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91
91화 5주 차 멘토링, 대인전 (14)
파이어 필라는 홍연화가 배운 수많은 화염 마법 중에서도 꽤 강력한 축에 속한다.
그만큼 오버히트로 흡수했을 때의 육체 능력 증가 폭도 제법 높은 편이었다.
물론 육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아직 준비가 더 필요했다.
홍연화가 연이어 주문을 외우자 한 손에 든 완드에서 주르륵 용암이 흘러내려 채찍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반대쪽 손에는 커다란 화염 구체가 생성되고 있었다.
[라바 윕] [플레임 오브]– 화르르륵,
마지막으로 활활 타오르는 화염구에 한 가지 술식을 가미한 후, 그것을 당규영에게 힘껏 집어던졌다.
“…….”
당규영은 사람 몸집보다 더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오는데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플레임 오브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즈음, 발밑에서 가늘고 기다란 그림자 장검을 한 자루 쓱 뽑아냈다.
장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가볍게 내려 긋자 구체가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지고,
– 퍼퍼퍼펑!
당규영의 양옆에서 강렬한 화염 폭발이 일며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홍연화가 플레임 오브에 슬쩍 가미한 술식, [아웃버스트]의 효과였다.
화염구로 당규영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 최대한 넓은 범위를 화염으로 뒤덮어 놓고 시작하겠다는 의도.
홍연화가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당규영의 영향력은 줄어들게 마련이고, 그만큼 그림자를 제어하기도 어려워진다.
밑 작업을 해 둔 셈이다.
당규영도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어떤 면에서는 정답에 근접해 가는 후배에 대한 기꺼움 같은 것도 엿보였다.
옅게 웃으며 물음을 던지자,
“이제 들어올 거지?”
“갈게요.”
홍연화가 짤막한 대답과 함께 첫발을 내디뎠다.
땅을 강하게 걷어차며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 팟! 팟!
당규영과의 거리가 훅훅 좁혀 들어 금세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동시에 서로에게 용암 채찍과 그림자 장검을 휘두르고, 장도에 채찍이 얽혀 들며 상쇄된다.
홍연화가 손을 쭉 뻗자 당규영도 마주 손을 뻗으며 손목을 잡아채려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홍연화의 노림수.
손과 손이 닿기 전에, 용암 채찍이 당규영의 손목에 감겨들고 팽팽하게 당겨진다.
재차 스티커를 향해 손을 뻗는 홍연화.
그러나 다음 순간 강렬한 위화감을 느낀다.
‘……?’
전투는 이제 시작인데 이상하리만치 일이 쉽게 풀린다는 위화감을.
홍연화는 그 위화감을 믿고 즉시 모든 것을 회수하며 멀찍이 물러났다.
– 펑!
간발의 차이로 까만 나비가 폭발하며, 그림자 한 뭉텅이가 홍연화가 방금까지 있던 곳을 옭아맸다.
일부러 허점을 보이는 척하면서 은밀하게 접근시켰던 나비였다.
계속 몰아붙였으면 자칫 크게 손해를 볼 뻔했다.
[영접비행]홍연화를 쫓아 팔랑거리며 날아드는 그림자 나비 세 마리.
작지만 온갖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 다시 근접전에 들어가기 전에 요격해 둘 필요가 있다.
‘침착하게, 한 마리씩.’
가장 앞서 날아오는 영접에 용암 채찍이 휘둘러졌으나, 유려한 움직임으로 피해 냈다.
즉시 채찍을 회수해 다시 휘두르자 영접이 불타며 흩어진다.
그사이 두 번째, 세 번째 영접은 더욱 가까이 접근한 상태.
홍연화가 그것들을 피해 빠르게 발을 놀리며 다음 주문을 시전했다.
– 휘잉—
그런데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더니, 두 번째 영접이 저 혼자 허공에서 부르르 떨곤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저건…….’
김호가 항상 쓰는 정체불명의 바람 마법이 분명하다.
대인전 시작 전에 얘기했던 대로, 홍연화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서포트하는 것이다.
‘좋았어.’
이렇게 되면 부담이 훨씬 줄었다.
원래는 두 번째 영접에게 쓰려고 준비했던 마법을 마지막 한 마리에게 발현한다.
– 콰아아아—!
전방으로 화염이 뿜어져 나가며 그림자 나비를 집어삼켰다.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걷어 냈으니 다시 원래 목표로 돌아갈 차례.
