜 기권했는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었다.
둘 사이의 접점은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홍연화는 곁눈질로 두 사람을 계속 바라보았다.
– ……!
– ……!
마나로 청각을 강화해도 들리지 않을 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대화 내용은 엿들을 수 없었으나, 서로를 대하는 태도나 표정 등으로 관계 정도는 추측해 볼 만했다.
‘별로 친하지는 않은 거 같네.’
방금 김호가 말을 걸었을 때도 마지못해 가는 태도였고, 대화 중인 지금도 송천혜의 얼굴이 계속 차갑게 굳어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대화에서 주도권을 가져가는 쪽이 김호라는 점이다.
김호가 느긋하게 한 마디씩 툭툭 던질 때마다 송천혜가 그에 반응해 쏘아붙이거나 부들부들 떤다.
하기야 저 괴물 같은 인간이 누구한테 쩔쩔매는 꼴은 상상이 안 가기는 했다.
3학년 선배들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는 것 같고.
그러다가 송천혜가 갑자기 홍연화 쪽을 가리켰다.
홍연화는 뜨끔해서 시선을 피하며 생각했다.
‘내 얘기해?’
대체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길래 자신이 언급되는 걸까?
궁금증이 두 배로 증폭된다.
몰래 다가가서 조금이라도 엿들어 볼까 고민하던 차에 대화가 끝나고, 송천혜는 찬바람이 쌩쌩 불도록 팩 고개를 돌리더니 관중석에 가서 앉았다.
‘아, 진짜 궁금한데…….’
지나가는 것처럼 슬쩍 물어볼까?
내 얘기 같으니까 물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고민을 거듭하는 홍연화였지만, 상대가 김호다 보니 좀처럼 엄두가 안 났다.
그런데 웬일로 김호가 먼저 다가오면서 말문을 연다.
“저쪽은 스티커 몇 개인가 물어봤다.”
방금 전 송천혜가 자신을 가리키며 뭐라 했던 것이 스티커 대인전과 관련된 것이었나 보다.
홍연화 역시 몹시 궁금하던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말해 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뭐래? 몇 개?”
“한 개도 못 뗐다는군.”
도전 횟수 세 번을 다 쓰고도 스티커 한 개를 못 뗐다고?
정말 이번 주 대인전은 어지간히도 어려운 것 같다.
이미 몇 번이나 생각한 거지만 갑자기 마법사에게 근접전을 시키는 것부터가 엄청나게 어려운 요구였다.
그러나 어쩌랴, 탓하려면 올라운더형 마법사로 진로를 정해 버린 자신을 탓해야지.
아무튼 송천혜와 곽지철이 0개로 이번 주를 마무리했으니, 그렇다는 말했다는 건 곧,
‘한 개. 어떻게든 한 개만 떼면.’
저들보다 우위에 선다는 뜻이다.
홍연화의 심장 박동이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빨라졌다.
세 개는 몰라도 하나라면.
하지만……. 해낼 수 있을까?
고작 하나조차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야, 해내야만 해.’
홍연화가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옆으로 시선을 보내자 김호가 고개를 살짝 까딱여 답했다.
그리고 함께 순간이동 마법진에 발을 올렸다.
원형 투기장에 들어서니 당규영이 언제나와 같은 자리에 여유롭게 서 있었다.
언뜻 무방비하게 느껴질 만큼 편한 자세로.
그러나 홍연화는 이미 수도 없이 겪어서 알고 있었다.
막상 전투에 돌입하면 저 무방비한 모습에서 조금의 빈틈도 찾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바로 곁에 하나 더.
다행히도 이번 주는 그 사람과 같은 편이다.
때마침 자신과 시선을 맞춘 김호가 짧게 한마디 했다.
“어제랑 똑같이.”
하고 싶은 대로, 네 모든 것을 펼쳐 봐라.
내가 거기에 맞춰 서포트할 테니까.
그 말에 홍연화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근처에만 와도 자신을 위축시키는 김호지만, 강적을 앞에 두고 함께 선 이 순간만큼은 그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어.’
홍연화가 한쪽 손에 든 완드를 가볍게 젓자, 발밑에 둥그런 마법진이 새겨졌다.
곧이어 발현된 마법은 남김없이 홍연화의 전신에 흡수되었다.
– 화르르륵!
홍연화의 전신이 선명한 불꽃으로 뒤덮였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