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서예인은 쉬고 싶다
[김호:아가씨] [서예인:???] [서예인:(어리둥절한 비둘기 이모티콘)] [김호:(정중한 집사 이모티콘)] [김호:아가씨 아침이 밝았습니다] [김호:아가씨 이만 일어나십시오] [서예인:!!!] [서예인:(깨달은 비둘기 이모티콘)] [김호:식사하러 가시지요]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함께 교실로 향하는 길.
서예인의 발걸음에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보인다.
걸음걸이 자체는 평소와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벼워진 느낌.
게다가 이따금씩 발끝이 잔상이 남는 것처럼 흐릿해진다.
[깃털걸음]을 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한번 볼까.’
길목에 늘어선 나무에서 이파리 한 장을 뗀 다음 슬쩍 날려 보냈다.
나풀나풀거리며 날아간 나뭇잎이 서예인의 머리에 내려앉기 직전, 머리 한 치 위쯤에서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며 춤을 추더니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마치 난기류에 휘말리기라도 한 듯한 모습.
깃털걸음의 효과 중 하나였다.
“……?”
서예인은 나뭇잎이 지나가고 약 3초 정도 뒤에 반응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나뭇잎은 왜?’ 하고 묻는 것 같다.
“깃털걸음 얼마나 익혔나 궁금해서. 벌써 D급이네.”
“응.”
스킬을 시전하는 동안 발생하는 난기류의 수준을 보고 대략적인 랭크를 유추해 봤다.
‘잘 배웠군. 역시 빨라.’
안정미를 만나서 앞으로의 방침을 정한 게 화요일이고, 스킬북을 구하는 데에 걸린 시간까지 감안하면 습득한 지 며칠도 안 됐을 거다.
그런데 벌써 D랭크.
몇 번이고 느낀 거지만 정말 독보적으로 뛰어난 재능이다.
물론 배운 사람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가르친 사람의 노고 역시 빼놓을 수 없겠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말은 서예인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뒤쪽에 대고 했다.
그러자 정중한 어조의 답변이 돌아왔다.
“맡은 바 소임을 다했을 뿐입니다.”
이내 허공이 한 차례 옅게 일렁거리더니 안정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같은 정장 차림과 손에 들린 반투명한 옷가지.
투명 길리슈트로 몸을 숨긴 채 서예인을 경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정미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알고 계셨군요.”
“제가 이런 데에는 쓸데없이 감이 좋습니다. 긴가민가했는데 맞췄네요.”
“단순히 감만 좋아서는 제 은신을 간파하기 어렵습니다. 전부 김호 님의 실력이겠죠.”
안정미는 내가 어떻게 투명 길리를 감지했는지 묻고 싶은 기색이었지만,
나로서는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냥 척 보면 아는데.’
고인물 플레이어라서 어지간한 건 대충 보기만 해도 알아요! 라고 설명해 봤자 납득할 리가 없으니까.
해서 은근슬쩍 처음 주제로 돌아왔다.
“보니까 깃털걸음이 벌써 D급인 것 같던데요.”
“예, 주말에 달성하셨습니다.”
서예인을 바라보는 안정미의 시선에서 대견함과 뿌듯한 감정이 듬뿍 묻어나왔다.
흡사 장인이 필생의 역작을 보는 시선과 비슷했다.
그렇게나 말을 안 들어 먹던 아가씨가 수련을 고분고분 잘 따라오고, 가르치는 대로 랭크까지 쭉쭉 오르니 대견할 수밖에 없겠지.
“C랭크도 금방 가겠죠?”
“물론입니다. 이 성장세라면 이번 주 중에 가능하리라 예상합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훈련 역시 기동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며—”
안정미가 지난주 훈련 내용과 앞으로의 일정을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전부 보고했다.
나는 매우 흡족해져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유능할 데가.’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짜여진 커리큘럼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세워진 계획에 보완을 거듭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계획은 세워졌으나 당사자인 서예인이 준비가 안 돼서 여태까지 보류되었던 거겠지.
다만, 이 완벽해 보이는 커리큘럼에도 하나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그런데……. 이거 너무 강행군은 아닌가 싶은데요.”
계획이 하도 빈틈없이 짜여진 탓에, 과연 서예인이 이 강행군을 완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점.
멘토링은 따로 듣지만 수업은 항상 같이 들어가니 매일 옆자리에서 상태를 지켜보는데, 하루가 다르게 물에 젖은 미역처럼 축 늘어져 가는 중이다.
지금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고.
그런데 멘토링은 이제 겨우 한 주 끝났으니, 앞으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실은 김호 님과 그 부분에 대해 상의해 보고 싶었습니다.”
“좋습니다. 마침 당사자도 옆에 있으니 같이 합의점을 찾아보죠.”
먼저 서예인에게 주먹 마이크를 갖다 대며 물었다.
“한 말씀 하시죠. 집사님과의 멘토링 일주일. 소감이 어떻습니까?”
“재미없어.”
서예인이 곧바로 안정미의 가슴에 비수를 푹 꽂았다.
안정미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단 못 본 척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재미가 없다, 그렇군요. 구체적으로 어디가 재미없으신가요?”
“자꾸 똑같은 거 시켜.”
이 발언에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안정미가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끼어들었다.
“아가씨, 반복 숙달은 모든 수련의 기본입니다. 김호 님과 수련하실 때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셨습니까?”
“집사가 시키는 건 재미없어.”
“그렇다면 김호 님은—”
“김호는 괜찮아.”
“?”
“???”
안정미와 내가 혼란스러운 눈빛을 교환했다.