홍연화가 완드로 당규영을 가리키자, 점차 사그라들어가던 불꽃이 다시 맹렬하게 치솟아 올랐다.
그럼에도 당규영은 여전히 불길 속에 여유롭게 서서 미소 지을 뿐이다.
“좋네. 계속 들어와.”
– 팟!
다시 홍연화가 파고들며 근접전이 재개되었다.
용암 채찍으로 보조하며 반대쪽 손을 휘둘러 당규영을 공격하고, 중간중간 스티커를 노린다.
당규영은 날아오는 공격들을 아주 능숙하게 막고, 스티커를 노리는 손은 탁탁 쳐냈다.
그때,
— 휘잉—
한 줄기 바람이 당규영을 감싸듯 스쳐 지나갔다.
바람에 담긴 물리력 탓에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뚝뚝 끊긴다.
당규영의 짜증 섞인 시선이 잠시 홍연화의 어깨 너머, 김호가 있는 곳을 향했다.
‘저거 또 시작이네.’
3학년이 되도록 수많은 적과 스킬들을 겪어 봤지만, 귀찮고 성가시기로는 저 바람 마법이 한 손에 꼽혔다.
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워 온 거지?
반면 홍연화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당규영이 귀찮고 성가시게 느낄수록 신경이 분산되고, 허점이 노출될 테니까.
잽싸게 파고들어 공세를 이어 간다.
“칫.”
당규영이 짧게 혀를 찼다.
그리고 대인전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몇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3학년의 저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불쑥 솟아오른 그림자 손발과 보조를 맞추며 홍연화의 공격들을 하나하나 침착하게 막아 냈다.
근접한 상태에서 계속 공방이 오가자 기세가 다시 당규영 쪽으로 빠르게 넘어온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그림자 주먹이 홍연화를 힘껏 후려치려는 순간,
– 펑!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 주먹이 목표를 한참이나 빗나갔다.
이번에도 김호가 절묘하게 개입한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계속 물리력이 담긴 바람이 불어오며 당규영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아, 저걸 진짜, 아.’
끼어들어도 저렇게 얄밉게 끼어들 수가?
분명 멘토링 대인전이고 2대1이 당연한 걸 아는데도 마음의 앙금이 남을 것 같았다.
당규영은 다짐했다.
끝나면 또 김호의 등에다 잔뜩 낙서를 해 주기로.
한편, 이번에도 김호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들어가는 홍연화.
눈 깜짝할 사이에 마법을 영창하고,
[플레임 애로우]용암 채찍을 불타는 활과 화살로 바꿔 지근거리에서 연사한다.
하나둘 생성되던 그림자 나비와 그림자 손발 등에 불화살이 퍽퍽 꽂힌다.
그림자 마법 상당수가 제대로 시전되기도 전에 차단당하고,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온다.
당규영의 얼굴에서 점점 여유가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홍연화의 눈에는 견고한 철벽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앞으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
땅을 강하게 박차며 더욱 저돌적으로 공격해 들어간다.
– 콰아아아!
당규영의 발밑에서 커다란 그림자 가시가 불쑥불쑥 솟아오르며 홍연화에게 짓쳐들어왔다.
그림자 손발이나 둔기 등에 비해 직접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형태.
홍연화는 그것을 여유가 없어진 증거라고 해석했다.
계속 불화살을 날려 가시들을 태워 버렸지만, 그럼에도 남아서 쏘아져 오는 숫자가 제법 된다.
홍연화는 그 가시들을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다 피할 순 없어.’
하지만 앞서 그랬듯 거리를 벌리고 물러난다면.
당규영도 재정비할 시간을 갖게 될 테고, 김호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만들어 낸 기회가 물거품으로 돌아갈 거다.
선택의 기로에서 홍연화는 선택했다.
일부는 감수하기로.
홍연화가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그림자 가시들 사이사이를 가로질렀다.
어떤 것은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갔으나, 몇몇 가시는 팔다리나 뺨을 긁으며 생채기를 냈다.
그럴 때마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시선은 줄곧 목표인 당규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홍연화가 제법 접근했다 싶은 순간, 당규영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 콰아아아!
발밑에서 아까의 몇 배나 되는 그림자 가시가 벽을 이루었다.
이렇게 잔뜩 견제를 당하고도 숨겨 놓은 패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연화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어.’
이것마저도 예상했으니까.