똑같은 수련을 시켜도 집사가 시키는 건 재미없고, 내가 시키는 건 괜찮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이건 더 물어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것 같지가 않다.
일단 넘어가고.
다시 주먹 마이크를 갖다 댄다.
“또 불만 있으신 점,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죠.”
“낮잠도 못 자게 해. 자꾸 깨워.”
안정미의 안면이 미약한 경련을 일으켰으나 가만히 눈을 감고 울컥하는 감정을 억눌렀다.
마인드 컨트롤이 거의 수도승의 그것에 필적한다.
그리고 다시 차분하게 반론을 펼친다.
“아가씨, 낮잠은 4시간 이상 주무시면 안 됩니다.”
‘솔직히 그건 맞지.’
4시간 넘게 자면 그건 더 이상 낮잠이라 부를 수 없지.
내가 안정미라도 깨웠을 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협상 테이블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서예인이었고, 옳은 말은 이곳에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따라서 나는 겉으로라도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기로 했다.
안정미 쪽으로는 몰래 동의와 격려를 보내고.
서예인에게는 또 주먹 마이크를 갖다 댄다.
“음, 그렇군요. 그러면 아가씨의 의욕을 회복할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쉬고 싶어. 재충전의 시간.”
“재충전의 시간이라…….”
안정미와 슬쩍 눈짓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 그냥 쉬게 해 주죠.
– 하지만 일정이…….
– 달리 방법이 없어요.
서예인이 쉬는 만큼 혜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준비한 ‘완벽한 커리큘럼’에 조금씩 오차가 생긴다.
안정미가 멘토링 기간 동안 가르치려던 것을 다 못 가르칠 가능성도 더욱 커진다.
하지만 소탐대실이라고, 작은 손해를 피하려다가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벌써 서예인의 의욕은 가파르게 떨어지는 중이니,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커리큘럼에 오차가 생기는 게 아니라 아예 멘토링 자체가 엎어질지도 모른다.
슈퍼 갑인 서예인이 ‘재미없어. 안 해.’하고 드러누워 버리면 안정미가 무슨 수로 수련을 더 시키겠는가.
그게 됐으면 진작에 시켰지.
– ……알겠습니다.
안정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협상 테이블에 서예인이 원하는 것을 올렸다.
“쉬고 싶으면 쉬어야지. 하루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잘래?”
“…….”
그러나 의외로 서예인은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제시한 해결책이 오답이었다는 뜻.
“그럼?”
서예인이 잠시 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튀어나온 단어는 나도, 안정미도 전혀 예상조차 못 한 것이었다.
“번화가. 나가 봤어?”
“……!”
번화가.
던전섬에는 학생들과 교직원들 외에도 수많은 관계자가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용살학원의 시설들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유지하는 수많은 관계자.
이 관계자들의 주거지는 대개 던전섬 외곽 부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거지역에는 필연적으로 유동 인구가 밀집되는 번화가가 생기게 마련이다.
온갖 상점과 시설들이 늘어서 있어 살 거리도, 먹을거리도, 놀고 즐길 거리도 잔뜩인 곳.
예를 들면, 학기 초에 운 좋게 구해서 서예인과 나눠 먹었던 딸기 생크림 케이크.
그 케이크를 들여오는 제과점이 바로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다.
즉, 서예인의 요구 사항은,
“번화가 나가서 놀고 싶다고?”
“응.”
“너 혼자 가서 재밌게 놀 것 같지는 않고…….”
“같이 가.”
“아가씨, 번화가라면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안정미의 제안에 서예인은 즉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집사랑 가면 심심해. 재미없어.”
“…….”
안정미는 시무룩해져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꼬리가 있었다면 바닥에 축 늘어졌을 것 같다.
그렇게 안정미를 한 방에 물리친 다음,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하는 서예인.
회색빛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반짝 빛난다.
랜덤박스에서 나온 깃털 쿠션을 봤을 때보다 더 빛나는 것 같다.
안정미 역시 시무룩한 와중에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폈다.
내 시간을 지나치게 뺏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은근히 내가 같이 가 줬으면 하는 눈치이기도 했다.
‘이건 가야겠지.’
서예인의 멘토링에는 내가 차지하는 지분이 꽤 크다.
원래 귀찮다며 안 하려던 걸 살살 꼬드겨서 집어넣은 장본인이 바로 나였으니까.
그러니 의욕이 떨어졌을 때의 애프터 서비스도 내가 책임지는 게 맞다.
게다가 실리적으로 따져 봐도 손해가 아니었다.
수련 시간이 조금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 손해는 저쪽에서 히든 피스 몇 개 주워 먹는 걸로 충분히 메꿀 수 있다.
결론. 하루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
주고받는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서예인에게 말했다.
“그래, 주말에 같이 나가자. 대신 집사님 말 계속 잘 듣고, 이번 주 성적도 잘 내는 걸로?”
“…….”
서예인이 슥 고개를 돌려 안정미 쪽을 응시했다.
마치 ‘저거랑 일주일 더 있어야 돼?’하고 묻는 것처럼.
그래도 결국에는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알았어.”
안정미가 소리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거래를 성사시킨 덕분에 최소 한 주는 벌었으니.
가까이 다가와서 나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한다.
“많이 번거로우실 텐데 이렇게까지 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친구니까 힘닿는 데까지 최대한 돕겠다고 했잖아요.”
겸사겸사 번화가에서 저도 좀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요.
그럼에도 안정미는 내가 서예인을 위해 숭고한 희생이라도 하는 듯 감격한 얼굴이었다.
이내 굳게 결심을 다진다.
“김호 님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