불끈 움켜쥔 주먹에서 화염이 확 타올랐다.
그것을 그대로 앞으로 뻗어 내자,
[파이어 펀치]– 펑!
그림자 벽에 구멍이 뻥 뚫리며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방어선마저 돌파당한 것을 확인한 당규영은 내심 흡족해졌다.
‘제법이네.’
그림자의 형태를 가시로 바꾼 것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덜해졌던 이유도 있지만, 홍연화를 시험하려는 의도 역시 있었다.
그리고 홍연화는 목표를 뚫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는 것으로 그 시험을 훌륭하게 통과했다.
뿐만 아니라 당규영이 벽을 하나 더 세우리라는 것까지 예상하고 다음 수를 준비해 두었다.
다른 멘토라면 이것만으로도 합격점을 줬을 테지만,
‘아직 살짝 부족하지.’
계속 근접전을 벌이며 스티커를 떼는 건 별개다.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당규영이 막 반격에 나서려는 찰나,
– 툭,
무언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놀라서 홱 고개를 돌려 보니 김호가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상태다.
“어.”
뭐야 저거. 언제 여기까지 왔어.
홍연화를 보조하면서 야금야금 가까이 다가오더니, 당규영이 빈틈을 보인 순간 한달음에 바로 옆까지 따라붙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스티커를 떼는 역할을 전부 홍연화에게 맡긴다고는 했지만, 계속 멀찍이서 보조만 한다고는 안 했다.
그러나 다소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 휘잉—!
어깨에 얹은 손을 기준으로 사방에서 모여들듯 바람이 불어왔다.
여태까지 김호가 쓰던 바람 마법과 같았으나, 거기에 담긴 물리력은 이전과 차원이 다르게 무거웠다.
몇 초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나마 당규영이 옴짝달싹도 못 할 정도로.
C급일 때도 성가시기 짝이 없던 스킬이, [증폭]을 통해 랭크가 두 단계나 더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규영은 어떻게 스킬의 위력이 갑자기 껑충 뛰었는지 의문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진…… 짜 짜증 나는…… 스킬…….’
나는, 정말로, 저 스킬이, 싫어.
그렇게 당규영이 윈드포스에 대한 혐오감을 쑥쑥 키워 가는 사이,
‘지금!’
홍연화는 스티커를 향해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손끝에 걸린 스티커 끄트머리를 집고, 온몸을 뒤로 잡아 빼며 물러났다.
– 찌이—익!
“…….”
사방이 정적에 잠긴 것 같았다.
홍연화가 멍하니 시선을 내리자 스티커가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히 손에 찰싹 붙어 있었으나 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곧 조금씩 실감이 나며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해, 해냈다……!’
일주일간의 고생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기에 꾹 참았다.
홍연화가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자니 당규영이 말했다.
“하나 뗐네. 잘했어.”
그러면서 덧붙인다.
이제 나머지도 마저 해야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 스티커 대인전은 세 개를 떼야 성공이다.
‘남은 두 개도…… 가능할까?’
확신하기 어려웠다.
김호에게 어떻게 할지 묻는 시선을 보내자 가볍게 턱을 까딱여 답한다.
하고 싶은 대로 계속 맞춰 주겠다는 것처럼.
홍연화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는 데까지 최대한 해 보자!’
그리고 또다시 불꽃을 피워 올리며, 강하게 땅을 박차 당규영에게 짓쳐 들었다.
– 파아앗!
* * *
그러나…….
홍연화가 끝까지 분전했음에도 스티커는 한 개가 끝이었다.
준비해 온 수단을 첫 번째 스티커에 거의 다 써먹었기 때문에 이후에는 힘이 쭉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 이상은 전투를 이어 나가 봐야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홍연화가 패배에 승복했다.
“졌습니다.”
“수고했어.”
당규영이 대인전을 종료하자 스코어보드에 결과가 떠올랐다.
[대인전 673 -50점]‘응, 깎였네.’
피 같은 대인전 점수가 50점이나 깎였는데도 홍연화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홀가분했다.
평소처럼 분한 생각이나 미련이 남지 않는 까닭은 아마도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한계까지 쏟아부었기 때문이리라.
홍연화는 김호에게 시선을 돌려 어렵사리 입을 열었고,
“그……. 수고했어.”
“수고했다.”
김호 역시 짤막하게 답했다.
홍연화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걸렸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